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대한 가벼운 연장_데카당스

데카당스(Décadence)는 퇴폐,쇠퇴를 뜻하는 불어단어로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시작된 퇴폐적인 문예사조이다. 파멸로 향하는 향락주의적, 퇴폐적 문화에서 새로운 미를 찾고자 했던 예술운동이다. 주로 어떠한 문화가 쇠퇴기에 이르러 현실사회에 대한 반감, 예술을 위한 예술의 강조 등 기존 체제에 대한 반발이나 붕괴를 동반하기도 한다. 우리가 주로 ‘세기말 감성’으로 언급하는 독특한 조형요소들이 이에 해당된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데카당스(DECA-DENCE)에서 ‘데카당스’는 거대함을 뜻하는 일본의 속어 데카-이/데카(でか-い/でか)를 활용한 일종의 말장난으로 극중에 등장하는 3000M에 달하는 마지막 인류의 거대한 이동 요새를 뜻한다.

데카당스(DECA-DENCE)는 인류의 멸망 후 세계를 그린 포스트 아포칼립스(post-apocalyptic fiction)장르의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작중 살아남은 소수의 인간들은 데카당스라는 거대한 이동 요새안에서 그들을 향해 공격하는 가돌(Gadoll)이라 불리는 괴생물체로부터의 공격을 막아내며 생존해나간다. 그들은 인류의 멸망이 가돌의 등장과 무차별 공격에 의한 것으로 알고, 가돌을 모두 물리쳐 새로운 세상를 맞이하는 희망을 꿈꾼다. 하지만 극중 세계의 진실은 그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사실 인류는 괴생물체가 아닌 인류가 배출하는 오염물질로 인해 지구가 오염되어 멸망했고, 초국가 회사 솔리드 퀘이크사가 생산한 사이보그들이 인류의 자리를 대체해 지구에서의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이후 솔리드 퀘이크 사는 유라시아 대륙을 통째로 사들인 후 거대한 돔을 지어 사이보그들을 위한 거대 테마파크 데카당스를 운영한다. 작품은 인간들이 테마파크 속 하나의 부품으로서 거대한 요새속에서 생존하고 있는 디스토피아 세계를 그린다.

데카당스(DECA-DENCE)의 이야기속 세계는 크게 두개로 나눌 수 있다. 지구 대기권 밖 사이보그들이 살고 있는 우주선의 세계와 그들이 접속하는 게임 속 세계인 황폐화된 지구이다. 즉 작중 소위 ‘진짜세계’는 사이보그들이 살고 있는 우주선인데, 이점에서 인간들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끌고 나가며 관객의 감정을 이끄는 역할을 인간이 아닌 주인공 사이보그 카무라기가 수행한다.  데카당스 속 독특한 설정과 서사구조들은 현재 미디어 혹은 가상세계와 공존해가는 우리의 경계에 대한 몇가지 가벼운 단상들을 이끌어낸다.

데카당스의 세계는 접촉/비접촉의 경계가 희미해진 현재의 우리에게 여러가지 질문을 던진다.  데카당스의 세계관은 월드오브 워크래프트(WOW), 혹은 로스트아크(lostark)와 같은 MMORPG 게임의 시스템과 세계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MMORPG 시스템을 통제하는 운영자, 개발자, NPC(Non Player Character), 크리처(creature), 그리고 유저 랭킹 시스템 등 MMORPG 유저들이라면 친숙한 요소들이 애니메이션 속 세계에 등장한다. 다른 점이라면 사람이 아닌 기계 사이보그들이 게임의 주 고객층이자 유저이며 인간은 단지 영향력 없는 NPC, 혹은 보호관리 되어야 할 일종의 자원처럼 여겨지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주로 유기/무기 혹은 물질/비물질로 나뉘는 두가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극중에서는 역으로 치환된다. 유저들(사이보그들) 입장에서 가상세계로 표현되는 게임 속 세계는 유기물의 세계이며, 무기물인 기계들이 유기적 신체로 접속을 하는 점이다. 동시에 테마파크 데카당스 속 가돌(몬스터), NPC(기어), 인간(탱커)들은 모두 유기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물질적으로 실재한다.

하지만 극중 사이보그들이 단순히 데이터 신호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닌, 물질적인 기계 몸을 갖고 있기에 온라인게임을 모티브를 삼고 있는 세계지만 그보다는 현실의 원격진료, 원격 수업에 가까운 형태의 접속이다. 마치 우리가 인터넷 클라우드 서비스를 통해 중력을 벗어나 하늘 위의 가상세계에 접속하는 것과는 반대로 데카당스 유저들(사이보그)은 구름 밖 무중력의 우주선에서 중력의 영향을 받는 유기물의 세계로 하늘에서 내려와 접속한다.

“가상세계 속에 갇힌 인간”이라는 서사 구조는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1999), 애니메이션 소드아트온라인(Sword Art Online, 2012)등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반복되어왔지만, 두 세계가 완전히 이원화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데카당스는 다른 작품들과 차별점을 갖는다. 데카당스(DECA-DENCE) 속 두 세계는 이동에 관해 일방적인 방향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영향이 없는 평행우주가 아닌 한가지 물리적 공간의 세계에서 공존한다. 이는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 아바타(Avatar, 2009)속 접속과 유사한 방식의 접속이다.

