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마인드(Deepmind)는 지난 10월 19일 네이처 지에 「Mastering the game of Go without human knowledge」라는 제목의 논문을 게재했다. 이 논문을 통해 공개된 알파고의 마지막 세대, 알파고 제로(AlphaGo Zero)는 인간의 기보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인공지능의 학습 능력만으로 ‘바둑 신’의 자리에 올랐다. 지금까지 인공지능이 인간의 인식 방법을 모방한 것으로 요약한다면, 알파고 제로는 더이상 인간의 인식을 따른 것이 아닌 인공지능(만)의 인식을 따른 그 결과를 보여주었다.
예술을 인간이 세계를 인식한 것의 결과물이라고 정의한다면 (예컨대 원근법은 세계를 2차원에 담기 위한 알고리즘이라고 할 수 있다면), 인공지능의 창작물도 인간의 것과 동등하게 볼 수 있는 장이 열릴 수 있지 않을까? 이번 ARS Electronica <AI: 또 다른 나>는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에게 예술의 가능성을 둘 수 있는지 묻는다.
전체 주제가 ‘AI’였지만, 앞서 소개한 것처럼 행사 기간 중 포스트시티(Postcity)와 오카 센터(OK center), 아르스 센터(Ars center)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미디어아트 전반의 전시와 콘퍼런스, 퍼포먼스, 미니 메이커 페어까지 기술과 예술 범위에 걸쳐있는 여러 행사가 진행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인공지능’을 중점적으로 다룬 전시, 작품, 심포지엄을 소개하고자 한다.
[AI Projects]와 [AI Room] : 기술과 예술의 최전선에 세워진 실험실
▲ AI Projects와 AI Room 작품 위치
인공지능이라는 주제가 가장 전면으로 드러난 곳은 AI Projects와 AI Room이었다. 포스트시티 중앙에 위치한 이 공간은 전체 전시장 규모에 비해 넓지 않았지만, 20명/팀의 인공지능 프로젝트가 모여있는 밀도 있는 공간이었다. AI Projects 공간 외에 다른 전시 공간에도 인공지능을 주제로 한 작품이 있지만, AI Projects는 인공지능 기술 그 자체의 가능성에 몰두한 다양한 실험들이 모여있었다.
작년 아트센터 나비의 전시에도 참여했던 Gene Kogan의 <Selection of real-time neural-image transformations>은 실시간으로 관람객의 영상을 수집하고 이를 칸딘스키 화풍의 이미지와 도널드 트럼프의 이미지로 변환한다. 작가는 시각 매체의 저자성을 더 이상 인간이 구분해낼 수 없음을 지적한다. 2013년 애니메이션 부문 골든니카 상을 수상한 Memo Akten 역시 신경망(neural networks)을 이용한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이용한다. 그는 ‘인간이 감각하는 세계’를 인간의 기대 혹은 신념에 의해 재구성된 가상 세계로 정의하면서 ‘무언가를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하는 것이 작품의 주제라고 밝혔다.
Mike Tyka의 <Portraits of Imaginary People>는 GAN(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 생성적 적대 신경망)이라고 불리는 기술을 이용했다. 생성적 적대 신경망은 사람이 데이터를 일일이 제공하지 않아도 두 개의 인공지능이 서로를 속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성능을 개선한다. 이를 통해 작품에 쓰인 인공지능은 플리커(flicker) 사이트에 있는 인물 사진을 분석하고 세상에 없는 가짜 인물의 초상화를 만들어낸다.
AI Room에서 상영하고 있었던 SF 단편 영화<Sunspring>은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만든 세계 최초의 영화다. 영국의 48시간 안에 영화를 제작하는 ’48-hour-film challenge’에 출품한 작품이었다. 이 인공지능 프로그램의 이름은 벤자민(Benjamin), 영화 안에 나오는 대사, 음악까지 벤자민이 만든 것이다. 2016년에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쓴 단편 소설이 문학 공모전의 1차 심사를 통과한 사건이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했었다. 창작의 영역은 정말 인간이 아닌 기계로 확장될 수 있는 것일까?
