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사실 이런 게임은 사람들이 많이 하는 게임은 아니다. 상처 받는 게 취향인 사람도 있겠지만 극소수일 테고, 최단기간 ‘클리어’하는 고수를 위해서 게임을 개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러한 현상은 새로운 각도에서 응시해야 한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첫 번째 조우에서 보는 게임은 스포츠로서 제시됐다. 그러면 두 번째 조우에서 게임은 어떤 것으로 제시될까. ‘엔터테인먼트’다. 게임이 재미가 없어도 보는 것이 재미있다면 방송플랫폼에서 통하지 않을까. 이것은 게임방송을 보는 시청자의 쾌락과 연결된다. 게임을 하는 것은 재미있지만, 시간과 노력이 투입된다. 게임방송은 그 ‘노력’을 제거한다. 게다가 자기가 좋아하는 스트리머가 어려운 게임을 하면서 ‘멘붕’에 빠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또 다른 재밋거리다. 이 지점에서 스트리머의 역량이 드러나고, ‘엔터테이너’로서 스트리머의 지위가 형성되는 곳이기도 하다.
15. 여기서 또 한 가지 고려할 대상은 커뮤니티다. 기존의 게임커뮤니티는 게임의 정보를 집적하고 교환하는 게 중심이다. 텍스트를 통해서 정적인 소통으로 이뤄진다. 한국의 경우 인벤(www.inven.co.kr)이 대표적이고, 해외는 커뮤니티사이트 레딧(www.reddit.com)이 유명하다. 새로운 게임이 나왔을 때 사용자들은 게임을 접하며 필요한 정보를 어디서 구할까. 물론, 공식 게임 홈페이지에서 찾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사용자들이 직접 경험하며 획득한 체화된 정보를 선호하기 마련이다. 후발주자였던 웹진 인벤이 선두주자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 보라. 당시 최고 인기게임인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정보를 체계적으로 집적하면서 사용자의 구미를 당겼고,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견고하게 유지됐던 이 체계는 방송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구태여 게임 외부에서 정보를 얻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점차 닥친 것이다. 2013년 출시된 <도타 2>는 처음으로 게임 내부에 시청기능을 넣었다. <도타 2>는 100여명이 넘은 영웅이 존재하고 영웅마다 스킬이 다르다. 처음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영웅 하나하나 검색하고 스킬이 무엇인지 아이템이 무엇인지 확인하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도타 2>는 전과 달리 게임외부에서 정보를 구할 필요가 없다. 시청기능이 있기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영웅이 있다면 고수들의 경기를 찾아서 보면 충분하다. 그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기술을 선택하고 아이템을 사용하는지 눈으로 즉시 확인할 수 있다. 내부에서 모든 것이 해결된다. 물론, 방송 때문에 기존의 커뮤니티가 완전히 소멸되진 않을 것이다. 텔레비전이 등장했다고 해서 라디오가 사라지진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새로운 매체는 옛날 매체를 쓸모없게 하지 않으며, 체계의 다른 자리를 할당한다.”
16. 방송을 통해서 구축되는 커뮤니티는 기존의 텍스트 중심의 정적인 커뮤니티와 달리 동적인 성격을 띤다. 이른바 팟수로 트수로 불리는 시청자는 개인방송 플랫폼을 통해서 스트리머와 직접 소통하며 실시간 커뮤니티를 게임의 안과 밖에서 구축한다. 여기서 소통의 매체는 전과 달리 말(채팅)이다. 그들은 서로 말을 하면서 게임을 하고 게임을 하면서 게임의 내부와 외부에서 실시간 (순간적) 커뮤니티를 구축한다. 사실 보는 것만 생각하면, 방송에 적합한 장르는 명확하게 선별된다. 우선 저변이 확보되어 있으며, 스포츠처럼 규칙이 단순하고,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진행되며, 보기만 해도 과정과 결과를 알 수 있는 게임이 유리하다. 이나 <도타 2>가 오랫동안 트위치에서 상위권을 유지하는 바로 그 이유다. 위에서 열거한 조건을 모두 충족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MMORPG는 보는 맛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대부분 오래된 게임이며, 그 탓에 게임이 복잡하고, 핵심콘텐츠 레이드는 너무 오래 걸린다. 대체로 시청하기에 진입장벽이 상당히 높다. 그런데 <로스트아크>의 사례를 보면, 시청이상의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된다. 이 가능성은 앞서 살펴본 퀸69의 방송에서 드러난다. 여기서 시청자는 게임의 안과 밖에서 게이머의 지위를 오고가며, 국경과 언어를 초월한 커뮤니티를 적극적으로 구축한다. 스트리머는 방송에서 처럼 극단적으로 보는 게임의 성격을 보여주진 않지만, 게이머-리뷰어-엔터테이너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한다.
