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민미술관의 조주현의 선생님과 함께 비디오브라질의 디렉터 솔랑쥬 파르카스 디렉터와 국제 관계 담당 다니엘 에스코렐 두 사람이 서울관 전시를 보러 왔다. 이번 글은 전시를 보고 나서 이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나눈 이야기이다.
솔랑쥬 올리비에라 파르카스(Solange Oliveira Farkas)는 비디오브라질(Videobrasil) 의 디렉터이자 큐레이터이다. 1955년 브라질의 바히아(Bahia)에서 태어나 현재는 상파울로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비디오와 다른 매체들 간의 관계와 예술 형식으로서의 비디오가 동시대미술에 끼친 영향에 대해 연구하며, 큐레이터로서 활동해왔다. 1983년, 현대미술페스티벌 《SESC-Videobrazil》을 설립한 후, 다양한 전시를 브라질 국내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지속적으로 기획해왔다. 대표전시로는 세네갈에서 열린 《국제 아프리카 미술 비엔날레(2016)》, 《제 6회 자카르타 국제 비디오 페스티벌(2013)》, 《제 10회 샤르자 비엔날레(2011)》를 비롯하여 《Joseph Beuys: We Are the Revolution>(2010-2011, Sesc Pompeia, São Paulo and Museu de Arte Moderna da Bahia, Salvador, Brazil)》, 《Sophie Calle – Cuide de você [Take care of yourself](2009)》등이 있다. 세계적인 기업 몽블랑의 문화예술 후원에 선정되었으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EYE의 미술상과, 제 10회 아프리카 사진 비엔날레 등의 초청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한국에는 2017년 11월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라틴 아메리카 비디오 아트와 시각예술>’이라는 주제로 토크를 개최한 적이 있다. 비디오 아트나 미디어아트에 대한 논의에서 항상 독일, 프랑스, 미국 등 몇몇 국가 위주로 작가나 작품이 집중 소개되는 데 반해 지구상의 다양한 문화권의 작가와 작품에 대해 상대적으로 정보도 부족하고 접근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처음 솔랑쥬 파르카스와 비디오 브라질을 소개한 바르토메우 마리 전임 관장은 아프리카의 현대미술 작가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기 위해서 자문을 구할 수 있는 전문가로 솔랑주 파르카스 디렉터를 추천했었다.
2019년, 5월 일민미술관에서 개최한 《디어 아마존: 인류세》전을 위해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만난 솔랑주 파르카스 디렉터는 스스로 개척하면서 새로운 예술과 마주한 기획자의 내공을 느낄 수 있었다. 비디오 브라질은 지금까지 비디오 아트의 역사에서 중요한 4천 점에 가까운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2년에 한 번 개최하는 국제 행사에 이어, 라틴 아메리카 지역의 큐레이터들과 매달 새롭게 등장하는 예술가들을 소개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라틴 아메리카 지역의 예술가들의 지형도를 그려나가고 있다.
Q. 한국에서는 백남준의 <다다익선>을 비롯한 작품들을 보존하고 복원하는 일로 많은 연구와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다. 혹시 그 작품을 본 적이 있는가. 백남준의 전시를 상파울로에서 개최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때의 기억에 대해서 이야기해준다면…
A. 1996년 비데오 브라질에서 백남준을 소개하는 전시를 개최했고, 그 전시 준비를 위해 백남준의 뉴욕 스튜디오에 찾아가 토론했던 경험이 있다. 브라질에서 그의 개인전을 개최하면서 신작을 제작하기 위해서 많은 토론을 했다.
당시 우리는 <TV 붓다>를 만들고자 했고, 남아메리카 버전의 부처상을 찾기 위해서 많은 자료를 찾고 그에게 사진을 보내고 의견을 묻곤 했다. 계속해서 크기나 형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막대한 양의 자료를 찾아 보냈는데, 어느 날, 브라질 흑인들의 종교 의식에 사용되는 ‘Preto Velho’ 조각상 중에서 앉아 있는 조각상을 발견하여 보냈더니 그 형태와 크기를 마음에 꼭 들어했다.
