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시대의 디스토피아 : 티모 토츠 Timo Toots의 <메모폴> 시리즈

  여기 커다란 장치가 있다. 전시장에 설치되어 있는 이 장치의 게이트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당신의 스마트폰을 연결해야 한다. 이를 연결하는 즉시 휴대폰 속에 있던 사진과 통화 목록, 검색했던 장소와 내비게이션 기록들은 하나의 영상으로 귀결되어 당신을 마주할 것이다. 디지털 데이터의 잔해들은 혼재된 상태로 당신의 눈과 귀를 괴롭힌다. 이것이 작가 티모 토츠(Timo Toots)가 선보인 신작 <메모폴-3(Memopol-3)>(2018-2019)에 대한 무시무시한 설명이다. 아트센터 나비의 아티스트 레지던시(Nabi Artist Residency) 프로그램이 네덜란드 V2_ 미디어아트기관과 협력하여 만들어낸 이번 결과 보고전 《리,제너레이션(Re,generation)》(2019)에서 티모 토츠는 기술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기술을 ‘통해서’ 세상을 다시 바라볼 것을 촉구했다.

Timo Toots, <Memopol-3>, Interactive installation, 2018-2019

  에스토니아(Estonia)를 기반으로 작업을 확장시켜 나가는 작가 티모 토츠(b.1982)는 2012년 아르스 일렉트로니카(Ars Electronica)에서 <메모폴-2(Memopol-2)>(2011-2013)로 인터랙티브 아트 부문 골든 니카(Golden Nika) 상을 수상했다. 그의 <메모폴(Memopol)> 시리즈는 2009년에 처음으로 제작되어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했고 이번 전시에서 업그레이드된 세 번째 버전을 선보였다. 메모폴은 정보사회의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보여주는 시스템으로 기술과 데이터의 개방성과 오용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그 제목은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소설 『1984』 (1949)의 ‘빅 브라더(Big Brother)’에서 착안한 것이다. 《ISEA 2019》(2019, 광주)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던 티모 토츠의 이번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메모폴 시리즈 전반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첫 번째 작품인 <메모폴-1(Memopol-1)>(2010)은 시리즈의 시작점으로 마땅하게 작가의 모국인 에스토니아를 국가(공간) 특정적으로 제작되었다. 당시의 메모폴은 관객의 정보를 매핑하는 일종의 기계(machine)였다. 관객이 신분증이나 여권, 운전면허증 등 국가 산하의 신분 증명 자료를 삽입하면 메모폴은 그 관객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과 국가(국제)적인((inter)national) 데이터베이스에서 수집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정보들은 곧장 맞춤형 이미지로 시각화되어 나타난다. 당시 에스토니아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정부 관할 하에 국민들의 데이터를 온라인으로 저장하고 접근하도록 만드는 기술에 훨씬 앞서 있었다. 국민들은 이미 10년 동안 전자 ID 카드를 사용했으며 정부의 데이터베이스들을 상호 연결하는 시스템도 구축되어 있었다. 정부 포털사이트에 로그인만 하면 쉽게 타인의 정보에 도달할 수 있었는데 처방받은 약부터 세금 신고, 운전면허증 정보까지 열람이 가능했다. 작가는 국가와 공공 기관이 국민들에게 수집하고 또 제공하는 정보들이 어떤 것인지, 얼마나 민감한 데이터인지 일깨우기 위해 이를 이미지로 체감하도록 만들었다.

Timo Toots, <Memopol-1>, Interactive installation, 2010, Y-Gallery, Tartu, Estonia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확장된 <메모폴-2(Memopol-2)>(2011)는 공공 인터넷(public internet) 소스를 기반으로 페이스북(Facebook)과 같은 SNS에서 사적인 데이터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작가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들이 제작하는 기계와 서비스들도 함께 발전하고 이에 따라 이미지 또한 변화한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새롭게 개발된 장치들이 어떤 방식으로 사용될지는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데이터는 사용자의 의도와 반(反) 하는 방향으로 사용될 수 있으며 기술적으로도 다르게 보여질 수 있고, 이와 마찬가지로 플랫폼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따라 드러나지 않는 지점도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지적하는 작품이었다.

