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근 한국 게임계는 작년 11월 17일 오픈 베타를 시작한 스마일게이트의 <로스트 아크> 때문에 뜨겁게 달아올랐다. 출신되기 전부터 꾸준히 관심을 모았지만, 출시된 이후에도 게임계 안팎에서 상당한 관심을 누리고 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 개발기간 7년에 천억에 가까운 비용이 투입된 대작게임이다. 과거 MMORPG가 인기를 끌던 시절이라면 모를까, 현재처럼 짧게 치고 빠지는 모바일게임의 시대에서 정말 희귀한 경우다. 둘째 정말 오랜만에 등장한 MMORPG이다. 이 장르는 거의 모든 게임장르가 동원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며, 일종의 종합게임양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도 예산도 상당히 투입되며, 그만큼 위험이 클 수밖에 없다. <로스트 아크>만큼 시간과 인력을 투입한 MMORPG가 얼마나 있는지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해외의 경우 바이오웨어와 루카스아츠가 개발하고 EA 배급하고 있는 <스타워즈: 구공화국Star Wars: Old Republic>이 유일한데 무려 2011년 12월에 출시한 게임이고, 국내의 경우 양산형 MMORPG를 제외하면 2014년 출시된 <검은 사막>이 유일하다.(해외 게임 가운데 명작 RPG <엘더 스크롤>을 확장시킨 <엘더 스크롤 온라인>이 있으나 <스타워즈: 구공화국>만큼 인기를 끌진 못했다) 셋째 MMORPG를 원하는 사용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실히 입증했다. 유행도 지났고 실패할 경우 부담도 막대하고 기존의 대작게임들 때문에 자리도 잡기 힘든데, 새로운 게임을 개발할 이유가 딱히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 출시한지 한 달도 안 된 상황이긴 하지만) <로스트 아크>는 이 모든 편견과 난관을 극복하고, 대작 MMORPG 욕망의 ‘존재’를 확실히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욕망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그것이 단순히 한국만의 상황이 아니란 것을 개인방송 플랫폼 트위치가 보여줬기 때문이다. ‘방송’이 사뭇 독특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2. <로스트 아크>는 공식 출시된 게임은 아니다. 여전히 ‘베타’의 딱지를 떼어내지 않았다. 물론, 요즘 출시되는 게임들은 모바일게임과 콘솔게임을 제외하면 ‘완성된 형태’가 없는 게 대부분이다. 출시되기 전부터 여러 가지 수익모델을 통해서 ‘사실상’ 서비스를 진행한다. 오픈 베타 역시 비슷한 방식이며, ‘공식 오픈’을 위해서 기술과 콘텐츠를 마지막으로 검증하는 절차 정도로 인식된다. 여기서 이른바 ‘대박’이 터졌다. 기대도 많았지만 걱정이 더 컸던 게 사실이다. 클로즈드 베타 때 반응은 나쁘지 않았지만, 그것은 소수의 평가였고, 사용자 대중이 어떻게 판단할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앞서 지적한 사항들을 생각하면 성공의 가능성을 타진하기 쉽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런데 <로스트 아크>는 이 모든 예상을 뒤집고 압도적인 반응을 통해서 화답했다. 지금은 서버를 추가하는 등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해서 대기열이 사라졌지만 초반에는 그렇지 않았다. 인기서버의 경우 대기열이 기본 만5천을 넘었으며, 대기열에 등록을 하지도 못하는 경우도 속출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하는 시간대에 게임을 하려면 세 시간 넘게 기다려야 하는 서버도 있었다. 이 때문에 각종 해프닝이 발생했다. 얼마나 접속하기 어려웠던지, 대기열을 알려주는 사이트나 카톡 대기열 알림 서비스까지 등장했고, 오죽했으면 대기열의 순번마다 대처하는 매뉴얼이 등장했을 정도다. 예를 들면, 만5천대면 쇼핑과 조깅과 청소, 만대면 청소와 식사, 5천대면 식사 후 담배 등. 게임 때문에 건강도 챙기고 생활도 바르게 했다는 웃지 못 할 농담 같은 이야기가 여러 게시판에 속속 올라왔다.
