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뢰데((Tim Löhde)는 사운드와 영상, 사진을 포함한 다양한 매체를 복합 설치하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작가의 연구는 개인적 서사에서 부터 역사적 사건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포괄하며 인간의 일상과 흔적들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진행된다. 장소나 오브제, 사건에서 발생하는 사운드들은 작가에 의해 녹음되고, 일상적인 소리는 수집된다.
Q. 안녕하세요 팀 뢰데(Tim Löhde) 작가님. 우선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독일에서 작업하는 미디어 아티스트 팀 뢰데입니다.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를 졸업했고, 사운드와 사진, 영상을 포함한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복합적으로 설치하는 방식으로 작품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친 동생인 토바이어스 뢰데(Tobias Löhde)와 함께 작업합니다.
한국에서는 서울시립미술관 난지 레지던시에서 2018년도 가을 분기로 입주해 작업을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12월에 한국을 떠난 이후에는 일본에 머물 예정으로, 3주간 치바 현에서 진행될 전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영상과 사운드, 그리고 퍼포먼스를 결합한 작업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Q. 독일에서의 작업 이후에는 노르웨이의 레지던시에 입주해서 작업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노르웨이에서 진행하셨던 작업이 궁급합니다.
A. <Orca Oddity>(2017)는 노르웨이의 Surnadal Billag 레지던시에 입주했던 기간에 제작했던 작업입니다. 작업의 주제는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했던 유명한 범고래Killer whale 케이코로, 범고래를 살리기 위한 프로젝트가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사람의 손에 의해 자연에 적응하지 못하게 된 범고래를 몇 년간 훈련시키고 방생했으나, 결국 스스로 사냥을 하지 못했던 범고래는 죽은 채 발견되었습니다. 저는 이 스토리 바탕으로 노르웨이에서 직접 타고 다니던 자동차와 라디오를 통해 설치작업을 완성했습니다. 관객은 차 안에 탑승해서 라디오를 들으며 차량 외부의 영상을 응시합니다. 이 때 라디오에서는 데이비드 보위의 ‘스페이스 오디티’를 변형한 사운드가 흘러나오죠. 데이비드 보위의 사망 소식과 보위의 음악을 배경으로 범고래의 죽음에 대한 뉴스가 중첩되며 스토리가 전달됩니다.
Tim Löhde, Orca Oddity, 2017
Q. 작가님의 작업에서는 사운드, 텍스트 그리고 이미지, 이 세 가지가 주된 매체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작업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매체는 사운드인가요?
A.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어떤 작업을 하느냐에 따라 다른데, <세이킬로스 설치 Seikilos Installation>(2017)의 경우 가장 중요했던 것은 스토리입니다. <세이킬로스 설치>는 그리스의 작가미상 악보를 텍스트로 삼는 작업인데, 이는 묘비 위에 보존된 가장 오래된 음악으로 세이킬로스가 죽은 아내를 추모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작업은 역사적 사건이 배경입이다. 저 멀리 과거의 사건을 지금 여기에서 보여주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인간은 항상 무언가를 만들려고 하지만 실수와 실패가 발생한다는 그 지점이 흥미롭죠. 그렇기 때문에 이를 서술할 때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을 보이게, 들리게, 그리고 읽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저는 이 악보를 기계음과 각종 장치로 변주해 새로운 음악을 구성하고, 그랜드 피아노를 오브제로 활용해 설치를 완성했습니다.
Tim Löhde, Seikilos Installation, 2017
Tim Löhde, Seikilos Installation, 2017
Q. 그렇다면 작업의 모티프나 출발점은 주로 어디에서 찾으시는지, 또 그것이 어떻게 확장되는지 궁금합니다.
A. 일반적으로 작업의 모티프는 어떤 것을 접한 순간의 즉각적인 반응을 통해 얻습니다. 어떤 것을 봤을 때, 이미지가 마음에 들고, 또 나아가 그 이미지가 어떤 것을 말해준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 등 말이죠. 그리고 거기서 누군가가 남긴 ‘흔적’에 집중합니다. 아이들이 그린 낙서 그림과 같은 것들이요. 그런 이미지들을 사진으로 수집합니다.
<세이킬로스 설치>의 경우 역사적인 스토리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시작하게 된 작업이지만, 이것도 결국 사람들이 돌에 남긴 흔적에 집중하게 된 것입니다. 마음에 드는 이미지는 아이들의 그림처럼 쉽게 발견되기도 하지만, 위의 경우처럼 역사적 배경과 방대한 리서치 기록들을 쫓아가야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Tim Löhde, No.69 Graffiti, 2017
Q. 각각의 매체들이 작동하는 방식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 매체들을 함께 결합하는 방식으로 작업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나의 매체에서 출발한 작업이 다른 매체를 필요로 하게 되는 이유와 그 발생 지점이 어디인지 궁금합니다.
