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_TAG 15. SF와 함께 한 여행 4, 인간에게 인간의 모습만큼 낯선 것은 없다 : Rosuum’s Universal Robots

Robot이라는 말은 1920년 체코슬로바키아의 극작가 카렐 차페크(Karel Čapek)의 희곡 R.U.R.(Rosuum’ s Universal Robots)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1]

Rossumovi Univerzální Roboti (Rossum’s Universal Robots), Karel Čapek, 1920

로봇을 다룬 많은 글은 위와 같은 인용구로 시작한다. 100년 전 한 극작가의 상상력에 기반해 탄생한 ‘로봇’이란 개념은 사회주의 혁명, 전쟁, 기술 발전을 겪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용어가 되었다. 문학 작품에 기반한 이 개념은 100년 동안 다양한 층위로 확장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로봇을 떠올렸을 때, 머리 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굉장히 다양하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처럼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형태의 로봇, 공장 라인에서 자동차, 전자 제품을 조립하는 산업용 로봇, 장난감 로봇이나 로봇 청소기처럼 집에서 사용하는 가정용 로봇, SF 영화와 소설, 게임에 등장하는 인간 모습의 휴머노이드 로봇 등이다. 이들의 형태가 어떠하든 이들의 공통적인 의미는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기계 장치”이다. 카렐 차페크가 처음 사용했던 로봇도 체코어 노동을 뜻하는 ‘robota’에서 온 것이니 그 형태는 다양해졌음에도 100년 간 그 본질은 지켜지고 있는 것이다.

로봇의 어원적 기원말고도 R.U.R.(로숨의 유니버셜 로봇, 이하 R.U.R.)는 ‘인간을 위협하는 로봇’의 기원이자, 인간을 닮은 인공 생명체라는 오래된 신화를 대량생산이라는 현대적 해석으로 다룬 최초의 글로 소개된다. R.U.R.이 “로봇”에 대해 가지고 있는 책임감과 달리 그의 글을 읽다보면, 그 중심 주제는 ‘로봇 자체’라기 보다 인간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글에선 로봇에 대한 과학적 설명은 일절 없으며 늙은 과학자이자 철학자인 로숨의 (연금술같은) 실험으로 탄생한 것으로 소개한다. 큰 반죽통에서 반죽을 잘 치대서 장기, 뼈, 외형을 빚고 말려 탄생하는 로봇은 우리가 현재 상상하는 차가운 철이나 특수 소재로 만들어진 기계가 아니라, 잘 빚은 도자기 혹은 대리석 조각상에 더 가깝게 묘사된다. 이는 성경과 탈무드에 등장하는 골렘(생명을 지닌 진흙 인간) 신화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오히려 R.U.R.이 현대적인 로봇 개념에 영향을 끼친 부분은 늙은 로숨의 아들인 젊은 로숨이 시도한 대량생산 시스템이다. 늙은 로숨은 로봇 하나하나를 장인 정신을 들여 만들었지만, 로봇을 팔아 돈을 벌고자 했던 젊은 아들은 천편일률적인 모습으로 만들어 빠르게 공급하고자 했다.

R.U.R.에서 대량생산 시스템은 로봇의 값싼 노동력에 기반하고 있다. 예컨대 서막에서 자본가를 상징하는 인물인 부스만(Busman, 유태인 경리부장으로 비즈니스맨을 상징한다)은 이렇게 주장한다.

지금 현재 구대륙 유럽에서는 빵이 1파운드에 2센트 한답니다. (중략) 글로리오바 양, 당신은 그것도 비싸다는 것을 모르고 계시는군요. 문화생활을 위해서나 여러 다른 것들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것도 비싸죠. 하지만 5년만 더 지나면 분명, 상상도 못하실 겁니다. (중략) 5년 뒤에는 모든 것들이 지금보다 열 배는 더 저렴해질 거라는 사실 말입니다.

더 저렴한 상품과 고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은 삶의 질의 향상과 풍요로움을 가져다 주었지만, 극 속에서 인간은 아이를 가지지 못한다. 많은 고전이 동시대의 상황에 빗대어 다시 읽히지만, R.U.R.의 이 대목은 현시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헬레나가 신문의 칼럼을 읽으며) 이번 주 역시 단 한 건의 출생신고도 없었다.

