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윤제호의 정보를 찾아보면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오디오 비주얼(Audio Visual)’ 아티스트라는 표현이다. 오늘을 대표하며 오늘을 담는 형식 중 하나인 오디오 비주얼은 단순히 청각적인 오디오 표현과 시각적인 비주얼 표현이 함께 한 ‘멀티미디어’라는 개념보다는 좀 더 복잡한 무언가이다. 그의 작업은 고정된 설치 작품이라기보다는 끊임없이 유동하는 공연과 해프닝에 가깝다. 레이저와 프로젝터를 통해 현현하는 기하학적인 빛의 선이 주축이 된 이미지가 공간을 가로지르고, 그것과 논리·감각적으로 연결된 사운드가 그 공간에 위치한 표현자와 감상자를 감싸 안는다. 그 빛과 소리와 행동의 주체자는 분명하다. 하지만 그 안에서 감상자는 단순히 일방적 수용자로 남지 않는다. 작가 본인과 퍼포먼스의 협연자나 안무가가 자아내는 발화는 그들이 조성한 공간을 매개로 총체적인 경험으로 화하여 수용자를 그곳에 연결한다. 그는 그 현장의 증인이자 경험을 기록하고 공유할 화자로서 새로운 역할을 맡는다. 이 장면은 ‘오디오 비주얼’이라는 형식을 잘 보여주면서도 작가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관계도일 것이다.
그는 디지털이라는 만능의 용매를 다룰 컴퓨터를 기반으로 하여 여러 기술 도구를 사용하여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을 형상과 소리의 블록을 쌓고 연결한다. 이를 통해 조성되는 것은 새로운 매개된 풍경이다. 앞서 언급했듯 이 풍경은 우리가 직접 넘어가 볼 수 없는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의 제4의 벽 너머의 공간이 아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레이저가 만들어내는 빛의 기둥 사이를 거닐고 관통하는 선 중간에 머물기도 하며 우리의 몸과 저주파와 고음을 넘나드는 파장에 공진하기도 한다. 작품 안에 직접 뛰어들어 느끼고 시각이라는 제한된 감각경험을 넘어 공감각으로 대표되는 보다 많은 감각을 통해 느끼고, 나아가 개입하는 오늘날의 기술매개 예술이 추구하는 공통의 목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모습은 그가 작업 중 늘 떠올리고 있는 디지털 세상의 현실화일 것이다. 오늘의 세상은 우리 육체가 발 디디고 서서 우리의 오감이 감각하는 전통적인 물리세계와 정신이 접속하고 기술매체가 매개하여 시뮬레이션적으로 감각하는 가상세계가 연결·중첩되어 있는 복합계다. 이제 더는 각각의 세계가 다른 세계에 종속되어있거나 우월하다는 표현을 사용하기 어려운 시기이다. 우리는 두 세계 모두에 두 발을 딛고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물리적/비물리적 상황에서의 작용-반작용 경험을 우리의 몸으로, 그리고 인터페이스라고 불리는 시뮬레이션 경험으로 모두를 함께한다.
원본이 없는 대상, 비물질적인 존재를 물질적으로 현존케 하는 디지털 기술과 그에 기반한 광학적, 청각적 장치는 오늘날의 디지털-아날로그의 중첩 세상을 연결하고 표현하는 대표적인 방법이다. 그리고 윤제호는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고정되고 정착되지 않은 유동적 풍경을 펼쳐내고 있다. 그는 물질적 존재를 디지털적 가상의 숫자 정보로 환원하거나 다시 변환하여 물질적으로 현상화하는 작업을 통해 비물질적 환경에서도 인식이 가능한 물질적인 무엇 또는 물질적 환경에서 인식이 가능한 비물질적인 무엇을 공존시킨다. 이것은 작가가 우리에게 던지는 오늘과 우리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질문이라기보다도 고양과 일깨움에 가까운 전언이기도 하다.
