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일, 송은 아트스페이스(SongEun Art Space)에서 《김세진 개인전: Walk in the Sun》 展의 부대 행사로 김세진 작가와 네덜란드 스테델릭 미술관(Stedelijk Museum Amsterdam)의 두 큐레이터 레온틴 쿨러베이(Leontine Coelewij)와 캐런 아치(Karen Archy)의 토크가 진행되었다. 김세진 작가는 제16회 송은미술대상의 대상 수상자로, 크고 작은 역사 속에 드러나는 개인의 삶에 주목해 영화와 다큐멘터리 필름의 경계를 넘나드는 영상과 설치, 사운드를 통해 공감각적으로 풀어내는 작가이다. 앨리스온은 두 큐레이터와 김세진 작가를 만나 인터뷰했다. 본 인터뷰는 두 파트로 구성된다.
Q1. 안녕하세요 김세진 작가님. 작품 <전령(들)>(2019) 에 등장하는 ‘라이카(Laika)’는 인류의 발전에 의해 희생된 첫 시작점이라는 점에서 이를 추모하는 비석과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라이카를 소재로 사용하게 된 시작 지점이 궁금합니다.
A. 안녕하세요. 먼저 올해 예정된 전시를 위해서 작년 한 해동안 여행할 장소들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정확한 위치나 배경, 루트가 정해진 것은 아니었어요. 이전부터 ‘영토와 영역, 그리고 그것을 횡단하는 이동’을 주제로 작업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와중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이 나오는 다큐멘터리 필름을 보게 되었는데, 영상의 마지막 부분에서 호킹이 “우리는 화성을 식민화 해야한다.” 라고 말하는 것에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물론 이 외에도 여러 영향이 있었겠지만 이것이 결정적으로 제가 우주를 향해 가는 인류에 대해 연구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되었어요. 저는 지금도 강대국들의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시발점이 바로 2차 대전 이후 냉전시대에 소련이 쏘아올린 인공위성 ‘스푸트니크(Sputnik, Спутник) 1호선’이에요. 소련이 이를 발사하자 다음날 미국에서 나사(NASA)를 창설했고요. 이러한 역사적인 흐름들을 조합해보면서 ‘제국’과 ‘식민’에 더 초점을 맞추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만약 강아지보다 하위 동물이었다면 인간이 희생되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사유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 ‘희생’은 조금 제국적인 단어인 것 같아요. ‘희생’보다는 ‘추모’라고 생각해주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또 전시를 시작하는 여정에서 이를 기억하자는 의미의 ‘비석’이자 ‘짧은 묵념’이라는 말도 어울릴 것 같아요. 그래서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 (1958))』의 서문에 나온 프롤로그도 넣었어요. 그리고 ‘인류가 기술의 진보나 과학의 발달을 핑계로 우주로 향하는 것은 식민의 연장일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 하에 라이카를 소재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라이카는 사실 떠돌이 개였는데 똑똑해서 뽑힌 것이었어요. 한 동안 이 친구의 이야기는 역사 속에 묻혀있었는데, 제가 조사를 하던 중 러시아 어딘가의 후미진 곳에 세워진 동상을 찾아내게 되면서 이렇게 허름하게 두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스푸트니크 이론은 당대 기술 진보의 상징이었고, 21세기를 대표할만한 기술은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최첨단 기술이 들어간 OLED 모니터를 매체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사에서 채집한 지구의 소리들을 엮어서 공간 설치로 확장했습니다.
Q2. 지난 전시부터 현재까지 소외된 이방인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계신데, 이번 <존재하지 않는 것을 향한 북쪽>(2019)은 한국에서 접하기 어려운 스웨덴 북부 및 노르웨이와 핀란드 국경 라플란드 지역을 배경으로 하셨습니다. 이 대상과 배경을 선택하게 되신 이유와 작업과정에 대해 알려주시겠습니까?
