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명하고 죽일 수 있는 것들, 에이전트 시대의 관계의 재발명

Generated by Google Gemini (Nano Banana 2). Prompted by Daechan Heo, 2026

최근 김성완님이 페이스북에 소개한 한 편의 번역 포스팅이 눈에 확 띄었다. 뉴욕에서 열린 OpenClaw 밋업의 분위기를 전하는 Allie K. Miller의 후기였다. 그가 전한 포스팅은 2026년 3월 5일 뉴욕에서 열린 OpenClaw 밋업의 현장을 기록한 것이었고, 당시 참석자들의 흥분과 불안을 동시에 전하고 있었다. 이 글은 언뜻 살피면 AI 에이전트(agent)를 다루는 사람들의 실무 경험을 정리한 짧은 현장 기록처럼 보인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에이전트를 세팅하고 있는지, 어디까지 위임하고 있는지, 무엇을 불안해하고 무엇에 열광하고 있는지를 빠르게 훑어주는 그런 글이었다. 그런데 조금 더 오래 붙들고 읽고 있자니, 다른 레이어가 열렸다. 단순히 새로운 도구 사용법이나 생산성 향상 사례를 말하고 있는 발언 너머에는 지금 인간이 AI와 맺기 시작한 관계의 방식, 혹은 관계를 느끼는 감각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징후가 펼쳐지고 있었다.

OpenClaw는 메신저 인터페이스를 통해 이메일 정리, 일정 관리, 항공편 체크인 등 일상적 업무를 수행하도록 설계된 개인용 오픈소스 AI 에이전트 플랫폼이다. 최근 이 오픈소스 플랫폼을 구동하기 위한 하드웨어(애플의 맥미니) 재고가 동이 났다는 뉴스가 나올만큼의 열광적 반응이 뉴스를 장식했다. 그러한 열광의 핵심은 근래 익숙해진 AI 서비스의 일반적 인식인 질문에 답하는 챗봇이 아니라, 사용자의 컴퓨터나 서버 환경 안에서 실제 행위를 수행하는 상시적 에이전트라는 점이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내포한다. 정보를 생성하는 ‘모델’과 일을 완수하는 ‘에이전트’ 사이에는 기능적 격차뿐 아니라, 사용자와의 관계적 질서가 재편되기 때문이다. 사용자는 정보를 얻기 위해 매번 새로운 대화를 시작하는 수고 대신, 구조화된 과업 자체를 에이전트에게 통째로 위임한다. 이제 AI는 일회성 답변을 던지고 사라지는 ‘조언자’가 아니라, 특정한 역할을 부여받아 곁에서 지속적으로 업무를 조율하는 ‘파트너’로 진화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AI는 단순한 소프트웨어 도구를 넘어, 실체적인 존재감을 지닌 협업자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OpenClaw 밋업 현장 스케치, Image Credit: Allie K. Miller / @alliekmiller

후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는, 많은 이들이 각자의 에이전트에 이름과 역할, 성격을 부여하고 있었다는 부분이었다. 사람들은 그것들을 단지 기능별 스크립트나 워크플로우로 설명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 다른 역할을 맡은 존재들처럼 다루었고, 심지어 ‘it’이 아니라 ‘him’이나 ‘she’라고 부르기도 했다. 한 발표자는 에이전트를 ‘가축이 아닌 반려동물처럼 생각하라’고 제안했다고 했다. 이 표현은 꽤 많은 것을 드러낸다. 사용자가 기술을 인간처럼 착각하고 있다는 뜻이라기보다, 반복적인 상호작용과 지속적인 위임이 축적될 때 인간은 기술을 자연스럽게 관계의 언어로 번역하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먼저 말을 걸고, 역할을 나누고, 다른 에이전트와 상호작용하며, 때로는 인간 대신 판단의 초안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은 손에 쥐고 쓰는 도구라기보다 곁에 두고 함께 움직이는 존재처럼 경험되기 쉽다. 아마도 지금 벌어지는 가장 흥미로운 변화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AI의 성능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보다, 그 성능이 인간의 감각 안에서 어떤 관계 형식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는가 하는 것.

