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ice] 존재의 경계에서, 디지털 생태의 조건 탐구 4. 송효근·이중민_감응하는 군락_이다다

전시 전경, 2025. © 이다다

감응하는 군락: 생명-기계 패턴의 실험, 송효근·이중민 《Heliotropic Dwelling – 향일군락》

두터운 커튼을 젖히고 전시장에 들어서면 미세하게 빛을 머금고 있는 군락의 형체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커튼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빛은 바닥과 기계 군락 위로 비스듬히 떨어지고, 관객의 몸에 반사된 빛까지 더해지면서 군락 표면을 천천히 스친다. 특정한 모듈에 빛에 닿으면 모듈은 변화를 감지하여 내부 전체가 서서히 밝아진다. 동시에 각 모듈을 이루는 두 개의 조각이 빛을 향해 몸을 세우고서 비대칭적으로 위쪽으로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모듈은 마치 흡수한 빛으로 내부가 채워지듯 밝기가 증폭된다. 그리고 빛이 사라지면 조각들은 가라앉듯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

모듈은 네 개씩 묶여 하나의 단위를 이루고, 그 단위들이 다시 한 개 또는 두 개씩 짝을 지어 넓게 펼쳐진 형태로 군락을 구성한다. 각각의 모듈은 두 개의 조각이 상승과 후퇴를 반복하는 움직임을 통해 호흡하듯 작동한다. 모듈들의 움직임은 서로 일치하지 않으며, 같은 군락 내부에서도 미묘한 시간차가 계속 발생한다. 어떤 모듈은 가까운 빛에 즉각 반응해 솟아오르고, 다른 모듈은 관객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잔광이나 그림자의 흔적에 조금 늦게 반응한다. 관객이 움직일 때마다 그 이동을 따라 빛의 여운이 옮겨 가고 군락 전체에서는 느슨한 연쇄 패턴이 흐른다. 따라서 전체가 일제히 밝아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어긋나는 감응들이 겹치며 리듬을 이룬다. 전시장 한쪽에는 따개비의 생태와 도시 군락의 새로운 건축 양식을 상상하는 아카이브가 전시되어 있으며, 성남 구도심의 형성과 군락의 세계관을 설명하는 비디오가 상영되고 있다.

설치 디테일, 2025. © 이다다

Q. 따개비를 모티프로 도시 군락을 나타내었다.
A. 따개비는 유생 단계에서는 자유롭게 헤엄치지만, 고착이 이루어지며 감각기관의 상당 부분을 잃고 이후 해수의 흐름과 방향에 맞춰 살아간다. 군락을 이루는 생태가 빛이 부족하고 지형적 경사가 심한 밀집 주거와 닮아 있다고 보았다. 도시 계획을 하자는 것이 아니며, 수요 없는 동정이나 문제 해결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다시 조명하고, 상기시키고자 했다.

Q. 미술이 사회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A. 직접적으로 말하는 화법은 선호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프로파간다가 될 수도 있고, 우리가 추구하는 미술의 방식과도 맞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메타포이며, 내용을 통해 계몽하는 장르라고 보지 않는다. 사회 문제나 인간이 처한 현실에 대해서도 장기적으로는 비관하지 않는다. 자본이나 사회 구조적 문제들도 결국에는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

Q. (송효근의) 이전 작업에는 식충식물을 증강시키는 작업들이 있었다.
A. 식충식물이 LED 촉수를 통해 벌레를 유인하는 순간, 착취의 대상이었던 식물이 기술과 결합해 능동적인 주체로 ‘증강’된 것이다. 이와 같이 기술은 인간과 비인간의 정체성을 바꾸는 요소이며, 기술 발전과 함께 이런 변화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SF에는 사이보그화 된 인간이라는 극적인 형상도 존재하지만, 사실 스마트폰이 이미 우리 몸의 일부처럼 작동하고 있다. 서로를 팔로우하고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우리의 인터뷰가 성사된 과정 또한 기술에 의해 증강된 새로운 인간관계의 한 형태이다. 이러한 ‘증강’이 인간과 비인간의 위계를 어떻게 재구성하고, 생명과 기술의 경계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탐구하는 작업에 관심이 있다.

Q. 전시에서 각자의 역할은?
A. 작품의 콘셉트와 개념은 공동으로 기획하였고, 이중민이 전시의 구성을 기획했다. 키네틱 모듈은 송효근이 주로 설계 및 제작을 했고, 이중민이 각 모듈의 아래 받침대를 설계했다. 따개비의 생태 등 리서치는 함께 진행했으며, 성남 구도심과 군락의 세계관에 대한 영상과 아카이빙은 이중민이 제작했다.