A. 이전부터 사람들의 이동에 항상 관심이 많았어요. ‘이주와 이동, 이민’이라는 키워드는 근대 이민사를 바탕으로 했던 전 작품 <열망으로의 접근>(2016)에서 부터 시작된 주제로, 같은 맥락에서 이어진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민이나 이주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저는 ‘무엇이 사람들을 이동하고 머무르게 하느냐?’에 집중을 했고 이것이 결국 삶의 조건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개괄적인 역사를 바탕으로 했던 이전 작품 시리즈를 통해 이주나 이민이 단순히 사회나 정치적인 요인에서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 여러가지 요인 중 하나가 ‘기후’였고 ‘추운 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발전하게 되면서 이에 집중했습니다. 그 첫 시작점은 알레스카와 시베리아였는데 점점 북극권으로 가다보니 사미족(Sámi people)을 만나게 되었고 이들의 삶을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헬싱키에 3개월 정도 머무를 때 원주민인 소수민족(Minority)들을 접하게 되었는데, 이분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핍박받지 않고 오히려 더 사회적으로 보장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일반적인 현대 시민들이 이들을 질투하는 상황이 벌어지며 우리의 고정관념을 역으로 뒤집고 있었어요. 그들의 의상은 저작권이 있기 때문에 함부로 사용할 수도 없고 순록 농장은 이들을 굉장히 부유하게 만들어주고 있었죠. <존재하지 않는 것을 향한 북쪽>에 등장하는 아니타 김발(Anita Gimvall)은 행정기관과 사미 커뮤니티, 그리고 현대인 사이의 갈등에서 희생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이 가지고 있던 전통 가옥이 불타 없어졌던 사건에 집중해 소재로 작품을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Q3. 남극이나 우주, 국경지대 등 작업에 등장하는 공간은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비교적 낯선 공간입니다. 낯선 공간에 대해 접근하고 보여주시는 과정에서 관람객이 이에 몰입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특별히 신경 쓰시는 부분이나 장치가 있나요?
A. ‘낯선 공간’이라는 단어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우리는 ‘남극’이나 ‘우주’, ‘국경지대’와 같은 공간을 무의식적으로 낯설다고 느끼지만 사실 저는 현재 우리 제일 많이 접하고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게임이나 다큐멘터리와 같은 미디어에서 쉽게 접하고 있으니까요. 구글(Google)에 이미지만 검색해도 실제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사진들이 엄청나게 많이 나와요. 그래서 사실 제 작업은 ‘실제(real)를 바라보는 허상의 이미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낯설지 않다고 생각해요. 제가 전시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실제와 허상 이미지의 간극입니다. <전령(들)>에 등장하는 ‘라이카’는 실제에 대한 허상(fiction)을 하이퍼리얼 이미지로 설치해 보여준 것이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향한 북쪽>은 실제 존재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지만 허구적인 서사 구조에 맞추어 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사실 서사나 드라마를 만드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는 영상을 통해 ‘어떻게 사람들이 서사를 이미지 적으로, 또 영상적으로 볼 수 있도록 만들까’, 그래서 ‘어떻게 사람들이 이면에 숨겨진 사건이나 이야기에 집중하도록 만들까’에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작품 <2048>(2019)의 경우에는 남극에 실제로 다녀와 촬영한 영상이지만 일부러 이미지를 공상 과학적인 양식에 맞추어 사용했어요. 각각의 작품과 영상마다 이야기적 서사를 다르게 보여주기 위한 방법들을 고민하면서 작업했습니다.
Q4. 작품을 제작하고 설치하시는 과정에서 특별히 고려하시는 기술적인 부분들이 있나요? 작가님께서 생각하시기에 다른 작가들과 구별되는 지점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A. 매체에 한정해서 답변을 드리자면, 큐레이터 캐런 아치(Karen Archy)도 이야기 했지만 ‘타임-베이스드 미디어(Time-Based media)’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생소하잖아요. 저는 한국에서의 미디어는 ‘비디오 아트’에서 ‘미디어 아트’로 중간과정을 생략하고 건너 뛰었다고 생각해요. 미학적인 역사나 이론적 배경을 제쳐두고서 말하자면 저는 오래 전부터 영상이라는 매체에 집중해서 작품을 제작하던 사람이라서 혼자 익혀야 했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제가 공부를 했던 세대는 2000년대 이전이었기 때문에 ‘개념미술(Conceptual art)’이라는 개념도 익숙치 않아서 스스로 독학을 했어요. 이것이 저에게 독이자 약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스스로 신기술들을 섭렵할 수 있을 만한 시간을 가지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제는 영상이라는 매체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로서 자신이 사용하는 매체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어렵기 때문에 이 부분이 정말 중요했어요. 다른 작가들과 구별되는 지점은, 영상 매체에 대한 이해도가 비교적 높다는 것이 아닐까요? 아무래도 15년 이상 작업을 했기 때문에 이제는 다른 단계에 더 집중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최근에는 내용적인 부분이나 주제적인 부분을 확장시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Q5. 이번 전시에서 영상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혹은 넘어서 보여주고자 하셨던 부분이 있었다면 어떤 것인가요?
