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ice] 존재의 경계에서, 디지털 생태의 조건 탐구 1. 도예린 개인전 – 아세아 전자동굴_이다다

1. 도예린 개인전 〈아세아 전자동굴〉: 이세계를 발굴하다

천장이 높은 전시장에 들어서면 동굴 속에 들어온 사람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날카로운 음률이 울린다. 입구에는 아세아 전자상가의 연대기별 사진들이 액자에 담겨 있고, 그 위로 정체불명의 기관인 ‘서울도시유산센터’가 ‘아세아 전자동굴’을 조사하는 과정을 담은 트레일러가 상영되고 있다. 전시장 사방에 솟아있는, 잡초가 덮인 돌무더기에는 살아있는 회로가 혈관처럼 돌을 감싸고 있으며, 암석의 표면 여기저기에는 꽃처럼 피어난 전자 부품들이 회전 운동을 반복하고 있다.

오른편에 재현된 경비실 책상 위에는 오랫동안 아세아 전자상가에 근무하다가 전자동굴에서 튀어나오는 생물들을 목격하고 기록한 경비원의 일지와 녹음기가 놓여 있다. 일지에는 근무를 시작하던 날부터 1980년대를 거쳐 교회가 들어서고, 2000년대에 상가가 쇠퇴하기까지의 기록이 적혀있다. 경비원은 상가 곳곳에서 희귀한 생물종들을 발견하고 자세한 스케치와 함께 남겼는데, 생물종들은 상가의 풍경이 크게 바뀔 때마다 사라지고, 또 다른 무리들로 교체되고는 했다.

아세아 전자상가는 1948년에 준공되었다. 한때 홍콩 무협 영화가 상영되던 극장이었고, 1980년대 이후 전자 상가가 형성되면서 청계천 일대 세운상가의 부흥과 함께 번성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슬럼화가 시작되었고, 2001년에는 모 기도원 산하의 교회와 신학교가 입주했다. 이후 재개발 논의가 이어지다가 2022년 세운4구역 재개발로 완전히 철거되었다. 도예린은 상가가 철거되기 1년 전 라이다(LiDAR) 장비 실습을 나갔다가 우연히 아세아 전자상가를 스캔하게 되었는데, 스캔한 데이터를 분석하던 도중 전자동굴의 존재를 포착했다.

VR에 접속하면 아세아 전자상가의 아케이드 한복판으로 진입한다. 상가의 복도를 걷다보면 전단지나 전자 부품과 같은 아이템들을 수집할 수 있고, 경비원의 녹음기를 ‘획득’한 뒤부터는 각 지점마다 녹음기를 작동시켜 경비원의 음성 안내를 들을 수 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진입점에 도달하면 풍경이 순식간에 전자상가에서 환상의 전자동굴로 바뀌고, 기묘한 생물종들이 나타난다. 아세아 전자상가가 극장-전자상가-교회-철거 공사장으로 크게 바뀔 때마다 전자동굴 속 생물종들도 영화 속 무언가를 닮은 형상에서 카세트 플레이어를 닮은 갑각류로, 교회에서 발생한 식충 식물로, 그리고 크레인 타워를 빼닮은 낮은 잡초들과 굴착기 벌레들로 변해왔다.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에 남은 잔상들이 알 수 없는 에너지에 의해 기묘한 생물들을 발생시켜 왔던 것이다.

전자동굴을 탐험하다 보면 어느 순간 꿈틀거리며 호흡하는 거대한 오렌지색 기관을 마주하게 된다. 이 기관은 중앙 에너지원이다. 아세아 전자동굴은 동굴 밖 사람들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센서를 통해 두 갈래로 신호를 보내게 되는데, 하나는 중앙 에너지원으로 향해 희귀종들의 탄생을 유도하고, 다른 하나는 혈관 회로로 덮인 돌무더기로 향한다. 관객이 많이 몰릴수록 혈관 회로의 반응은 더욱 활발해진다.

