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문구가 떠올랐다. ‘소비에 실패할 여유’라는 글에 등장했던 문장이다. “그사이 내 취향은 질식당했고 시야는 납작해졌다.” 오늘을 다양성의 사회라고는 하지만 관점과 사고는 한쪽으로 유도되기 쉬운 사회이기도 하다. 유행과 취향, 심지어 사고마저도 하나 또는 대립되는 두 관점에 끌려 묶인다. 각종 SNS와 새로운 채널들이 등장했고 모두가 송출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의 시대이지만, 대형 매체와 스타 채널이 가진 시각적 힘이 폭력적일만큼 자극적이고 강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고하고 판단할 여력이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라는 믿음은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 오늘은 생존 시대이고 우리는 생존 세대이다.
생존에 대한 강박은 우리 스스로에게서 쉽게 볼 수 있다. 이른바 ‘납작해진 시야’는 정신적, 육체적 방면 모두에 동작한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읽고 집중하고 있다.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는 늘 종이와 모니터에 초점이 맞아있다. 이동시간조차 스마트폰의 화면을 향해 머리를 숙이고 이미지와 언어 읽기에 집중한다. 밥먹을때도 마찬가지. 점심시간도, 퇴근 후 저녁식사도 역시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의 유튜브 화면, 또는 텔레비젼에 항상 시선을 두고 있다. 우리 일상에서 우리가 집중하여 바라보는 무언가는 어지간하면 1m를 채 벗어나지 못한다. 이곳에서 습득한 방향성은 우리의 행동까지도 제한한다. 소비는 가성비를 가장 우선 따지며 세상을 보는 눈은 극단 사이를 부유한다. 취향은 가장 높은 조회수,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은 포스팅에 물든다. 우리가 바라보고 해야 할 ‘역할’은 평평하게 펴져 고정되어있다. 그렇기에 좁은 1m의 시야가 아니라 뭔가 더 멀리 있는, 시야를 틔울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한 시기이다.
‘서울로 미디어 캔버스’는 서울로 7017 곁 한 빌딩의 표면에 위치한 대형 미디어스크린이다. 이 스크린은 투명전광 LED 모듈을 사용하여 영상송출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을 때에는 그대로 스크린 뒤쪽을 투명하게 비춘다. 그리고 작품이 상영되기 시작하면 투명모듈은 빛을 밝히며 건물 표면에 작품 영상을 수놓게 된다. 최성록은 이 스크린에 사람들의 시선을 확장할 방법으로서 그가 바라보고 있는 도시와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이 대형 스크린에 펼쳐지는 것은 이전의 도시 스크린에서 익히 보아왔던 광고와 캠페인이 아닌 전혀 다른 맥락의 콘텐츠이다. 이들은 작가의 시선 건네기 이고 물음이며 권유이다. 시민들은 그 빛에 이끌려 그 앞을 지나가는 대중에서 관람자가 될 기회를 맞이한다. 그들은 얼굴 앞 30cm, 1m 앞에 던지는 시선이 아니라 도시 표면에 맺힌, 저 멀리 도로 건너편 건물 벽에 표시되는 뭔지모를 움직이는 이미지를 향해 초점을 맞춘다. 눈앞의 텍스트와 영상을 읽기 위해 잔뜩 긴장하여 눈의 수정체를 수축시키는 모양체근육을 쉬게 하고 지금까지 눈으로 보던 풍경과는 사뭇 다른, 하지만 익숙한 문법의 시점이 표현하고 있는 무언가를 탐구하는 시간이다.
이번에 처음 선보이는 그의 신작 <Role and Play> 시리즈(1, 2, 3)는 특별한 사건에서도, 일상에서도 멀어져 결국 우리의 인식 범위 밖에 위치한 서울 안 공간에 대한 작업이다. 도시는 우리들에게 일터이고 교육장이며 시장이고 휴식처이다. 도시민 각자에게 업무 공간, 교육 공간, 소비 공간, 여가 공간도 아닌 그 사이의 공간은 기능이 없다고 판단되었기에 그들의 관심 너머로 사라진다. 최성록은 이런 기능주의적인 시각 너머의 의미를 탐구한다. 방과 후의 고등학생과 수업과 과제를 마친 대학생들, 동네에 오래 거주한 아주머니들이 각자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지 않는 주변 공간이나 작동시간 이후의 공간들을 거닌다. 그들은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기도, 행진을 하기도, 색다른 포즈를 취하기도 하며 공간을 다른 궤적으로 물들인다. 드론을 통해 바라보는 그 공간의 전경은 그들의 행동과 이에 연결되어 바닥에 드리워진 그림자와 함께하며 그 이전까지 없었던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드론이 잡아내는 부감(俯瞰)풍경은 게임에서 보아 온 낯익은 시점이지만 동시에 서울이라는 익숙한 터전을 낯설게 만들어 익숙함 속에 숨어있던 새로운 이면을 우리 곁으로 끌어온다.
