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여관은 흔히 얘기하듯 센 공간이다. 우리가 으레 떠올리는, 작품에 집중하기 위해 주변의 방해가 없는 새하얀 공간인 화이트 큐브가 아니라 그 자리, 그 용도, 그 체취가 남아있는 시간과 장소성이 강한 전시장이다. 고유의 역사성을 가진 밀도 높은 공간이며 스스로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 매체이다. 이곳에 신형섭 작가의 작품이 놓였다. 그리고 그곳은 이계(異界)가 되었다.
‘이계’는 일상 용어라기보다는 애니메이션과 게임과 같은 문화 영역에서 사용하는 비표준어이며 은어이다. 지금 우리의 현실과는 다른, 상상에 근거한 다른 세상을 지칭하는 이계는 일정 부분 납득할 수 있는 개연성 어린 세계관에 기반하여 다양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이야기가 전개되는 영역이다. 때로는 납득이 안되거나 이미 비현실적이라고 전제하고 바라보는 세계이고 이야기임에도 그 다름에 대한 상상력은 자극적으로 우리를 몰입으로 이끈다.
이렇게 게임과 애니메이션의 세계에 등장하는 이계라는 단어를 가져온 이유는 그의 작업을 접하고 바로 떠올린 것이 ‘스팀펑크(Steampunk)’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SF 장르 창작물 중 익숙한 것이 전기전자공학에 기반을 둔 ‘사이버펑크(Cyberpunk)’라면 이 스팀펑크는 증기기관을 주 동력원으로 삼은 기술 체계이고 세계관에 관한 이야기이다. 즉, 인간이 전기가 아닌 증기기관에 근거한 기술을 발전시켰다면 맞이했을 새로운 역사에 대한 상상력을 펼친 장르이다. 우리에게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호의 작품, <미래소년 코난(1978)>이나 <천공의 성 라퓨타(1986)>,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에서 펼쳐지는 증기 문명사회의 모습으로 익숙할 것이다.
증기기관은 물리학 중 동역학과 열역학에 근거한다. 육중하고 거친, 기계의 작동원리가 표면의 움직임에 의해 직관적으로 이해되며 이들이 펼치는 역동적인 조합인 풍경. 신형섭의 작품이 가진 외향은 바로 이러한 물질성에 대한 경험을 지극히 자극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아르고스 파놉테스 Argos Panoptes> 시리즈를 비롯한 여러 작업을 보고 이러한 가상 세계관을 떠올린 것은 슬라이드 프로젝터라는 오래된 광학 기계, 미디어 기기의 원리를 근간으로 한 작품의 기반 시스템과 이를 감싸는 바비큐 그릴이나 슈트케이스와 같은 금속 표면과 존재감이 뚜렷한 기계적 파츠, 그리고 이들이 투영해내는 조밀하고 촘촘하며 이색적인 이미지 때문이었다. 그의 작품이 가진 복합적인 투사 채널은 어떠한 근미래적인 영감을 자극하기까지 했다.
그는 원래 목적이 분명한 사물 또는 기기를 가공하여 복수의 투영 시스템을 한 곳에 모아 구현했다. 투영 시스템을 지닌 작품이자 광학 기계는 일체의 디지털 시스템이나 소프트웨어가 배제된 채 동전, 내부의 전선 다발, 곤충과 물고기 등의 인형, 도트 같은 그리드 모형에 이르는 다양한 사물이 위치해 이를 피사체 삼은 이미지를 전시장 공간에 투사한다. 실체를 바탕으로 한 이들 비실체의 상은 빛에 의해 구성된 만큼 우리에게 익숙한 디지털적 현상처럼 다가온다. 동시에 이를 조금만 분석하면 즉각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함과 직결성을 가진다. 하나의 이미지 시스템은 광원이 존재하며 광원이 향하는 피사체는 그 이미지 상을 렌즈로 보내고 렌즈는 그 이미지를 증폭하여 목적지인 스크린 또는 물체 표면에 맺히게 한다. 그의 디지털 없는 물리-전기 시스템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뇌리에 디지털-가상 세계를 소환한다. 지극히 물리적인 전기 장치가 선보이는 빛의 투영 이미지는 지극히 디지털 그래픽적이다.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물리적 풍경과 장면이라기보다는 증폭되고 왜곡되었으며 차별화된 시점과 속도감에 대한 경험을 선사한다. 이러한 비일상의 경험과 인식의 괴리, 그리고 그 상황에 대한 파악은 다분히 유희적이다.
보안여관이라는 강렬한 시간성을 느끼게 하며 폐쇄적이고 분절적인 공간은 이러한 그의 작품이 위치하여 새로운 장소로 변모한다. 빛과 형상, 움직임으로 요란한 그의 기계는 공간을 새로운 가상의 시간대로 설정한다. 광학기계는 그 스스로의 강렬함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이끌고 기계에서 비롯된 투사 이미지는 그 시선을 사물에서 공간으로 이끈다. 이들의 조합은 분명 연원을 파악할 수 있는 일상의 파편에서 비롯되었지만 지극히 비일상의 공간으로 화하여 시간적 경험으로 다가온다.
또 한 번 스팀펑크와의 연결점을 상기해본다. 스팀펑크의 배경이 되는 것인 벨 에포크(Belle Époque), 그러니까 아름다운 시절이라 부르는 유럽 역사상 찾기 힘든 평화기이자 황금기였던 빅토리아 시대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의 작업이 압도적이고 강렬하지만 힘들게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그러한 기대와 낙관과 같은 밝음과 재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양한 <아르고스 파놉테스>들의 동체 사이 도처에 위치한, 신작 <통의동 세레나데>에서 그림자의 군무로 비치는 흔들인형은 과거의 기억과 현재를 연결한다. 이들 흔들인형은 19세기 서구권에서 버블헤드(Bobblehead)라 불리며 유행하던 인형이었고, 20세기 말 우리에게 자동차 대시보드 위에서 목에 스프링이 달려 까닥이던 인형이었으며, 인테리어 소품으로 창가에서 햇빛을 받아 태양광 충전으로 머리와 허리를 흔드는 오늘의 흔들인형이다. 시간이 흐르고 거대한 변화가 있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가볍고 즐거운 기억의 순간을 연결하며 현재에서 경쾌하게 율동한다.
이 전시는 그가 그간 작품과 연관하여 사용해 온 고고학의 지점과 맞닿는다. 역사학이 문헌에 근간한다면 고고학은 유물, 즉 물질적 증거에 근간해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학문이며 추적이다. 스팀펑크가 대체역사적 관점의 상상력이라는 지점, 그의 작품이 바로 또 다른 대체 역사의 시간대에 대한 물리적 현전이며 증거로서 자리한다는 점은 보안여관을 새로운 대체역사의 시간선이 펼쳐진 공간이며 새로운 가상의 시간대가 설정된 장소로 만들었다. 관람자는 그 또 다른 이야기를 맞이하는 여행자라는 역할을 받았다. 이곳에서 작가는 물질성에서 비롯하여 비실체를, 그리고 디지털과 가상을 건드리며 그 연결에 대한 탁월한 관점을 물질을 다루어 드러낸다. 그는 익숙함과 낯섦, 과거와 현재, 물질과 디지털을 매우 능숙하고도 교묘하게 연결한 복합체와 그들이 투영하는 복합 세계를 선사하는 여정의 항해사이며 고고학자이고 또한 이야기꾼이다.
허대찬 (앨리스온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