미디어 파사드(Media Facade)는 도시 안에서 어느새 꽤 익숙해진 단어가 되었다. 미디어 파사드는 건축물 외면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중심 면을 가리키는 파사드(Facade)에 영상을 투사하며 음향을 추가하는 등, 여러 기술 미디어를 통해 고정된 건축물을 여러 유동적인 모습으로 재의미화하는 방법 및 결과물을 말한다. 건축물 표면의 평면뿐 아니라 여러 입체 부분을 포함하여 고정된 구조물을 유동하게 할 뿐 아니라 새로운 맥락을 더할 수 있어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더불어 다양한 정보를 전달, 소화할 수 있는 매개물로서 오늘날 다양한 실내외 공간에서 활용되고 있다. 프로젝터 기기와 영상 소프트웨어가 발달하며 프로젝터를 사용하는 프로젝션 매핑(Projectoin Mapping)이 대명사가 되었으나 기존의 LED 전광판을 중심으로 한 사이니지(Signage)와 함께 결합하면서 보다 다양한 모습으로 도시에 속해 있다.
그중 최근 서울에서 주목받은 장소는 삼성동 코엑스의 SM Town 코엑스 아티움 외벽을 차지한 LED 스크린 형태의 미디어 사이니지였다. 이 건물 상부의 4면을 감싸는 LED 스크린을 가득 채운 것은 파도였다. 디스트릭트(D’strict)에서 제작한 <Wave>라는 이 작품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파도는 평면이 아닌 입체로 다가오게 하는 착시와 물의 역동감, 조밀한 해상도와 풍부한 색감은 주변을 지나는 많은 사람의 시선을 이끌었다. 이 사이니지 구조물은 가로 81m, 높이 20m로 건물의 4개 면을 감싼 입체 스크린으로 총 1,620m², 즉 농구장의 4배 면적에 9,000니트의 밝기, 그리고 해상도 개념인 픽셀 피치(pixel pitch)가 10mm, 해상도는 7840×1952px 로 크기 대비 매우 조밀한 해상도를 가져 기기 성능 면에서도 해당 분야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 SM Town 코엑스 아티움에서 선보일 대형 미디어아트 공모사업이 지난 8월 진행되었다. 서울문화재단이 주최하고 설화수와 한국무역협회가 후원한 ‘서울미디어아트 프로젝트’ 공모는 ‘전통의 현대적 재해석’을 주제로 거대한 매체, 장소, 그리고 큰 지원 규모로 주목받았다. 7월 29일부터 8월 17일까지의 공모 기간 중 활동 5년 차 이상의 다양한 중견 창작자가 지원하였고 최종적으로 피보탈 랩(Pivotal LAB, 장수호, 유재헌, 추봉길)의 <Pivotal Tree>와 이예승 작가의 <정중동(靜中動), 동중동(動中動)>이 선정되었다.
2020 설화문화전 [창, 전통과 현대의 중첩]_ Sulwhasoo X Ambiguous Dance Company, 설화수 유튜브 채널
그 중 첫 번째로 공개된 것은 <Pivotal Tree>이다. 12월 11일부터 상영을 시작한 이 작품은 ‘당산나무’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우리나라의 당산나무는 긴 세월 동안 어떤 지역, 어떤 마을과 함께하며 그곳을 바라보며 지켜온 지킴이이며 숭배받아온 존재이기도 했다. 또한 마을의 중심축으로 지역공동체와 연관을 가지며 이를 향유하고 유지케 하는 구심체이기도 했다. 이러한 나무는 역사적으로 단군신화의 신단수, 서구권에서는 이그드라실(Yggdrasil)과 같은 세계수 개념 등 상당히 유래가 깊고 보편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피보탈랩은 이 당산나무에서 모티브를 얻어 ‘생명력’과 ‘소통’의 의미를 지니고 도시의 한 가운데 우뚝 서서 지금의 빠르고 혼란하며 불안한 사회의 안녕과 평안을 바라는 디지털 나무를 소환했다. 이 나무가 위치한 가상 공간은 주변 도심 환경을 이끌어와 재현하여 물리세계-디지털 세계가 접하며 서로 녹아든 기묘한 현실감을 소환했다. 나무는 그 현실-비현실이 섞인 공간에서 다채로운 계절과 시간의 변화를 드러내며 나무 스스로가 가진 생명력을 강조한다. 나무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인 나뭇잎은 잎과 더불어 오늘에 관련된 다양한 단어들을 출력한다. 이 단어는 작품공개 이전 피보탈랩에서 프로젝트 홈페이지(http://www.pivotaltree.com)를 통해 시민들이 참여한 오늘에 관련한 여러 소망, 주장, 바램 등의 메시지를 모은 결과물이다. 당산나무가 가진 기묘한 존재감, 소망을 담아내는 구심점, 사람들이 연계하는 네트워크성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오늘 우리 곁에 닿았다.
