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세상보기] 아파트, 도시 공간의 로망으로 – 2

1980년대, 산업사회에서 소비사회로 이동하는 길목 위에서 한국 사회는 격동적인 변화의 시기를 맞이했다. 한국 사회의 가장 보편인 주택 양식, 혹은 한국인이 가장 열망하는 주택 양식으로서 ‘아파트’가 자리하게 된 시작 지점 또한 여기에 있다. 1970년대 강남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건설은 서울에 독창적인 도시 형태와 경관을 만들어주었으며, 이후 신중산 계층을 위한 집단적 거주 구역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결과적으로 1980년대 아파트는 신중산층의 일종의 ‘지위재’로서 그들의 존재와 계급을 표상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에 서울의 아파트 단지들은 다른 거주 구역과는 구별되는 특유한 장소성을 형성하게 되었다.(한국 아파트의 역사 및 장소성에 대해서는 이전 글을 참조) 이번 글에서는 신중산층의 ‘지위재’로서의 아파트를 조명한다. 신중산 계층이 그들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하여 주거 공간을 어떻게 디자인하고 그 의미와 역할을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알아보자. 그리고 이러한 시각적 특성들이 당대의 사회 문화적 현상들과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를 함께 읽어볼 것이다. 예고한 바와 같이, 80년대 한국 대중 영화에 등장하는 아파트 장면들을 통하여 이들을 살펴본다.

장식의, 장식에 의한, 장식을 위한: 신중산층의 지위재로서

<불의 나라(1989)>는 서울에서 성공을 꿈꾸던 젊은 남녀의 실패와 좌절을 그려낸 장길수 감독의 영화이다. 고급 룸살롱의 마담으로 등장하는 여주인공 은하의 아파트는 영화의 주요한 공간적 배경으로서, 그녀의 삶과 가치관을 직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매개체이다. 그녀의 아파트 거실은 지나치게 느껴질만큼 화려한데, 장식을 위한 온갖 것들이 빽빽하게 집안을 둘러싸고 있음이 한 눈에 드러난다.

Figure 1 영화 ‘불의 나라’에서 나타나는 거실 인테리어의 장식성

거실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예술 작품들은 언뜻 보아도 공간의 규모에 비하여 그 수가 과도하게 많다. 소파 뒷 편에는 회화 작품이, 그 주변과 맞은 편으로는 도자기와 석고 등의 입체 작품이 여러 개 보인다. 유흥과 향락을 즐기는 듯 보였던 주인공 은하는 사실 미술 애호가였던 것일까? 이번에는 식사실 한 켠의 거실장으로 눈을 돌려보자. 한 쪽 벽면을 넓게 차지하는 이 거실장들은 육중한 나무 프레임에 유리창으로 이루어져 내부 사물을 훤하게 보여준다. 고급 그릇과 큰 도자기가 거실장 안팎으로 가득 놓여있다. 싱글녀로 설정된 은하가 혼자 사용하기에는 지나치게 많고 또한 실생활에서 사용하기에도 적합하지 않은 종류의 자기들이다. 이들은 그저 진열을 위한 오브젝트로서, 은하의 자기 만족 혹은 과시를 위한 전시품으로서 쓰이고 있을 것이다.

 

Figure 2 (왼쪽 상단에서 시계 방향) 
영화 <매춘>, <애마부인>, <적도의 꽃>, <무릎과 무릎 사이>에 등장하는 아파트 거실 인테리어의 장식성. 거실장에 각종 예술품과 장식품이 가득 차있다.

<매춘(1988)>, <애마부인(1982)>, <적도의 꽃(1983)>, <무릎과 무릎 사이(1984)> 등 다른 영화 속 거실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실내 장식품들이 등장한다. 동서양과 여러 장르를 아우르는 예술 작품들, 높고 넓게 거실 벽을 메우는 거실장, 바닥이나 천정, 탁자 위에 놓여있는 여러 조명 기구 등이 그렇다. 이들은 거주자의 미적 취향과 사회적 지위, 재산의 규모 등을 드러내며 존재한다. 아니, 이들은 그를 내세우기 위한 의도적인 전시품이다.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지적하였던 것처럼, 개인의 취향으로 그의 계급 기반, 직업 종류, 학력 수준을 결정하고 구별짓는 현상의 발현이다.