(벤자민의 영화는 링크에서 감상할 수 있다. https://www.aec.at/ai/en/sunspring/)
<Please Don’t Die “Entertainment Robot AIBO”>는 인공물의 의미라는 다른 층위에서 접근한다. AIBO는 1999년 소니에서 선보인 첫 애완용 로봇이었다. 현재 소니는 AIBO의 생산을 중단했고 이를 소유했던 사람들은 AIBO가 고장 나서 작동이 멈추면, 그들의 장례식을 치러준다고 한다. 전시에는 장례식 모습을 담은 사진들과 이들의 사연이 있다. 생명이 없는 기계이지만 오랜 시간 함께한 AIBO에게 마지막 예를 갖추는 것이다. 이처럼 AI Projects에는 인공지능의 최신 기술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작품뿐 아니라 인간과 기계의 관계성에 대해 질문하는 작품도 만나볼 수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의 작품이 관객 스스로 읽어내야 했기에 딥러닝 같은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다면 작품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AI Room에서는 행사 기간 동안(9.8~9.10) 하루 2-3차례 인공지능 작가의 튜토리얼 강의가 진행되었다. 작품에 사용된 인공지능 기술, 실제적인 프로그래밍에 대한 질문뿐 아니라 인공지능 예술의 가능성과 확장성에 관한 질문까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작가와 관람객이 고민하는 자리였다. 그런 의미에서 AI Projects와 AI Room은 인공지능 예술을 그려보고 실험하는 열린 실험실이었다. 그들의 실험은 진행 중이었지만, 이들의 실험은 인공지능 예술이라는 새로운 미적 표현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Artificial Intimacy] : 더 인간적인 영역으로
“10년을 함께 산 당신의 배우자에게 아이를 갖자고 하자,
‘사실 나는 인공지능 안드로이드였어’라는 고백을 받는다면? 당신은 그와의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은 아르스 센터에 있었던 <Training 2038>(Kitchen Budapest: 2007년 미디어 아티스트, 개발자, 이론가 등이 모여 설립한 co-working 센터)이라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질문이다. 이 작품에서 관람자가 ‘예’혹은 ‘아니오’를 선택하면 바로 이전의 관람객들이 몇 퍼센트씩 답했는지 보여주었다. 물론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은 우리를 깊은 고민에 빠지게 한다.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갈 미래에서 사랑 혹은 섹슈얼리티, 친밀감은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
Artificial Intimacy는 포스트시티 내 독립된 공간(19세 미만 출입금지)에서 진행된 전시로 미래 사회의 인공적 친밀감(Intimacy)을 다루고 있었다. Artificial Intimacy와 AI Projects와의 가장 큰 차이는 이 공간에서는 구입할 수 있는 ‘상품’(혹은 상품화될 가능성이 있는 제품)을 전시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AI Projects가 인공지능 기술을 극단으로 밀고 나가는 실험들이었다면 Artificial Intimacy는 좀 더 ‘친밀한’ 주제들로 이루어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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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가장 주목받은 <Samantha>는 인공지능이 탑재된 섹스 돌이다. 보통의 섹스 돌과 달리 사만다는 대화와 성적 관계를 통해 소유자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이미 사만다는 1000여개의 유머 데이터베이스가 탑재되어 있고, 상대와 접촉이 늘어날수록 상대의 취향이 저장된다 (개발자는 약 40회 정도의 관계면 사만다가 충분히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Machine learning porn>(Jake Elwes)는 포르노 이미지들을 찾아내기 위해 개발된 검색 엔진을 다시 포르노그래피를 만드는 인공지능으로 바꾼 것이다. 개발자 Jake Elwes 는 이를 섹스를 꿈꾸는 인공지능이라고 정의했는데 언뜻 추상적인 이미지로 보이는 이미지들은 사실상 수 천장의 포르노 이미지의 평균값인 것이다. Dan Chen의 <End of Life Care Machine>은 안락사를 선택한 사람을 위한 장치다. 