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과학은 어느 지점에선가 예술과 닿아 있고, 모든 예술은 그 안에 과학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이는 19세기를 살았던 프랑스 의사 아르망 트루소의 말이다. 이처럼 과학과 예술이 불가분한 관계라는 점은 이미 오래전부터 전해져온 사실이다. 그러나 포스트휴먼 시대,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관계를 모색하는 담론이 절실한 오늘날의 맥락에서 과학과 예술의 관계는 좀더 진화된 관점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에 2021 서울예술교육랩은 예술교육실천가들이 동시대 예술가, 실천가들과 함께 인간 중심적 사고에 의해 대상화되었던 기계, 동물, 물질, 생태, 타자에 한 걸음 다가가고 공진화적인 관계를 그려보고자 다양한 토크와 워크샵을 마련했다. 즉 예술 교육의 가치를 동시대적으로 재구성하고 교육자들의 역할과 태도를 다시 한 번 모색하기 위한 계기다. 그중 ‘AT가 TA에게’ 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이화여자대학교 여운승 교수의 강연에서는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예술 창작의 오랜 역사와 함께 기술 발전과 연계된 융복합 예술의 변화를 살폈다. 또 미래 세대를 위한 예술 교육에 대한 토론과 함께 포스트 휴먼 시대 논의되어야 할 질문과 열린 의견을 나눴다.
청각 예술, 알고리즘 작곡, 음악 인터페이스, 오디오 신호처리 등 인간과 소리 및 음악에 관한 연구 및 창작을 활발히 수행하며 학술 논문 발표 및 새로운 패러다임의 공연과 전시를 다수 개최해온 그답게, 음악을 중심으로 강연을 전개했다. 강연 서두에서는 ‘예술의 역사는 과학의 역사와 함께 진보했으며, 이는 곧 인류의 역사’임을 언급했는데, 예술 작품이 만들어지고 감상하는 데 있어서는 ‘매체’가 필요하고 매체에는 기술이 개입되며 끊임없이 발전해왔다는 점이 이를 뒷바침한다. 예컨대 1950년대까지는 한 면에 3분 30초까지만 기록할 수 있었던 SP레코드 시대, 그리고 한 면에 약 24분을 기록할 수 있는 LP 레코드의 시대로의 변화를 떠올려보자. 또 커다란 LP레코드에서 손바닥만한 CD로, 그리고 디지털 파일과 스트리밍으로 이어진 음악의 기록 방식은 음악을 감상하고 소비하고 창작하는 과정 사이사이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참고로 오늘날 여러 곡을 하나의 테마로 엮은 단위를 ‘앨범’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SP레코드 시대에 짧은 음원이 담긴 레코드를 여러 권 담아 보관했던 책자를 일컫는 이름이자, 지금까지 전해져온 유산으로 볼 수 있다. 한편 LP레코드 시절에는 음악의 길이가 이전보다 평균적으로 1분 이상 길어졌는데, 이 역시 기록할 수 있는 음악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함께한 변화다. 또한 스트리밍 시대에 접어들면서 음악의 길이는 다시금 짧아지는 흐름이 발생했다. 이는 음악의 길이가 온전히 예술적인 측면에서 영향을 받기보다는 음악을 유통하고 전달하는 매체 기술, 즉 당시를 주도하는 매체와 특성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이같은 매체의 발달은 악기에도 해당된다.하프코드를 사용했던 바흐와 지금의 피아노를 연주한 쇼팽의 작품의 차이를 살펴보면 역시 악기가 발달하면서 예술작품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 공감할 수 있다. 특히 오늘날 컴퓨터로 음악을 제작하고 프로그래밍으로 직접 악기를 만들어 음악을 창작하는 사례 역시 기술의 발달과 예술의 변화 사이의 연관성이 밀접하게 이어져있다는 것을 이해시킨다.