A. ‘영상 매체를 넘어서’라기 보다, 영상이라는 매체 자체에 대해 다른 각도로 보여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전에는 영상이 가진 요소에 집중을 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현재 우리가 매일 바라보는 이미지로 이를 확장시켰어요. 가상적인 이미지와 실제적인 이미지가 혼재된 상황들을 각 작품마다 다른 방식으로 풀어서 이야기했습니다. 작품마다 내부에 ‘영토나 움직임, 이동’ 등의 소재와 주제는 정확하게 존재하지만 이미지를 출력하는 방식에서 확장을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제가 생각했을 때 작품을 만드는 데에 있어 기술적인 부분과 서사적인 부분은 동시에 발전시키게 되는 것 같습니다.
Q6. 남극 세종 과학 기지(King Sejong Station)의 레지던시에서 작업하셨던 이력이 이색적이에요. 무엇을 계기로 남극에 가게 되셨고 또 남극이라는 공간과 특수성이 어떤 영감을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A. 저는 사실 오히려 남극보다 북극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남극과 북극에 차이가 있다면 북극은 자원 때문에 영토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지역이라는 것이죠. 우리가 지구라는 행성에서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살아야한다고 했을 때, 북극의 아래에는 굉장한 양의 천연 자원들이 묻혀있어요. 그런데 기후가 높아지면서 얼음이 녹아내려 이 자원들이 발견되면서 여러 강대국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상황이 된거죠. 북극이라는 것 자체가 사실 영토가 없고 얼음으로만 되어있는 땅이라는 점에서 그 모순이 재미있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이를 둘러싼 제국들의 분쟁과 그 사이에 어떻게 해서든 끼어보려고 하는 작은 나라들의 싸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죠. 그래서 ‘아라온 호(ARAON)’에 탑승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리서치를 시작했는데 시간이 어긋나면서 북극으로 가지 못하게 되었고, 그래서 남극으로 방향을 바꾸었어요. 남극 역시 보이지 않는 천연 자원에 대한 전쟁들이 굉장히 많이 일어나고 있는 곳이니까요.
남극으로 가기 이전에 저는 낯선 공간에 대한 이상적인 이미지들을 직접 체험해야겠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여러 방면에서 사전 조사를 했어요. 그리고 남극에 있었던 2주 동안, 사전 조사에서 발견한 남극에 대한 이야기와 현지에서 직접 들은 이야기들을 비교해보면서 제 예상이 맞았다는 것을 확인했죠. 남극은 엄청난 지정학적 위치에 있고 이를 둘러싼 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땅따먹기의 영역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있어 공간이 주는 특수성이라는 것은 사실 우리가 가지고있는 판타지(Fantasy)를 깨기 위한 것이에요. 제가 직접 이를 체험하고 실제와 허상 사이의 간극을 깨기 위해서 갔던 것이었습니다.
Q7. 작품 <2048>의 마지막 영상에서의 구급대원 이야기처럼 2주간 남극 레지던시에서 머무시면서 생긴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A. 솔직하게 말해서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었어요. (웃음) 저는 사전 조사를 통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이미지와 정반대일 것이라는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던 것 같아요.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생각보다 눈이 많지 않았다는 거에요. 구글에서 검색했을 때 나오는 이미지가 실제보다 더 낫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우리는 항상 여행을 가기전에 설레지만 직접 가서는 실망을 해요. 이런 것이 바로 제가 초점을 맞추는 실제 이미지와 가상(virtual)의 이미지 사이의 관계입니다. 현재 우리는 디지털 환경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지만 있다고 믿는 것 사이의 일종의 밀당관계에 있고, 남극은 그 최 접점이었어요. 남극의 펭귄들에게는 냄새가 나요. 우리는 디지털 환경에서 가상 이미지만 보기 때문에 놓치는 부분들이 항상 있기 마련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작년에 제가 삼았던 모토(motto)는 인터넷이 말하는 것, 가상 이미지가 말하는 것을 깨트려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계속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장소를 경험해야 했고, 이 것이 바로 원 맨 프로덕션(One man production)으로 작품을 제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2주 동안 아주 멍하게 있었어요. 하루 일과가 정해져있었고 날씨 때문에 돌아다닐수가 없어서 하루종일 만화책을 봤습니다. (웃음) 나중에는 쉬는 것에 적응이 되어 정말 즐거웠던 것 같아요.
Q8. 레지던시에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나셨을 것 같은데 그들과 교류가 있었나요?
