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유토피아 일랜시아 : ‘내언니전지현과 나'(2020) 리뷰

박윤진, <내언니전지현과 나>, 2019, 영화 스틸컷

‘일랜시아 왜하세요??’

 

‘최근에 나오는 게임에 비해 눈이 덜아파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 . ‘

‘제노트북에서 돌아가는 게임이 일랜뿐이에요’

 

도덕책에 인터넷에서 사귄 친구를 만나면 안된다는 말만 철썩 같이 믿어온 나였다. 남들은 각종 온라인 사이트에서 온라인 친구들을 만나 온라인 즐거움을 나누며 희희낙락 할 때, 나는 순종의 댓가로 철저하게 오프라인 친구들과의 관계만을 유지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대학에서 만난 친구가 나에게 넌지시 자신이 소싯적 퍼피레드[1] 같은 아바타 커뮤니티 연예인이었다고 말해주었다. 너무 잘나간 나머지 질투를 받아, 익명으로 조리돌림까지 당했다는 .. 그 고백을 들은 후 나의 작은 알에 좍좍 금이 갔다. 질풍노도의 학창시절 온라인 친구 한 명 사귀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고, 그것은 교복 입는 시절에 데이트 한번 해본 적 없다는 사실보다 보다 더한 수치였다. 인생을 즐기지 못했다는 수치였다. 이런 나에게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내가 알지 못했던, 아마 앞으로도 알지 못할 게임 속 관계의 문법을 맛보게 해주었다.

 

<내언니전지현과 나> (이하 <내언전>)은 넥슨에서 1999년 출시한 초창기 MMORPG 게임 일랜시아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고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누군가 한번쯤은 함께 플레이 하는 게임 캐릭터 배후의 인물이 궁금했을 것이다. 이 궁금증을 풀어주 듯 감독은 자신의 오랜 게임 친구들을 찾아나서 인터뷰 한다. 어떤 이유로 어린시절 시작한 일렌시아를 20,30 대가 되어서도 계속 찾고 있는지, 일렌시아는 어떤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묻는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인터뷰와 함께 일랜시아의 전경이 펼쳐지고, 방치된 일랜시아의 운영상황을 보여주며 보통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일랜시아 ‘고인물’들의 실정을 담아낸다.

일랜시아가 오래전에 출시된 만큼 그 안에 남아있는 사용자들도 오래되었기에, 사용자들은 운영자들이 오지 않는 일랜시아의 땅에서 스스로 만들어낸 일렌시아 내에서 사용하는 프로그램인 매크로와 핵을 돌리고 게임이 설정한 목표 외의 활동을 즐긴다. 그들은 매크로에 투자하는 시간 만큼 착실하게 비례해 성장하는 자신의 캐릭터들을 보며, 현실의 취업난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만족감을 대리로 느낀다고 말한다. 게임 플레이의 본 퀘스트를 매크로에 맡긴 그들은 마치 체스말로 인형놀이를 하듯 다양한 방법으로 일랜시아에서의 시간을 보낸다. 남자친구와 일랜시아를 누비며 온라인 데이트를 하거나, 길드원들과 게임 캐릭터로 걸그룹 노래에 맞춰서 안무를 하며 걸그룹 데뷔를 한다. 그중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길드원들이 일렬로 서서 한마디씩 유언을 남기고 절벽 밑으로 떨어져 자살하는 장면이었다. 물론 게임 안에서 자살하면 다른 곳에서 부활하지만서도, 유언이랍시고 ‘강다니엘 사랑해’를 외치고 떨어져 사라지는 모습은 기이하게 느껴졌다. 최후의 한마디를 외치고 마지막을 맞이하는 경건하고도 숭고한 의식이 게임 속에서는 몇 번이고 반복 될 수 있다.

<내언전> 을 관람하며 참신하게 느껴진 부분은 게임 플레이 화면이 영상 안에 날것으로, 그것도 상당한 깊이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7년, 미디어 화면으로만 영화를 채운 <서치>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이후 영화관 스크린에 재생되는 컴퓨터 화면을 관객은 낯설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몇 시간씩, 아니 사실은 거의 하루 종일 전자기기의 스크린을 들여다보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온라인 화면으로 진행되는 영화에 대한 거부감은, 어쩌면 <서치>의 개봉 이전부터 허물어져 있었을지 모른다. <내언전>을 보기 위해 극장에 갔을 때, 화면 가득 채운 일랜시아의 세상은 전혀 낯설지 않았다. 관객으로서의 나는 플레이를 하는 주체가 아님에도 플레이 화면에 심도 깊은 몰입이 가능했다. 심지어 1999년에 출시한 그래픽임에도 전혀 거리낌이 들지 않았다. 날것의 온라인 화면 그대로를 스크린에 그대로 옮겨온 것은, 우리의 시각 인식 체계가 바뀌었음을 입증하는 지표가 된다. 우리는 우리가 앉아있는 책상과 그 위에 올려진 노트북을 보고 나서 그제서야 그 안에 있는 화면을 보는게 아니다. 우리는 화면 속을 온전한 공간이자 세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내언전>의 감독과 더스크린이 진행한 인게임 인터뷰를 보았다. 인터뷰는 기자가 일랜시아 캐릭터로 잠입취재하여 함께 앨린시아를 돌아다니며 진행되었다.[2] 인터뷰를 진행하는 두 인물을 우두커니 서서 몰래 지켜보던 어떤 사용자는, 이내 그들에게 ‘ㅗㅗㅗ’를 날리고 도망간다. 게임을 처음 시작한지 10년이 지나 결혼을 하고 직장인이 되어도 일랜시아를 찾는 이유는 아무에게나 뻐큐를 날리고 튈 수 있다는데 있을까. 일랜시아로 묶이는 가깝고 낯선 사람들 모두 아바타가 아닌 모습으로 어디에선가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전국에 몇 되지 않을 일랜시아 유저들이고 현실의 모습으로는 일랜시아 플레이 여부를 절대 알아차릴 순 없지만, 그럼에도 마치 카인의 표식처럼 그들은 일랜시아에서의 자아로 묶인다. “너는 왜 살아?” 라는 질문에 재빨리 정답을 구구절절 읊을 사람이 없듯, “일랜시아 왜하세요??”라는 질문에도 “글쎄요…”라는 줄임표만 남길 뿐이다. 이처럼 일랜시아는 오랜 플레이어들에게 이미 익숙한 일상이지만서도, 한편으로는 원하는 바 모두 이룰 수 있는 유토피아다. 일랜시아에서의 플레이어는 여타 게임 플레이어보다 전능함에 가까운 힘을 행사하기에 방치된 일랜시아에서 평범한 개인은 신처럼 군림한다.

 

[1] 퍼피레드 (Puppyred)는 트라이디 커뮤니케이션에서 2003년 11월부터 2016년 8월 19일까지 서비스를 했던 3D 육성 커뮤니티 게임이었다.

[2] ‘[인 게임 인터뷰] 일랜시아 16년 차 고인물 😈내언니전지현(=다큐 ‘내언니전지현과 나’ 감독)을 만나러 일랜시아에 직접 들어갔습니다’, https://youtu.be/p97XgsAznPY (2020년 9월 1일 접속)

글. 조형윤 | 앨리스온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