17. 이상과 같은 현상들 외에도 방송이 게임생태계에 끼치는 변화는 존재한다. 첫째 방송은 이제 게임의 외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내적인 콘텐츠로 간주된다. 이것은 최근 OGN과 라이엇게임즈가 리그운영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갈등을 겪었던 사건에서 확인된다. 한국은 이스포츠의 개척자로서 지금까지, 리그운영 프로구단 관련 제도 등 선도적인 체계와 제도를 구축했다. 여기서 방송사의 역할은 지대했다. 방송사가 주도적으로 해당 게임의 리그를 조직해 직접 운영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이 관례는 게임사가 리그운영을 직접 하는 형태로 바뀌면서 깨지고 있다. 이것은 게임사가 이스포츠를 포함하는 방송까지 자사의 자산으로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유는 명확하다. 이스포츠의 가능성이 게임의 지속성을 담보한다는 것. 장수하는 게임들이 모두 이스포츠를 운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스포츠를 잘 운영하는 게임들은 게임의 지속성이 보장된다. 은 권역별 리그운영과 롤드컵을, <도타 2>는 다양한 개별 프로모터와 The International를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도타 2>는 개인프로모터가 존재하며, 각기 독립적으로 리그를 운영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 리그는 게임 내에서 여느 스포츠처럼 티켓을 구매해 시청할 수 있다. 밸브가 직접 주관하고 사용자의 클라우드 펀딩을 통해서 운영되는 The International의 경우 2018년 상금이 2천5백5십만 달러, 한화로 무려 280억에 달한다. 최근 에픽게임즈의 <Fortnite포트나이트>가 한국에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면서 한국의 사용자의 참전을 독려하고 있다. 아시다시피 <포트나이트>는 현재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이지만, 한국에서 성적은 신통치 않다. 한국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게임문화를 주도하는 것은 맞지만, 사실 시장으로서 매력은 상당히 떨어진다. 시장도 작으며 선점한 게임이 해당장르 게임의 성장을 쉽게 막기 때문이다. 요즘 주춤하긴 하지만 <배틀그라운드>의 인기는 여전하다. 이러한 현실을 모를 리 없는 <포트 나이트>가 지스타의 메인 스폰서를 맡는 등, 공격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에픽게임즈는 총상금 1억 달러를 내걸고 2019년 포트나이트 월드컵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스포츠 강국 한국의 참전을 유도하는 동시에, 이스포츠에서도 딱히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배틀그라운드>를 확실하게 밀어내고 생존형 배틀게임 스포츠시장을 선점할 의도가 아닐까.
18. 지금까지 지적한 사항들은 그래도 게임의 외적인 측면만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방송은 어쩌면 게임자체에도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개발자들은 트위치가 싱글플레이어 게임을 망치고 있다고 말한다Developpers Say Twitch is Hurting Single-player Games.” 골자는 간단하고 명확하다. 스토리 중심의 싱글플레이어 게임의 경우 트위치나 유투브의 방송 때문에 게임을 구매하고 소비하는 행태가 심각하게 위협받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영화가 재미있어도 두 번 보는 경우는 드물다. 트위치에서 유명 스트리머가 플레이한 게임을 봤던 시청자가 게임을 구매해서 할 것인가. 이보다 강력한 스포일러는 없을 것이다. 방송을 통해서 게임을 하고 싶게 하는 게임도 있지만 반대도 있다. 그래서 <페르소나 5>는 엄격하게 스트리밍제한을 걸었으며, 위반했을 경우 제재를 가하고 있다. 방송이 구매력을 감소시키는 게 확실하다면, 게임사로서는 다른 방법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 스트리밍을 제한하는 방법이 가장 간단하겠지만, 장기적인 시각에서 생각한다면 이러한 게임을 아예 개발하지 않는 방향으로 선회할 가능성도 높다. 장르자체의 생존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19. 현재 게임을 둘러싼 매체지형은 급격하게 재편됐다. 문제는 여전히 진행 중이기 때문에 또 어떻게 변화할지 아무도 섣불리 예측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정책의 측면에서 몇 가지 생각해 볼만한 것은 우선 다음과 같다. 첫째 게임의 방송과 소비는 국경과 무관하게 이뤄진다. 