(참고 http://site.videobrasil.org.br/en/festival/arquivo/festival/programa/1402169)
백남준의 전시에는 <TV 붓다>와 함께 <TV 물고기>, <TV 정원>, <TV달>이라는 총 4점의 설치 작품이 소개되었다. 백남준의 작품에서 테크놀로지의 기능이 중요하지만, 동시에 조각적 특성이나 미학적으로 볼 때의 물질적 속성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현재의 모니터로 구성된 전체의 형태(Shape)와 볼륨을 유지하는 것도 유의미한 일이다. 백남준은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작은 작업에서도 모니터의 크기와 비례를 신중하게 골랐다는 점을 볼 때, 그가 미디어아티스트이자 동시에 조각적 속성을 중시하는 예술가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복원할 때, 작가가 생존해 있고, 작가의 감독 하에 진행되었다면 그건 다른 얘기다. 지금은, 작가가 세상을 떠난 상태이고 누가 그러한 결정을 할 수 있겠는가.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특정한 사례를 지칭할 수 없지만, 전 세계의 백남준의 작품을 가진 많은 기관들이 동일한 문제에 봉착해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테이트에서 열렸던 심포지엄 역시 같은 고민들을 함께 나눈 자리였다.
당시 우리가 도달했던 잠정적인 결론은, 백남준의 작품은 인류 전체의 중요한 자산이고, 우리 모두가 그에 대해 후대에 물려줄 책임이 있으므로, 다 같이 삼성 같은 전자회사에 한시적으로 생산라인을 열어주기를 청원하도록 다 같이 로비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1996년 전시 개막 때, 백남준과 동료 예술가인 스타이나 바술카와 함께 프로젝트를 기획했는데, 백남준이 아파서 전시를 앞두고 병원에 들어가게 되어 설치와 개막을 위해 오지 못하게 되었다. 열심히 준비했던 프로젝트라 어떻게 하나 난감하던 찰나, 백남준이 인공위성을 구해달라고 했고, 놀랍게도 구했다. 그래서 인공위성으로 연결하고 비디오카메라를 설치하고 스타이나 바술카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을 때, 병원에 있던 백남준이 영상 속에 등장해 모두에게 인사를 남겼다고 한다. 백남준은 정말 유쾌한 사람이었고, 그와 함께 일해서 즐거웠다.
Q. 작가가 세상을 떠난 후에, 작품을 복원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은 것 같다. 비디오아트의 초기 작가들 중 상당수가 이제 연로해졌다.
A. 처음 비디오 아트를 다룰 때 모두가 젊었고, 격식을 차리지 않았다. 에너지가 있었고, 모두가 서로 이어진 동료와 같았다. 이제 그들 중 몇몇이 세상을 떠나고 있다. 작가의 뜻을 잘 기록하고 남겨두어야 할 필요성이 더더욱 커지고 있다.
Q. 미술관 큐레이터로도 일했는데, 독립적인 기관을 설립하고 운영하게 된 계기와 장점은 무엇인가.
A. 기관 큐레이터로 일하는 것에도 장점이 있지만, 새로운 예술을 수용하고 지원하는 것은 다른 영역이다. 독립된 기관으로 일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제한된 예산과 상황 속에서 작가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예술가의 입장에서, 그들의 작품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려는 태도에서부터 시작되며, 그렇게 할 수 있는 데서 보람을 느낀다.
Q. 비디오브라질의 다양한 활동 중에서 가장 중요한 비전을 꼽는다면 무엇인가.
A. 우리는 페스티벌이나, 전시, 혹은 이벤트를 만들기 위해 일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방위적인 동시대 예술의 플랫폼이 되고자 한다. 다른 기관들, 예술가들, 큐레이터들, 연구자들 간의 실천, 기회, 협업, 정책 등을 만들어내어 서로 더 강력한 시너지가 일어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우리 프로그램들은 예술가들에 대한 레지던시, 다큐멘터리, 출판과 소규모 전시, 다양한 컨퍼런스와 회의를 포괄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현대미술의 허브(hub)로 역할을 하려고 한다.
비디오브라질은 첫 출발부터 남반구를 범위로 하였기 때문에,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동유럽, 아시아, 중동 지역의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이 더 잘 알려지도록 지원해왔다. 남반구에서 더 많은 예술활동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과 남반구의 예술 활동이 북반구와 만나서 더 잘 알려지도록 하는 양방향으로 추진해왔다.
마지막으로, 예술작품의 역사에서 특히 미디어가 어떻게 예술 창작과 결합되는가에 대한 관심을 두고 이 분야에 역사적인 컬렉션을 구축하는 데 집중했다. VHS, 베타캠, U-Matic과 같은 이제 시장에서는 사라진 매체들을 보존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다른 한편으로, 밀레니엄 시대에 창작된 작품들은 처음부터 디지털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더 사라지기 쉽고, 복제도 쉽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자기 테이프보다 오히려 더 사라지기 쉽다. 따라서 이런 작품들에 걸맞는 보존 전략이 필요하다.