최근 떠오른 인공지능, 머신러닝 그리고 가상 현실과 증강현실 등 최근 대두되고 있는 기술 역시 창작자들에게 하여금 신선하고 매력적인 창작의 도구가 되고 있다. 여기서 벌어지는 기계적 창의성은 오늘날의 또다른 화두다. 사실 기계의 창의성에 대한 논의는 1960년대 초, 미국 벨 실험실에서 몸담았던 프로그래머 마이클 놀Michael Nol은 몬드리안의 고 작품을 토대로 튜링 테스트를 실행해 컴퓨터가 만들어낸 버전과 함께 몬드리안의 작품을 비교하고 사람들이 어떻게 인식하는지 연구한 바있다. 당시 컴퓨터가 그려낸 몬드리안 식 이미지에 대해서 ‘예술이 아니다’ 라는 의견이 팽배했고, 그가 알고리즘으로 만들어낸 이미지를 갤러리에 전시하고자 했을 때도 많은 경우 전시를 거부당했다. 또한 1980년대, 알고리즘 작곡과 컴퓨터 공학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데이빗 코프가 알고리즘 작곡 시스템으로 바흐, 쇼팽, 베토벤의 음악을 분석해 그들과 연상시키는 음악을 만들어낸 것 역시 기계의 창의성에 대한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이렇듯 인간이 아닌 기계가 만들어낸 표현의 범위는 예술의 영역에서 인정받기란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오늘날에도 여전한 화두로 남아 있다. 그러나 예술에 대한 사전적 정의에도 ‘휴먼 크리에이티비티’가 핵심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사실상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다.
여운승 교수는 컴퓨터가 음악을 만들고 모방과 창조를 하는 오늘날, 이 결과물을 도출하기 위해 인간은 무엇을 했는가에 집중했는지 묻는다. 인간은 인공지능의 학습을 위해 정황 정보를 입력하는 일, 자료를 선별해 기계에게 제공하는 일, 그리고 컴퓨터가 만들어낸 여러 분석들 중에서 최종 결과물을 선택하는 일을 한다. 이러한 경우 변화된 인간과 기계의 역할은 기존과 달라지며 새로운 패러다임이 생성된다. 반복적이고 단순한 노동을 책임졌던 기계의 역할을 인간이 수행하게 되는 상황, 마치19세기 사진 기술에 대해 두려움을 가졌던 인류의 상황과도 일치한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겼던 것을 인간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도구가 등장했을 때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러한 상황에서 예술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이어서 그는 앞으로 예술이라는 행위는 물리적인 방법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 보다, 상상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지며 인간은 이를 언어로 표현하고 디테일한 표현의 차이는 컴퓨터가 그 임무를 대체하게 될 것임을 짐작했다.
기술과 문명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몸을 쓰는 일은 줄어든 것을 보면, 상상력은 게으름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기계에게 인간의 일을 하나씩 넘겨주면서 인간은 좀더 편안한 단계, 높은 단계, 추상적인 단계의 역할을 수행했다. 죽 기계가 인간의 역할을 대체하면서 만들어낸 여유는 결국 인간이 상상력을 발동시키는 시킬 수 있었던 계기를 마련해주었다는 것. 따라서 기계가 인간의 예술 영역을 점점 대체하게 될 때 인간은 보다 창의적인 관점으로 큰 틀을 짜고, 맥락에 맞는 좋은 결과물을 선택하는 역할로 발달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때 미래의 예술가는 어쩌면 ‘편집자’의 영역과의 유사해지며 즉 크리에이터의 소양이 에디터의 소양까지도 연결될 것으로 예견된다. 일련의 흐름에서 여운승 교수는 미래 예술 교육에 있어서 새롭게 논의되어야 할 점으로 창의적인 관점으로 가장 탁월한 결과물을 조합하고 선별하는 에디터십과 함께 예술과 기술에 대한 균형있는 이해도를 꼽았다. 그러나 기술이 끊임 없이 진보하고 예술의 진화 역시 한계가 없는 것처럼 미래 예술 교육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리기보다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민하는 것 자체가 필요한 행동이자 교육 실전 것이라는 점을 주지하며 강연이 마무리되었다.
유다미 (aliceon 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