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ice] 존재의 경계에서, 디지털 생태의 조건 탐구 2. 김명득 – 시스템, 재귀의 수행자_이다다

전시 전경, 2025. © 이다다

김명득 〈당신의 엔터티〉 : LiDAR 센서, 지향성마이크, 2채널 사운드, 커스텀 서버, 객체 인식 알고리즘 / 가변설치

긴 복도를 지나 전시 공간에 가까워지면 몽환적인 형태의 사람의 그림자가 천장에서 아래로, 길게 드리우는 것이 보인다. 곧 움직이는 그림자의 정체가 바로 본인의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벽면 전체에 카메라가 찍힌 관객의 얼굴이 나타나면서 “YOU ARE BEING WATCHED”라는 경고문이 크게 나타난다. 이동하는 동선에 따라 공간 내부에서 발생하는 소리가 달라지고, 관객의 위치가 추적되어 벽에 표시된다. 그런 식으로 의도하지 않게 관객은 작품의 일부가 된다.

전시 전경, 2025. © 양평군립미술관

데이터의 생태계에 편입되는 순간부터 발걸음이나 말의 조각은 주변 소음과 함께 다시 공간으로 ‘입력’된다. 소리와 그래픽은 변조되어 가공되고, 벽면 가득 펼쳐지는 영상과 공간을 잠식하는 음향으로 실시간 ‘출력’된다. 김명득은 〈당신의 엔터티〉에서 일상의 행위가 끊임없이 데이터로 변환되고, 다시 여러 층위로 재배열되는 과정을 포착한다. 감지된 음성은 대규모 언어 모델(LLM)의 처리를 거쳐 글자로 변환되며, 동시에 신호 처리와 합성을 통해 또 다른 소리로 재구성된다. 시각적 입력 또한 알고리즘의 변환과 생성 AI의 처리를 거쳐 원본과 다른 모습으로 투사된다.

왼쪽에는 깊은 연못과 같은 거대한 화면이 바닥에 자리하고 있다. 그 앞에 서면 검은 수면 위로 사람의 형체가 나타나지만 그 모습은 원본 그대로의 반사가 아니다. 윤곽은 동일하지만 떠오르는 형상은 원본과 유사하면서도 완전히 다르다. 시스템이 인식한 형체는 세상의 어딘가에서 수집되고 있는 시각 데이터와 합성되어 물 위에 드리운 사람의 윤곽 안으로 압축되듯 삽입되고 변형된 모습으로 수면 위에 길게 펼쳐진다.

전시 디테일 1, 2025. © 이다다

Q. 자연이 가진 패턴의 알고리즘을 연구하고 시각화로 적용하고 있나?
A. 자연 패턴을 기반으로 한 알고리즘 구현은 한때 중요한 연구 주제였고, 미디어아트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시각화가 시도되어 왔다. 그러나 지금은 관련 도구와 기술이 크게 발전하여 구현 자체보다 이를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고 새롭게 재구성하느냐가 더 중요한 과제가 된 것 같다. 나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패턴의 형식적 구현보다 그것이 데이터 환경 속에서 어떻게 변형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지에 더 관심을 두고 작업하고 있다.

Q. ‘물성의 전환’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A. 그렇다. 물의 본질(H2O)은 그대로이지만 고체-액체-기체로써 나타나는 형태가 바뀐다. 외부와의 에너지 교환을 통해 그러한 변화가 일어난다. 그런 순환이 존재한다고 할 때, 근본적인 것은 과연 무엇일까, 혹은 그러한 근본을 어떻게 포착할 수 있는가에 관심이 있다. 사실 그 아래에는 원자를 구성하는 기본 입자들이 있으며, 그 입자들은 끈(string)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가설도 존재한다. 그런 식으로 근본 법칙은 있을 것이다. 미시적 차원의 양자역학에서는 여러 가능한 상태가 동시에 존재하는 중첩의 원리 또한 작동한다. 나는 순환 과정 속에서 연결, 해체, 재구성의 복잡한 절차를 거친 끝에 드러나는 ‘정제된 단순함’에 주목한다. 즉, 근본적인 속성과 그 속성이 변하면서 드러나는 상호 연결성 및 전환의 양상에 관심이 있다.

