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te Modern, 기술과 예술의 진화: 보이지 않는 파동 속 창작

Suzanne Treister | Fictional Videogame Stills/Are You Dreaming? (1991/2-2020) | Available for Sale | ArtsySuzanne Treister, Fictional Videogame Stills/Are You Dreaming?, 1991-2 © Suzanne Treister

1950년대 미디어 아트의 초기 혁신가들은 기술을 창작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인식했으며, 이를 통해 인간의 감각과 창의성을 확장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오늘날 기술은 그러한 기술발달과 인간의 적응 속도와의 동조가 어려울 정도의 속도로 질주하고 있다. 인간이 상정한 바를 넘어 인공지능과 자동화의 진보는 예술뿐만 아니라 창의성과 노동의 개념 자체를 재정의하고 있다. 예술은 언제나 기술과 함께 발전해 왔지만, 기술이 단순한 도구를 넘어 창작 과정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점은 종종 간과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술이 예술가의 창작 과정에 깊이 관여하게 되면서, 일부에서는 일부에서는 기술이 예술가의 고유한 노동을 대체하거나 작품의 본질적 가치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최근 인공지능이 창작한 작품이 미술 대회에서 수상하며 인간이 기술을 통제하고 창작의 주도권을 가진다는 기존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 속에서 인공지능이 창작을 주도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예술계 전반에서 이에 따라 기술과 예술의 경계를 둘러싼 논의는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이러한 시점, 런던 테이트 모던(Tate Modern)에서 열린 기획전 Electric Dreams: Art and Technology Before the Internet은 현재 기술과 예술의 관계를 재조명하고 그 미래를 탐구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제공한다. 이 글에서는 해당 전시의 주요 작품을 살펴보고자 한다.

Tate Modern에서 발행된 이번 전시의 카탈로그 첫 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모든 가정은 물론 예술가의 스튜디오에까지 컴퓨터가 놓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발상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이 되자, 오늘날 인공지능과 자동화가 불러일으키는 것과 같은 수준의 노동과 창작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초래했다. 이러한 혁신이 예술과 예술가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지금, 『Electric Dreams』 전시는 이 주제를 역사적 관점에서 조명한다.” 이와 같은 변화는 창작의 본질과 예술가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기술이 예술의 지속 가능성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숙고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특히, 창작 과정에서 기술의 대두로 인한 인간과 기술관계의 새로운 재편이다.

이 전시는 ‘기계’와 ‘예술’이라는 표면적으로 대조되는 개념을, 광학, 키네틱, 프로그래밍, 디지털 아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초기 미디어 아트 개척자들의 작업을 통해 조화롭게 결합해냈다. 이들은 예술과 기술이 어떻게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으며, 그 실험적 시도들은 오늘날의 몰입형 감각 설치나 자동 생성 작품과 같은 기술 기반 예술 형식의 가능성을 예고했다. 특히 이번 전시가 흥미로운 이유는, 1950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 매체의 상업적 활용이 본격화되기 이전 시기에 제작된 작품들을 통해 미디어 아트의 초기 가능성을 실험했던 예술가들의 태도와 접근 방식을 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작업들은 기술이 아직 예술계에서 상업적 도구로 전환되기 전, 과학과 공학의 발전이 예술 실천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개인용 컴퓨터의 등장에 이르기까지, 정보 이론과 기계와의 상호작용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던 이 시기를 포괄하는 본 전시는, 기술을 예술적 언어로 전유하고 해석한 초기 실천들을 통해 미디어 아트의 역사적 흐름을 재조명한다.

