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체, 기술 그리고 오늘에 대한 해석: 백남준의 유산

 

백남준의 유산들 – 매체, 기술 그리고 오늘에 대한 해석

백남준이라는 작가를 조망하는 움직임이 근래 빈도가 많았습니다. 그 중 하나가 작년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테이트 모던(Tate Modern)에서 진행된 연구전시입니다. 

Five Times Artist Nam June Paik Predicted the Future | Tate

 

2014년 현대자동차는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Tate Modern)과 커미션 <더 현대 커미션(The Hyundai Commission)>이라는 11년간의 장기 후원 파트너십을 체결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테이트모던의 아시아-태평양연구소(Tate Asia-Pacific Research Centre)와의 협력하에 작가 백남준의 작품 구입과 테이트 모던에서의 전시에 대한 후원을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이 때 구입한 작품이 <Three Eggs 19751982>, <Bakelite Robot 2002>, <Flux Fleet 1974>, <Office 1990-2002>, <Nixon 19652002>, <Victrola 2005>, <Can Car 1963>, <Untitled 1974, 19823>, <Untitled c. 1975>의 총 9점이며 테이트모던 미술관의 level 4에 위치한 상설 전시관에서 전시가 진행중입니다. 본 글에서는 이들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백남준’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아마도 텔레비젼일 것입니다. 그는 텔레비젼이라는 대중매체(Mass Media)를 최초로 예술적인 맥락으로 끌어들인 작가로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일방적으로 내용을 송출하는 매스미디어의 대표자인 텔레비젼을 자석을 통해 조작하여 우리들 수신자가 텔레비젼의 영상을 임의로 바꾸는 작업을 선보였습니다. 또한 그는 1965년 소니에서 개발한 최초의 휴대용 비디오 카메라 포타팩(Portapak)을 출시된 그 해 구입하여 영상을 직접 촬영하였고, 1969년   일본의 전자공학자 아베 슈야(Shuya Abe)와 함께 아날로그 비디오 신디사이저(Synthesizer)를 개발합니다. 여기에서 신디사이저는 여러 주파수나 파형의 소리를 합성하여 새로운 소리를 만들거나 저장된 음색을 사용자의 역량에 따라 전자적인 변조를 가할 수 있는 기계적 장치입니다. 그는 이 비디오 합성기를 이용하여 여러 비디오테이프의 정보를 삭제, 복사, 삽입하거나 색을 입혀 변형시키는 등의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즉 그는 텔레비젼을 사회적 의미의 매스미디어이자 예술적 의미에서의 표현매체로서 주목, 탐구하는 한편 영상을 제작하고 수정, 편집하는 활동 모두를 망라하여 비디오 아트의 기원과 다차원적 확장을 시도했기에 비디오 아트와 미디어 아트의 선구자로서 오늘날 미술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Nam June Paik
Manfred Leve
Exposition of Music. Electronic Television, 1963
1963 (1991)
b/w photograph on baryta paper
9.45 inch x 11.81 inch
erworben/acquired in 2002
Inventory number: G 978/0

비디오 아트(Video Art)의 시작은 1963년 독일 부퍼탈(Wuppertal)의 파르나스 갤러리(Galerie Parnass)에서 열린 백남준의 첫 개인전 <음악전시회-전자 텔레비젼(Exposition of Music – Electronic Television)>을 기점으로 합니다. 그는 1955-60년을 거치며 막강한 대중의 우상으로 자리잡은 텔레비젼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고, 이 전시에서 그 결과물로서 텔레비젼을 이용한 작품을 처음 선보였습니다. 그는 텔레비젼을 단지 작품의 시각적 재료로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다이오드와 자석을 이용해 화면을 왜곡시킨 총 13대의 텔레비젼 작품들은 무질서하고 우연적으로 전시 공간에 배치되었습니다. 왜곡된 이미지와 혼란스럽게 한 공간에 배치된 텔레비젼 작품들은 대중들에게 일방적으로 같은 내용을 전달하는 기존의 텔레비젼의 틀을 부쉈습니다. 관람자는 텔레비젼 앞에서 일방적인 수용자로서가 아닌 능동적인 해석자로서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이 장면은 미술사에 처음으로 텔레비젼이 등장한 모습이며, 매스미디어로서의 텔레비젼이 지닌 일방통행성이 깨진 기점입니다. 그리고  완성되어 고정된 작품과 관람자의 관계가 아닌, 관람자가 작품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그 작품이 비로소 완성되는 상호작용성이 등장한 순간입니다.

