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미디어 아트’라는 용어는 우리에게 익숙한 대상이자 문화적 산물로 받아들여졌고 소비되고 있다. 그러한 미디어 아트가 어떤 모습을 띄고 있을까? 이것에 대해 현재 사람들이 인식하는, 그리고 가장 많이 접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납득 가능한 방법은 ‘검색’일 것이다. 구글과 네이버와 같은 검색엔진, 유튜브와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에 ‘미디어 아트’를 검색했을 때 등장하는 텍스트, 이미지, 영상의 대부분은 프로젝션 매핑, 미디어 파사드, 몰입형 공간과 이와 관련한 체험에 대한 기록과 정보들이다. 이들은 직사각형의 평면을 넘어 환경으로 다가오는 스크린이며, 많은 사례가 일회적이거나 한정된 기회로서 드러나기보다 ‘일상’이라는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 곁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한편 이러한 경향은 스마트폰의 등장, 알파고의 충격과 전기자동차의 보급과 같은 기술과 기술적 대상이 보다 깊숙하고 전면적으로 일상에 강한 영향력을 가시화하며 찾아온 문화적 경향일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 상황이 가상과 현실 공간의 접점과 연결 확대를 가속화하며 우리의 익숙함과 호가 함께 증가하며 그만큼 다양한 관련 문화예술 창작과 향유 활동이 증가함과 연관되어 있다.
언급한 흐름과 현상을 대표할 수 있는 단어이자 주변에서 익숙하게 찾아볼 수 있는 단어가 있다. 미디어파사드(Media Facade), 프로젝션 매핑(Projection Mapping), 이머시브 스페이스(Immersive Space) 혹은 몰입형 공간 등과 같은 것들이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행사작 바닥을 화려하고 입체적으로 수놓아 변화시켰던 오프닝 세레머니의 공간과 작년 삼성동 코엑스의 SM Town 코엑스 아티움 외벽에서 펼쳐진 거대한 파도의 향연, 그리고 제주 성산에 위치한 빛의 벙커 실내를 가득 채운 영상의 공간을 알거나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동계올림픽 개막식의 바닥을 역동적이고 입체적으로 바꾸어 낸 기법은 프로젝션 매핑, 코엑스 쪽 빌딩의 벽면을 입체적 파도 공간으로 펼쳐낸 것이 미디어 파사드, 그리고 실내의 앞/뒤/좌우와 바닥이 스크린화되어 마치 공간이 변모하는 것 같은 체험을 만들어 내는 것이 몰입형 공간이다. 모두 시각적 경험을 극대화하여 평면이 아닌 공간적인 체감을 이끌어내는 기법과 기술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스크린을 벗어난 새로운 스크린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TV나 극장에서 마주하는, 직사각형의 형태를 가지고 빛을 통해 영상을 볼 수 있는 매체를 넘어선 또 다른 국면의 스크린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스크린은 사각을 벗어나 신체 사이즈를 넘어선 다양한 형태와 크기로 우리 주변의 환경에 자리 잡았다. 이들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이미지와 영상은 ‘본다’를 넘어서 ‘체험한다’에 가까울 정도로 시각을 넘어 촉지각적으로 다가온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영상을 투사하는 기기에서 찾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프로젝터의 밝기와 투사거리와 같은 기능이 발달하고 그에 따라 활용의 가능성이 넓어진 것이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처음 소개할 ‘프로젝션 매핑’의 프로젝션이 바로 이 프로젝터에서 근간한다. 야간에 한 건물에서 보았던 행사가 떠오른다. 야간 어두운 건물 외벽에 ‘이것은 문화관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등장하고 연이어 건물 외벽이 무너지며 물이 쏟아진다. 다시 이어지는 외벽의 모습은 마치 수면같이 불쑥 솟아올랐다가 가라앉으며 사람의 얼굴이 등장하기도, 순식간에 해저가 되었다가 파란 하늘로 전이된다. 2009년 서울대 문화관 건물의 외벽에서 펼쳐진 이 장면은 여전히 강한 충격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것은 12년 전인 2009년 디스트릭트(d’strict)와 서울대 정보문화학과가 서울대 문화관의 건물 외벽에 진행했던 프로젝션 매핑 프로젝트였다. 우리나라에서 실질적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첫 번째 사례일 이 행사는 건축물의 입체 표면에 그 구조에 맞춘 영상을 투영할 때의 환영과 충격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잘 알렸다. 프로젝션 매핑은 2000년 중반 이후 현재까지 여러 창작자, 기업, 예술가가 광고와 작품, 행사, 축제 등의 영역에서 다양한 활용 사례를 선보였다.
