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ice] 매체의 경계에서, 미디어아트의 작동조건 탐색 4. 아트 게임의 직접적 플레이 경험_김다하

윤제원, I barely survived today, 2021. © 윤제원

아트 게임의 직접적 플레이 경험: 행위성 과정의 미적경험으로의 전환

아트 게임은 지난 20여 년 동안 미술관, 전시기관의 수집과 전시를 통해 점차 예술적 매체로 자리 잡아 왔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게임이 어떻게 예술적 경험을 만들어내는가’라는 질문이 다시 중요해지고 있다. 작가이자 연구자 티파니 홈즈 Tiffany Holmes(2003)를 비롯해 Rebecca Canon, Ian Bogost 등은 아트 게임을 상호작용성, 규칙 기반 구조, 사회적, 문화적 의미 생산 등 서로 다른 측면에서 정의해 왔다. 이처럼 개념의 범위가 넓어지는 가운데, 나는 아트 게임의 예술성을 단순히 게임, 예술의 결합이 아니라, 직접 플레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행위성과 미적경험에 주목하는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아트 게임이 예술적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직접적 분투형 플레이를 통해서이다. 직접적 분투형 플레이를 통한 행위성이 미적 경험으로 전환되어 예술이 된다. 단, 모든 분투형 플레이가 예술적 경험은 아니며, 1) 규칙-메시지 통합성 2) 성찰적 거리 3) 경험적 변형의 조건 설계가 필요하다.

직접적 플레이 경험에 대한 철학자 C. 티 응우옌 C. Thi Nguyen 의 주장은 ‘제한된 조건 안에서 판단에 의해 행위를 선택, 분투하는 과정이 예술적 경험’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을 선택한 이유는 게임이 단지 보는 대상이 아니라는 매체 특수성을 정면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응우옌에 따르면 규칙은 플레이 활동을 특정한 방식으로 조형하는 장치이다. 그에 따르면 미적경험의 목적을 위해 승리라는 최종 목표를 받아들이도록 결정해 애쓰는 것이 분투인데 이 태도야말로 예술이 되는 원동력이다. 분투형 플레이란 플레이어가 게임 규칙이 제시하는 명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제한된 수단과 조건 안에서 지속적으로 판단하고 선택하며 노력하는 플레이 방식을 의미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그 목표를 향해 애쓰는 ‘과정’ 자체이다. 일상에서는 결과만 중요한 경우가 많지만, 게임에서는 플레이어가 ‘자발적으로 제약을 수용’하고 과정에 몰입하기 때문에 경험의 성격이 달라진다. 행위성이 작동하는 과정 전체가 미적경험으로 전환될 수 있을 때 플레이는 예술이 된다. 미적경험이란 철학자 존 듀이 John Dewey 에 따르면 일상 속에 시작과 끝이 있고 과정이 연결된 완결성을 가지는 하나의 경험이다. 듀이의 완결된 경험은 질적 통일성, 역동적 조직화, 완성이 합쳐져야 한다. 듀이는 의미가 추상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체화된다고 보았다. 분투형 플레이에서 규칙을 따라 행동하면서 메시지를 이해하는 과정이 직접적 플레이 경험의 핵심이다. 플레이어가 게임 세계 안에서 새로운 행위 주체로서 판단하고 선택하게 만들며, 이 과정에서 완결된 경험 구조가 형성된다.

분투형 플레이가 미적경험이 되려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 조건들은 응우옌의 행위성 개념과 듀이의 미적경험에서 도출되었다. 첫째, 게임 규칙이 예술적 메시지와 구조적으로 통합되어야 한다. 단순히 규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규칙이 메시지 의미와 긴밀히 연결되어야 한다. 둘째, 플레이어가 자신의 행위를 성찰할 수 있는 거리가 확보되어야 한다. 단순히 결과 승패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지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플레이 경험이 플레이어의 인식에 질적 변화를 가져오도록 게임 조건을 설계해야 한다. 플레이어의 인식, 감정, 혹은 세계관에 경험적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아트 게임의 맥락에서 분투형 플레이가 특별히 중요한 이유는, 이 유형의 플레이가 재미(게임적 즐거움)와 의미(예술적 메시지)를 동시에 작동시키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재미에서 의미로의 전환은 몰입 유도, 체화된 이해, 인지적 전환과정을 거친다. 재미를 동기로 컨트롤러를 조작하는 과정에서 메시지 의미의 강화, 고유한 가치 판단에 도움이 된다.

윤제원의 <I barely survived today> (2021)는 디펜스 게임 형식을 취하면서도 플레이어에게 악역인 던전 측 역할을 부여하는 구조적 반전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플레이어는 던전 측이 되어 인간 영웅들의 공격을 막아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역할 반전이 아니라, 디펜스 게임의 규칙 구조 자체가 “방어받을 권리”라는 메시지를 체화시킨다는 점이다. 성찰적 거리는 플레이어가 자신의 행위를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볼 수 있을 때 확보된다. 이 작품에서 그 순간은 인간 영웅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온다. 플레이어에게 자기 행위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이 작품은 플레이어가 악역인 던전 수호자로서 판단하고 선택하게 만들며, 이 과정에서 시작과 끝이 있고 과정이 연결된 ‘완결된 경험 구조’를 형성한다. 플레이어가 직접 악역인 던전이 되어 필사적으로 방어하는 경험은 오직 게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분투형 플레이를 통해 플레이어들의 인식에 질적 변화를 가져왔는지 관람객 플레이어들을 대상으로 인터뷰 설문조사가 필요하다.

