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rnst Haeckel, Kunstformen der Natur, Tafel 85, Ascidiae, unicellular radiolarians, 1899~1904
독일의 생물학자 에른스트 헤켈(Ernst Haeckel)은 1899년 <자연의 예술적 형태> (Kunstformen der Natur, 1899-1904)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는 꽤 오랫동안 바다 생물을 채집하고 현미경을 이용해 그 생물들에 대한 매우 세부적인 삽화를 생산하고 분류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생물의 형상에 대한 정보를 모아 일정한 기준으로 분류했고 이로부터 발견한 형태적 경이로움을 극명하게 표현했다. 헤켈의 그림은 다윈의 진화론이라는 과학언어에 시각적 자극과 즐거움이라는 묘미를 새롭게 더한 객관적 창작물이다. 즉 자연 이미지를 수집하고 이들로부터 시각적 요소의 분류와 분석, 분해와 결합을 통해 자연의 미학적 가치에 대한 재고를 이끌어낸 작업이다. 디지털 아트는 근본적으로 정보를 다루고 표현하는 예술이다. 과학적 ‘정보’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법칙 외의 또 다른 의미를 찾는 예술적 태도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 Ben Laposky, Oscillon 40, 1952, C-type photographic print
인간은 자연의 현상과 형상을 보며 스스로의 욕망을 투영하려 해 왔다. 이성은 곧 이해를 불렀고 주체에 대한 인식과 합쳐져 해석을 넘어 응용, 그리고 창작에 이르렀다. 예컨데 만월의 달은 아름다웠고, 인간에게 다양한 정신적 자극을 주었으며, 곧 행동을 불러 일으켰다. 때로는 주술과 미신적 상상을 자극하여 그를 통한 늑대 인간이나 구미호와 같은 미지의 괴물에 대한 창조로. 때로는 달의 변화에서 비롯한 천체의 변화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그에서 비롯된 법칙의 발견까지. 그 중 자연의 형상과 법칙은 수학이라는 언어를 통해 정리되었다. 사람의 손으로 행하기 힘들었던 광범위한 데이터의 입력, 처리를 할 수 있게 만든 기술과 이를 행하고 출력할 수 있는 기계들이 발전했고, 이 새로운 기계 장치를 사용해 과학자들은 자연 현상의 더욱 넓고 복잡한 구조와 변화를 매핑하여 보다 정확한 수학적 용어로 자연을 기술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얻은 새로운 시야는 자연의 패턴과 형태를 다루고 표현하고 싶다는 지속적인 욕망을 발현시켰다.
미국의 수학자이자 예술가 벤 라포스키 (Ben Laposky)는 이에 근거한 예술과 과학의 경계를 해체하려는 체계적인 시도를 진행했다. 그는 1950년대 초, 자신이 개조한 음극선 오실로스코프의 원형 화면에서 출력되는 수천 개의 우아한 아날로그의 파형을 촬영했다. 그렇게 촬영된 형상은 규칙을 가졌지만 현실에서 볼 수 없을 것 같은 몽환적이고 비물질적인 반투명한 빛의 입체였다. 이는 전자와 에너지 장의 변화, 그리고 이동이라는 자연의 보이지않는 이면에 대한 시각적 표현이었다. 오스트리아의 과학자이자 철학자인 허버트 프랑케(Herbert W. Franke)가 칭했듯, 라포스키의 연구는 전자 및 계산 기계에 의한 그래픽 생성의 첫 번째 프로젝트였다. 과학은 점차 시각적으로 변했고, 이 과정을 거치며 과학 실험 과정을 통해 수집된 시각적 정보의 미적 특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만들어졌다. 처음으로 펼쳐전 이러한 확장된 전자 이미지는 사람들에게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감각 경험을 확장시켰고, 인간의 인식을 영원히 바꿔놓았다.
허대찬 (aliceon 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