기술의 실험적 특성, 즉 인간과의 상호작용과 종종 협력적인 역학 속에서 존재한다는 점은 이번 전시 속 여러 작품에서 드러난다. 특히 Room 9인 ‘Dialogues with the Machines’에서는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를 활용하여 이러한 역학을 효과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사이버네틱스는 다양한 시스템이 정보를 주고받으며 스스로를 제어하는 원리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노버트 위너(Norbert Wiener)에 의해 제창되었다. 그는 정보 자체보다, 정보가 어떻게 순환하고 조절되는지가 중요하다고 보았으며, 시스템이 외부 환경과 상호작용하고 피드백 메커니즘(feedback mechanism)을 통해 균형을 유지하거나 새로운 상태로 전환된다고 설명하였다. 인터페이스 기반 기술(예: 컴퓨터, 인터넷, 자동화 시스템 등) 역시 이러한 피드백 메커니즘 속에서 발전해 왔으며, 이 과정에서 인간과 기계 간의 소통은 점차 긴밀해졌다. 사이버네틱스의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과 기술은 상호작용과 피드백을 통해 협력적이고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함께 진화해간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개념은 예술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특히 1960년대 이후 사이버네틱스는 다양한 사회적, 환경적, 철학적 맥락에 더 광범위하게 적용되기 시작한다. 이 시기 이후 사이버네틱스 개념에 힘입어 미디어 아트 및 인터랙티브 아트의 발전과 함께, 예술가들은 기술을 활용하여 작품과 관람자 사이의 실시간 상호작용을 실험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예술가들은 의도적으로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하거나, 또는 기술과 협업하며 창작의 주체성을 탐구하였다. 특히, 작가들은 기계를 창작의 도구이자 협력자로 활용하고, 관람자의 실시간 상호작용에 반응하는 시스템 기반 작품을 제작함으로써, 예술과 기술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사이버네틱스의 피드백 개념을 기반으로 한 예술 작품들은 관람자의 개입에 따라 변형되며, 단순한 정적인 오브제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동적 시스템으로 존재하게 된다. 이번 Electric Dreams 전시에서도 이러한 원리는 Wen-Ying Tsai의 ‘Cybernetic Sculptures’에서 잘 드러난다. 그의 대표작 Square Tops (1969)와 Umbrella (1971)는 전기 모터로 진동하는 얇은 금속 막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작품에 부착된 섬광등(strobe lights)은 소리의 변화에 반응한다.

Cybernetic Sculpture: Square Tops', Wen-Ying Tsai, 1969 | Tate

Wen-Ying Tsai, Cybernetic Sculptures: Square Tops, 1969, 1118 × 711 × 559 mm, Mixed Media (Aluminium, steel, concrete, electric motor, audio-control unit and strobe light). © Tate Modern

Tate의 설명에 따르면, 이 작품은 초당 20~30회 진동하며, 섬광은 백만 분의 1초 동안 지속된다. 스트로보 플래싱의 주파수(섬광의 깜빡임 속도)는 가변적이며, 금속 막대가 진동하면서 유기적인 물결처럼 보이는 시각적 효과를 만들어낸다. 또한, 이 작품이 설치된 Room 10에서는 관람자가 박수를 치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휴대전화로 음악을 트는 등의 행위가 제안되며 이를 통해 작품과 상호작용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반응형 조각이 아니라 ‘오디오 피드백 제어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즉, 관람자가 소리를 내면 그 소리는 입력(input)으로 작용하며, 작품은 이에 반응하여 진동과 시각적 변화를 출력(output)으로 생성한다. 관람자는 이 변화를 보며 또 다른 반응을 시도하고,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작품과 관람자는 하나의 피드백 루프(feedback loop)를 형성한다. 관람객이 떠나고 공간이 조용해지면, 입력값이 0으로 수렴되면서 시스템은 다시 원래의 항상성(homeostasis) 상태로 돌아간다. 이러한 순환 과정은 사이버네틱스의 핵심 원리를 구현하며, 작품이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자율적으로 반응하는 시스템으로 작동함을 보여준다. 이로써 Tsai는 이러한 기술들을 자신의 본능과 지적 감각에 완전히 통합시켜 단순한 기계를 넘어 유기적 생명체처럼 감각적으로 다가오는 작품을 창조해냈다.

이렇듯 이 전시는 사이버네틱스 개념을 예술에 적용하여 우리가 사는 세계의 상호 연결성을 체감하게 한다. 작품들을 통해 관람자는 인간, 자연, 기계가 서로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관계임을 깨닫게 된다. 이처럼 사이버네틱스는 단순한 과학 이론을 넘어, 예술이 기술과 융합하는 방식, 그리고 예술이 관람자와 함께 진화하는 방식을 설명하는 유용한 틀이 된다.

Tate 전시를 보며 이 작가에 관하여 리서치를 하던 중, 1969년의 기사를 발견하였다. 우리의 현대 기술에 대한 의존과 두려움이 섞인 복합적인 감정들은 이 기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Jonathan Benthall은 당시에도 “기계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의존, 찬양, 두려움이 혼합된 상태이며, 인간과 기계의 관계는 20세기 환경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에, 많은 예술가들이 이를 탐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그는 이러한 탐구를 가장 흥미롭고 성숙한 방식으로 풀어낸 예술가로 Tsai를 꼽았다.