 

Q. 폐허를 좋아하는가?
A. 폐허라기보다는 백룸(Backroom), 리미널 스페이스(Liminal Space)에 가깝다. 가상이든 현실이든, 나는 그런 근본이 없는 공간—유래를 알 수 없는, 맥락이 사라진 장소—에 끌린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집보다 상가와 같이 목적이 불분명한 공간에 더 오래 머무는 것 같다. 청계천 세운상가 일대는 여전히 역사성을 지니지만, 저물어가는 상권은 의미의 작동을 멈추었다. 기능은 남아있지만 텅 빈 아케이드는 기억과 관계가 희미해진 공간, 비장소(non-lieu)1)와 유사하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Q. 기억의 이유는? 왜 기억되어야 하는가?
A. 이 전시는 기술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장소가, 무언가가 사라지는 순간은 언제일까’하는 물음에서 출발했다. 장소는 물리적으로 지어지고 또 사라지지만, 디지털로 아카이빙 된다면 그 자체로 계속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는 물리적이지 않은 형태로의 영속을 실험하는 일이다. ‘청계천보존연대’와 같은 일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문제를 해결하거나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장소의 기억을 연장해서 구축하는 것에 가깝다. 단순히 스캔만 한다고 기억이 이어지는 것이 아니고, 시스템으로 작동해야 데이터의 모음이 아닌 또 다른 장소성이 발생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실제로 발굴해내었다”라고 생각한다. 즉 장소의 연혁에 포함되는 또 다른 실체가 된 것이다. 가상 세계 또한 현실일 수 있다. 지금은 허상이고 시뮬레이션이지만, 기술이 더 발달하면 현실의 물리적인 실체는 의미를 잃게 될 수도 있다. 무한대의 공간 안에서 무한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철거할 필요도 없고, 무엇이든 영원히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Q. 게임을 하기도 하는가? VR 인터페이스의 이유는?
A. 가끔 퍼즐을 푸는 형식의 인디 게임을 하는데, 시적인 느낌마저 주는 놀라운 게임들이 있다. 일종의 미디어아트라고 생각한다. 사실 ‘전시’라는 형식 자체에 의문이 있으며, 그런 식으로도 예술이 성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VR은 가상 세계에 직접 들어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한 사람 또는 소수만이 HMD를 통해 접속한다는 점에서 인터페이스의 답답함이 있다. 그것을 극복할 다른 방식이 있다면 그렇게 시도해보고 싶다.

Q. 이전 작업 〈순회(巡廻)〉의 네 개의 방과 이번 전시의 ‘극장-전자상가-교회-철거장소’의 순환이 닮아있다.
A. 〈순회〉에서 네 개의 방은 불교의 탑돌이처럼 반복되고 변이하는 시스템을 구현했던 것이다. 이번에도 순환의 구조를 유지했다. 그것이 사계절과 닮아 있어 ‘계절의 순환’으로 설정했지만, ‘4’라는 숫자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다섯 개의 순환으로 묶이게 되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 작업도 동굴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내가 동굴을 좋아하는 것 같다.

 

도예린은 소멸해가는 잔해와 기억을 긁어모았다. 그는 상인과 경비원을 인터뷰하고 토지대장을 조사하고 청계천 상가에 체류하는 방식으로 단서들을 수집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다큐멘터리의 증거가 아닌 이세계의 문을 여는 암호처럼 작동한다. 그리하여 공식 기록에는 기록되지 않았을 한 시대의 잔존물들—밀폐된 습기, 얽힌 전선과 먼지, 노동의 잔여물—이 다른 차원으로 변형되어 응축되어 있다가, 이세계로 통하는 디지털 틈새를 통해 갑작스럽게 밀려나오며 분출된 것이다. 그 결과 드러난 요괴와 같은 생명체들은 노스탤지어의 잔재가 아니라 전자상가라는 역사와 유대의 이면에서 장소가 스스로의 무의식으로부터 만들어낸 개체들이다. 그리고 작가는 그것들을 “실재로 발견해내었다”라고 선언한다.

발굴된 전자동굴의 내부는 관객의 출입에 따라 미세하게 갱신된다. 모인 사람들의 밀도에 따라 에너지 기관의 호흡이 바뀌고, 이세계 희귀 생물종들의 생성과 소멸이 변화한다. 흔히 “세계는 어떻게 구성되는가”라는 질문에는 재귀성이 중요한 조건으로 다루어진다.2) 그러나 VR 등을 작동 시키는 게임 엔진은 런타임에서 시스템이 세계의 규칙을 자기 개조할 수 있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상태의 갱신은 가능하지만 메타 규칙의 자가 수정이 차단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재입력에 의한 규칙 변경을 ‘세계’의 기준으로 삼으면 도예린이 발굴한 ‘이세계’는 여전히 세계라기보다는 재생의 반복과 사전에 입력된 인터랙티브의 입출력에 머무르게 된다. 

