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크릴 플레이트, 네온 사인
120 x 120 x 20 cm
in collaboration with DALL·E 2
2024 Commissioned by MMCA
디지털생명예술의 생명 정의 확장: 관계 맺는 예측 불가능한 과정을 중심으로
디지털 생명예술은 알고리즘, 시뮬레이션, 인공생명 시스템을 기반으로 ‘생명’의 경계를 다시 묻는 예술적 실천이다. 초기 바이오아트가 생물학적 물질을 직접 다루며 생명의 조작과 생성 윤리를 중심축으로 삼았다면, 디지털생명예술은 물질적 실체 없이도 생명성을 구성하는 과정적, 관계적 조건에 주목한다. 특히 예측불가능하게 생성되는 알고리즘적 변화와 인간, 기계,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은 새로운 형태의 ‘비인간적 에이전시’를 드러내며 기존 생명 개념의 한계를 자극한다. 생명 정의에 대한 기존 논의는 주로 물질적 기반(organic matter) 혹은 정보적 처리(informational process)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오늘날 알고리즘적 존재, 가상 캐릭터, 플랫폼 기반 인공 주체 등 생물학적 범주로 포착되지 못하는 존재들이 등장하면서, 생명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해졌다.
본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철학자 로지 브라이도티(Rosi Braidotti)의 ‘관계적 존재론’을 디지털생명예술의 생명성 논의에 적용하고자 한다. 브라이도티는 생명을 개별적 실체가 아닌 관계적 과정으로 파악하며, 인간/비인간의 경계가 흐려지는 포스트휴먼 조건에서 새로운 생명 개념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이 글은 관계성과 예측불가능한 생성 과정이라는 두 가지 기준을 중심으로 디지털생명예술의 생명성 구성 방식을 분석할 것이다.
다시 떠오른 생명 정의 확장 주장이 오늘날 유효한 까닭은 생명을 배타적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제한된 생명 개념의 ‘배제’와 ‘차별’은 문제이다. 생명을 물질적 실체 중심으로 규정하는 것은 변화무쌍한 과정을 간과하는 문제가 있다. 로지 브라이도티의 관계성 개념은 이에 적합한 프레임을 제공한다. 그녀는 기존 인간 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생명을 ‘모든 존재 간의 근본적인 연결망, 즉 관계적 생명’으로 재정의한다. 기술적 매개가 “윤리적 주장의 토대를 마련한다”(이, 2019, p.52)는 그녀의 주장의 의미는 이분법을 바꾸고 열린 관계를 구성하는 실험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계를 중심으로 생명이 형성되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비인간적 존재를 단지 명령 내릴 도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주고받는 ‘과정’을 인식하는 것이다.
즉 관계를 맺는 과정 자체와 예측불가능하게 생성되는 과정 모두 생명이다. 관계성은 예측 불가능성의 원천이다. 관계적 생명으로의 확장 재정의가 지금 중요한 이유는 비인간적 존재와 협업을 할 일이 더 많아졌고 파생된 가치관 문제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현재 관계를 맺는 예측불가능한 과정, 생성하는 흐름을 생명으로 보게 되면 ‘공존’과 ‘책임’을 탐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생명 정의는 비인간과 관계 맺는 예측불가능한 과정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디지털생명예술은 이 과정을 드러냄으로써 가시화 하는 실천으로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지지한다. 이는 과거 인간 중심적 미학으로부터 인간 비인간 기계 생태계가 얽힌 관계망에서 새로운 의미를 읽어내는 전환을 의미한다. 디지털생명은 결국 ‘알고리즘과 인공생명 시스템이 인간 및 환경과 맺는 관계 속에서 예측 불가능하게 변화하고 진화하는 과정 그 자체’이다.