The cybernetic sculpture of Tsai Wen-ying

The Cybernetic Sculpture of Tsai Wen-ying by Jonathan Benthall, Studio International, Vol 177, No. 909, 1969년 3월, p 126. © Studio International

Tsai는 단순히 기계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이버네틱스 원리를 바탕으로 유기적이고 반응적인 조각을 제작하며, 예술과 기술의 관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구축하고자 했다. 이 기사의 핵심을 살펴보면, 기술과 정보가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개인들은 이러한 변화 속 긴장을 단순히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새로운 감응력과 예술적 진정성을 정립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오늘날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이 예술과 맺는 관계에서도 유효한 논의이며, 기계와 예술의 관계를 탐구하는 Tsai의 태도는 오늘날 기술 발전이 예술의 본질에 던지는 질문들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진지한 기술적 고찰과 참여적 즐거움이 융합된 이 전시는 전반적으로 신선한 경험을 선사했다. 각 전시 공간은 관람자가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예를 들어, François Morellet의 <Random Distribution of Squares (1963)>와 Julio Le Parc의 <Double Mirror (1966)>가 나란히 설치되어 있었다. 방문객들은 <Double Mirror>의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이 여러 개로 분열되는 장면을 보게 된다. 동시에 거울에 반사된 Morellet의 짙은 빨간색과 파란색 사각형 패턴이 강렬한 광학적 환상을 보게 된다. 또 다른 전시 공간에서는 조명, 다섯 개의 큰 흰색 풍선, 그리고 여러 개의 나무 큐브로 구성된 Carlos Cruz-Diez의 <Chromoinferent Environment>가 전시되었다. 전시장에서 중년 남성 네 명이 공을 차고 띄우며 나무 큐브 위에 올리는 모습을 보았다. 이 공간은 결국 관람자들에 의해 작은 축구장처럼 변모했다.

The Tate Modern welcomes Cruz-Diez's Environnement Chromointerférent. - News - GALERÍA RGR

Carlos Cruz-Diez, Environnement Chromointerférent, Paris, 1974/2018, installation view in Electric Dreams, Tate Modern, 2024. © Carlos Cruz-Diez / Bridgeman Images, Paris 2024. Photo © Tate (Lucy Green)

이 작품은 단순한 시각적 경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참여를 통해 더욱 확장된 감각적 융합을 만들어낸다. 풍선을 차고 주고받는 행위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작품의 개념을 확장하는 행위가 된다. 결국, <Chromoinferent Environment>는 관람자의 개입과 움직임에 따라 새롭게 형성되는 유동적인 공간으로 기능하며, 감각의 재구성과 놀이적 상호작용이 결합된 ‘참여적 융합의 장’이라 할 수 있다.

이번 Electric Dreams 전시는 단순히 과거의 기술 실험을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예술과 맺는 관계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많은 작품에서 기술에 대한 탐구와 신선한 시도를 엿볼 수 있으며, 때로는 예술가들의 ‘즐거운 광기’ 혹은 창의적인 집착까지도 드러난다. 이러한 점에서 이 전시는 우리가 기술을 단순한 도구로 볼 것이 아니라, 창작 과정의 능동적인 협력자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사이버네틱스 개념을 기반으로 한 작품들은 단순한 ‘오브제’가 아닌 ‘시스템’으로 작동하며, 관람자의 개입 속에서 그 의미가 변화하고 확장된다. 이러한 경험은 우리가 예술을 바라보는 방식뿐만 아니라, 창작의 주체성과 기술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결국,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바라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주도권의 주체’의 문제다. 과거의 예술가들은 새로운 기술을 실험하며 창작의 개념을 확장해 왔으며, 오늘날의 예술가들 또한 AI와 자동화의 시대 속에서 여전히 그 주도권을 쥐고 창작의 방향을 결정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기술이 더욱 발전할수록 예술 창작에서 인간의 역할은 그대로일 것인가? 우리는 기술과 협력하며 창작의 영역을 확장할 것인가, 아니면 기술에 의해 창작의 개념이 근본적으로 재편될 것인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또한, Jonathan Benthall이 말했듯, 기술과 정보가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개인들은 이러한 변화 속 긴장을 단순히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새로운 감응력과 예술적 진정성을 정립해야 함을 다시 한번 현 시점에서 숙고해보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이 전시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며, 예술과 기술의 관계를 다시금 성찰하게 만든다. 그리고 어쩌면, 그 답을 찾는 것은 관람자 개개인의 경험 속에서 이루어지는지도 모른다.

 

전시 정보

제목: Electric Dreams: Art and Technology Before the Internet, Tate Modern

일정: 2024. 11. 28. 목 ~ 2025.06. 01. 일
시간: 월, 화, 수, 목, 금, 토, 일 10:00-18:00
입장료: 4만원 (22 파운드) / Tate 회원 무료
장소: Tate Modern, Bankside, London SE1 9T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