A. 남극 세종 기지에 스테이션 캠프(station camp)는 존재했지만 정거장이 거리상으로 멀리 떨어져있었기 때문에 이동을 하려면 차량이 필요했어요. 세종기지에는 당시 브라질에서 온 과학자 두 분과 지질학자, 뇌과학자, 호주에서 온 엔지니어들, 그리고 터키에서 온 실험실 소속 친구 한 명이 있었어요. 하루에 세 번 방탄소년단의 노래가 울려퍼져요. (웃음) 그러면 밥을 먹어야 합니다. 저녁식사 시간인 오후 6시 이후로 백야는 없었지만 새벽 1시까지 밝았기 때문에 하루종일 각자의 전문분야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눴습니다. 이런 부분이 특별한 경험일 수 있겠네요. 그리고 터키 지질학자를 쫓아다니면서 영상을 촬영했는데 <2048>에 등장하는 과학자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친구의 목소리를 나레이션으로 사용했어요. <2048>에 나온 모든 장면들은 남극의 항공 장면을 제외하고는 전부 실제 모습이에요. 스크립트나 곡괭이로 눈을 캐고 다니는 장면 등 촬영한 영상 모두가 전부 실제 상황입니다. 저에게는 이 실제 장면들을 어떻게 허구처럼 보이도록 만들 것인지가 중요한 지점이었습니다.
Q9. 이건 가볍게 드리는 질문이에요! 세종기지에 계시는 동안 멍하게 있는 시간이 많았다고 하셨어요. SF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면처럼 고뇌를 하게되는 시간도 있으셨나요?
A. 저는 SF 영화에서 나오는 자기 존재에 대해서 고뇌하는 장면이야말로 드라마(Drama)라고 생각해요. 저의 경우에는 오히려 동물화되어갔던 것 같아요. 점점 사고가 없어지고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해야할 일을 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리고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저와 똑같았던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은 엄청난 돈을 들여 남극에 왔기 때문에 2주라는 짧은 기간 동안 연구를 하고 자료를 가지고 돌아가야 하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래서 다들 날씨가 좋아지기 만을 기다렸어요. 드라마의 장점이자 단점은 드라마틱(dramatic)하다는 것이에요. 이야기를 하다보니 제프리 랜디스(Geoffrey A. Landis)의 소설 『태양 아래 걷다(A Walk in the Sun)』가 떠오르는데 그 내용은 영화 <그래비티(Gravity)>와 배경만 다르고 거의 유사해요. 주인공은 태양열로 충전되는 우주복의 생명 보존장치 때문에 죽지 않기 위해서는 햇빛을 쫓아가야하고, 살기 위해서 달을 한 바퀴 도는 여정을 그린 소설이에요.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주인공이 달을 돌면서 공간이 과거의 기억과 뒤섞였다는 것이었어요. 달에 혼자 남은 사람으로서 과거에 자신이 했어야했던 일들을 떠올리고 환각도 느꼈겠죠. 저는 이런 극한의 상황에 남겨지게 되면 존재론적인 고민보다는 오히려 망상이 더 많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요.
Q10. 마지막으로 이번 전시 이후 앞으로 가지고 계신 계획이 궁금해요. 특별히 생각하고 계신 장소나 주제가 있으신가요?
A. 아주 초기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작업이 있는데, 실행으로 옮기지 않을수도 있어요. 저는 대전 사람이에요. 그런데 고등학교 이후로 고향을 떠났기 때문에 이제는 제 본가 주변 외에 대전의 풍경을 잘 몰라요. 그래서 대전이라는 도시와 공간에 대해 생각해보고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예전에 대전을 배경으로 <밤을 위한 낮>(2014)이라는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어요.
제가 2010년도에 도서관에서 발견한 패트릭 킬러(Patrick Keiller)의 3부작 <런던(London)>(1994)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매우 지리멸렬하게 런던이라는 도시에 대해 나레이션해요. 저는 이 작품을 보면서 ‘이렇게 남겨 놓는 것도 의미가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제목은 <런던>이지만 사실상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하나의 방향으로 이끌어나가요. 이것을 보면서 저도 기록을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년에 할 생각은 가지고 있지만, 안 할수도 있어요. 우주에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정이 될수도 있겠네요. (웃음)
Q11. 오랜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 기대하겠습니다.
인터뷰 정리 : 문현정 앨리스온 에디터
인터뷰 진행 : 문현정, 김소현, 조한결, 조성현 앨리스온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