그러나 라이다 스캔의 결함으로 남은 ‘틈’은 관객의 경험 조건을 실재로 변형한다. 작품은 스스로 규칙을 만들지 않지만, 전자동굴을 통과하는 관객은 자기 내부의 감각 규칙을 다시 구성한다. VR로 입장하면 먼저 원래 장소였다가 비장소화 된 전자상가의 표면을 마주하게 되고, 이어 특정한 순간 불연속의 ‘틈’을 만나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이세계로 전환된다. 이제 A 다음에 B가 온다는 인과율은 무너지고, 사이키델릭하게 뒤틀린 전자동굴 속을 이동하며 오렌지색 에너지 기관과 현실의 이미지들이 비논리적으로 중첩된 생물종들을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이 없었다면 기형 생물들이 날아다니는 장면은 단순한 3D 체험이나 컨셉아트에 가까웠겠지만, 공간과 인과의 전제가 붕괴되었기에 이세계적 존재들이 철거된 상가의 기억과 뒤섞여 체험되는 것이다. 즉, 라이다 스캔의 결함으로 열린 ‘틈’은 레드룸(Red Room)3)처럼 현실과 이세계가 맞닿는 균열이자 통로로 기능한다. 도예린이 구성한 구조는 현실의 이면에 잠재해 있던 또 다른 현실을 ‘틈’으로 연결하는 인터페이스이다. 따라서 전시는 도시의 잔해를 기념하지 않는다. 대신 현실이 끝나는 자리에 새로운 현실을 짓는다.

물론 이면의 가상 현실은 여전히 현실의 토대를 벗어날 수 없다. 데이터들은 지구 여기저기에 분산된 서버나 전시장 컴퓨터의 자성 기억장치 표면에 기록된 비트로 존재하며, 디지털 세계는 복제와 소멸의 불안정성을 내포한다. 세계는 거시적 수준에서는 항체 생성이나 진화의 선택 압력 같은 재귀적 과정이 마치 규칙을 변화시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변경되지 않는 최소 단위의 규칙, 즉 기본 상호작용4)에서 창발된 표현형일 뿐이다. 각 단계(order of magnitude)에서 표면을 ‘잠시’ 안정시키는 에너지 장벽은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붕괴되지만, 인간은 일시적 안정 상태를 파악 가능한 ‘규칙 구조’로 오인한다. 이를테면 디지털 세계에서 최소 단계를 0과 1이라고 여기지만 이는 실제 물질 수준에서는 연약하며, 유지되지 않는다. TCP/IP5)를 설계한 빈트 서프는 디지털 세계의 기억들은 쉽사리 휘발된다고 지적하면서, “모든 것을 저장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것도 영구히 남기지 못하고 있다”6)고 말한 바 있다. 이렇게 세계의 구현은 도달하기 힘든 과업이지만, 그럼에도 이세계로 향하는 경로—틈새를 마주치는 순간의 파열—은 여전히 열려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규칙 구조의 샌드박스(sandbox)를 위한 파악 가능한 장벽을 취하는 불가능한 염원이 아니라, 한계 속에서도 우발적 질서가 열리는 더 많은 순간과 그 안에서 발생하는 흐름이다. 따라서 이렇게 발굴된 이세계의 생명체들이 앞으로 어떤 상호작용을 가질지, 매번 복제되는 세계가 매번 다른 종류의 세계로 나타날지에 대한 질문은 계속 남는다.

 글쓴이. 이다다


1) Marc Augé, Non-Lieux : Introduction à une anthropologie de la surmodernité, Paris: Seuil, 1992.

2) 노버트 위너(Norbert Wiener)는 『Cybernetics』(1948)에서 제어와 되먹임의 재귀적 구조를 기술적 상호작용의 기본 형식으로 보았다. 질베르 시몽동(Gilbert Simondon)은 『Du mode d’existence des objets techniques』(1958/1969) 등에서 기술적 대상이 외부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열린 구조를 형성한다고 제시했다. 후이육(Yuk Hui)은 『Recursivity and Contingency』(2019) 등에서 사유와 세계가 재귀적으로 구성되며 이를 세계 형성의 원리로 제시한다.

3) David Lynch & Mark Frost, Twin Peaks (ABC, Season 1–2, 1990–1991; Showtime, Season 3, 2017).

4) 전자기력, 강력, 약력, 중력.

5) IP주소 등 인터넷에서 정보를 주고받는 통신규약(Transmission Control Protocol / Internet Protocol).

6) Vint Cerf, “Google Boss Warns of ‘Forgotten Century’ Risk,” BBC News, February 13, 2015.

행사개요
전시제목: 도예린 개인전 〈아세아 전자동굴〉
전시장소: 갤러리99
서울특별시 마포구 홍익로 5-1, B1
전시일정: 2025.10.17 – 11.02
주최: 문화체육관광부 / 주관: 예술경영지원센터 아트코리아랩

본 연재는 2025 광주 GMAP 디지털아트컬쳐랩 리서치랩 ‘아트라이터 지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