이곳에 전시된 것은 프로토 타입이었지만, 상용화된다면 원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지막을 사람이 아니라 기계가 지켜주게 되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Kiiroo 사의 장거리 커플을 위한 실시간 연동 (성행위 혹은 자위) 기구나 스마트폰에 부착해 키스를 감지하고 먼 곳에 있는 상대에게 전해주는 <Kissenger>는 인공적 친밀감이 성적인 쾌락뿐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의 공백을 채우는 기술임을 보여준다.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인간이기에 기계와 쉽게 친밀한 존재가 된다. 기계와 의사소통을 하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고장이 나면 기계의 장례식을 치루기도 한다. 누군가는 매일 인공지능 비서의 인사로 아침을 맞을지도 모른다. 매일 아침 나를 달콤하게 깨워주던 인공지능 비서와 사랑에 빠질 수도 있지 않을까? (질문의 답변은 사랑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사랑을 친밀함 혹은 빈도수로 정의한다면?) Artificial Intimacy는 인공적 친밀감이 이미 삶 속에 녹아 있으며 가장 인간적인 것으로 남겨두었던 성적인 친밀감의 영역 앞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AI Symposium] : 인공지능과 담론
행사 동안 미디어아트, 기술, 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심포지엄과 연계 강연이 진행되었다. (다른 심포지엄과 강연의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 주소를 참고 바란다. www.aec.at/ai/en/programm/conferences-lectures-workshops/)
이번 주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었던 심포지엄 <AI—The other I>는 행사 두번째 날인 9월 8일(금) 오전 10시부터 18시까지 진행되었다. 이번 심포지엄은 첨단 기술이 우리의 일상 속에 어떻게 통합되는지 고민하고 자동화된 사회에서 직업, 교육, 더 나아가 윤리 의식은 어떻게 변화할지 함께 고민하는 자리였다. 주제는 1. 현실과 기대 Reality and Expectations 2. 또다른 지능 The Other Intelligence 3. 인공지능 창의성 AI Creativity 4. 윤리, 철학, 영성 Ethics, Philosophy and Spirituality 총 4가지로 진행되었다. 하루 동안 4가지 주제를 다루기에 길지 않은 시간이었기에 깊은 담론을 만드는 자리라기 보다 인공지능과 그로 인한 사회 문화적, 철학적, 경제적 이슈를 훑는 자리에 가까웠다. 심포지엄의 전체 영상은 ARS Electronica 유튜브 채널에서 볼 수 있다. (https://youtu.be/4-rOUa2uqEo)
또 다른 나’에게 예술의 가능성을 묻다.
위 이미지는 이번 ARS Electronica의 메인 포스터이다. 하나는 침팬지, 하나는 하품하는 (인간 형태)기계다. 인간의 뇌에는 거울 뉴런이 있어 남의 행동을 따라 하도록 설계되어있다. 기계의 하품에는 그 어떤 생리학적 원인도, 결과도 없으며 숨을 삼키지도 뱉지도 않는다. 그러나 기계의 하품을 (인간의 거울이라고 할 수 있는) 침팬지는 따라 한다. 인간과 기계의 동기화는 이렇게 미묘한 순간에,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순간에 발생한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인공지능은 인간의 또다른 자아라는 것이며 이들은 분리할 수 없는, 하품의 연쇄반응처럼 연결된 존재라는 것이다.
ARS Electronica가 지향하는 바이겠지만, 이 행사에서 인공지능, 그리고 ‘예술’과의 아주 밀접한 무언가는 찾을 수 없었다. 또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공간들을 훑어 봐야하는 전시 형태와 인공지능이라는 주제가 잘 부합했는지 역시 의문스럽다.
그러나 최전선의 실험들을 통해 인공지능의 예술이, 다시 말해 인간이 아닌 다른 주체의 예술이 우리 목전에 놓여있다는 것은 분명히 드러났다. 마침내 등장한 인공지능 예술은 인류의 시작부터 함께 했던 예술과 인간 사이의 관계 양식을 새로이 하는 ‘매개자 media’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글. 최선주 | 앨리스온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