부퍼탈 전시에서는 그 외에도 카세트 테이프의 마그네틱선을 콜라주 해 놓은 벽에 관람자가 자기헤드(magnetic head)를 문지르면 소리가 나도록 하거나 긴 봉에 레코드판을 관통시키고 그곳에 전축의 바늘을 가져다대면 각자 소리가 나는 설치물도 선보였습니다. 백남준은 이 전시에서 텔레비젼의 속성을 뒤엎는 실험과 함께 다양한 전자매체들을 이용하여 그 이전의 미술이 다루지 않았던 작품과 관람자와의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였습니다. 기존의 미술 양식으로 해낼 수 없었던 이러한 시도는 새로운 매체를 이용한 백남준의 작업들에서 중요 요소로 계속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예술 개념과 형태는 오늘날의 미디어아트에 고스란히 닿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Nixon 1965−2002 Video, 2 monitors, colour and sound with 2 magnetic coils driven by amplifier, video switcher

이 작품은 텔레비젼과 자석을 이용한 작품입니다. 두 개의 텔레비젼과 각각에 설치된 원형 전자석으로 구성된 이 작품에서는 닉슨 대통령의 연설이 재생됩니다. 이 영상은 정상적으로 보여지다가 전자석이 작동되면 이미지의 형태와 색이 왜곡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텔레비젼의 후방에 위치한 전자총에서 텔레비젼 영상 생성을 위해 전면 화면의 형광판 쪽으로 방출되는 음극선이 자석의 자기장에 의해 휘어 왜곡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텔레비젼이라는 매스미디어는 송신자가 수신자에게 일방적으로 내용을 전달하는 구조를 지닙니다. 수신자는 단지 채널을 선택할 뿐 각 채널에서 전달하는 내용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소설가이자 언론가인 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1949년 발표한 그의 소설 <1984년>에서 매스미디어가 지닌 권력의 속성을 드러내었습니다. 소설에서 절대권력을 가진 당(The Party)은 텔레스크린(tele-screen)이라는 텔레비젼 형태의 매스미디어를 통해 일방적으로 검열된 정보를 국민들에게 전달하며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제한된 사고를 이끌어냅니다. 매스미디어의 발전이 세계를 획일화하고 사람들은 권력층에 의해 생각의 지배를 받는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그려낸 오웰의 소설의 핵심적 환경중 하나로서 드러난 것이 바로 텔레비젼입니다. 백남준은 자석을 이용해 수신자측에서 전달되는 내용을 바꿀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매스미디어가 가지는 일방성을 드러내는 한편, 이 미디어를 조작하여 일방성을 깨뜨린 것입니다. 나아가 새로운 하나의 표현매체이자 창조의 도구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텔레비젼을 통해 과거의 관념화된 구조, 현재의 상황과 시도, 그리고 미래의 가능성을 동시에 드러낸 것입니다.