과거 단독 주택과 달리 아파트는 개별적인 외양으로 주거공간의 차별화를 꾀할 수 없으며, 따라서 집 안의 실내 장식은 거주자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되었다. 예술 작품 등의 실내 장식물은 거주자가 오랜 기간 향유해온 문화적 수준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그의 고급 취향을 뚜렷하게 구별지어 보여주기에 효과적인 수단이다. 즉, 집안의 장식품은 거주 집단인 신중산층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수준 등을 보여주는 지위재로서 인지되었으며, 이는 과도하게 장식적인 거실 인테리어 방식으로 드러나고 있다.

자연을 그리워하며: 잔존하는 마당의 문화 

영화 <적도의 꽃>을 보자. 집안 곳곳에 걸려있는 벽걸이 화분들은 물론이고 테이블 위 분홍빛 장미, 거실의 한 쪽 면을 차지하는 돌 벽으로 된 거실장까지 실내의 작은 정원을 연상시킨다. 이 안에서 주인공인 선영의 일상을 상상해보자. 그녀는 매일같이 온 집안의 꽃과 나무들에 물을 주고 이파리를 닦아주며 자연과 함께한다. 거실 테이블에 놓인 핑크빛 장미의 향기를 맡으며 미소지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발코니로 나가 기지개를 켜며 하루를 시작하고, 마당을 쓸 듯 발코니 바닥을 비로 쓸곤 한다. 발코니에서 기르는 애완용 새에게 모이를 주는 일상이 이어진다.

 

Figure 3 영화 <적도의 꽃> 거실 장면. 
주인공 은하는 도심 속에서도 자연과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꽤나 번거로운 도심의 일상인데, 이러한 모습은 다른 영화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영화 <애마부인>에서는 식물과 수석이 거실 선반과 베란다 창 앞, 거실 통로를 가득 차지하며, <불의 나라>에서는 도대체가 어디에 쓰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큰 규모의 석탑이 집안 발코니에 놓여있다. <겨울로 가는 마차(1982)>의 여주인공은 소파에 앉아 꽃꽂이를 하며 여가 시간을 보낸다.

  

Figure 4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영화 <애마부인>, <불의 나라>, <겨울로 가는 마차> 속 아파트의 그린 인테리어

이전의 보편적인 주거 양식이었던 단독 주택에서의 삶을 되돌아보자. 각자가 집안에 마당을 두고 있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낮은 건물, 땅바닥과 가까운 저층의 주택에서 살며 풀과 나무, 꽃을 더 쉽게 보고 즐길 수 있었다. 자연을 돌보고 이들과 함께 하는 삶이 매우 익숙하고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도시 한 가운데 빽빽한 콘크리트 숲 속에서 더이상 그러한 삶은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삭막한 도시 공간 한 켠의 초록 공간은 그래서 만들어졌다. 이전의 단독주택에서 누렸던 마당의 문화, 자연과 가까운 삶을 아파트에 적용시켜 이어가보려는 거주자 나름의 노력이 엿보인다.

 

Figure 5 (왼쪽 상단에서 시계 방향) 
영화 <적도의 꽃>, <애마부인>, <무릎과 무릎 사이>, <겨울로 가는 마차>의 거실 풍경에는 자연을 모티프로 하는 가구와 패브릭 등이 자주 등장한다.

한편, 가구와 패브릭 등에서도 이러한 노력이 드러나고 있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적도의 꽃> 거실 속 소파를 보자. 나무 덩굴 모양의 프레임과 꽃무늬의 패브릭으로 이루어진 이 아르누보 형식의 소파는 도심에 사는 사람들이 자연을 즐기는 새로운 방법이다. <애마부인>의 커튼과 <무릎과 무릎 사이>의 방석과 테이블 매트 위에는 색색의 꽃들이 활짝 피어있으며, <겨울로 가는 마차>의 거실에는 무성한 숲을 배경으로 하는 풍경 자수가 걸려있다.

