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한 해 코로나의 영향으로 손꼽을 수 있는 것은 온라인 생활권에서의 활동 증대였다. 물리적으로 접촉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많은 활동이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진행되었다. 사람들과의 교류, 소비 활동, 심지어 방문이라는 공간의 이동까지 다양한 활동이 대체되었다. 개중에는 이러한 온라인에 최적화된 것도, 그리고 대체재로서 변환된 것도 있었지만 너무나도 급박하게 변화한 상황에 후자가 양적으로는 압도적이었다. 이러한 흐름은 자연스럽지 못한 변화였고 어쩔 수 없이 택한 차선이었지만 동시에 가능성을 확인하고 이 영역에 대한 일반적 경험의 증대 역시 가져왔다.
노동을 비롯해 사람과의 관계, 의식주, 여가를 비롯한 일상의 영역에서부터 삶의 모든 부분에서 이루어진 변화와 그에 대한 체감은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두드러졌다. 문체부를 비롯해 지역 문화예술재단은 코로나 19 피해 긴급 예술지원 공모를 포함해 비대면 상황에 대한 온라인 창작활동과 온라인 문화예술교육 등에 많은 예산을 쏟았다. 곧 이에 대한 결과물인 여러 가상 전시가 쏟아졌다. 가상전시의 모습은 다양하면서도 고전적이었다. 다양함의 측면에서는 이미지 갤러리, 동영상, VR 및 AR 등 기존의 몇 가지 시도의 영역에 그쳤거나 일부에 머물렀던 형식이 그야말로 양적으로 쏟아졌다. 그리고 이러한 여러 모습은 획기적이거나 새롭기보다는 이전의 많은 시도를 다듬거나 합친 고전적인 방식 그대로였다.
‘전시’는 현대미술을 접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창구이자 접촉면이다. 코로나는 꽤 오랫동안 이 창을 물리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멈춘 채로 있을 수는 없기에 이 물리적 공간에서의 전시는 온라인 영역으로 전이했다. 대표적인 형태로 앞서 언급했듯 웹페이지 기반의 정보 제공 형식을 기반으로 그 위에 이미지 갤러리 형식, 도슨트 또는 인터뷰의 동영상 콘텐츠, 그리고 전시공간 또는 작품을 렌더링하여 3차원 공간과 오브젝트로 배치한 VR 콘텐츠가 개별적 또는 조합한 형식으로 제시되었다. 이번에 소개할 작가 한승구의 프로젝트는 그 중 VR과 AR로의 시도 선상에 놓인다.
한승구는 전통적인 조각을 비롯하여 설치, 프로젝션 매핑, 렌티큘러 등 다양한 방식과 구조를 통해 정체성에 대한 탐구와 질문을 진행해온 작가이다. 정체성을 대표하는 물음인 자아와 실존 등에 대한 키워드를 오늘날의 매체 환경에 투영하여 우리에게 건넨다. 그의 작품에서는 ‘거울면’과 ‘얼굴’이 두드러진다. 얼굴은 타자와 만날 때 나의 투영이자 인식케하는 표상이다. 작가는 이 얼굴을 컴퓨터 그래픽 모델링의 기본 표현요소인 ‘폴리곤(polygon)’을 연상케 하는 조각면 단위로 구성하기도, 프로젝션 매핑을 비롯한 다양한 빛을 활용하며 변화시키는 등 덧씌움과 해체를 반복하며 유동하는 자아에 대한 의문과 탐색을 제안한다. 그는 그래픽과 데이터라는 비물질과 돌과 금속, 플라스틱과 같은 물질을 아우르며 작품 위에 공존면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는 미디어 환경을 비롯해 물질과 비물질에 대한 단위와 구조, 그리고 구현과 변환에 익숙하다. 그렇기에 이번 작품의 온라인화 프로젝트 역시 물리 공간에서 물리적 요소를 가지고 진행했던 활동에 대하여 한 가지 방법을 선택하는 대신 VR, AR 방식과 이에 연관한 다양한 콘텐츠를 시도했다. 그렇기에 그의 프로젝트 웹페이지의 명칭은 온라인 ‘플랫폼’이다. 물론, 참여자 각자가 생산하고 소비하며 공유할 수 있는 본격적인 의미에서의 플랫폼은 아니지만 필수적인 장치 또는 응용 소프트웨어 등의 특정환경에 기대지않는 웹 기반 그래픽 환경인 WebGL 기반의 가상공간과 이것에 기반한 VR영상, 그리고 AR 콘텐츠를 접할 수 있다.