예전 스팀게임의 심의문제가 있었던 것을 생각해 보라. 오늘날 사용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을 각종 수단을 동원하여 구매하여 소비한다. 이 상황은 <로스트아크>에서 봤던 것처럼 개발사의 의지와 무관하다. 제도든 규제든 글로벌 차원의 대응을 고민해야 하다. 둘째 통합매체적 관점이 필요하다. 현재 게임을 포함한 매체는 여전히 급변하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흡수하며 예상치 못하는 변화를 끊임없이 끌어내고 있다. 여기서 게임이 근간역할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게임을 중심으로 법과 제도의 개선을 주도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 셋째 방송과 관련된 규제가 게임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할 것이다. 실제 여성가족부는 인터넷 개인방송 ‘성차별’ 규제 지침을 마련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넷째 저작권 문제가 새롭게 논란이 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스트리머는 게임이란 지적 자산을 통해서 방송・제작하여 수익을 얻고 있다. 방송을 통해서 게임의 구매나 소비가 촉진되는 경우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반대라면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페르소나 5>는 제한을 걸었지만, <갓오브워>처럼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경우도 존재한다. 여기서 소비자의 권리나 공연권 등, 새로운 형태의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은 농후하다.
글. 김상우 | 앨리스온 편집위원
6. 앞서 언급한 해외 인기스트리머의 사례에서 단서를 확보해 보자. 퀸69는 원래 <디아블로 3>의 하드코어 수도사로 유명한 스트리머다. <디아블로 3>는 한국에도 많은 사용자가 하는 게임인 만큼 골수 팬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알려진 네임드 게이머다. <로스트아크>가 워낙 오랫동안 개발되기도 했고 기존에 홍보용으로 보여준 콘텐츠가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참전’이 예상되긴 했다. 아시다시피 현재 PC RPG는 주류장르가 아니다. MMORPG는 일치감치 ‘사양장르’가 된지 오래며, 액션 RPG 역시 <몬스터헌터>와 <패스오브엑자일> 외에는 두각을 보이는 게임이 없다. 그래서 <로스트아크>는 퀸69와 비슷한 성향의 스트리머의 기대를 모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블리즈컨BlizzCon에서 블리자드가 <디아블로 4>가 아니라 <디아블로 M>을 발표하는 바람에, 예상치 못했던 기대와 관심을 받기까지 했다. 오랫동안 <디아블로> 후속작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디아블로 M> 때문에 굉장히 실망했고, 대안을 찾아서 <로스트아크>를 선택한 경우가 많았던 탓이다. 퀸69는 자기가 창설한 길드의 이름을 ‘Bcuk Flizzard’로 지었고, 한국의 <디아블로> 스트리머 아크로는 방송에서 <디아블로> 영결식을 치르고 <로스트아크>로 전향했다. 해외 스트리머들 가운데는 실제로 <로스트아크>를 ‘korean version diablo’로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7. 해외 게이머가 한국의 게임을 콘텐츠로 삼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흔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로스트아크>는 해외에 출시한 게임도 아니다. 그래서 퀸69가 방송을 시작했을 때 호기심과 반발심 때문에 오래 할 서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여러 가지 장애물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최상위 콘텐츠까지 두루 섭렵하면서 대략 한달 동안 <로스트아크> 방송을 했다. 인기 스트리머이기 때문에 고정된 시청자도 꽤 많았다. 5천에서 6천에 육박하는 시청자를 늘 유지했다. 흥미로운 것은 고정된 시청자만 있는 게 아니라 한국의 시청자가 가세했다는 것이다. 사실 적잖이 의아한 현상이긴 하다. 한국의 게임을 하는 외국의 스트리머가 신기할 수는 있지만, 그렇기만 하다면 잠깐에 그쳐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퀸69의 방송을 보는 한국의 시청자는 딱히 줄어들지 않았고, 여느 한국 스트리머 방송과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게 되었다. 채팅창에서 한국인끼리 티격태격 하며 싸우기도 하고, 영어로 훈수를 두는 등 하등 다르지 않았다.