이처럼 주변의 가까운 인공물을 통하여 자연을 집안에 들여오려는 시도는 곳곳에서 나타난다. 19세기 말 꽃이나 덩굴 등의 자연적 형태를 모방하는 장식이 ‘아르누보’라는 이름으로 유행했던 때를 떠오르게 하는데, 당시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Water Benjamin)은 이에 대하여 ‘기계와의 대립 구도 속에서 피어난 사적 공간의 장식 문법’ 이라 평가한 바 있다. 1980년대, 서울의 콘크리트 숲에 살고있는 이들에게도 이는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 도심 한가운데 살면서도 자연과의 연결을 놓지 않으려는 이들의 감성은 위와 같이 꽃과 나무를 활용한 실내 장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스타일의 혼재: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영화 <애마부인>의 거실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서로 다른 요소들이 한 공간에 자리하며 특이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먼저 서양식 가구인 소파가 거실의 한 면을 크게 차지하고 있는데, 그 뒤로는 동양식 소품인 병풍이 놓여있다. 입식 생활에서 쓰이는 소파와 좌식 생활에서 쓰이는 병풍이 한데 놓이자 병풍은 소파 높이에 절반 이상 가려지며 애초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가로형 거실장에는 텔레비전과 라디오, 라디에이터 등의 현대식 가전제품이 놓여있는데, 그 사이로는 동양 전통의 장식품들, 수묵화, 매듭 장식, 도자기 등이 빽빽하다.

 

Figure 6 <애마부인>의 거실에는 동양식의 장식품들과 서양식의 가구들이 함께 배치되어있다.(위)
<매춘>의 실내 풍경에는 로코코 양식의 침실 가구들이 동양식의 병풍이 어우러진다.(아래)

영화 <매춘>에서도 역시 서로 다른 양식의 가구와 소품들이 혼재하는 독특한 거실 풍경이 등장한다. 자리를 옮겨 침실로 이동하면 더욱 재미있는 장면이 펼쳐지는데, 여기에는 화려한 로코코 양식의 침대와 화장대, 수납장, 조명 등이 크게 놓여있고 침대 위에는 레이스가 잔뜩 달린 슬립 차림의 여주인공 나영이 누워있다. 프릴 달린 침구에 레이스 커튼까지, 유럽의 한 궁전을 연상시키는 이 침실의 한 벽면에는 수묵담채가 그려진 병풍이 거대하게 자리하며 기이한 느낌을 자아낸다.

Figure 7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영화 <불의 나라>,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적도의 꽃>에 등장하는 거실의 샹들리에 조명

<불의 나라>를 비롯하여 <적도의 꽃>,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 등에서 보이는 샹들리에 조명은 어떨까? 언뜻 보아도 아파트 천장에는 걸맞지 않게 과하고 화려하다. 샹들리에는 18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사용되었던 장식용 조명기구로, 크기나 주렁주렁 내려오는 형태 때문에 궁전이나 대저택과 같이 천장이 높고 규모가 웅장한 실내 공간에서나 적합하다. 영화 속 거실에 쓰인 샹들리에 조명들은 대개 금속과 투명한 비즈 장식으로 이루어지며 특히 비즈 장식이 아래로 치렁거리며 떨어지는 모양새를 띄고 있다. 낮은 천장과 좁은 면적의 아파트 실내 공간에는 시각적으로도 기능적으로도 다소 적절하지 않게 보이는데, 서구 문명에 대한 동경과 갈망이 스타일링을 통하여 맹목적으로 표출된 사례라 할 수 있다.