그의 프로젝트 페이지에 방문했을 때 우선 마주하는 것은 웹페이지 형식의 레이아웃이다. 앞서 언급했던 VR환경과 VR영상, 그리고 AR 앱 및 관련영상을 접할 수 있다. 각 콘텐츠는 개별 리스트업되어 있어 기존 웹페이지의 경험처럼 익숙하게 둘러볼 수 있다. 이들 가운데 핵심은 WebGL로 작성된 가상세계이다. 작가의 가상세계에 진입하기 위해 익숙한 게임 시작창을 보는 듯한 화면상에서 START 버튼을 눌러 찾아오는 것은 육각형의 반투명 HUD 인터페이스이다.
작가는 그간 작업해 온 입체, 조각, 키네틱 작품을 WebGL 방식을 통해 이 가상세계에 풀어놓았다. 현재 13개의 작품이 작품에 맞추어 조율된 공간과 함께 소개되고 있다. 원하는 번호를 클릭하면 작가가 구상한 가상세계와 그곳에 놓인 작품에 대한 체험을 시작할 수 있다. 게임에서 스테이지를 클릭하듯 육각형의 구성체 버튼을 클릭하면 가상공간에 착륙하듯 안착하고 경험은 시작된다.
그 시작순간은 1인칭 FPS게임의 그것이다. 방향키와 마우스를 이용하여 시선과 신체의 이동을 조절한다. 모바일 사용자를 위한 반투명 터치인터페이스는 참가자가 게임을 하는 듯한 인상을 배가한다. 점프 동작은 덤이다. 이제 참가자는 이 공간을 산책하며 작가의 작품을 이리저리 다양한 각도로 관람할 수 있다. 작품은 화이트큐브나 작품이 으레껏 위치하는 건축적 공간을 벗어나 작가가 의도한 다양한 자연 또는 기묘한 초현실적 공간과 함께 어우러져 현실에서 마주하기 어려운 경험을 제공하려 시도한다. 참가자는 가상의 신체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작품을 관람하는 한편 우측의 토글 버튼을 클릭하여 작가와 작품에 대한 여러 부가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 어떤 작품은 작품의 표면 터치에 반응하기도 하고 순간 순간 변화하며 시간적 경험을 더한다. 한 작품과 가상세계 경험을 끝내면 다시 육각형 다면 구조체가 있는 페이지로 넘어와 다음 작품을 선택하여 여정을 지속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이번 프로젝트는 게임의 틀과 게임 플레이의 형식을 띄고 있다. 관람자나 관객이 아니라 참가자라고 언급한 이유이기도 하다. 참가자는 마치 게임 플레이하듯 접근할 수 있다. HUD 인터페이스는 1인칭 슈터 게임의 모습을 연상케하며 작품이 위치한 공간을 돌아다니는 조작 역시 w,a,s,d와 방향키를 비롯, 점프의 스페이스바라던가 마우스를 통한 시점조정까지 모두 게임에서의 그것이다. 이렇게 조성된 판에 의해 참가자는 게임적 관점에서 작품에 접근하게 된다. 다른 비대면 방식이 가진 제한된 시점과 시야, 분절된 움직임과 비교하여 다양한 신체 활동을 허용하는 이 환경은 그만큼 작품을 체험하는데 있어 넓은 자유도를 제공한다.