A. 이미지나 영상처럼 매체들은 독자적으로 작동하기도 하지만, 합쳐질 때 더 많은 스토리가 생겨납니다. 그래서 이들을 어떻게 설치하고 보여줄 것인지에 가장 신경을 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작동 방식이 각기 다른 매체들을 어떻게 결합할 것인지가 제게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제 작업은 “내가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라는 생각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를 스토리와 결합하려고 하죠. 기록을 하고 싶은 것만은 아닙니다. 제가 기록하고 수집한 것들을 생생하게 가져와 보여주고 싶기 때문에, 이 때 다른 관점을 가져오는 것이죠.
그래서 이미 우리 주변에 있는 일상적인 것을 매체로 사용하면서 이를 뒤틀어 표현하려고 합니다. 작업을 통해 설명해 드릴게요. <Orca Oddity>의 경우 차 안에 있는 관객은 그 상황이 매우 일상적인 것 같지만, 전시장 안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갑자기 이상한 부분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이 때 바로 집중하게 되지요. 저는 이러한 감각적 작용을 활용합니다. <세이킬로스 설치>에서의 그랜드 피아노도 같은 맥락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일반적인 그랜드 피아노의 모습은 익히 알고 있지만, 아무도 그것이 뒤집어진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거기서 이상한 부분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업을 할 때는 관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그들의 시선에서 생각하고 매체를 결합할 때 더 많은 스토리를 생성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Q. <세이킬로스 설치>의 사운드는 원본과 비교했을 때 유사성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렇게 사운드를 변형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 메커니즘은 어떤 것인가요?
A. 사운드를 바꾸는 것도 앞의 대답과 같은 맥락이에요. 이 또한 그저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한 부분을 보여줌으로써 다른 것을 깨닫게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다양한 기술이 들어가게 되죠.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 가지 목소리를 한 번에 들려주는 것입니다. <Orca Oddity>의 경우에도 라디오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이 아닌 다른 사운드들을 동시에 듣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각각의 사운드가 자기만의 목소리를 동시에 말하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죠. 우리의 귀는 동시에 많은 것을 들을 수 있으니까요.
음악을 만들 때 드럼, 베이스 기타, 메인 멜로디가 쌓여서 만들어지는 것처럼, 정보의 구조체를 멜로디로, 즉 정보의 하모니로Information harmony 만들어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백그라운드 뮤직과 함께 정보를 담은 사운드들을 쌓아서 전달하는 것이죠.
Q. 작가노트에서 “정보와 감정 사이에서 현실 세계(real world)와 동시에 반-현실 세계(Anti-real World)에서 살아가는 인간 존재의 갈등을 탐구하고 있다.” 라는 문장을 읽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비현실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특별히 ‘반-현실 세계’라는 표현을 쓰시는 이유가 있나요?
A. 현재의 세상 ‘real-world’는 인종차별을 비롯한 다양한 갈등이 존재하는 곳입니다. 이에 반해 ‘Anti-real world’는 사람들의 희망과 소원이 담긴 리얼리티라는 의미가 있어요.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자신의 리얼리티를 느끼는 것이죠. 감정은 진짜니까요. 그리고 충돌은 현실세계와 반-현실세계의 사이에 항상 존재합니다.
Q. 작가님의 작업에서 서사구조는 크게 일상과 신화로 분리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둘을 작업하는 과정이 사뭇 다를 것 같아요. 일상에서 수집하는 것과 신화적 역사적 맥락에서 수집하는 것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어떻게 차이를 두고 작업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작품을 통해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A. 작업 과정은 다르지만, 결과는 결국 비슷한 방향으로 간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미술 언어를 사용하니까요.
<세이킬로스 설치>는 오래 전부터 계획했기 때문에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스토리 텔링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매체를 활용할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피아노라는 매체와 사운드를 아트 아카데미 갤러리에서 사용하고 싶었고, 사운드를 수집해 표현할 때는 레코드를 활용하기로 했죠.
피아노를 어떻게 쓸까 고민하면서 매체를 실험하던 중, 피아노 안으로 사운드를 집어넣으면 스트링을 통해 소리가 밖으로 나온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렇게 새롭게 찾아낸 방식을 활용하면서 피아노를 눕혀서 설치했죠. 이와 같은 실험을 반복하고 답을 찾는 과정이 몇 달 걸렸습니다. 실험 과정 중 세이킬로스 스토리를 접하게 되었고, 이를 어떻게 매체와 적용할지 고민하는 과정이 또 일 년 걸렸습니다. 그리고 작업에 사용한 세 가지 레코드를 섞는 과정에서 내가 어떤 것을 필요로 하는지 깨달았습니다. 거기서 제 일반적인 관심사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직면하면서 작업을 발전시킬 수 있었죠.