피보탈 랩(Pivotal Lab)은 <서울미디어아트 프로젝트> 작품 공모를 위해 기획된 특별 프로젝트 그룹이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다양한 영상 분야의 비쥬얼 아트디렉터를 맡은 장수호 감독과 무대 연출가이자 크리에이티브 아트디렉터인 유재헌 감독 미디어테크니컬디렉터 추봉길 감독 등 3명의 감독이 모여 ‘한국의 전통적 재해석’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빅데이터(Big Data)와 확장현실(XR, Extended Reality) 기술을 통한 실시간 시공간 기반의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 작품을 제작하였다. 각 분야에서 최고로 인정받으며 공연, 메가 이벤트, 전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이들은 BTS 월드투어, 평창동계올림픽, 제주 빛의 벙커 등 수 많은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진행했으며 이번 서울미디어아트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다양한 예술과 기술을 접목한 미디어아트 작품 활동을 넓혀가려고 한다. (출처:서울문화재단)
1. 안녕하세요,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피보탈랩에 대한 간단한 소개, 그리고 구성원분들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피보탈랩(Pivotal Lab)은 각기 다른 분야에서 다양한 활약을 펼치고 있는 3명의 전문가들이 모여 예술과 기술을 융합한 다양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기획된 특별 프로젝트 그룹입니다.
Scenic Art를 하고 있는 유재헌 이라고 합니다. 저는 5.18 40주년 기념 전시, 밀라노 엑스포 한국관 아트디렉팅 같은 전시영역과 BTS, 블랙핑크 월드투어의 미술감독을 했었고 평창올림픽 개막식과 평창문화올림픽 주제공연의 아트디렉팅 같이 다양한 공공의 장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작업을 해왔습니다.
Visual Art Director로 활동하고 있는 장수호입니다. 저는 예술과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영역의 영상 작품들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부산항 축제, 전주세계소리축제 등과 같은 대형 미디어파사드 작품들과 첨단 영상기술들을 활용한 다양한 공연 작품들을 제작해왔습니다.
Technical Director로 활동하고 있는 추봉길입니다. 저는 첨단 기술들을 활용한 미디어 시스템 디자인 및 운용작업들을 진행해왔습니다. 실감 미디어를 활용한 제주 빛의 벙커 전시시스템, BTS 월드투어, 워너원 콘서트, 김동율 콘서트 등 AR, MR, XR 등의 첨단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공연 분야의 미디어 시스템 디자인을 제작 운용했습니다.
2. 피보탈 랩은 이번 서울미디어아트 프로젝트 작품 공모를 위해 모인 그룹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결성에 대한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랩 멤버들은 평상시에 현실과 가상이 공존하는 현시성에 관해서 공통적인 관심이 있던 차에 본 프로젝트에서 공공작품으로써 많은 분과 만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본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피보탈 랩은 2018년 <Chameleon Surface>라는 전시를 통해서 디지털 크리쳐와 실제에 대한 실감 미디어의 변용성에 관한 시도를 했습니다. 2019년에는 세기의 디바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의 디지털 데이터를 실물로 변이시키는 방법에 관해서 오페라 갈라 콘서트의 장르에서도 활동했습니다. 이번 2020년의 <Pivotal Tree>은 관람자가 실시간으로 유기적인 생명체와 몰입적인 상호작용을 만들어 냄으로써 실시간 양방향 미디어아트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3. 이번 공모의 핵심 중 하나는 ‘한국의 전통적 재해석’이라는 키워드였습니다. 팀에서 생각한 우리나라의 전통은 무엇이었나요. 그리고 그 전통을 오늘에 가져오는 데 있어서 관점이 중요할 텐데요, 그 재해석에 있어 핵심으로 삼으셨던 것은?
저희 팀에서 ‘한국의 전통적 재해석’의 키워드를 가지고 핵심으로 삼았던 것은 전통의 시각적 접근이 아닌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전통적 삶의 정서적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었습니다. 현재성(Contemporary)은 항상 과거에서 현재, 현재에서 미래를 잇는 통시적 가치를 가집니다. 그리고 전통으로 기억되는 요소들은 항상 당대에 있어서 가장 혁신적인 현재성(Contemporary)을 가지고 있는 아카이빙의 연속이었습니다. 가상과 현실이 공존하는 2020년의 지금에 가장 현대적인 작품이 가장 전통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과거와 현재를 잇는 한국적 정서를 가진 당산나무를 매개체로 삼고 동시대성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 작품을 통해 시각적 표현으로 이끌어내도록 했습니다.
4. 기술적 환경 역시 중요합니다. 처음 SM TOWN의 파사드(사이니지)를 접하셨을 때 떠오른 생각은 무엇이었나요?
코엑스 아티움 전광판은 디스트릭트의 <Wave> 작품을 통해 더욱더 많이 알려진 것 같습니다. 상업적인 공간의 전광판이 공공예술작품을 통해 예술작품의 소통의 장으로써 변모하는 것으로 보고 많은 매력을 느꼈습니다. 또한 2차원의 평면이 아닌 3차원의 공간으로 표현이 가능한 곳이기 때문에 그러한 3차원 공간적 활용을 최대한 이끌어내기위해서 많이 고민했었습니다.
5. 이러한 환경에서 피보탈랩이 다른 지원자들 대비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 강점은?