8. 사실 ‘시청’의 측면에서 생각하면 조금 이상하긴 하다. 시청자와 함께 호흡하는 것이 핵심일 텐데, 언어가 되지 않으면 소통이 원천 봉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게임은 국경과 언어를 초월했다. 퀸69가 열과 성을 다해서 재미있게 게임을 하는 것을 보면서 시청자 역시 변화하기 시작했다. 게임의 외부인 트위치에서 훈수를 두는 정도를 넘어서, 게임 내부까지 들어간다. 같이 파티를 하고 길드에 참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양상을 드러냈다. 이러한 면모는 퀸69도 마찬가지다. 게임을 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한국어를 익히는 모습도 보였고, 한국의 시청자와 교류하며 반응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정리해 보자. 해외의 유명스트리머가 한국의 게임을 하면서 한국의 사용자와 소통하고 파티를 만들고 길드를 창설해서 플레이한다는 것, 이 과정에서 지역을 초월하는 게임 커뮤니티가 실시간으로 구축됐다는 뜻이다. 퀸69의 사례는 게임방송의 성공공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즉, 게임의 성공은 방송이 증명하며, 방송의 성공은 커뮤니티의 형성으로 귀결된다. 이러한 과정과 현상은 국내의 스트리머가 아프리카 같은 방송 플랫폼을 통해서 일치감치 구현했던 것이기도 하다. 이제 본질적인 질문을 할 때가 왔다. 게임은 무엇이고 방송은 무엇이며, 그것들이 만났을 때 게임의 생태계에 어떠한 변화가 발생하는가. 이 질문들은 이후의 게임계를 이해하고 진단하는 핵심적 열쇠가 될 것이다.
9. 주지하다시피 게임은 본래 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격은 게임이 여타의 문화예술 장르와 구별되는 핵심이라고 많은 이들이 주장했다. 참여 상호작용 열린 작품 등 여러 가지 개념으로 설명하지만, 결국은 일정한 ‘능동적 행위’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초창기 게임이론은 행위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놀이론ludology과 서사를 핵심으로 간주하는 서사론narratology이 자웅을 겨루었고, 이후에는 각기 입장에 따라 이쪽의 공백을 저쪽의 내용을 통해서 보완하는 형태를 띠었다. 게임이 21세기 디지털문화를 선도하는 엔진으로 기능하면서, 기존의 모든 문화예술의 내용과 형식을 모조리 흡수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 입장만으로 게임전체를 분석하는 게 요원한 게 사실이기도 하다. 간단한 퍼즐게임 <애니팡>과 영화 같은 서사를 지향하는 배리어블 스테이트Variable State의 <버지니아Virginia>의 간극은 너무나 크다.
10. 어쨌든 게임에서 행위가 게임의 근간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방송은 게임의 이 같은 성격을 흔들어 놓는다. 게임이 하는 것만이 아니라 보기도 하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방송이 게임을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첫 번째 조우를 통해서 형성된 것이 바로 이스포츠다. 게임장르 가운데 비교적 소수의 사람만 즐겼던 전략게임 <스타크래프트>의 전세계적 인기는 기존의 게임담론으로 설명하기 힘들었고, 예외가 아니라 본진이 되었던 한국에서 <스타크래프트>는 조금 과장해서 전국민이 즐기는 게임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 과정에서 방송이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익히 알려진 이스포츠였다. 이때 방송을 주도한 곳은 이른바 매스미디어 방송사다. 현재는 OGN으로 이름을 바꾼 온게임을 필두로 메이저 마이너 방송국이 속속 등장하여 게임리그를 개최하며 이스포츠의 판을 키웠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스타크래프트>를 하거나 알지는 못해도, 방송에 나오는 임요환이 누구인지 알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방송의 성격은 기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볼거리가 된 것은 맞지만, 시청자의 성격은 기존의 방송구조와 다르지 않았다. 그들의 존재는 게임리그를 할 때 응원봉을 흔드는 모습이 방송사 화면에 잡힐 때나 겨우 드러났다. 그들은 주체가 아니라 철저히 객체였고, 그들이 방송에 참여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요원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프리카나 트위치 같은 개인용 방송플랫폼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이러한 판도 역시 변화를 맞게 된다.