 2막으로 넘어가면서, 로봇이 반란을 일으키고 본격적으로 갈등이 시작된다. 그러나 극 중에서도 로봇들이 어떻게 자아를 얻게 되었고, 왜 반란을 일으키게 되었는지에 대한 묘사는 부차적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만국의 로봇들이여!”로 시작되는 선언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선언을 패러디한 것이며, 이후 일어나는 살인과 폭력에 대해서도 로봇들의 당위보다는 그저 로봇들에게 인간에 대한 증오가 생겨난 것으로 뭉뚱그려 묘사한다. R.U.R.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과 대비되는 존재로서 로봇, 또 그에 대한 공포심이 아니라 인간이 어찌 할 수 없는 거대한 시스템이 되어 인류를 위협하지만 멈출 수 없는 자본주의와 대량생산 시스템에 대한 문제 제기이다. 다시 말해, 로봇의 반란은 로봇과 같은 기계로 인한 자동화, 자본주의의 몰락, 통제 불가능한 주식 시장, 바이러스, 환경 오염, 기후 변화, 팬데믹, ‘인류가 통제할 수 없어진 모든 위협’에 대한 상징이다. 

The robots break into the factory at the end of Act 3.

  또한 중 등장인물은 각자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지고 있다. 모두가 평등할 것이라 믿는 헬레나부터, 대량생산이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 믿는 도민, 노동의 가치를 믿는 알퀴스트, 모든 기술은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하는 유모 나나, 심지어 등장인물을 모두 죽이는 로봇 역시 각자 믿은 바 대로 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R.U.R.에는 선역과 악역이 없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인간을 말살한 로봇도 자신의 죽음 앞에서 공포를 느끼는 꽤 ‘인간다운’ 모습으로 그려진다. 등장인물들의 대립적인 가치관은 R.U.R.를 통해 차페크가 드러내고자 했던 또다른 문제의식이다. 그는 “고상한 진실과 사악하고 이기적인 잘못 사이에 투쟁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하나의 진실이 그에 못지 않게 인간적인 다른 진실과 대립하는 것, 이상이 다른 이상과, 긍정적인 가치가 역시나 긍정적인 가치와 대립하는 것”이 현대 문명에서 가장 극적인 요소라고 말했다. 

R.U.R.은 사랑을 깨닫게 된 로봇 프리무스와 헬레나가 자유를 찾아 떠나는 모습을 보며 인간 노동자를 상징하는 알퀴스트가 사랑에 대한 찬가를 부르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렇기에 R.U.R.에 대해 살인병기로서 로봇, 인간을 위협하는 로봇, 감정이 결여된 존재로서 로봇의 기원이라는 후대의 평가는 아이러니하고 가혹하다. 카렐 차페크는 인간을 위협하는 새로운 존재를 그리고자 했던 것이 아니다. 통제를 벗어나 비대해진 대량생산 시스템 그리고 폭력적인 신념으로 가득 찼던 당시 시대를 그린 것이다.

“아, 도민, 인간에게 인간의 모습만큼 낯선 것은 없다네”. Final scene of the Act III.

3막에서 인간의 살육의 역사를 읊는 로봇의 대표, 다몬에게 한 알퀴스트는 위 대사는 R.U.R.의 핵심이다. R.U.R.은 세계 전쟁과 산업화 시대의 한 가운데에 서서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지 고찰했던 차페크의 시선이다. 그는 1923년 한 토론회에서 R.U.R.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인간의 두뇌에서 나온 개념이 결국에는 인간의 손이 제어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서게 된” 상황이었다고 언급했다. R.U.R.의 100주기인 2020년의 우리는, 그야말로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의 한복판에 서 있다. 완벽하고 견고할 것 같았던 시스템들은 대륙과 인종을 뛰어넘는 바이러스에 의해 무너지고 있다. 앞으로의 시대가 어떻게 변할지 섣불리 말할 수는 없지만, 고전은 이렇게 말한다. 다른 존재에 인간의 과오를 전가하지 않고 우리의 시대를 바라볼 용기가 필요하다고. 

글 : 앨리스온 에디터. 최선주
2020. 5.10.

[1] https://ko.wikipedia.org/wiki/로봇#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