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기계(vision machine)의 발전은 전쟁을 변화시킨다. 아니, 실은 전쟁의 발전이 시각기계를 변화시킨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미군이 철수되자마자, 이슬람 원리주의 집단인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했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또 다른 무장 정치단체인 IS는 카불 공항 테러를 일으켰고, 피해를 입은 미국은 재빠르게 보복에 나섰다. 여기서 미국은 ‘드론’을 이용해 민간 희생 없이 표적 한 명만을 사살하는 선택을 하였다. 일반적으로 드론이라 불리는 무인 항공기(unmanned aerial vehicle, UAV)는 보다 넓고 다양한 각도의 장면을 담기 위한 시각기계로 알려져 있지만, 그 시작은 공격용 무기였다. 이렇듯 시각기계와 전쟁무기는 은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프랑스 매체이론가인 폴 비릴리오(Paul Virilio, 1932 ~ 2018)는 20세기 후반에 시각기계와 전쟁 간의 관계에 주목하였는데, 그의 책 『전쟁과 영화』(1989)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는 테크놀로지와 인간의 인식 체계의 관계에 중점을 두고, 테크놀로지와 문화, 속도와 정치, 영화와 전쟁 등을 탐색한 『속도와 정치』(1977), 『사라짐의 미학』(1980) 등과 같은 저술을 집필하였다. 그중 『전쟁과 영화』(1989)에서는 전쟁과 시각기술 사이의 연관성에 집중한다. 그는 2차 세계 대전에 유년 시절을 보내면서 전쟁에 큰 영향을 받았으며, 그의 전반적인 철학적 사유에는 전쟁에서 체험한 테크놀로지와 영화에 대한 내용이 기저에 깔려있다.
전쟁에서는 적을 포착하고, 겨냥해야 하기 때문에 ‘시선’이 중요하다. 즉, “무기는 파괴의 도구일 뿐만 아니라 지각의 도구”가 된다. 때문에 비릴리오는 전쟁과 시각기계와 연결하여 이 둘을 엮어나간다. 그는 시각기계를 인간이 보는 방식을 변경하거나 확장할 수 있는 기계로 보았다. 그가 주목한 시각기계와 전쟁의 연관은 사진술로 시작한다. 19세기 대표 시각기계로서 사진술은 일찍부터 군대에 투입되었는데, 최초의 종군 사진가로서로저 펜튼(Roger Fenton)은 크리미아 전쟁을 찍었고, 명함 사진판의 발명가 디스데리(Disderi)는 사진단 책임자로 임명되었으며, 매튜 브래디(Mathew Brady), 티모시 오설리번(Timothy H. O’Sullivan)는 남북전쟁을 누볐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에서 “이미지의 공급이 군수품 공급의 등가물이 되는 진정한 군사적 지각의 병참술(Logistics of Perception)”이 본격 개시된다. 지각의 병참술은 시각장의 확보 및 군사적 시야의 확장과 더불어 가능한 한 신속한 정보 전달과 전황 파악 및 즉각적인 타격을 목표로 한다.
시각장의 확보를 위해 거리와 시각을 속도로 아우르는 원격위상학적(teletopology) 시각 기계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적의 영토를 빈틈없이 보는 지각의 자동화 기술로 발전하였다. 비릴리오는 운송기계와 시각기계의 결합으로 항공정찰사진을 예로 들며 비행기(운송기계)와 카메라(시각기계)의 결합, 즉 속도기계가 탄생함을 언급한다. 여기에서 도출되는 것이 ‘속도’의 존재이다. “전쟁은 목표로 하는 대상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더 빨리 보려”하며, 이러한 전쟁의 욕망은 문화 영역인 사진과 영화 등 대중 매체로 충족하게 된다. 전쟁을 통해 시각기계에서 속도기계로 전이한 이 복합기계는 곧 사진과 영화로 녹아들어 간다.
한편 영화는 1895년 뤼미에르 형제를 시작으로 일상의 장면들을 보여주는 영화들이 주를 이뤘다. 일상을 찍은 평범한 장면은 실제 현상을 스크린 위에 그대로 재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반영되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르주 멜리에스는 마술적인 특수 효과의 기초를 마련하면서 스크린 위의 세상이 반드시 현실 세계와 일치하지 않음을 보여주게 된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점은 멜리에스의 영화가 단지 실제와 다른 요소만 가미된 것이 아닌, 관객에게 실제라고 믿게 만들려고 하는 양면적인 기능이 탑재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양면적 특성은 19세기 초 군부에서 정보와 거짓 정보화를 위해 사용하게 된다.
전쟁은 적을 속이기 위해 표상을 동원하고 역정보를 퍼트린다. 따라서 비릴리오는 전쟁이 “심리적 무기를 동반하여 영화적 스펙터클을 조직”한다고 말한다. 전쟁은 마치 영화처럼 예술적 스펙터클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으며. “스펙터클을 생산하는 것이 바로 전쟁의 목표”가 된다. 일부러 만든 가짜 시설들은 영화 세트장을 방불케 하고, 루즈벨트 정부는 전쟁을 위해 할리우드의 협조를 구축하였고, 히틀러는 컬러영화로 경쟁코자 하였다. 비릴리오는 “진정한 전쟁영화는 반드시 전쟁이나 어떤 실제적 전투도 묘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다.”라고 주장한다.
전쟁의 참혹함은 직접 겪은 이는 잊을 수 없는 공포를 평생 안고 살아가지만, 전쟁을 모니터를 통해 바라보는 이는 영화와 같은 구경거리로 받아들인다. 1990년 발생한 걸프 전쟁은 전 세계 사람들이 텔레비전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쟁 상황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걸프전은 발생하지 않았다>라는 글을 통해, 마치 게임처럼 전쟁을 실시간 방송을 한 현상을 비판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비릴리오는 “전쟁은 영화이고, 영화는 전쟁이다.”라고 선언한다.
비대면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은 어떠한가. 실제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지금 여기’에서 화상 회의로 만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일상을 변화시키고, 시각예술을 변화시키며, 전쟁을 변화시킨다. 21세기 시각 예술은 어떻게 발전해나갈지, 전쟁은 어떻게 흘러갈지에 대해 현재 다시 주목해 볼 만한 도서라 할 수 있다.
목차
- 군사력은 허상에 의해 지배된다
- 영화, 그것은 ‘나는 본다’가 아니라 ‘나는 난다’이다.
- 이미지의 지옥에 들어선 그대여, 모든 희망을 버려라
- 현장성의 기만
- 영화관 ‘페른 안드라’
- 간적으로 앞선 자가 권리상 우선권을 갖는다
- 80년에 걸친 트래킹 숏
글. 황지원 (앨리스온 수습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