Q.비디오브라질을 설립한 당시와 2020년 지금의 상황을 비교해본다면 어떤 변화가 있다고 생각되는가?
A. 브라질과 전 세계는 지난 세기 동안 큰 변화를 겪어왔다. “디지털” 혁명은 우리가 비디오 아트를 만들고 전파시키는 전 방식을 변화시켰다. 비디오 브라질의 페스티벌은 정치적 권위주의와 검열이 이루어지던 1980년대에 시작되었다. 1980년대에 비디오가 등장하고 1980년대 초반에 지역의 예술가들이 비디오를 사용하게 되면서, 예술계는 예술적 표현을 위한 언어와 매체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동시대의 실천으로 재편되고 완전히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비디오 브라질의) 페스티벌의 구조를 새롭게 기획하고, 2011년 이후부터는 더 넓은 의미에 동시대 미술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Q. 지금까지 전시와 리서치를 위해 서울을 방문하면서 한국 예술가들과 기관과 협업해왔다. 어떤 인상을 받았는가? 특별히 관심을 둔 예술가가 있다면 누구인가?
A. 한국 미술을 처음 접촉한 것은 백남준을 통해서이다. 운이 좋게도 1996년에 나는 백남준과 함께 일할 수 있었다. 한국을 처음 방문한 것은 2016년 다카 비엔날레에서 만난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로부터 초청을 받은 2018년의 일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과의 교류로 인해, 일민미술관의 조주현 학예실장과 인류세를 주제로 한 상호교류전을 위해 협업하게 되었다. 서울 일민미술관에서 <Dear Amazon: The Anthropocene>라는 전시를 2019년 오픈했다. 서울을 다시 방문하고, 김아영, 차재민 등의 작가 스튜디오를 방문할 수 있어서 정말 기뻤다. 한국미술계는 매우 생기가 넘치며, 점점 더 국제적이 되어간다는 인상을 받았다. 조주현 학예실장과 함께, 오는 10월에 인류세 교환 전시 프로젝트의 두 번째 파트를 브라질 상파울로에서 개최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CAN과 국립현대미술관의 고양, 창동 레지던시도 방문했다. 비디오브라질은 1989년에 개최된 7번째 페스티벌 이후로 예술가 레지던시와 교환 프로그램을 지속해왔다. 국내외의 파트너 기관들과 계속해서 협력하면서, 남반구-남반구, 남반구-북반구를 연결하면서 5대륙 전체로 프로그램을 확장시키고 있다.
Q. 브라질 예술가들을 세계로 알리는 일을 지원하고 있다. 어떤 작가를 한국 큐레이터와 관객들에게 소개하고 싶은가.
A. 1960년대와 70년대, 1980년대에 활동을 시작했으면서 여진히 작품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Anna Maria Maiolino, Cildo Meireles, Ernesto Neto, Rivane Neuenschwander, Rosangela Renno , Rosana Paulino 등을 소개하고 싶다. 하지만 동시에 3-40대에 아주 정열적으로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젊은 세대 예술가인 Barbara Wagner와 Jonathas de Andrade, Jaime Lauriano, Virginia de Medeiros, Ayrson Heráclito도 소개하면 좋겠다. 이 작가들과 다른 많은 작가들에 대한 정보가 비디오브라질의 웹 플랫폼에 소개되어 있어서 그들의 창작 과정이나 활동에 대해서 알 수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글. 이수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연재글 목록 | 변화하는 사회, 확장하는 예술, 그 속의 창조자들
#1 C-lab: 문화혁신을 위한 새로운 시도, 라이샹린과 우 다쿠엔
#2 MAAP: 아시아 태평양의 관점으로 아시아의 미디어아트를 추적하는 여정, 킴 마찬
#3 비디오브라질: 비디오 예술의 관계와 영향 연구, 솔랑주 파르카스
참고자료
솔랑주 파르카스 약력 소개: http://site.videobrasil.org.br/en/quem-somos/solange-farkas
1996년 당시 비디오브라질에서의 백남준 전시 정보: http://site.videobrasil.org.br/en/festival/arquivo/festival/programa/1402169
비디오브라질 웹사이트: http://site.videobrasil.org.br/
* 본 원고는 예술경영지원센터의 2019 비평 지원을 받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