<The Healthy Ray>(2016)를 작업할 때는 이삼주 정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세이킬로스 설치>에 비하면 짧은 시간이죠. 이 역시 동생과 함께 작업했습니다. <세이킬로스 설치>가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작업한 것이라면, <The Healthy Ray>는 판타지를 배경으로 작업했다고 볼 수 있어요. 먼저 커다란 책상을 발견했고, 사운드를 결합해 작업해보자는 아이디어로 구체화되었죠. 그리고 거기 책상 안에 시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이나, 그 안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는 몽상적 SF미학이 더해졌습니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도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영화 속에서 세 명의 등장인물이 바닥에 누워있는 장면은 제 작업에서 세 개의 책상이 누워있는 구조의 모티프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항들을 미학적인 배경으로 삼아서, <세이킬로스 설치>에서는 피아노처럼 고품질의 재료를 사용하고 싶었고, <The Healthy Ray>에서는 여러 오브제를 결합하면서도 외형적 구조의 균형을 잡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Tim Löhde, The Healthy Ray, 2016
Tim Löhde, The Healthy Ray, 2016
Q. 주변에서 수집한 소리를 사용하는 작업 방식이나, 작품 기록영상을 통해서 아카이빙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작업에 아카이브가 중요하다고 보시나요? 또 아카이빙의 의도를 가지고 작업을 하시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A. 결국 제 작업은 흔적을 쫓는 것입니다. 아카이빙 또한 흔적을 수집하는 것이죠. 저는 무언가를 생생하게 기록하고 수집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작업의 배경이 됩니다. 아이가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결국 고대의 사람들이 동굴에 벽화를 그리던 행위와 같습니다. 모두 무엇인가를 아카이브하고 싶은 욕망이죠. 역사를 통해서도 우리는 무언가 배울 수 있습니다. 구전 설화나 종교적인 의식이 남아있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가장 오래된 미적 대상old aesthetics인 동시에 가장 현대적super-modern 것이 됩니다.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대상이 되는 것이죠.
과학자들도 같은 맥락에서 비슷한 일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유전적 언어를 포함해 가장 동시대적인 언어가 무엇인지 찾는 사람들이예요. 지금 시대의 가장 동시대적 언어는 DNA로, 그들은 DNA 코드를 다른 것으로 치환한 후 데이터를 그 안에 넣는 방식으로 언어를 코딩하고 디코딩하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나 동시대적으로나 흔적을 쫓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작가님께서 한국에 계신 기간 동안에 한글의 특징과 판소리의 음악성에 집중해 작업하실 것이라 들었습니다. 레지던시에 입주해 있는 동안 선보이실 작업이 궁금합니다.
A. 한국에서 함께 입주해있던 해외 작가들은 충무로의 건물이나 광주와 같은 도시들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제 경우는 주변에 있는 평범한 것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난지 레지던시 성과보고전>에서는 세 장의 사진과 사운드를 함께 전시할 것입니다. 사운드는 레지던시에서 녹음된 것과 주변의 가게들, 그리고 오픈스튜디오 이 세 장소에서 수집된 소리들입니다. 주로 한국어로 사람들이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소리와 함께, 기계를 통해서 녹음됐지만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소리들ghost sounds이 들어갑니다. 이후 편집된 사운드들은 레코더를 통해 흘러나오죠.
그리고 우사단로 공간 5%에서 진행될 전시 <땅! DDang!>에서는 ‘판소리’를 소재로 한 작업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소리꾼 박윤민과 함께 작업했고 이 역시 사진과 사운드가 함께 전시됩니다. 판소리는 악보를 사용하지 않고 소리꾼이 텍스트를 직접적인 소리로 만들어냅니다. 또 스승에게 배운 선율과 스스로 만들어낸 선율로 소리를 내죠. 저는 판소리를 내기 전 소리를 준비하는 그 10분에서 20분 사이의 워밍업 사운드를 활용했습니다. 그리고 전시 공간 내부의 작은 문을 통해, 문 뒤에서 소리꾼의 노래가 흘러나오도록 설치했습니다.
Tim Löhde, The Call, 2018
Tim Löhde, 2018
Q. 오랜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멋진 작업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 진행 및 정리. 문현정 (앨리스온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