또 다른 신작 <Side Scroll Seoul>은 횡스크롤 애니메이션이다. 이 작품이 가진 독특한 지점 중 하나는 시점이 옆에서 바라보는 방향 한 가지로 고정이 되어있다는 점이다. 최성록의 작업은 대부분 시점은 한가지로 통일되어있다. 각 시점은 디지털 시대 이전에는 시도하지 못했거나 시도하기 어려웠던 표현과 시점들이다. 이 작품에서는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지하철과 버스 등의 대중교통, 이동수단으로도 여가 수단으로도 활용되는 자전거와 그를 타고 있는 사람들, 청소부, 교통경찰, 그 사이를 오가는 보행자 등 수많은 구성원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그들의 삶의 터전인 서울 위를 걸으며 각자의 이야기를 쌓아간다. 최성록이 관찰한 서울을 구성하는 고유한 성격은 2D 애니메이션을 통해 재구성되며 원테이크로 끊임없이 스크린에 투영된다. 이 소소한 이야기들은 고단한 일상과 거대한 사건에 파뭍혀 미처 인지하지 못한 도시인들의 삶의 단면을 드러내어 고정되거나 일관된 일상 인식을 환기시킨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밖에도 그의 이전작품 6점이 함께 상영되며 오늘날 우리의 환경을 구성하는 기술에 의해 발생된 다양한 풍경과 서사를 관람자에게 건낸다. 그는 그 근본적인 변화 지점을 시각기계에서 찾고 이를 탑 뷰, 사이드 뷰 등의 기술적 시점과 이미지, 서사를 통해 드러내었다.
최성록은 이들 시각기계와 시각기술에 관심을 두고 이들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가에 대한 탐구를 진행해왔다. 그는 동시대 시각문화 안에 큰 영향력을 가진 디지털 비디오 문화에 주목한다. 드론의 시각과 애니메이션, 3D 그래픽은 가상의 기술적 시각법칙을 자연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단적으로 카메라의 플레어는 자연이 제공한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가상의 법칙이다. 드론이 만들어내는 부감도는 소프트웨어 처리 과정을 통해 왜곡을 펴 낸 자연스럽지 않은 자연스런 풍경이다. 시각기계를 거친 이들 이미지는 이것을 소비하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런 서사이자 법칙으로서 인식된다. 이 지점이 시각기술의 등장 이전과 이후의 차이이며 인간 시각과 세계인식의 차이이다. 우리는 이들을 통해 우리의 세상을 넓혔지만 한편, 동시에 그 시야를 고정당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기술 환경 안에 거대한 법칙이 있음을 드러내며 그에 눌려 납작해진 시야, 유도된 인식을 펴 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최성록의 작업은 일종의 놀이이다. 그의 작업에 등장하는 시점은 게임의 그것이다. 게임은 오늘을 대표하는 가장 강력한 문화가 되었다. 그만큼 많이 접하고 익숙한 것이 우리이다. 플레이어인 우리는 1인칭뷰, 쿼터뷰, 톱다운뷰, 횡뷰 등 위에서, 옆에서, 비스듬히, 그리고 앞에서 등 온갖 시점을 가지고 논다. 이렇게 익숙해진 각종 시점을 차용한 무언가를 볼 때 우리의 시각과 사고는 일단 게임을 대하듯 시작한다. 힘을 뺀 시각이기에, 노동을 하거나 시험보듯 긴장한 상태가 아니기에 정해진 하나의 결론을 향해 고정당하기보다는 한껏 풀어진 가능성들을 볼 수 있는 상황에 닿게 되는 것이다. 이는 고정 시점이 제공하는 강요된 고정을 해체할 수 있는 기회라는 역설이다. 놀이는 고정된 역할을 둘둘말아 왜곡시키고 새로운 가능성을 환기시키며 살펴볼 수 있는 하나의 장이다.
글. 허대찬 | 앨리스온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