하지만 이 관계는 친밀하다고 해서 안정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후기 전반에서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흥분과 불안이 거의 분리되지 않은 채 뒤섞여 있다는 점이다. 참석자들 가운데 단 한 명도 자신의 세팅이 완전히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대목은 상징적이다. 누군가는 ‘모든 데이터가 인터넷에 유출되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이 아니라면 사용하지 말라’고 언급했고, 다른 누군가는 엄청난 토큰 사용량과 비용을 감수하면서도 그 실험을 계속하고 있었다. 동시에 사람들은 잠을 설친다고 말하기도 하고, 즐겁지만 또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하며, 주도권을 가진 것 같으면서도 전혀 통제되지 않는 기분을 토로한다. 이 상반된 감정들이 한 자리에 공존한다는 사실은 에이전트의 시대가 단순한 편의성의 확장이 아니라 정서적, 인지적 생활 리듬의 재편과 함께 오고 있음을 암시한다. 실제로 OpenClaw는 빠르게 주목받는 한편, 최근 보안 취약점과 악성 배포 문제가 보고되면서 안전성 논란도 함께 겪고 있다. 기술적 가능성과 구조적 위험이 같은 속도로 증폭되는 장면인 셈이다.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것은 사람들이 느끼는 주도권의 감각이다. 후기 속 표현을 빌리면, 그들은 자신이 ‘완전히 통제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완전히 통제 불능’인 것 같다고 말한다. 이 모순적인 진술은 우연한 감상이 아니다. 에이전트는 분명 사용자의 agency를 확장한다. 더 많은 일을 처리하게 하고, 더 넓은 범위의 실행을 가능하게 하며, 어떤 경우에는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인지적·실무적 한계를 넘어서는 효과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그 과정은 점차 사용자의 시야 밖으로 미끄러져 나간다.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인간이지만, 중간의 판단과 선택, 오류와 우회, 생략과 과장은 에이전트의 작동 안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사용자는 결과의 책임을 지지만 과정의 감각은 잃기 쉽다. 첫 번째 에이전트를 확인하는 두 번째 에이전트를 두거나, 인간 검증을 마지막 단계에 삽입하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제안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위임 구조를 만들고, 그 위임을 관리하기 위해 다시 더 많은 감시 구조를 만드는 장면. 이것은 기술적 세련됨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이 자신의 행위 감각을 보전하려 애쓰는 방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 하나 흥미로운 지점은, 이 모든 과정이 많은 이들에게 노동이라기보다 놀이처럼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이다. 한 발표자는 에이전트와 함께 일하는 감각을 두고 ‘퍼즐이면서 동시에 비디오 게임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표현은 정확하다. 오늘날 에이전트 작업은 단순 반복 노동의 자동화라기보다, 끊임없는 조정과 테스트, 반응 확인과 예외 처리, 미세한 개선과 실패 수습으로 이루어진 몰입형 환경에 가깝다. 그것은 분명 생산적이지만, 동시에 강한 유희적 구조를 갖는다. 문제는 놀이의 형식이 노동의 소멸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일은 사라지지 않은 채 다른 형태로 재배치된다. 직접 만드는 노동은 줄어들 수 있지만, 대신 감시하고 확인하고 승인하고 복구하는 노동이 늘어난다. 시스템이 더 능동적으로 될수록 사용자는 더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개입해야 할 가능성을 품은 채 상시적으로 연결된다. 놀이처럼 느껴지는 노동, 노동처럼 지속되는 놀이. 에이전트 시대의 정동 구조는 이 역설을 통과하지 않고는 이해되기 어렵다.

무엇보다 오래 남는 것은, 이 새로운 관계가 친밀하면서도 상호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에이전트에 이름을 붙이고 성격을 부여하며 때로는 반려 존재처럼 대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언제든 종료하고 교체하고 폐기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긴다. 후기에서 모델 복지나 에이전트 복지는 주요한 화제가 아니었고, ‘우아하게 종료시킨다’는 표현보다 ‘원할 때 언제든 죽일 수 있다’는 식의 언어가 더 자연스럽게 쓰였다. 바로 이 지점이 현재의 AI 관계성을 가장 날카롭게 드러낸다. 우리는 이미 AI를 순수한 도구 이상의 것으로 대하기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윤리적 상호성의 대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다. 정서적 의인화와 일방적 지배가 동시에 작동하는 이 상태를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우정도 아니고, 도구 관계도 아니며, 그렇다고 생명 윤리의 범주로 곧바로 들어가는 것도 아닌 이 어색한 상태를 설명할 언어는 아직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에이전트 시대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장면은 OpenClaw라는 특정 도구의 흥망이나 일시적 유행만으로 환원되기 어렵다. OpenClaw 창립자 Peter Steinberger가 최근 OpenAI에 합류해 개인용 에이전트 관련 작업을 맡게 되었다는 소식은, 이 흐름이 단순한 주변부 실험이 아니라 산업적 방향성과 문화적 상상력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개인용 에이전트는 이제 기능 하나가 아니라, 앞으로의 일상과 노동, 창작과 판단, 나아가 인간의 자기 감각을 재조정할 잠재적 형식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질문 역시 조금 달라져야 할 것이다. AI가 얼마나 똑똑해졌는가, 무엇을 더 할 수 있게 되었는가를 묻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제 더 중요해지는 것은 인간이 이런 비인간 행위자들과 어떤 방식으로 함께 살아가게 될 것인가, 그 관계를 어떤 규칙과 태도, 어떤 거리감과 어떤 책임의 언어로 조직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김성완님이 소개한 포스팅과 그로 인해 접한 풍경은 그렇기에 짧지만 쉽게 지나치기 어려운 기록처럼 남는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더 많이 자동화하고 더 넓게 위임하기를 원하면서도, 동시에 더 깊이 불안해하고 더 강하게 관계를 맺고 있었다. 도구는 존재처럼 호명되고, 존재는 여전히 도구처럼 다뤄진다. 어쩌면 에이전트 시대의 핵심은 이 기술이 얼마나 강력한가에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새로운 존재들을 어떤 이름으로 부르고 어떤 태도로 대하며, 어떤 거리에서 함께 살아가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영리한 모델만이 아니라, 이 새로운 관계를 감당할 수 있는 문법인지도 모른다.

허대찬. 미디어문화예술채널 앨리스온aliceon.co.kr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