전시 디테일 2, 2025. © 이다다

Q. 관객이 작품의 일부가 되어 화면에 프로젝션 되면서 “YOU ARE BEING WATCHED”와 같은 메시지가 나온다. 빅브라더나 감시자를 염두에 둔 것인가?
A. 입력과 출력의 흐름이 있을 때 중간에 ‘조작(manipulation)’이 더해져서 출력이 변하고, 그것이 다시 피드백(feedback)으로 처음에 영향을 주는 시스템에 대한 것이다. 여기서 조작은 외부에서 끌어오는 데이터, 관객의 목소리, 발자국 등에서 발생된다. 환경의 즉흥적인 요인이 데이터에 무언가를 덧씌우고 바꾼다. 이를테면 벽에 나오는 글자들은 전시장의 음성과 같은 입력에 기반을 둔 것이지만, 어떠한 경로를 통해 간섭하여 합성된 결과가 출력되는 것이다. 시각적 결과물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과정에서 포착했다고 생각했던 애초의 모양이 바뀌게 되고, 기대하던 원본성을 파악해내기가 어렵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이를테면 데이터의 공간 A에서 B로 이동한다고 했을 때, 그 과정에서 원본성이 흐려진다. 그러한 간극에 대한 것이고, 그것이 나타나는 시스템을 구현한 것이다. 생태계와 같은 데이터를 시스템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그러하다고 생각된다. 그런 ‘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전시 디테일 3, 2025. © 이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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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벽면을 채우는 문구와 실시간으로 포착되는 관객의 모습은 빅브라더나 판옵티콘(panopticon)1)과 같은 감시 사회의 오래된 도상들을 연상시킨다. 관객의 데이터가 변형되고 가공되는 과정은 정보가 수집 및 처리되는 뒤에서 작동하는 구조를 드러내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김명득이 구현한 시스템은 감시 장치의 논리와는 다른 층위에서 작동한다. 감시는 ‘본래의 대상’을 확인하고 그것을 추적하겠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작동하지만, 작업은 입력이 곧바로 재귀적인 중첩을 통해 변위되고 왜곡되는 ‘과정 자체’를 전면에 드러낸다. 여기서 개별 구성 요소, 즉 엔터티(entity)에 덧입혀지는 요소들은 무관한 잡음이 아니라 관객의 목소리나 발자국, 공간에 반사되는 소리 등 시스템이 포착한다고 여기는 상황 자체에서 나온다. 이는 미시 세계에서 측정 행위가 대상의 상태를 교란하기 때문에 ‘본래의 상태’를 관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불확정성 원리(Uncertainty Principle)2)와 유사하다. 그러나 실은 거시 세계에서도 어림잡아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원본성이란 확보되기 힘들다. 현실의 카메라가 포착하는 것은 원본의 일부에 불과한 매개된 표면이며, 이러한 단편적인 신호는 입력의 순간부터 변형되기 시작한다.

작품 속에서 관객의 형체와 음성은 끊임없이 포착되고 재가공되지만, 어떤 순간에도 ‘그 사람 그대로’라는 형태에 도달하지는 않는다. 엔터티를 구성하는 신호들은 합성과 재처리를 거쳐 다시 출력되며, 동일한 윤곽 안에 구겨 넣어지는 변조된 출력들은 매 순간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러한 과정에서 존재는 하나의 실체라기보다는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흔적으로 감지된다. 김명득은 “원본을 찾기 어렵고, 중요한 것은 A에서 B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변형”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질문은 “무엇이 진짜인가?”가 아니라 “진짜라고 믿어지는 무언가는 흐름에서 어떻게 유지되는가?”로 이동한다. 그는 데이터에 가혹한 난류와 교란을 강제로 부과하여 소멸하지 않고 남는 잔여(residue), 즉 정제된 단순함을 포착하고자 한다. 이는 무한한 재귀의 반복 속에서 최소한의 얼개를 추출해내는 과정이며, 실재와 무관한 시뮬라크르(Simulacre)를 산출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변형은 파괴의 장치가 아니라 탐사의 수단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말하기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김명득은 질문을 받으면 즉각적인 답변보다 그 질문이 놓인 층위와 근본적 맥락을 먼저 점검하며 사고를 전개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그의 화법은 되먹임 구조를 따라 다음 레일을 놓으며 나아가는 기차를 보는 듯하다. 이는 생성형 AI가 되먹임 처리를 반복하며 입력과 출력 사이에서 단계적으로 방향을 조정하는 방식과도 유사하다. 답변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여러 과정의 조율이 작동하여, ‘A를 질문한 것’은 본질이 아니므로 ‘진정으로 물어야 할 질문은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식이다. 이러한 언어의 운용 방식은 그가 주제에 임하는 태도와도 닮아있다. 김명득은 한 달만 지나도 구식이 되어버리는 최신의 AI 기술을 강박적으로 습득하면서 재귀의 과정을 수행적으로 갱신하고자 한다.

글. 이다다.


1)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감시와 처벌』(1975)에서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의 감옥 구조인 판옵티콘을 인용하여, 감시받고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주체의 행동이 규율되는 근대 권력의 원리를 설명했다.

2) 하이젠베르크(W. Heisenberg)가 정립한 불확정성 원리(1925)에 대한 직접 예시인 이중슬릿 실험(Double-slit experiment)은 단일 전자 수준에서 뿐만 아니라 Fein et al. (2019)에 의하면 2000개 이상의 원자들로 이루어진 복합체에서도 잘 관측된다.

행사개요
전시제목: 2025 양평군립미술관 신진작가전 〈뉴 앙데팡당: 십자말풀이 파트3〉 중 김명득 파트
참여작가: 김명득, 이상덕, 전희수
전시장소: 양평군립미술관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문화복지길 2
전시일정: 2025.10. 1 – 11.09
후원: 양평군, 사단법인한국미술협회 양평지부

본 연재는 2025 광주 GMAP 디지털아트컬쳐랩 리서치랩 ‘아트라이터 지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