11. 첫 번째 조우에서 나타난 변화는 어쨌든 대중에게 확실하게 각인됐다. 게임은 하는 것만이 아니라 보기도 하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경험하고 인정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발판 같은 것이리라. 두 번째 조우는 이러한 발판을 담보로 한층 나아간다. 구조적 측면에서 게임방송에는 세 종류의 주체가 존재한다. 행위자, 매개자, 시청자. 행위자는 게임을 하는 주체를, 매개자는 게임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는 주체를, 시청자는 게임과 정보를 수용하는 주체를 가리킨다. 개인용 방송플랫폼의 등장은 엄격하게 구분됐던 이 삼각관계와 성격을 기묘하게 뒤섞어 놓는 것처럼 보인다. 첫째 이른바 스트리머는 행위자와 매개자를 겸한다. 그들은 게임을 프로게이머처럼 직접 게임을 수행하는 동시에, 시청자에게 해당게임에 관련된 정보를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스트리머는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는다. 그것은 무엇일까.
12. 한 가지 상징적인 ‘사건’이 이 변화를 이해하는 단서를 제공해 줄 것이다. 올해 상반기 트위치를 비롯한 게임방송 플랫폼에서 굉장히 이상한 게임이 인기를 끌었다. 오래 유지하진 못했지만 트위치에서 10위권에 들 정도로 이례적인 화제를 모았다. 범인은 일명 항아리게임으로 불리는 다. 게임의 구조는 단순하다. 항아리에 몸을 넣고서 망치를 손에 든 캐릭터를 조종해서 꼭대기까지 등산하는 게 콘텐츠의 전부다. 다른 것은 일절 없다. 그러면 <스타크래프트>나 처럼 스포츠 같은 보는 맛이라도 있을까. 그것도 아니다. 망치를 사용해 교묘하게 배치된 장애물을 피해서 등정하는 것밖에 없다. 여기서 개발자의 의도를 알아보는 게 좋겠다. “이 게임은 고통스럽고 변덕스럽다. 야망에 불타는 사람들의 발목을 붙잡고, 자비가 없으며 기분이 나쁘며 비인간적인 게임이다…나는 특정한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 위해서 이 게임을 만들었다.” 굉장히 기이한 기획의도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게임을 해 본 사람들은 사람이 할 만한 게임이 아니라고 한결같이 말한다. 보기보다 조작하는 게 어렵고 장애물을 교묘하게 배치하여 적극적으로 ‘멘붕’을 일으킨다. 교묘한 ‘낙사’ 구간이 곳곳에 있기 때문에 몇 시간을 허비하고 출발점인 태초마을로 굴러 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탓인지 하면 할수록 기분이 나빠져서 한 두 시간 하고 빠르게 ‘언인스톨’했다는 후문들이 쏟아졌다. ‘Getting it Over’가 ‘지난 일 잊고서 새 출발하자’는 의미란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역설적인 일이다. 그러면 어떻게 트위치에서 10위권을 달성할 만큼 인기를 끌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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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본인이 직접 하면 재미가 없지만 타인이 하면 재밌는 상황, 여기서 실마리는 ‘야망에 불타는 사람들’이다. 몇 가지 해석이 있지만 대체로 스트리머를 지칭한다고 간주된다. 결국 는 스트리머를 괴롭히는 것을 목적으로 만든 게임이란 것이다. 실제로 항아리게임 방송영상은 대부분 스트리머가 게임을 하면서 일명 ‘멘붕’하는 영상들이다. 고수가 단기간에 깨는 영상도 있지만,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게임을 하는 중간중간 나오는 내레이션도 스트리머들의 신경을 적극적으로 건드린다. “인생이란 괴로운 것이며, 산다는 것은 고통에서 무엇인가 의미를 찾는 것이다.”(니체) 듣기에 따라서는 인생의 가치를 되새길 만한 경구로 보이지만,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가 원점으로 돌아왔을 때 이 말을 들으면 의미가 사뭇 달라진다. 게임을 하는 방식, 조작감, 배경음악 등, 게임의 모든 것이 플레이어를 공격한다. 플레이어는 게임을 하면서 질문하게 된다. 내가 이 게임을 왜 하는 걸까, 게임이란 도대체 뭘까 등등. 일종의 메타게임으로서, 게임을 하면서 게임을 성찰하게 한다.
글. 김상우 | 앨리스온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