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음, 즉 불가시성(invisibility)을 다루는 예술의 역사는 오랜 유래와 여정을 가지고 있다. 다다이스트(Dadaist)들은 반 예술적 태도와 반 국가주의, 다국적 정체성과 우연, 비합리를 통해 은폐된 사회 모순과 부조리를 폭로했고 초현실주의(Surrealism)는 이성 아래 억압되었던 무의식과 심리를 드러내었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예술이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을 형성한다고 보았으며, 이는 미적 표현을 넘어 진리의 자기개현(Selbstoffenbarung) 과정임을 논했다. 그는 예술과 기술의 공통의 근원을 이야기하는데, 여기에서 예술의 탈은폐 과정 중 예술과 기술이 각각 가지는 사물과 세계를 드러내는 창조적 방식을 연결할 수 있다. 벤야민(Walter Benjamin)은 기술과 함께 한 예술의 계몽(Enlightenment)적 기능, 즉 세상을새롭게 조명하는 역할을 소개했고, 매클루언(Herbert Marshall McLuhan)은 투명하다 여겨지던 매체(media)가 스스로 의미를 생성하는 본질을 밝혀냈다.
오늘날 기술이 삶과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기술 스스로의 발전속도가 더욱 가속화됨에 따라 보이지 않음의 무게와 치명성은 더욱 심화되며 또한 은폐되고 있다. 이에 기술을 중심축으로 다루는 예술, 미디어아트는 긴밀히 반응하고 있다. 미디어아트는 이 현상에 대해 단순한 계몽이나 가능성의 제시, 비판적 견지를 넘어 포괄적 관점을 아우르고 있다. 여기에 ‘생존’이라는 새로운 서사를 더해,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탐색한다. 작가 염인화는 일련의 복잡하게 얽히고 연결된 의미망을 탐구하며, 관람자가 직접 접근하고 개입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3차원의 증강현실 환경, 3D 퍼포머티브 장치-환경(3D Performative Apparatus-Environment)을 제안한다. 그리고 이에 기반한 독특한 내러티브를 펼치며 그 의미의 성좌에 대한 접촉면을 제안하고 있다.
그는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불가시성의 현상으로 두 가지를 설정했다. 하나는 ‘기후위기’이고 또 하나는 ‘AI의 전방위적 침투 상황’이라는 현실이다. 염인화가 2024년 Unfold X에서 선보인 작품 <솔라소닉 밴드 Sonarsonic Band>(2024)는 이 두 가지의 거대한 보이지 않는 것을 공연이라는 연극적 상황과 그 안에서 전개되는 내러티브를 통해 공존시킨다. 이 독특한 상황극은 단지 시청각적인 전달에 그치지 않으며, 확장현실(eXtended Reality) 기반의 환경에서 관객이 직접 참여하고 개입할 수 있도록 구성된다. 이것은 불가시적, 다시 말해 막연하게 다가오기에 그저 방관하거나 무시하고, 심지어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감각하고 지각하며 사고할 수 있게끔 권유하는 장이다.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지수가 67개국 중 64위라는 현실적 맥락 속에서, 이 무시할 수 없는 무거운 주제에 대해 작품은 문제제기를 넘어 참여적 경험을 통해 실천적 대안에 이루게 하는 시도로서 자리하고 있다.
<솔라소닉 밴드>에서 ‘퍼포먼스(performance)’라는 개념은 세 가지 차원에서 동시에 작동한다. 우선 예술적 수행으로서의 퍼포먼스는 그리그(Edvard Hagerup Grieg)의 <페르 귄트 모음곡(Peer Gynt Suite)>을 기후 데이터로 재해석하여, 기후 위기의 현실을 음악적 언어로 번역한다. 여기서 탕자 ‘페르 귄트’의 여정은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과 중첩되며, 음악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서사를 구성하는 핵심 장치로 기능한다. 이는 단순한 데이터의 시청각화를 넘어,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감각적 차원에서 전달하는 예술적 장치로 기능한다. 다음으로 기후 위기 대응 지표로서의 퍼포먼스는 각 기후권역별 구체적인 데이터를 통해 현실의 심각성을 드러낸다. 작가는 해당 데이터를 ‘기후변화의 정량적 서사: 50개의 데이터 시(poems)’로 정리하여 작품 세계 안에 안착시켰다. 예를 들어, “2050년, 산사태 취약지역은 현재보다 30% 더 늘어날 것이다. 무분별한 산지 개발이 새긴 상흔들이 폭우를 기다린다”, “2100년까지 식물의 생장기간은 70일 늘어날 것이다. 계절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자연은 혼돈 속으로 빠져든다” 와 같은 문구가 작품 공간과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출력되는데, 관객은 이를 직접 조정하거나 반영할 수 있도록 설계된 시스템과 상호작용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AI 시스템의 성능을 의미하는 퍼포먼스는 기술의 환경적 영향을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작가가 Dialogue X 학술행사 중 언급한, “ChatGPT 한 번 사용이 전구 20분 사용과 맞먹는다”는 사실은 기술의 퍼포먼스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AI 퍼포먼스는 환경적 비용과 창조작 가능성 사이에서 그 균형을 모색하며 기술과 예술의 융합을 재고하도록 권유한다.