Bakelite Robot 2002
One-channel video installation with two 4 inch LCD monitors and
three 5.6 inch LCD monitors, vintage Bakelite radios
1200 x 921 x 197 mm

한편, 백남준의 작업 중 또다른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로봇의 존재입니다. 백남준은 1964년의 로봇 작품 <K-456>을 시작으로 지속적으로 로봇과 관련된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이 로봇은 걸어다니고 말을 하며, 관객에게 콩을 배설하는 등 살아있는 존재로서 사람들 앞에 섰습니다. <K-456>은 그 이후 근 20여년간 그의 개인전에서 볼 수 있는 단골 손님이었습니다. 그리고 1982년, 이 로봇은 미국의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앞에서 차에 치어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는 로봇이 차에 치어 사망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기계와 기술을 통해 탄생한 로봇을 인간과는 다른 대립항으로 본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선상의 존재로 보았습니다. 로봇은 인간을 닮은 기술 결과물입니다.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죽음’이라는 개념을 로봇에 적용시킴으로써 기술이나 로봇 자체만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 기술과 사회, 그리고 이와 연관한 인간을 주목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입니다.

Robot K-456, 1964.
Twenty-channel radio-controlled robot, aluminum profiles, wire, wood, electrical divide, foam material, and control-turn out.
72 x 40 x 28 in. (183 x 103 x 72 cm).
Friedrich Christian Flick Collection im Hamburger Bahnof, PAIKN1792.01.
Photo: Roman März, Berlin.

<K-456> 이후의 로봇 작업은 실제로 걸어다니거나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닌 비디오 조각의 형태가 대부분입니다. 비디오 조각은 오브제, 즉 기성품들로 구성되며 각 로봇은 텔레비젼과 라디오 등 매스미디어 기성품을 활용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작품 <베이클라이트 로봇>에 사용된 이름 ‘베이클라이트’는 최초의 인공 합성수지의 이름입니다. 개발 당시 최첨단 소재로서 대량생산에 최적이었던 이 베이클라이트를 통해 라디오는 극도의 표준화와 규격화를 이루었습니다. 이를 통해 ‘베이클라이트 라디오’는 가구처럼 화려한 모습을 지닌 이전의 라디오와 극명한 대조를 보이며 당대의 기능과 기술이 강조된 현대성을 확보하게 됩니다. 즉 베이클라이트 로봇은 그 시기의 현대성을 대표하는 기술 주체의 존재를 드러냅니다. 당대의 기술을 이용하며, 해당시기의 기술에 영향을 받아 현대와 동기화된 인간의 모습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라디오 안에 함께 설치된 텔레비젼 화면에서는 로봇과 관련된 영상이 끊임없이 재생됩니다. 비디오 신디사이저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7개의 영상들은 각기 다른 장면을 끊임없이, 동시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처럼 다채널을 통해 한 공간에서 동시적으로 보여지는 이미지는 기존의 지각 경험과는 다른 새로운 경험을 제공했습니다. 정해진 하나의 내용을 선형적으로 받아들이는 수동적 해석이 아닌 많은 화면에서 정신없이 뿌려지는 이미지를 각자의 기준으로 각자 다르게 능동적으로 해석해야하는 이 지각 체험은 기존과는 다른 ‘참여’의 의미를 지니며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예술의 모습과 새로운 사회상을 반영한 모습일 것입니다.

백남준은 기존의 예술매체와 방법론에서 눈을 돌려 현대의 새로운 전자 기술 매체에 대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또한 기술과 우리를 따로 분리하여 바라보기보다는 기술과 기술의 생산물을 인간화하여 예술의 지점에서 함께 사유했습니다. 그는 오늘날의 기술 사회의 핵심축으로서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관심사로 하여 그에 대한 앞으로의 변화상을 예술의 시각으로 탐구한 것입니다.

당대에 등장한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매체를 탐구하여 이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새로운 경험과 지각의 세계로 나아가려 했던 그의 시도가 과거의 부정 또는 과거의 단절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일방적 매체였던 텔레비젼이라는 매스미디어를 상호작용적 매체로서 새롭게 읽어내어 제시한 그의 상상이 오늘날의 컴퓨터와 스마트 티비라는 현실이 되었듯, 그는 과거와 현재를 매개하고 이를 토대로 미래를 관측하여 더 나은 무언가를 상상해 낼 수 있는 청사진을 제시한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끊임없이 백남준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글. 허대찬 | 앨리스온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