서양식 인테리어에 대한 주부들의 갈망은 해외에서 들여온 잡지나 전문 서적들을 통하여 시작되었다. 주부들은 아파트 단지를 순회하며 도서를 대여해주는 ‘이동 도서차’나 주택가 내에 자리잡은 도서대여점 등을 통하여 레퍼런스 자료를 수집했다. 1980년대부터 수입자유화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며 해외의 유명 인테리어 제품들이 대거 수입되었고, 강남 일대에 운집한 대형 가구점, 조명 직판매장, 건축자재 백화점에서  “유럽산 중고 가구”, “크리스탈 샹들리에”, “수입 벽지” 등을 판매했다. 쏟아져 들어오는 외국 상품에 자극받아 국내 제조 회사들 역시 외제를 모방한 제품들을 생산하였다. 이러한 시장 상황은 서양식 인테리어를 하나의 유행처럼 만들며 주부들의 실내 장식 욕구를 더욱 부추겼다.

1980년대 아파트의 실내 공간은 동서양이라는 지역적 구분 혹은 전통과 현대라는 시대적 구분을 넘나들며 무질서한 양식의 혼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미술품, 장식품, 가구, 조명 등 인테리어의 여러 요소들은 주변 공간과의 어울림이 배제된 채 혼잡한 정서와 양식으로 드러난다. 이 시기 한국인들은 급격한 현대화 및 서구화의 과정을 경험하였으며, 그에 따라 생활 양식이나 스타일링 방식 등에서도 많은 갈등을 겪게 되었다. 단독 주택에서 아파트로 주거 장소가 변화한 것 역시 이들이 치러야 하는 커다란 변화 및 갈등 중 하나였을 것이다. 기존의 한국적 전통과 취향을 신식의 서구적 양식에 접목시키는 다양한 시도들이 아파트 실내 공간에서 마구잡이로 출현하게 되었다. 신식의 문화에 감동하고 동경하며 이를 자신의 거주지에 적용시키는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적 현상으로 읽어볼 수 있다.

아파트, 도시 공간의 로망으로 

1980년대 한국은 거주지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인식이 형성되던 사회였다. 영화 속 아파트의 실내 인테리어를 통하여 이 시기의 아파트가 한국인에게 단순한 거주지 이상의 의미와 상징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읽어보았다. 아파트의 실내 공간은 거주자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유용한 수단으로 활용되었으며, 거주자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들을 드러내려 하였다. 첫째, 아파트는 누군가의 귀족적 취향을 과시하는 전시의 장이 되었다. 다양한 종류의 예술 작품과 장식 소품들이 빽뺵하게 진열되어 있는 거실 풍경은 이를 잘 나타낸다. 고급 그릇이나 양주 병으로 가득한 커다란 유리장은 흡사 미술관의 진열대를 연상시키는데, 이러한 거실장 역시 마찬가지로 ‘보여주기’를 위한 집주인의 장치였을 것이다. 둘째, 도심 속에서도 전원의 삶을 그리워하는 어느 마음의 반영이기도 하였다. 거실 곳곳에 놓여있는 크고 작은 화분들, 발코니의 새장, 돌 벽, 석탑 등으로 꾸며진 초록 공간은 자연에 대한 거주자의 애착을 보여주는 인테리어 양식이다. 이 외에도 꽃과 나무 덩굴의 장식으로 이루어진 아르누보 스타일의 가구, 꽃무늬의 커튼과 방석 등 패브릭 제품들을 보자. 주변의 인공물을 통하여 자연을 향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소망은 집 안 곳곳에서 엿보인다. 마지막으로 이 시기 아파트는 현대적 주거 공간에 걸맞는 생활 양식과 스타일링 감각을 새로이 익히고 행하는 연습의 장이었다. 급격한 현대화 및 서구화의 과정 속에서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혼란과 갈등이 이들의 거주지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의 서로 다른 양식의 갈래들이 동시에 등장하고 교차되는, 아직은 정립되지 않은 혼종된 스타일링의 문법을 보여주고 있다.