윤제호의 새로운 공연 ‘1=0’에 대한 기고 요청을 받고 공연정보를 열람하며 가장 처음 느낀 것은 기대감이었다. 두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유기체로서의 나와 데이터로서의 나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있는 가운데 하나의 죽음이 다른 하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하는 퍼포먼스. 오늘의 상황을 작가가 어떻게 해석하여 정착시키고 표현할지에 대한 궁금증이 기대를 증폭했다.
공연에서 두드러진 것은 레이저와 반거울(Half Mirror) 큐브, 음악과 퍼포먼스의 네 가지 요소였다. 우선 레이저는 기하학적인 직선과 곡선을 기반으로 한 패턴을 출력하며 공간을 채웠다. 이 선은 손에 담을 수 없는 비물질적인 대상이지만 어떤 물질보다도 강한 존재감으로 공간에 실체화하여 분위기를 정착시키고 공연의 다양한 요소를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렇게 펼쳐진 이미지 구조는 디지털적인 미감을 지닌 단절·불연속적인 그래픽의 표현이었지만 동시에 아날로그적인 연속·연결적인 속성을 동시에 내포한다. 이 공존의 지점이 작가가 가진 흥미로운 개성이다. 그가 이야기하는 “디지털 공간의 현실공간으로의 구현”은 그가 감각한 오늘의 세상의 가시화, 가-공감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원본과 대상이 없는, 지시 근거를 필요치않는 이미지가 레이저와 엠비언트 사운드의 조화를 통해 촉지각적으로 우리 앞에 구현된다. 그의 기술적 매개행위를 통해 물리세계에 덧씌워져 현현한 이 공간은 물리-가상세계가 공존하는 그가 제시한 혼합계이다.
이 공존을 가시화하기 위해 또 한 가지, ’연결’의 부분이 부각된다. 레이저 투사는 디지털적인 단절의 모습 대신 지속적인 연결의 모습을 가시화한다. 어떤 선의 궤적이 그려지고 다음 선이나 도형으로 이동할 때 신호가 끊기고 새로운 선이 생성되는 모습보다는 지속연결과 재생의 상황이 지속된다. 이러한 연결은 이미지의 표현뿐 아니라 작가의 또 다른 표현수단인 반거울 큐브와 안무가, 나아가 관람자를 비추며 그들을 시각적으로 묶어내고, 시선과 의미를 연결해낸다.
반거울 큐브 역시 두 세계의 연결을 표현하기 위한 매개자로서 위치한다.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거울로 이루어진 정육면체 큐브 안에 또 다른 정육면체가 위치한 구조로 이루어진 이 큐브는 평상시에는 거울로 기능하다가 광원이 켜지면 투명해지는 반거울 소재로 만든 것이다. 그렇기에 큐브 중심에 위치한 광원의 작동 유무에 따라 투사, 투과, 반사라는 3개의 광학 현상 모두를 표현할 수 있다. 외부의 레이저와 내부의 광원을 통해 이 반거울 큐브는 빛의 연속체를 때로는 스스로 투사하거나 그대로 투과하는 한편 반사하기도 하며 공간과 그 공간에 위치한 여러 요소를 연결하는 핵심 매개체로 작동한다.