이 글에서는 다음 두 가지 (1) 인간-비인간 간 관계성, (2)예측 불가능한 과정 을 기준으로 삼는다. 예를 들면, 추수는 가상 인플루언서 에이미를 직접 만들었다. <달리의 에이미>(2022~)는 인공지능과 협업한 에이미의 모습들이다. 관계성을 에이미에 적용하자면 추수와 인공지능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창작을 위한 관계적 과정을 형성하는 것 자체가 생명이다. 결과물인 여러 버전의 에이미는 생명적 과정의 산출물이다. 결과 외관보다 인공지능이 작동해 생성하는 순간, 인간과 기계가 협업하는 과정이 생명적이다. 생명의 특성들 중 기술적인 부분을 통해서 재현해낸 생성 과정의 불예측성은, 입력된 키워드들의 합이 아닌 의도되지 않은 에이미가 예상치 못하게 나타나는 순간을 통해 드러난다. 이중생활을 하는 가상 인플루언서라는 정체성 설정을 통해 다루는 에이미라는 생명의 특성은 하나하나의 결과물 모습보다는, 예상치 못한 생성과 변이, 작가-인공지능 알고리즘-관객의 해석이라는 관계망 속에서 드러나는 존재라는 것이다. 작가는 이중 정체성 관계 실험의 관점에서 생명성을 부여했다.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CLOVA 음성더빙
4분 30초
이은솔은 머리만 있는 킴벌리 리가 기술 환경 속에서 생존하도록 한다. 영상 〈I want to be a cephalopod〉(2021)에서는 생명 개념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다. Cephalopod은 두족류로 문어처럼 머리에 여러 다리가 달렸다. 정신 혹은 영혼이 신체 전체와 연결되는가 또는 뇌(머리)에서 비롯되는가를 묻는다. 여러 머리 도상의 킴벌리 모습 자체보다 킴벌리가 여러 작품들에서 예측 불가능하게 생존하는 과정이 생명적이다. 관계성 개념을 적용하자면 작가의 계정 해킹 경험과 디지털 플랫폼이 교차하며 탄생했고 플랫폼, 기업 활동과 네트워크 환경이 섞인 관계망 속에서 변화하는 생명성을 획득한다. 작가는 인간 가상 정체성과 기술적 네트워크가 얽힌 구조적 관점에서 생명성을 부여했다.

Live animation, color, sound
48minutes
이안 쳉 Ian Cheng의 <BOB 이후의 삶:찰리스 연구(Life After BOB:The Chalice Study)>(2021-)는 라이브 시뮬레이션으로 생성된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뇌에 인공지능 BOB이 이식된 주인공 찰리스를 통해 인간 의식을 탐구한다. 작가는 인간 뇌 신경계와 인공지능의 공존, 융합의 과정을 통해 생명성을 부여했고 인간 찰리스와 인공지능 BOB의 심리적 갈등의 관계가 생명성을 드러낸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경계가 붕괴하는 특징을 갖는다. 자아의 경계를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생명성을 드러낸다. 인간과 비인간이 결합된 새로운 생명 형태가 나타나는 융합적 과정이 생명적이다. 인공지능 BOB의 작동은 신체 물질적 기반을 가진 인간 찰리스의 뇌 신경계와 결합해 경계를 붕괴시키는 정보적 과정에서 생명성을 획득한다.
결론적으로 디지털생명예술은 생명 정의 확장 주장을 통해, 과거 인간 중심적 재현으로부터 예측 불가능한 구조를 끌어내는 관계적 과정의 미학으로의 변화를 가져왔다. 이 변화로 인해 디지털생명예술은 인간 존재와 세계에 대한 탐구를 하게 하므로 유효하다. 하이브리드적 관점에 기반해 디지털 생명으로서 에이미, 킴벌리, BOB, 찰리스의 사례를 알아보았다. 이 작품들을 통해 생명 정의를 생물학적 유기체를 넘어 비인간과의 관계 맺는 과정에 대한 것으로 확장해야 하고 예술은 그 과정을 드러내는 장치일 필요성을 알아볼 수 있었다. 에이미는 이중적 정체성의 예상치 못한 생성과 변이를 드러낸다. 킴벌리는 여러 머리 모델로서 구조 속 생존의 과정을 통해 생명성을 드러낸다. 찰리스와 BOB의 결합은 수용자의 입력에 따라 예측불가능하게 변화하며 융합적 생명으로 생명성을 주체성의 정보적 과정으로 확장한다. 관계성이 생명 정의 확장에 대해서 갖는 한계는 윤리적 딜레마이다. 이는 책임 소재와 파일 삭제에 대한 것이다. 생명을 종료할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 관계망 속 어떤 주체가 책임을 지는지가 불분명해진다. 이에 대한 추후 연구가 필요하다.
글. 김다하.
Reference
유원준. (2025). 비인간 객체로서의 인공지능, 예술 주체로서의 성립 가능성 1. 예비적 접근: 사변적 실재- 객체들의 세계. 월간미술.
이경란. (2019). 로지 브라이도티의 포스트휴먼: 포스트휴먼 주체와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을 향하여. 탈경계인문학 Trans-Humanities, 33-58.
정은지. (2025). 디지털 생태계에 나타난 ‘진화생성예술’의 확장성 연구. 국내박사학위논문 세종대학교 대학원.
본 연재는 2025 광주 GMAP 디지털아트컬쳐랩 리서치랩 ‘아트라이터 지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