* * *

따개비는 바다를 자유롭게 떠다니는 유생으로 생애를 시작한다. 이 시기는 이동의 자유가 최대치인 단계이며, 어떤 환경에서 살아야 할지를 탐색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유생은 여러 번의 탈피를 거쳐 점차 고착 생활을 준비하는 형태로 변하고, 마지막 단계인 키프리스(cypris)에 이르면 남은 평생을 고착하게 될 장소를 탐지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아낸다. 마침내 특정한 지점을 선택하는 순간 생애의 이동은 끝나고 고착이 시작된다. 이후 몸 전체가 재편되어 머리는 접착 구조로 변형되고 표면은 조개처럼 수렴 진화된 석회질 외각을 만든다. 여전히 내부는 갑각류의 해부학을 유지하고 있지만, 단지 다리를 뻗었다가 오므리는 동작만을 반복하며 바닷물 속의 유기물을 걸러 먹는다. 개체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지만 주변 환경에 반응하면서 동일한 움직임의 집단적인 패턴을 이룬다.

하이데거는 “거주한다는 것은 곧 존재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1) 인간의 거주 양식은 존재 방식을 형성한다. 도시의 아파트나 다세대 주택 같은 밀도 높은 주거 형식은 일조권의 격차를 지적하지 않더라도 본질적으로 ‘벽’이라는 살갗을 공유하는 군락이다. 공동 주택에 입주하는 순간 빛의 방향과 층고, 층간 소음, 복도 구조의 동선, 통로에 붙어 있는 안내문과 경고문, 창문이 향한 조망 같은 요소들이 일상의 감각을 결정하기 시작한다. 따개비들이 해류, 채광, 지형과 같은 에너지 흐름에 맞추어 생존이 가능한 한정된 지점에 몰려서 군락을 이루듯이, 인간의 군락 또한 제한된 선택 지점들이 서로 포개어지며 도시의 용적률을 높인다. 이때 석회질 외각에 대응되는 도시의 벽체는 거주자들이 서로의 존재를 지속적으로 환기하는 접촉면이 된다. 이것은 혐오스럽다고만은 할 수 없는 생태적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전시장에 펼쳐진 모듈들은 복잡한 도시 구조를 재현하기보다 기계-생명 군락의 기원이 되는 최소 단위, 즉 빛이라는 자극에 반응하고 사그라지는 패턴을 추출하는 방식으로 느껴진다. 각 모듈은 미세하게 상승 및 후퇴하며 밝기의 변화를 따라 움직인다. 작업은 공동 주거의 조건, 즉 빛의 결핍이나 다닥다닥 얹힌 구조, 경사와 밀집이 만든 압박 등을 출발점으로 삼지만 현실의 밀도를 재현하지 않고 패턴만을 남긴다. 이러한 패턴을 통해 도시의 주거 조건을 감각의 은유로 번역하는 시도에는 피할 수 없는 비어 있음이 따른다. 이는 작가가 직접적인 발언을 회피해서가 아니라 “그러한 문제를 호출한 이상, 패턴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빛이 잘 들지 않는 구조를 해양 생물의 군락으로 치환할 수는 있지만, 그러한 은유는 반지하의 조건을 넘어 도시 전체의 주거 체계에 대한 확장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러한 호출과 봉합 사이의 간극이 작품을 중립적 지점에 머물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문제의 봉합으로 귀결되는 방향성을 취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더 다양한 외부 입력과 데이터를 통해 다층적인 상호작용을 구현하는 시도 역시 깊이를 보장하지 않는다. 대신 작업은 살아 있는 존재가 외부 조건에 감응하며 군락의 패턴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의 ‘추상적 형식’을 드러내는 쪽으로 이동한다. 눈에 보이는 현실에 한정된 조건과 상황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빛—태양의 에너지—라는 본질적인 기원에 반응해 상승과 후퇴를 반복하는 이세계적 존재들의 군락을 구성한 것이다. 이는 도시의 축소판이라기보다 스캐빈저스 레인(Scavengers Reign)2)에서와 같이 낯선 행성에서 마주칠 법한 기계-생명체로 된 군락에 더 가깝다.

작가는 생명과 기술의 경계, 인간과 비인간의 위계를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는가에 관심이 있다. 이전 작업에서 식충식물이 LED 촉수를 통해 ‘증강’되었다면, 이번 작업에서는 인간의 공동 주거와 갑각류 군락의 조건을 추상적 감응으로 변환하여 새로운 생명의 형태를 구성했다. 도시의 거주 역시 생태적 압력 아래 형성되는 군락이며, 우리의 생체 리듬은 우리가 구축한 석회질 외각—벽체—에 의해 조정된다. 작업은 인간과 비인간, 생명과 기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감응의 형식’이 어떤 생명-기계적 가능성을 향해 확장될 수 있을지에 대한 여지를 남긴다.

글. 이다다.


1)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짓기, 거주하기, 생각하기(Bauen, Wohnen, Denken)』, 1951년 다름슈타트 회의 강연.

2) 『스캐빈저스 레인(Scavengers Reign)』, 2023, HBO Max 방영.

행사개요
전시제목: 《Heliotropic Dwelling – 향일군락》
참여작가: 송효근, 이중민
전시장소: 성남아트센터 큐브플라자 1층 전시공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성남대로 808
전시일정: 2025.11.15 – 11.29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경기문화재단, 성남문화재단, NOL유니버스

본 연재는 2025 광주 GMAP 디지털아트컬쳐랩 리서치랩 ‘아트라이터 지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