당산나무가 가진 가장 큰 화두는 오래된 생명력과 사람들의 염원입니다. 이러한 오래된 생명력을 표현하기 위해 완성된 결과물이 아닌 실시간 기반의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염원을 표현하기 위해 상호작용이 가능한 데이터 연동 기반의 플랫폼을 구축하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피보탈 트리의 가장 큰 강점은 고정된 결과물이 아닌, 데이터와 확장현실(XR, Extended Reality) 기술을 통한 실시간 기반의 인터랙티브 작품이라는 점일 것입니다.
6. ‘당산나무=Pivotal Tree’라는 매칭에서 번역 간에 다소 겹쳐지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영어 단어로 번역하는 가운데 많은 부분을 덜어내고 어떤 의미를 축약해서 강화하신 것인지요.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마을을 세운 다음 마을의 안녕을 위해 마을 어귀에 나무를 심었습니다. 오래된 나무가 있는 곳에 마을을 세운 것이 아니라 살고 있는 마을에 나무를 심고 정성을 다해 신목으로 가꾼 것입니다. 이러한 마을의 신목을 당산나무라고 하는데 여기서 당산은 세계의 중심이 된, 또는 우주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음으로써 마을의 세계산 또는 우주산으로 간주되는 산을 말합니다. 그런 중심이 되는 나무라는 뜻에서 <Pivotal Tree>라는 작품명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7. 웹페이지를 통해 소원을 모집하여 실제 설치 작품에 반영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목할 만한 결과나 현상이 있었나요.
실제 홈페이지를 통한 메시지들의 데이터 통해 주목할만한 현상을 보면 동시대성을 느낄 수 있는 메시지가 가장 많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코로나 시국으로 답답한 마음을 표현하는 메시지가 가장 많았습니다. 두 번째는 가족의 건강과 나라의 안녕을 바라는 메시지,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개개인의 소망을 담은 메시지였습니다. 이렇게 불안한 시대에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길 소망하는 메시지를 보면서 <Pivotal Tree>가 가지는 공공예술작품으로서 역할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습니다.
이 작품의 진정한 의미는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아닌 ‘극복 할 수 있다’라는 믿음입니다. 당산나무는 사실 특별한 나무는 아닙니다. 일반적인 나무와 다를 것이 없지만 특별하다는 믿음과 신념으로 마을사람들이 오랜 세월 동안 지켜온 나무였습니다. 그러한 마음들이 모여 마을을 지켜나가는 것이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불안하고 혼란한 현대사회에 평안과 안녕을 바라는 상징적인 오브제로써 <Pivotal Tree>가 존재하길 희망해봅니다.
8. 작품 구현에 있어 가장 주안점을 두었던 부분은?
<Pivotal Tree>에서는 생명력 있는 실시간 3D 시공간을 표현하기 위해, 고품질 실시간 그래픽을 구현이 가능한 Unreal Engine을 사용하여 3D 가상 환경을 구축하였으며, 더불어 코엑스 전광판의 입체적인 디스플레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관람객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확장현실(XR)에 활용되고 있는 기술인 카메라 트래킹(Camera Tracking)을 응용하여, 특정 관람객의 시점(POV)에 맞추어 영상이 보이도록 제작하였습니다. 관람객 동선 기반의 POV(Point of View) 적용을 위하여 관람객 개인의 모바일폰 GPS(Global Positioning System) 위치 값을 입력받을 수 있도록 구성하였습니다. XR 시스템을 구현하기위해 Disguise라는 미디어 통합 솔루션을 사용하였습니다. Disguise의 XR 플랫폼을 사용하여 Unreal과 통신을 하고 Tracking 신호를 공유하여 실제 공간에 있는 관객의 위치 값을 실시간으로 추적하여 가상공간(Unreal Engine)의 시점(Pov)과 일치시킬 수 있었습니다. 작품의 디지털 트리에 반응하는 희망의 텍스트는 웹에서 입력받은 관객들의 메시지를 랭킹 시스템을 통하여 상위 랭킹 된 메시지를 디지털 트리에 반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전체적인 시스템을 활용하여 마치 투명디스플레이에 입체적으로 드리워진 Pivotal Tree를 만나볼 수 있게 됩니다.
9. 이번 작품은 SM TOWN의 파사드와 더불어 인천국제공항에도 함께 선보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두 장소 간 콘텐츠의 차이가 있나요.
이 작품은 나무가 드리워진 각각의 공간성을 살려낸 방식으로 풀어나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코엑스 아티움 전광판은 실외에 있는 전광판으로 Pov(Point of View)를 3차원 시점에 맞추어 주변의 빌딩과 함께 투명디스플레이처럼 제작하려고 했습니다. 인천공항의 경우에는 실내의 전광판을 활용하는데, 전광판이 2차원 평면의 형태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공항 외부의 모습을 작품 뒤쪽으로 드리워서 제작하고 있습니다.
10. 앞으로의 계획은?
공간과 미디어와 기술을 기반으로 한 XR 기반의 다양한 공공예술작품을 기획 중입니다.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작업 기대하겠습니다. 🙂
인터뷰 진행자: 허대찬(aliceon managing 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