‘미디어 파사드’는 프로젝션 매핑과 겹치면서도 다른 영역을 가진다. 일종의 건축적 규모의 멀티미디어 풍경인 미디어 파사드는 건축물에서 그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중심면인 ‘파사드(Facade)’에 영상을 투사하며 음향을 연결하는 등 다양한 기술 미디어를 활용하여 고정된 건축물을 유동적인 모습으로 재의미화하는 방법과 결과물을 말한다. 이 사례로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2020년 삼성동 코엑스 인근 아티움 건물 외벽에서 선보인 디스트릭트의 <Wave>일 것이다. 외벽의 두 면을 감싸 연결된 ㄴ형태의 거대한 스크린에서 독특한 영상이 재생되었다. 물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끊임없이 파도를 생성하는 이 영상은 해당 장면이 평면이 아닌 입체로 인식되는 착시효과를 기반으로 거대한 크기, 조밀한 해상도, 풍부한 색감과 밝기를 통해 물의 역동감이 강렬하게 표현되며 주변을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내었다. 아나모픽(Anamorphic)이라고 불리는 꺾인 디스플레이 구조를 통해 스크린의 튀어나온 양(+)의 공간이 아닌 가상의 내부, 즉 음(-)의 공간을 착시적으로 묘사하는 기법을 통해 건물 안쪽을 가득 채운 파도라는 입체 공간과 사건을 인상 깊게 실현했다. 이렇게 건물 외부의 대형 LED스크린을 활용하는 시도는 기존 LED 전광판을 통한 영상과 연관하여 디지털 사이니지(Digital Signage)라고도 불린다.
프로젝션 매핑과 미디어 파사드는 상당히 넓은 공유 영역을 지닌다. 앞서 언급한 2009년의 서울대 문화관의 행사는 프로젝터를 이용한 기법으로서 프로젝션 매핑이면서 동시에 건축적 규모로 건물을 대상으로 펼쳐진 미디어 파사드이다. <Wave>는 건축물 표면에 설치된 초대형 LED 스크린을 통해 구현된 미디어 파사드이지만 프로젝션 매핑 기법은 아니다. 현재 도시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스크린 기반의 미디어 아트는 프로젝션 기법과 대형 LED 스크린을 통해 다양한 풍경을 만들고 있다. 이런 영상 작업들은 프로젝터와 같은 영상 투사기기와 영상 제작 및 제어 소프트웨어가 발달하면서 더욱 다양한 이야기와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시각적인 미려함과 더불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감각을 자극하는 독특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오늘날 도시의 실내외 곳곳을 점유하고 있다.
한편, 또 다른 영상 중심의 이미지 환경으로 소개할 ‘몰입형 공간’은 주로 실내에 조성된다. ‘몰입’. ‘몰두하다, 담그다’의 의미를 지닌 이머시브(Immersive)는 거리를 두고 독립적으로 관조하던 기존의 예술과 다르게 그 경계를 넘어 관람자가 속한 공간 전체를 점유하거나 영향을 미쳐 그들의 몰입을 극대화하는 기법으로 사용된다. 즉, 시각적 대상이 아니라 공간 전체를 영역으로 삼아 환경적, 공간적인 환영을 일으킨 일종의 환영 공간을 조성하는 것을 말한다. 여전히 제한적이고 불편한 HMD(Head Mounted Display)나 AR(Augmented Reality)관련 기기가 제공하는 가상현실 체험에 비해 편리하고 자유로운 가상현실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이러한 몰입형 공간 행사와 서비스이다. 이것은 1992년 일리노이 대학의 전자시각화랩(Electronic Visualization Lab)에서 개발한 CAVE(CAVE Automatic Virtual Environment)라는 가상공간 경험을 위한 시청자를 둘러싼 원통형 디스플레이 및 상호작용 장치에서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거쳐 2009년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퓨처랩(Ars Electronica Future Lab)이 실내 다면에 대한 다수의 프로젝터 연결 제어 운영 시스템인 딥 스페이스 8K(Deep Space 8K)를 상업적 규격과 구조로 정립, 소개했고 이후 전세계에서 이와 관련한 본격적 접근과 시도가 진행되었다.