작품의 핵심적인 특징은 현실에 기반하면서도 그것을 잠재된 의미를 끌어낼 수 있는 연결망의 세계를 구현한다는 점이다. VR 공간에서 펼쳐지는 각 씬마다 등장하는 10개의 스테이트먼트, ‘기후변화의 정량적 서사에 대한 데이터 시’는 단순한 사변이 아닌 팩트에 기반한 예측으로 구성된다. 이를 통해 이야기는 가상의 사변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과 맞닿아 있는 시뮬레이션 세계를 창출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요소는 AI 밴드 멤버와 스텝들의 존재다. 라이브 퍼포먼스에서는 불가능한 밴드 구성원 및 스텝간의 대화가 공연에서 AI 기술을 사용함을 통해 가능해지면서, 작품은 현실의 한계를 넘어선 새로운 국면과 가능성의 영역을 탐색한다.
작품의 물리적·가상적 공간은 정교하게 구조화되어 있다. VR로 구현된 무대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정립한 기후계의 5개 권역(대기권, 수권, 암석권, 빙하권, 생물권)을 순회하며, 각 권역의 위기상황을 다각도로 표현한다. 이곳에서 관객은 독특한 위치를 부여받는다. 그들은 현장에 놓인 AR 기반 장치인 ‘밴드 스탠드’를 통해 “밴드 리드”로서 공연에 참여한다. 밴드 스탠드의 태블릿 화면을 통해 표시되는 기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텍스트/그래픽 악보를 독해하고 실시간으로 수치를 조정하면서, 관객은 기후 위기 시나리오의 변주에 직접 참여하게 된다. 작품에서 펼쳐지는 기후 위기 시나리오에 대해 태블릿의 아이콘을 조작하며 개입하는 상황은 단순한 상호작용을 넘어, 기후 위기에 대한 책임과 행동의 주체로서 관객을 위치시키는 과정으로 확장된다. 이 증강현실 장치는 스크린에 펼쳐지는 가상의 무대와 기능적 교환의 기술적 인터랙션을 넘어 의미생성의 수행적 상호작용성을 발아시킨다. 이곳에서 참여자는 단순한 관람자 또는 주어진 역할을 진행하는 사용자를 넘어, 밴드 스탠드를 다루는 행위를 통해 작품의 의미를 구성해내는 핵심적 기여자, 인터페이스의 드라마터그(dramaturgie)로서 자리한다.
이곳에서 발현되는 작품의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전환은 작품세계 안에서 관객-악장과 협연하는 밴드 단원을 비롯한 프로젝트 관계자들의 대화이다. 공연진행을 총괄하는 AI 무대감독과 작품 내 공연 환경을 조성한 조명팀, 음향팀, 장치-환경팀, 개발팀은 연주가 진행되는 중에도 쉴 새 없이 공연 자체를 비롯해 공연 환경, 주변 정보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심지어 협연중인 밴드 단원조차 이러한 스몰토크에 합류한다. AI가 전체 공연을 진행하는 상황이기에 가능한, 오늘의 우리가 보기에 상식 밖이며 어처구니없을 수 있는 이 상황은 그 대화 내용을 통해 더더욱 증폭되어 함께 공연에 참여하고 있는 관객-악장의 귀를 파고든다. 세대 차이를 놀리고, 악기편성에 대해 작가-감독에 대한 뒷담화는 쉴새없는 속어와 커뮤니티어에 얹혀져 발화된다. 그 익숙함 또는 생경함에 피식 웃게 되는 와중에도, 그 정신없는 언어의 향연 속에는 디지털-아날로그의 이분법, AI 사용의 윤리성,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과 대처에 대한 비판 등 대화주제의 묵직한 의미가 담겨 공간을 채운다. 경박하게 날리는 언어와 외면할 수 없는 무거운 주제의 불협화음은 온건한 화음 이상의 날카로움으로 공연 역할극에 임하고 있는 관객-악장에게 파고들어온다. 너무나 빠르고 너무나 가깝게 위치하기에 마비되고 은폐된 기술과 그에 연관한 위기상황에 대한 무감응성(insensitivity)에서 벗어나는, 탈피의 순간이다.