Figure 8 2019년 한국 인테리어 디자인 트렌드는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왼쪽에서 오른쪽)
 인기있는 인테리어 어플리케이션 ‘집꾸미기’; 어플리케이션 ‘오늘의 집’에서 인기리에 판매 중인 앙리 마티스 드로잉 포스터; 동일한 판매처의 그리너리 바나나 조화나무와 라탄 바구니 화분 (출처: 스크린 캡쳐)

2019년 아파트의 실내 양식이 위와 비슷한 트렌드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최근 가장 ‘핫’한 인테리어 아이템으로 급부상한 프랑스 화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의 그림은 그 중에서도 눈길을 끈다. 마티스는 상상이나 했을까? 21세기 가장 유행하는 홈 데코 상품으로 자신의 작품 ‘나디아(Nadia, 1947)’가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을 것을 말이다. 대형 캔버스 액자, 미니 포스터, 행잉 패브릭 포스터, 쿠션 커버 등 그의 그림은 다양한 소품들에 프린트되어 집 안을 장식한다. 20세기 야수파 대표 화가인 마티스의 드로잉은 현재 젊은 세대가 자신의 취향이나 문화적 수준을 드러내는 가장 대중적인 방식으로 자리잡았다. 자연과 가까이하고자 하는 현대인의 마음 역시 계속되고 있다. 다육식물, 허브, 이끼 등 집안에 들이는 식물의 종류가 훨씬 다양해졌다. 마크라메나 라탄 등의 친환경적 소재를 활용한 인테리어 소품이 인기를 끌기도 한다. 이제 이들은 플랜테리어(Planterior, Plant와 Interior의 합성어)라는 이름으로 트렌드를 이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인조 튤립 다발이나 동남아를 방불케하는 거대한 트로피칼(tropical) 조화 나무는 또 어떠한가. 가짜 오브제를 통해서라도 충족시키고자 하는 마음, 바쁘고 복잡한 21세기의 일상 속에서 자연에 대한 열망은 더욱 적극적이고 노골적으로 연출된다. 마지막으로, 아파트나 오피스텔 등에 기본 옵션으로 제공되는 빌트인(built-in) 김치냉장고는 대표적인 ‘한국식 아파트 문화’의 전형이다. 김치를 큰 항아리에 담아 땅 속에서 보관해오던 한국인의 오랜 전통은 고층의 아파트 건물에 맞추어 현대식 김칫독, 김치 냉장고에 그 자리를 넘겨주게 되었다. 이를 넘어서 주방에 붙박이 형태로 내장되는 빌트인 김치냉장고까지 등장하였으니, 전통과 현대의 생활 양식에 매우 세련된 방식으로 접목된 사례이다. 이 외에도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 한국적인 것과 서구적인 것을 적절하게 조화시키려는 노력들은 약 40여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에까지 계속되는 듯 하다.

1980년대에는 좋은 인테리어의 사례로 독자들의 거실 풍경을 모아 소개하는 <볼만한 집치레>라는 한 시리즈 기사가 여성지에서 연재된 바 있다. 요즘에는 자신이 꾸민 집 내부를 직접 사진 찍어 공유하는 어느 인테리어 어플리케이션이 인기를 끌며 쉴 새 없이 피드를 업데이트하는 중이다. 이처럼 거주 공간에 대한 관심과 노력은 점점 더 새롭고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한다. 왜냐하면 집은 단순한 주거의 공간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곳에 머무는 누군가를 온전히 보여주는 매개체로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가 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것은 개인이 아닌 한 사회의 가치관이나 신념, 관습 등을 모두 보여주는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되기도 한다. ‘나’ 그리고 ‘우리들’ 을 보여주는 공간, 주거 공간을 살펴보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삭막한 도시 공간에 그저 회색의 콘크리트 블록으로 존재하는 듯했던 우리의 아파트에는 이렇듯 누군가의 삶과 이상이 함께 담겨있다. 도시 공간의 로망으로서, 아파트는 우리 옆에 여전히 그렇게 서있다.

글. 안다영 | 디자이너 / 디자인 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