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ice] 매체의 경계에서, 미디어아트의 작동조건 탐색 2. 필드레코딩 기반 사운드 작업의 장소성 전이_김다하

김준, 깊은 우물, 2024. 카이스트 미술관. © 김준

필드레코딩 기반 사운드 작업의 장소성 전이: 김준의 《에코로그: 자연의 시간》을 중심으로

필드레코딩은 특정 장소에서 채집한 소리를 미학적 재료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채집된 음향이 지닌 장소적·환경적 맥락을 작품 안으로 끌어온다. 이러한 작업은 소리가 수집된 원래 장소(primary site)와 그것이 재생되는 전시 공간(secondary site) 사이에 일정한 간극을 전제로 한다. 본 글은 KAIST 미술관에서 개최된 김준의 개인전 《에코로그: 자연의 시간》(2025)을 중심으로, 필드레코딩 작업에서 소리 출처 장소와 전시 공간의 관계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그리고 이러한 간극이 청취 경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탐구한다.

장소 특정성(site-specificity)은 일반적으로 작품이 특정 장소의 물리적·사회적 맥락과 긴밀하게 관계 맺도록 설계될 때 성립하는 예술적 특성을 의미한다. 전시기획자이자 평론가 루시 리파드는 이 개념을 확장하며, 예술이 장소가 지닌 역사·감각·사회적 층위와 교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권미원, 2013). 리파드의 관점은 특히 장소성 회복을 통한 지역성과 삶의 감각 재구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일상적 환경과 작품의 관계를 재사유하는 데 유용한 틀을 제공한다. 1960년대 후반 작곡가 R. 머레이 쉐이퍼가 고안한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 개념은 특정 공간을 둘러싼 소리의 총체적 풍경을 제시하며, 쉐이퍼는 장소를 기록하고 파악할 방법으로 필드레코딩을 제시했다(최지혜, 2016). 일부 사운드 설치나 필드레코딩 기반 작업은 전시 환경과 관계 맺는 방식을 통해 장소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국내에서도 ‘사운드 이펙트 서울 2010’과 같은 페스티벌에서 특정 환경이나 맥락을 탐구한 작업들이 소개된 바 있다.

필드레코딩 작업은 출처 장소성과 전시 공간 사이에 간극을 만들어내며, 이 간극 자체가 작품의 의미 구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필드레코딩은 특정 장소에서 발생하는 소리를 채집해 또 다른 상황으로 옮기는 방식으로, 장소 경험의 일부를 음향적으로 전치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이 과정에서 소리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장소를 인지하는 감각적·정서적 단서를 구성하기도 한다. 김준의 2024년 커넥티드 위크 강의 자료와 2025년 KAIST 미술관 아티스트 토크에 따르면, 작가는 특정 장소를 방문하여 생태환경을 조사하고, 수집한 음향과 시각 자료를 재구성하여 시청각적 설치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영문 제목 《Echo Log: A Sonic Diary of Nature》는 ‘기록된 시간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Diary’라는 표현을 통해 기록 과정에서 발생하는 주관적 관여 가능성을 열어둔다. ‘Log’는 시간 경과에 따른 기록 형식을 뜻하지만, 필드레코딩으로 얻은 소리는 표준화된 측정값이 아니라 장비와 선택, 현장적 맥락이 개입된 ‘매개된 정보’에 가깝다.

이번 전시에서는 서로 다른 장소에서 수집된 음향들이 하나의 공간 안에서 중첩되며, 전시장 내부에 다층적 사운드스케이프가 형성된다. 작가는 인터뷰를 통해 이러한 중첩을 통해 각 장소의 음향적 차이를 비교적으로 감각하게 하려는 의도를 밝혔다. 다만 여러 음원이 동시에 재생되는 환경에서는 관람자의 청각적 주의가 분산되기 때문에, 소리들이 하나의 배경층으로 수렴될 위험도 존재한다. 이는 작품의 실패라기보다, 전시 공간에서의 음향 전달 구조—스피커 배치, 잔향, 반사, 시각적 단서 등—이 관람자의 감각적 선택을 어떻게 유도하는지와 밀접하게 연관된 문제다. 사운드 설치들은 목재 구조물·사진·수집 오브제 등 최소한의 가시적 요소를 배치하고, 소리의 공간적 확산을 작품 경험의 중심에 두고 있다. 온라인에서도 소리를 들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시 공간에서의 청취는 음향의 방향성·거리감·공간적 잔향 등이 결합되면서 디지털 청취로는 대체할 수 없는 물리적 감각의 층위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깊은 우물>(2024)은 강원도 등 여러 곳의 소리를 수집해 그곳의 자연물들과 함께 전시했으며, 전시장 중앙 배치를 통해 관람 동선에서 특정한 집중을 유도한다. 전시장 중앙이라는 인공적인 위치에 배치함으로써, 작품은 원 장소 자연과 전시 공간 사이의 대비를 만들어낸다. 스피커 위의 자연물들은 청각적 기억을 시각적으로 보강하지만, 동시에 ‘박제된 자연’이라는 또 다른 간극을 드러낸다. <흔들리고 이동하는 조각들>(2024)은 아카이브 소리가구와 벽면의 액자 형태 소리조각들로 구성되며, 두 요소는 시각적·음향적으로 상호 보충하는 관계를 형성한다. 액자 형태는 소리를 ‘전시 가능한 오브제’로 전환시킨다. 이는 청각적 경험을 시각예술의 관람 문법 안으로 편입시키는 동시에, 소리가 원래 속했던 ‘흐르는 시간’을 ‘정지된 프레임’ 안에 고정시키는 이중적 전이를 수행한다.<바람에 흐르는 음악>(2025)은 관람객이 직접 풍경 사진이 부착된 오브제를 회전시켜 양 끝에서 서로 다른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신체적 행위를 통한 능동적 청취를 가능하게 한다.