‘1=0’의 음악은 퍼포먼스와 함께 한 현대미술에서의 사운드 아트를 생각하면 떠올릴 수 있는 파열음이나 연속음, 기타 다양한 음계 밖의 잡음을 도입하여 음악과는 다른 청각적 감각을 자극하고 이를 시각적 부분과 접목하는 모습과는 다소 달랐다. 일관되게 펼쳐진 소리는 음악의 경계를 흔들거나 넘나드는 사운드아트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음색과 분위기를 강조하며 공간과 조화를 이루어 공간감을 고양하는 엠비언트 뮤직(Ambient Music)에 가깝다. 이 역시 자신의 존재감을 강하게 주장하는 요소라기보다는 다른 요소를 화합하여 관람자가 함께한 공간을 감싸 균형감을 유지할 수 있는 매개자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마지막으로 댄스무아(DanceMUA)의 안무가 안상화와 협업한 퍼포먼스는 위의 요소가 펼친 시공감각적 세계 위에 서서 세계와 교감하며 감상자가 접속할 수 있는 또 다른 통로를 개척하는 역할과 더불어 관람자가 이입하여 더욱 가깝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캐릭터로서 다가왔다. 5인의 무용수는 항상 무언가와 닿아있는 듯한, 보이지 않는 선을 느끼게 할 정도로 긴밀한 관계성을 표현해냈다. 한 명의 무용수는 강렬한 감정을 표출하며 세계를 살아가며 탐구를 하는 주연이었다. 또 다른 4인은 그녀에게 연결되어 있지만 동시에 세계에 접속한 또 다른 4개의 연결망이자 그녀의 움직임과 이야기의 여정을 증폭하는 확산망으로 자리했다.
공연에서 드러난 관계성의 세계는 그가 자신만의 관점과 감각으로 구현한 오늘의 해석이며 이 세계가 가질 다양한 가능성 중 하나이다. 한편으로 그가 이용하는 기술적 매체와 오늘날 세계구현과 경험에 있어 가장 주목받는 기술 중 하나인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 등 ‘현실(reality)구현 기술’이 추구하는 공통의 최종 목표인 투명한 매개성에 대한 환기이기도 하다. 이들 기술과 기술매체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더욱 정확하게 보여주는 하이퍼리얼적 재현의 방식과 물리세계-가상세계의 관계를 전복시키려 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이는 우리가 향유하는 세계를 확장하는 시도이지만 동시에 기술과 자본이 압도적으로 조종할 수 있는 세계로의 종속 시도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두 세계 모두를 딛고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완벽한 압도나 덧씌우기는 불가능하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한 주체의 한 세계의 죽음을 의미한다. ‘1=0’의 메시지는 이 두 세계에 함께 있는 우리에 대한 자각일 것이다. 어느 한 곳에서 다른 곳에 영향을 미치는 주체가 아니라 두 세계를 함께 살아가며 모두에 영향을 주고받는 복수세계의 주민인 우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를 위해 공연에 등장한 여러 요소는 각각의 특성을 표출하는 독립적 객체라기보다 모두가 상호작용하며 서로를 연결하는 매개자로서의 존재에 더 가깝다. 이들이 화합하여 관람자가 함께 한 공간을 감싸 균형감을 중심으로 조화를 이루어내려는 시도가 엿보였다.
아쉬운 점은 강렬한 공감각적 체험에 대한 주제전달의 연결점이 미약했다는 지점이었다. 극 초반 아날로그 세상에서의 탄생을 이야기하는 아이의 울음소리에서 시작한 전개는 어느 순간 빛과 소리, 움직임의 향연에 묻혀 감각적 지각만이 모두를 압도하며 사라졌다. “디지털 세상과 데이터로서의 나”라는 리플렛의 작가의 물음이 연결되기에는 시지각적 공간감의 장막만이 강력했다.
그는 오늘의 세계를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를 전달하고 주목하는 방식 중 핵심인 ‘몰입’을 잘 이해하고 있다. 10분 같은 50분의 경험. 공연을 보고 나오며 가장 먼저 떠오른 감상이었다. 모든 요소가 창작자와 실행자, 관람자가 함께 한 공간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다양한 감각이 동작하여 나 자신을 채우는 충족감은 다소의 아쉬움을 덮었고 이미 그것으로 족했다.
공연 정보: 윤제호, ‘1=0’, 2020.10.31, 인천아트플랫폼
공연 아카이빙 영상: 2020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 공연예술 창제작 발표 프로젝트 “1=0” / 윤제호
허대찬 (aliceon managing editor)
* 이 글은 인천아트플랫폼 자료집에 선개제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