Timo Toots, <Memopol-2>, Interactive installation, 2011, KUMU, Tallinn, Estonia
Timo Toots, <Memopol-2>, Interactive installation, 2011, KUMU, Tallinn, Estonia

  <메모폴-3(Memopol-3)>(2018-2019)는 에스토니아를 기반으로 했던 이전 작품들과는 다르게 전 지구적으로 확장된다. 한국의 나비 레지던시에서 발전된 작품은 이제 관객의 ‘스마트폰’을 직접적으로 활용해 스마트폰에 저장된 데이터와 그 전송 구조까지 모두 추출하여 하나의 오디오 비주얼 영상으로 만들어낸다. 관객이 영상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데이터를 입력한 후 기계에 스마트폰을 연결해야 한다. 벽 뒤에 숨겨진 결과물은 오직 데이터를 제공한 당사자에게만 공개되며, 영상 속에 시각화된 데이터들은 GPS 정보나 전화, 문자 기록, 사진 등을 모두 포함한다. 이미지의 사적 체험은 관객으로 하여금 스스로 인식하지 못했던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일종의 ‘디지털 자화상’으로 기능한다. 관객은 자신의 생활 동선이나 카카오톡 메세지 일부 등 무방비하게 노출된 사적인 정보들을 마주하면서 프라이버시가 남용된 디스토피아적 상황을 맞닥뜨린다. 그리고 이것은 곧 우리의 삶으로 확장된다.

Timo Toots, <Memopol-3>, Interactive installation, 2018-2019
Timo Toots, <Memopol-3>, Interactive installation, 2018-2019

  작가는 기술의 이면을 보여줌으로써 기술의 편리함에만 매몰된 현대인의 삶에 일침을 가한다. 그에게 영감이 되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기술사회이다. 소비에트 연방 하에 있던 에스토니아에서 태어난 그는 유년 시절 사회적 배경에 따라 이용하기 어려웠던 기술들을 자체적으로 구축해야 했고 가정 내에 자체 제작 컴퓨터와 라디오가 구비되어 있었다고 서술한다. 이렇게 1980년대 초반부터 기술과 빈번히 접촉하며 디지털 시스템과 사회상을 연결하는 것에 몰두하던 그는, 우리 삶의 가상적 부분(virtual part)을 기록하고 사회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기술’을 자신의 작품이자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기술은 효과적으로 우리의 일상생활 속 가상의 레이어(virtual layers)들을 노출시켜 주었다. 아티스트 토크에서 관객의 “혹시 작품 이미지의 일부를 볼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대해 작가는 “저는 개인 정보이기 때문에 관객들의 모든 데이터와 결과물 영상을 전부 폐기합니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덧붙여 “이 작품을 체험하지 않기로 결심한 당신들에게는 그 나름의 의미가 전달되지 않았을까요?”라고 발언하여 큰 울림을 남겼다.

  티모 토츠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기술의 역추적이다. 실제로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사회적 감시 시스템은 더 효과적으로 변화했으며 사람들은 인터넷을 서핑하거나 카드를 사용하면서 무의식적으로 디지털 흔적들을 남기고 있다. 소셜 네트워크 역시 많은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에 한 개인은 이제 물리적인 신체로서가 아닌 디지털 데이터에 의해서 (그것이 개인의 의도와 다를지라도) 구성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메모폴>은 우리의 디지털 데이터들을 거울처럼 비춰 보여주며 스스로를 뒷조사하도록 만든다. 조지 오웰이 1949년에 구상했던 ‘빅 브라더’는 이미 우리의 주변에 자리 잡았다. 이제 문제는 어떻게 이 기술을 사용하는가에 달려있으며, <메모폴>은 우리에게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것을 조금은 과격한 방식으로 촉구하고 있었다.

작가 홈페이지  https://timo.ee/

* 전시 정보  http://www.nabi.or.kr/page/board_view.php?brd_idx=1032&brd_id=project

* 사진 출처  https://timo.ee/

글. 문현정 | 앨리스온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