국내에는 2010년 이후 10년간에 걸쳐 이들이 ‘미디어 아트’로서 외연에 발을 디디고 영역을 넓혀가며 그 비중을 넓혔고 근래 유행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 2014년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진행된 <반 고흐: 10년의 기록>처럼 주요 대가의 작품을 공간에 펼쳐 영상을 베이스로 한 프로젝션 공간을 통해 독특한 경험을 제공하는 전시가 다수 시도되었다. 2016년에는 팀랩의 몰입형 공간전시인 팀랩월드 ‘teamLab World: Dance! Art Museum, Learn & Play! Future Park’가, 2018년 제주도에서 티모넷(TMONET)의 ‘빛의 벙커’, 2021년 닷밀(.mil)의 노형 수퍼마켙과 디스트릭트의 아르떼뮤지엄이 개관하여 각자의 개성 어린 몰입형 공간을 선보였다. 빛의 벙커는 2022년 서울에, 아르떼뮤지엄은 여수와 강릉 두 곳에 추가 공간을 열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위에서 소개한 사례들은 공간에 대한 인식과 표현기법에 유희와 촉지각적 경험이 함께 한 일종의 환영 공간을 자아내는 문화 예술적 시도이다. 이들은 조명 및 이미지 투영 기기의 발전에 발맞춰 가시화되었다. 사용 장소에 대한 제약이 컸던 영상 투영 장치인 프로젝터(Projector)는 그 밝기와 투사거리와 같은 기기의 기능이 발달하며 실내가 아닌 외부로, 평면 직사각형이 아닌 입체 표면으로 활용 영역을 넓혔다. LED(Light Emitting Diode)는 빛의 색온도, 밝기와 같은 물리적 요소를 제어할 수 있으며 전력 소모가 획기적으로 줄어들어 단일 기기가 아니라 집합체로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조명기기가 아닌 건축규모의 이미지 표현장치로서 자리잡았다. 이들은 도시의 표면 곳곳에 자리하며 도시 풍경을 보다 다채롭게 변모시켰다.
이들은 미디어 아트로서, 또는 미디어 아트적 요소를 가지고 우리를 자극한다. 10여 년 전만 해도 낯설고 설명을 필요로 했던 ‘미디어 아트’라는 예술은 더욱 폭넓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을 중심으로 미디어 아트는 우리에게 이전보다 더욱 협소하게 접촉, 이해되고 있다. 과학과 기술이라는 현재 우리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문명의 요소와 결합하여 새로운 예술의 지평을 펼쳐낸, 기술의 막대한 영향력에 대한 반성과 비틀기를 통한 새로운 시선과 가능성을 타진하는 미디어 아트는 이 글에서 소개한 멋지고 자극적이며 익숙한 모습을 통해 향유와 교류의 면을 넓혔지만, 동시에 문화예술의 역사와 흐름을 통해 획득한 미디어 아트의 범위와 의미를 축소시키고 있기도 하다.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각종 감각과 관련된 미디어 기술이 발달한 지금, 우리는 가상 현실과 물리 현실이 본격적으로 접촉하고 확장되는 경계 선상에 위치해 있다. 이번에 소개한 프로젝션 매핑과 미디어 파사드, 몰입형 공간은 도시 안에서 각자의 영역을 넓히며 우리에게 가상과 물리가 겹치고 교류하며 또한 중첩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공간적인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이들이 자아내는 환영적 경험은 우리의 감각을 마비시키기도, 동시에 환기시키며 세계의 변화와 확장을 알리고 있다. 도심 한복판에 정착한 이러한 ‘미디어 아트’의 단면을 바라보며 우리 스스로가 어떤 방향, 어떤 세계를 인식하고 수용하며 활용할 수 있을지 즐겁지만 한편으로 우려를 담아 상상해본다.
허대찬 (aliceon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