우리는 기술적 숭고(Technological Sublime)의 상황에 놓여있다. 오늘날의 기술이 가진 복잡성과 그 규모는 우리의 이해와 지각 능력을 초월하고 있다. 본래의 숭고가 거대한 자연의 존재 앞에서 압도당하는 근대인에 대한 이야기였고, 동시에 그것을 초월할 수 있는 이성의 능력의 자각이라는 철학적 담론이었다면, 기술적 상황에서의 숭고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이는 마비적 상황이나 벤야민의 지각의 마취라는 진단을 넘어서 일종의 적응 매커니즘으로 작동할 수 있다. 압도적 기술 현실 앞에서 우리의 인지와 감각을 비롯해 윤리의 판단능력마저 대응이 아닌, ‘차단’을 통한 적응을 시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극한의 가능성에 대해 작가는 일상의 내러티브와 커뮤니티의 은어와 어휘, 그리고 대화의 기술을 통해 유희적이면서도 무게감을 잃지 않는 접근을 시도한다. 그리하여 다시금 우리의 지각과 행동에 재차 시동을 거는 과정을 제안한다. 이곳에 관객이 참여하고 조정할 수 있는 장치와 음악을 연주하는 퍼포먼스, 이를 공간과 이야기와 행위로서 연결하는 3D 퍼포머티브 장치환경이 펼쳐졌다. 여기에서 펼쳐지는 예술적 개입은 마비된 감각과 판단 능력을 다시금 활성 상태로 이끌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한다.
<솔라소닉 밴드>가 관객에게 창출하는 새로운 감각은 크게 세 가지 차원을 펼친다. 우선 기후 위기라는 추상적 개념을 구체적인 시청각적 경험으로 재현한다. 각 기후권역의 변화는 구체적인 표현과 <페르 귄트 모음곡>에 연계한 음악적 서사를 통해 전달되며, 이는 관객에게 직접적인 감각적 충격을 준다. 둘째, AI 기술의 전방위적 침투를 가시화한다. 작품 속 AI 스태프들의 대화는 기술이 이미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침투해 있음을 드러내며, 돌이킬 수 없는 존재와 관계의 필연성을 환기한다. 셋째, 공동체적 실천의 가능성을 감각적으로 제시한다. 밴드원들과의 협력적 퍼포먼스는 기후 위기 대응이 필연적으로 요구하는 집단적 노력의 중요성을 체험케 한다.
작품은 또한 AI 기술 사용에 대한 윤리적 딜레마를 정면으로 다룬다. 작가는 “기후 위기를 논하는 작품이 AI를 쓴다는 것이 어불성설 아닌가?”라는 질문에 대해, “누가, 언제, 어떻게 AI를 사용하는가”라는 반문을 제기한다. 구글의 2024년 지속가능성 리포트가 보여주듯 AI 기술의 탄소 배출량이 급증하는 현실에서, 작품은 이를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작가가 제시하는 ‘전략적 활용’의 개념이다. 그는 AI 사용 자체를 부정하는 대신, 그것을 현 상황에 대해 어떻게 더 효율적이고 의미 있게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실천적 방안을 모색한다.
이러한 접근은 기술에 대한 이분법적 판단을 넘어, 보다 복잡한 현실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윤리적 실천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시도다. 작가는 AI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면서도 그것의 환경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인다. 작품의 전·후처리 단계를 축소하여 컴퓨터 사용시간을 절감하고, AI를 통해 작업 시간과 빈도, 참여 인력 구성을 효율화하며, 기후 위기 담론 형성에 AI를 전략적으로 활용한다. 이러한 접근은 기술 사용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현실적 노력의 가시화이다.
기술이 우리 삶의 전방위적 영역을 구성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기술의 사회적·미학적 잠재력을 끊임없이 탐구하며 그 다양한 가능태를 구체화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이는 동시에 투명하게 은폐되는 기술의 존재감을 환기함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솔라소닉 밴드>가 보여주는, 흥미로부터 시작되는 접촉과 해석의 권유에 기반한 실천적 태도는 미디어 아티비즘(Media Artivism)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예술적 문법과 디지털 기술, 비평적 실천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수행적 실천의 관점은 불가시성과 무감응성이라는 기술에 대한 오늘의 태도를 적극적으로 환기하고 지각할 수 있게끔 가시화한다. 이는 단순히 기술의 블랙박스화나 기술적 숭고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고취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보다 나아가 기술 매체의 전복적이고 해석적인 활용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의 정치’에 닿는다.
작품은 또한 ‘예행 연습(rehearsal)’이라는 개념을 통해 기후 위기라는 거대한 문제를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행동과 경험의 차원으로 전환시킨다. 이는 단순한 경고나 계몽을 넘어, 실제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시도일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이 제시하는 예술의 역할이다. 예술은 현실을 재현하거나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현실에 개입하여 변화를 만들어내는 실천적 도구로서 자리한다. <솔라소닉 밴드>는 이러한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기술과 예술, 환경 담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예술적 실천의 모델을 제시한다. 이는 예술의 창조적 활력과 사회적 실천을 결합하는 이종적 수행으로서, 현대 기술 사회의 복잡한 의미 지층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 대안적 가능성을 모색한다. 작품은 동시대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며, 우리 시대의 예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어떠한 이정표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너무나 거대하기에, 너무나 빠르고 가깝기에 지각하지 못하고 대처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제안된 솔라소닉 밴드의 다성적 연주에의 참여는 작품의 내러티브를 통해 연결된 의미망의 공진을 이끌어내며, 이에 접촉한 우리가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비추고 있다.
* 이 글은 서울문화재단 서울융합예술 페스티벌 언폴드엑스 2024 사업의 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허대찬 (미디어문화예술채널 앨리스온aliceon.co.kr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