그밖에도 이것을 편안하게 이용할 수 없는 환경에 있는 참가자를 위해 360VR 규격의 영상 콘텐츠가 제공된다. 이 콘텐츠는 앞서의 가상공간 콘텐츠에 일정 동선상에서의 이동을 기록한 영상이며 VR헤드셋 착용시 360도의 이미지 환경을 지원한다. 그리고 AR의 경우 별도의 앱과 마커를 통해 AR도록과 같은 실제 물질과 함께 한 또 다른 가상 콘텐츠 체험이 가능하다.
이번 프로젝트는 제한된 시간과 예산에도 불구하고 게임 저작도구와 게임 문법을 통해 다른 가상전시, 예를 들어 프롭테크(proptech) 분야에서 활성화된 VR저작플랫폼을 이용한 VR전시 대비 창작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좀 더 높은 자유도를 제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아쉬운 지점은 집중 포인트가 다소 희미했다는 부분이다. 하나의 작품 또는 프로젝트에 대한 창작이 아니라 비대면 상황 작품의 변환 또는 작품세계를 마주할 또 다른 접촉면 생성의 측면에서 중요해지는 것은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경험을 제공해줄지에 대한 기획 부분이다. 이번 프로젝트의 경우 작품 하나 하나에 대한 작품의 가상화와 그에 대한 환경 구현에 비해 개별적 작품이 어떻게 연결되어 어떠한 흐름으로 구성되고, 나아가 이들 작품의 집합이 전체적으로 어떤 경험을 제공할지에 대한 고려는 상대적으로 약했다.
웹아트처럼 오롯이 매체에 대한 관점이 핵심이거나 네트워크 환경 또는 가상현실 등을 주제로, 또는 이를 중심으로 창작되는 작품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 대한 대안으로써, 또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는 콘텐츠로서 만들어지고 진행되는 프로젝트는 그만큼 다른 상황과 환경에 대한 시각과 진행, 그에 대한 경험 설계가 필요하다. 즉, 기획의 부분이 그만큼 강화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많은 시간과 노력, 자원이 들어간 결과물은 매체에서 매체로의, 차원에 대한 단순 번역으로 남게 된다. 지금의 코로나 상황에서 많은 전시와 행사가 가상공간, 온라인 환경으로 들어오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 대한 많은 경험이 새로운 취향과 호를 만들어내는데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만큼 해당 환경과 상황을 고려하지않은 단순번역이 실제 가보지 못하기에 마지못해 클릭하는, 마치 숙제를 위해 참고하는 자료로 격하되는 사례가 많은 것 역시 사실이다.
이번 한승구 작가의 시도는 가상환경 안에서 현대미술을 경험하는 데 있어 보다 넓은 자유도와 다양한 경험을 확보하기 위한 시도로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의 가상 전시 플랫폼은 그간 다른 예시를 통해 마주했던 단순히 관람 포인트 사이를 건너뛰며 경험하는 공간이나 웹페이지 경험을 넘지 못했던 답답한 공간 감상이 아닌 게임과 유사한 ‘플레이’적인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다. 조작의 자유도는 그만큼 플레이어-캐릭터, 조작자-조작대상간의 몰입도를 높인다. 물론 이번 시도는 여러가지 자원의 한계때문에 만족스러운 몰입감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런 가상공간을 다루며 시도할 수 있는 범위, 이를 위해 고려해야 할 시각과 영역, 그리고 화자의 의도와 청자가 만났을 때 생성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안하고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발걸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도가 보다 많은 자원과 관심 안에서 사람들에게 완숙한 게임 분야와 다른 신선함, 그리고 물리환경에서 압도적인 현대미술이 가진 한계를 벗어난 보다 자유로운 발걸음에 기여할 호흡 하나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접속 링크 : http://hanseungku.com/
허대찬 (aliceon managing 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