필드레코딩 작업은 본래 소리를 채집한 장소와 그것이 재생되는 전시 공간 사이에 일정한 간극을 전제로 한다. 자연에서 채집된 음향이 미술관이라는 인공적 환경으로 옮겨오는 순간, 장소 경험의 일부는 변형되거나 재구성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간극은 한편으로는 특정한 장소가 가지는 고유한 의미나 특성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거나 변화되게 하는 장점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관람자가 원래의 현장성을 체감하기 어렵게 만드는 제한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이 작품들은 이전에 다른 지역의 전시 공간에서도 선보인 바 있다. 대부분의 사운드 설치는 여러 전시에서 재구성되며, 전시장 환경에 따라 소리의 방향성, 음량, 잔향, 동선, 구조물과의 상호작용 등에 의해 전혀 다른 경험을 생산할 수 있다. 간극이 만드는 낯섦이 오히려 청취자의 능동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전시 공간과의 대비가 새로운 의미층을 생성한다. 따라서 필드레코딩 작업이 전시 공간을 이동하며 재설치된다는 사실 자체가 장소 특정성의 부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필드레코딩은 특정 장소에서 발생하는 소리를 채집해 또 다른 상황으로 옮기는 방식으로, 장소 경험의 일부를 음향적으로 전치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이 과정에서 소리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장소를 인지하는 감각적·정서적 단서를 구성하기도 한다. 작가에 따라 편집 여부, 재구성 방식, 설치 환경이 달라지기 때문에 필드레코딩은 ‘장소성을 보존’하기도 하고, 반대로 ‘장소를 재해석하거나 추상화’하는 방식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하이드로폰 등 특수 마이크의 기술적 발전을 통해 이전에는 포착하기 어려웠던 환경의 음향까지 기록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장소 경험을 확장하는 새로운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 필드레코딩의 이러한 다양성은 사운드아트의 폭넓은 실천 방식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필드레코딩 작업에서 출처 장소와 전시 공간 사이의 간극은 해소되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작품이 의미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조건이다.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일부 작가들은 전시 공간 자체를 새로운 청취의 장소로 설정하거나, 전시장의 음향 환경을 작업의 일부로 재구성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이러한 방식은 출처 장소와 전시 공간 사이의 거리감을 한층 더 드러내거나, 두 장소가 서로 대화하는 또 다른 장소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 김준의 《에코로그: 자연의 시간》은 리파드의 장소 특정성 개념을 재고하게 만든다. 작품이 물리적으로 전시 공간’에 있지만 청각적으로는 출처 장소를 지시할 때, 장소 특정성은 단일 장소와의 결속이 아니라 장소들 사이의 관계망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필드레코딩 장소성 전이의 관계는 ‘어디에서 녹음되었는가’와 ‘어디에서 재생되는가’ 사이의 긴장 자체에 존재한다.

Reference
-단행본
권미원. (2013). 장소 특정적 미술. 현실문화.

-논문
최지혜. (2016). 소리미술의 공간과 장소성에 대한 고찰. 서양미술사학회논문집, 44, 235-257. 

-유튜브
KAIST art museum. (2025년 11월 4일). ARTIST TALK :: 김준 Kim Joon :: KAIST Art Museum 카이스트 미술관.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J8uLxBKanBg.
한국예술종합학교 K-Arts TV. (2025년 2월 28일). 세션4 생태와 예술적 시선ㅣ김 준 커넥티드 위크:열린학교 렉쳐 프로그램.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yUDMflLgvno&t=120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