3.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대기열이 팽창된 이유 가운데 하나가 해외에서 우회 접속하는 사용자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은 출시된지 일주일도 안 돼서 중국어로 개변조된 클라이언트가 출시되어 판매될 정도였다. 물론 게임 전체를 번역한 것은 아니었지만, 무리없이 게임을 진행할 정도였기 때문에 사용자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인기를 증명하는 좋은 척도이긴 하나, 한국의 개발사 스마일게이트나 사용자의 입장에서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개발사로서는 실수요를 넘어서는 서버관리 때문에 고민일 터였고, 사용자로서는 하고 싶은 게임을 못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개발사가 (특히 중국에서) 우회 접속하는 사용자를 차단하는 조치를 취하고 서버도 추가하면서 대기열 사태는 어느 정도 완화됐다. 그런데 해외에서 우회하는 사용자가 중국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 독일 러시아 프랑스 브라질 터키 등, 다양한 국적의 스트리머가 <로스트 아크>를 플레이하면서 방송을 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인기 스트리머가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체로 이들은 <디아블로>나 <패스오브엑자일Path of Exile> 같은 ARPG를 하거나 <월드오브워크래프트> 같은 MMORPG를 하는 스트리머들이다. 예를 들면 quin69는 <월드오브워크래프트>는 물론이고 <디아블로>와 <패스오브엑자일>에서 하드코어 플레이어로 유명하며(https://www.twitch.tv/quin69), nugiyen와 alkaizer는 <패스오브엑자일>을 주요 콘텐츠로 삼는 스트리머다(ttps://www.twitch.tv/nugiyen, ttps://www.twitch.tv/alkaierx). (외에도 해외 클라우드 9 소속 <LOL> 프로게이머 sneaky도 자주 방송을 하고 있다.) 따라서 <로스트 아크>가 쿼터뷰에 액션과 타격감을 강조하는 MMORPG이므로, 정확하게 취향을 건드렸다고 할만하다. 양쪽 다 얼마간 만족하는 형식이기 때문이다.(quin69의 방송은 <로스트 아크>를 할 때 5천명 정도의 시청자가 보고 있으며, nugiyen의 경우는 보통 5백에서 천 사이의 시청자가 달라 붙는다) 여기가 주목할 지점이다. 그들은 (그리고 한국의 스트리머들은 한국의) 게임을 하면서 어떠한 현상이 발생하는가. 그리고 그것은 게임과 게임의 문화와 생태계에 어떠한 영향과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가.
4. 한국이든 외국이든 자국에서 서비스되지 않는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상당히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한국의 계정을 확보하고 인증절차를 밟는 등 기술적인 문제도 크지만, 무엇보다 언어의 장벽이 만만치 않다. <로스트 아크>가 장대한 스토리에 기초하는 RPG라는 것을 유념하자. 언어를 모르면 게임을 하면서도 미루어 짐작할 뿐 정확히 내(캐릭터)가 왜 누구와 만나고 다투며 무엇을 해야 하고 해결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게임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게임을 진행하는 것이야 RPG를 오랫동안 했던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눈치껏 이해하며 진행할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게임의 각종 메뉴와 스킬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무엇을 선택하는지, 쓰는 스킬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면, 원활하게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게임을 열렬히 좋아하는 한국의 사용자와 다르지 않았다. 메뉴와 스킬 같은 각종 언어를 번역해서 게임 사이트에 올리며 공유하는 등, 집단지성의 면모를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일본게임을 하기 위해서 한국의 1세대 게이머들이 일본어 사전을 일일이 대조해 가며 했던 행태와 다르지 않은 것이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플레이하는 곳과 플레이되는 곳이 멀기 때문에 ‘핑’ 문제가 발생한다. 그들로서는 서버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플레이할 때마다 ‘지연’이 생겨서 게임에 지장이 생길 수밖에 없다. ‘액션’이 중요한 게임일수록 핑의 문제는 심각한데, 왜냐하면 반응이 늦기에 캐릭터가 죽기 쉽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처럼 ‘의미’의 측면에서도 ‘액션’의 측면에서도 불편한 상황을 감수하며 게임을 하고 있는 셈이다. 불편을 감수할 만큼 게임이 재미있지 않으면 언감생심의 일일 것이다.
5. 이와 같은 인기는 트위치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트위치의 인기순위는 몇 개의 게임이 상위권을 꾸준히 유지하는 경향이 짙다. 몇 년 전 생존형 배틀게임이 유행하기 전까지는 AOS 게임이 상위권을 선도하는 형태였다. <LOL>과 <도타 2>가 부동의 선두를 유지했고 <콜 오브 듀티>와 <하스 스톤>이 10위권을 꾸준히 형성했다. (10위권이 중요한 이유는 트위치에 접속하면 첫 화면에 10위까지 표시되기 때문이다)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선두권은 <배틀 그라운드>와 <포트 나이트>가 등장하면서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초반은 전자가 주도했고 현재는 후자가 선두권을 형성한 상태다. 기존의 인기 게임들 가운데 <LOL>, <콜 오브 듀티>, <카운터 스트라이크>는 비슷한 성적을 내고 있지만, <도타 2>와 <하스스톤>은 예전과 비교해 조금 내려왔다. 이렇게 형성된 순위는 <배틀 그라운드>처럼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유행을 바꾸는 게임이 등장하지 않는 한 거의 바뀌지 않는다. 대형 신작 게임이 등장해 프로모션이 진행되어 아주 잠깐 10위권에 포진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별다른 변동이 생기지 않는다. <로스트 아크>의 인기가 ‘진짜’라는 것은 (얼마간 과장해서) 이러한 ‘그들만의 리그’에 입성했다는 것이다. 물론, <포트 나이트>나 <LOL>처럼 꾸준히 10위권에 있는 것은 아니며, 해외 인기 스트리머들의 덕을 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로스트 아크>는 ‘글로벌 서비스’를 하지 않았음에도 ‘글로벌 상위권 순위’에 오른 것이다. 물론 현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리란 보장은 없다. 개장 효과도 시간이 지나면 약해질 것이고, 시청자를 몰고 다니는 인기 스트리머들도 하나 둘 빠질 게 확실하다. 그러나 유념할 것은 방송을 통해서 게임의 생태계가 구축되는 과정을 분석하는 것이다.
김상우 (앨리스온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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