인류의 멸망이 사회적 버그때문이라고 판단한 사이보그들은 버그 없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디버깅(Debugging)”을 통해 세상(데카당스 테마파크)을 운영/통치한다. 즉 데카당스라는 유희 서비스는 하나의 플랫폼 서비스이자 초거대기업 솔리드 퀘이크 사가 지구밖 우주선에 살고 있는 사이보그들을 통제, 유지시키기 위한 하나의 정치적 통치체계이다. 데카당스에서 생존하고 있는 모든 인류, 우주선에 거취하고 있는 사이보그, 그리고 사이보그들의 유기몸체(아바타)들은 이들의 디버깅에 의해 문제 없이 운영되고 제어된다. 버그로 판단된 인간,사이보그들은 운영자에 의해 제거된다. 마치 스필버그 감독의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1)처럼 가상세계 밖의 ‘진짜세계’는 그 어떤 의미도 갖지 않는듯, 세상의 모든 체제는 유희 중심의 게임 데카당스 속 세상에서만 유효하다. 사이보그들의 삶은 데카당스 외에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이것은 우리가 현실의 미디어환경에 노출되는 현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우리의 유희를 위해 유튜브를 시청하며, 우리의 시청기록과 연결되는 구매기록은 구글의 광고주들을 위한 수익증대의 한 톱니바퀴(기어)가 된다. 한 국가보다 거대해져가는 글로벌 기업의 힘을 약화시키려하는 국가의 시도들을 우리는 지속해서 관찰 할 수 있지만, 이제는 유희가 우리 삶의 중심에 서있는 미디어 생태계와 데카당스를 평행해 놓았을때 하나의 톱니 바퀴로서 방향성에 대한 질문이 떠오른다. 데카당스 속 사이보그들의 모습에서 ‘우울증적 쾌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 보인다. 비접촉 세계로의 가속도가 붙어가면서 많은 노동이 빠르게 기계로 대체돼가는 변화속에서 노동을 뺏긴 미래의 우리는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하며 살아야 할 것인가. 데카당스(DECA-DENCE)처럼 유희가 곧 노동이되는 세상이 되진 않을까?

작중 주인공 카부라기의 모습은 우리의 질문을 보여준다. 데카당스의 유저이자 운영자인 카부라기는 삶에서 희망을 잃은 채 작동종료만을 기다리는 사이보그이다. 반복되며,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는 삶의 굴레 속에서 그는 나츠메라는 시스템에 의해 파악되지 않는 버그인 인간을 만나며 삶에서 희망을 얻는다. 그는 마치 트루먼쇼(The Truman Show, 1998)같이 꾸며진 ‘가짜세계’ 속에서 사람들을 희망 고문 하는 데카당스와 시스템을  몰락시키고자 하는 야망을 갖는다.

데카당스는 카부라기라는 한 영웅이 성장하고 각성해나가며 세상은 구원하는 전형적인 영웅서사를 답습 한다. 모든 영웅서사에서는 주인공을 가로막지만 동시에 주인공의 각성과 직결되는 금기가 등장한다. 미국의 히어로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Doctor Strange, 2016)에서 주인공은 금기시 되는 마법을 활용함으로서 진정한 영웅으로 각성한다. 데카당스 세계 속 ‘리미트 해제’는 사이보그들의 금기이자, 주인공 카부라기의 각성으로써 서사 속 굵직한 위기를 이겨내는 장치로서 활용된다. 리미트 해제는 금기이자 버그로서 이를 활용한 사이보그(기어)들은 모두 처분으로 이어지는 강한 처벌을 받는데, 리미트 해제라는 극중 요소는 매우 흥미로운 요소를 동반한다. 리미트 해제란 일종의 사이보그들과 그들이 접속한 유기체와의 연결을 훨씬 강하게 하며, 두 개체 사이의 경계를 없엠으로써 유기체의 능력을 더욱 끌어올리는 일종의 치트이다. 하지만 그에 따른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데 그것은 바로 통각의 공유이다. 유희를 위해 제작된 세계에서 고통으로 나아감으로서 보통치를 뛰어넘는 능력은 얻는다는 설정은 작품의 클라이막스까지 연장되며 마치 육체를 입고 대지에 내려와 고통으로 인류를 구원한 메시아처럼 주인공의 숭고한 희생으로 연결된다.

작년 PS5가 새롭게 론칭되며 소니가 전면으로 내세운 마케팅 포인트는 새로운 콘트롤러 듀얼센스(Dual sense)의 햅틱 피드백(Haptic Feedback)과 어댑티브 트리거(Adaptive Trigger)였다. 더 섬세하고 다양한 햅틱(haptic)을 통해 가상의 촉각적 자극과 우리를 연결하고자 하는 현실 속 우리는 어떠한가. 경계면을 더 희미하게 하고자 하는 우리의 욕망과 유사하지 않을까?

작중 테마파크 데카당스는 결국 무너지며 모든 시스템은 새로운 방향으로 재설계된다. 사이보그들은 더이상 유기체에 접속하지 않은채 본인들의 기계몸을 갖고 황폐화된 지구에 내려와서 인류와 공존하는 세계를 보여줌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경계가 없어지는 것, 두가지 세계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은 그들의 구원이 되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 결말을 갖고 있을까?

이상윤 (앨리스온 수습에디터)

개요
데카당스 DECA-DENCE PROJECT
감독 | 타치카와 유즈루
제작 | NUT
방영기간 | 2020. 7. 8 ~ 9. 23. (12화)
국내 스트리밍 서비스 | 애니플러스 / 라프텔 /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