임용현, 아나스타시스 생존기, 2025. © 임용현

임용현의 <아나스타시스 생존기>(2025)는 생존 게임의 분투형 플레이 규칙이 작가의 철학적 메시지와 결합되어 있다. 관람객은 재난 상황에서의 생존이라는 규칙을 따라 탐험하고 아이템을 수집하며 새로운 공간으로 나아가는데, 이러한 분투 과정 자체가 ‘기술 문명으로 폐허가 된 지구에서의 부활(아나스타시스)’이라는 서사적 메시지를 체화하게 만든다. 이 작품에서 플레이어가 경험하는 생존을 위한 판단과 선택의 과정은 단순한 게임적 재미를 넘어선다. 황폐한 세계를 직접 탐험하고 자원을 모으며 생존하려는 분투 행위 그 자체가 부활의 의미를 만들어낸다. 플레이어는 규칙에 따라 행동하면서도, 그 행위를 통해 폐허에서 다시 일어서는 존재로서의 경험을 완결된 구조 안에서 체득하게 된다. 플레이어는 폐허를 탐험하며 생존하고, 그 과정이 부활의 의미를 만들어내며, 문명의 결과를 마주하며 성찰하고, 기술과 생존에 대한 이해를 체화하게 된다.

그러나 이머시브 공간의 특성상 한 명만 컨트롤러를 잡고 직접 플레이할 수 있어 아쉽다. 나머지 관람객들은 프로젝션 영상을 관조하는 방식으로 경험하게 되는데, 이는 직접적 행위성을 중심으로 관점에서 볼 때 제한적인 측면이 있다. 아트 게임에서 한 명만 플레이어 역할을 차지하게 되는 것은, 보여주는 영역이 이머시브 공간으로 넓고 컨트롤하는 영역은 그 안에 작게 들어가 있는 <아나스타시스 생존기>(2025)에서만의 특수한 문제이다. 이와 비교해 영상 재생 및 SNS와 연동하는 방식은 비디오 게임 등을 자주 전시하는 그룹 룹앤테일(김영주, 조호연)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룹앤테일 홈페이지 자료에 따르면, ‘전시장에서 플레이하지 않는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도 플레이’라고 정의를 내린다. 룹앤테일이 ‘커뮤니티 형성도 플레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응우옌의 행위성 개념과는 다른 접근이다. 그러나 이들의 방식은 전시 공간이라는 특수한 맥락에서 발생하는 집단적 관람 경험을 포착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어느 정의가 옳은가가 아니라, 각각의 접근이 어떤 경험을 가능하게 하고 어떤 것을 놓치는가일 것이다. 아트 게임의 매체 특수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직접적 행위성을 확보하는 설계가 중요하다. 그러나 전시라는 공적 공간의 특성상, 모든 관람객에게 동등한 플레이 기회를 제공하는 것과 작품의 완결성을 유지하는 것 사이의 긴장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여전히 열린 문제다.

이 글에서 아트 게임의 예술성이 직접적 분투형 플레이를 통한 행위성의 과정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밝혔다. 기존 논의가 의미 생산의 ‘결과’에 주목했다면, 이 글은 재미를 동기로 시작된 플레이가 규칙-메시지 통합성, 성찰적 거리, 경험적 변형의 조건 설계 층위 속에서 미적 경험으로 전환되는 ‘과정’ 자체에 주목했다. 모든 분투형 플레이가 예술적 경험은 아니며, 세 층위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작품에 따라 어떤 층위가 더 중심적인지는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아트 게임 전시와 창작에 실천적 시사점을 제공한다. 전시 공간에서 관람객이 직접 컨트롤러를 잡고 분투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는 것, 그리고 게임의 규칙 시스템이 작가의 메시지 의미와 유기적으로 통합되도록 설계하는 것이 예술적 경험의 핵심이 된다. 다만 이 글은 두 작품 분석에 한정되어 있으며, 실제 관람객 플레이어들의 경험에 대한 실증적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한계가 있다. 특히 관람객들은 여러 명인데 컨트롤러는 하나인 다중 참여자 환경에서의 행위성 분배, 간접 체험자의 경험 성격에 대해서는 추후 연구가 필요하다.

글. 김다하.

Reference
이혜영. (2018). 뉴미디어 아트의 표현 방법으로서의 아트 게임에 관한 연구 (Dissertation,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장재녕, & 이상용. (2021). 존 듀이 (John Dewey) 의 ‘경험으로서의 예술’에서 ‘경험’에 대한 의미 고찰. 한국도자학연구, 18(1), 85-99.
Nguyen, C. T. (2019). Games and the art of agency. Philosophical Review128(4), 423-462.

본 연재는 2025 광주 GMAP 디지털아트컬쳐랩 리서치랩 ‘아트라이터 지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