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은 언제나 달콤하다 : 팀 보이드 (Team VOID)
우리의 현실은 그리 달콤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녹녹치 않은 그 무게 탓에 살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술-미디어가 우리의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독일의 미디어철학자 키틀러(Friedrich Kittler)는 이러한 측면에서 ‘미디어가 우리의 상황을 결정한다’라고 주장한다. 기술-미디어가 단순히 도구적인 차원에서 우리의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의 진화에 의해 우리 삶의 면면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SINAR (眼光) (2015)
팀 보이드는 적극적으로 기술-미디어를 활용하는 아티스트 그룹이다. 그들은 초기작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기술과 예술을 결합해왔다. 처음 관심을 가진 요소는 미디어가 제공하는 가상적 이미지였는데 현실 공간에 가상 이미지를 투사하여 관람객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인터렉티브 미디어아트였다. (<April Breeze, 2011>) 그러나 그들의 관심은 곧 좀 더 긴밀한 인터렉티브한 요소로 이동했다. 2014년작 <Hammering>은 물리적 기계장치와 가상적 이미지의 연동 관계를 매우 밀접하게 보여준다. 관람객은 손잡이를 돌려 현실적으로 설치되어 있는 톱니바퀴를 회전시키고 이러한 실제 톱니바퀴에 조응하여 가상의 톱니바퀴도 함께 연동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에서 가상과 현실이 연결되는 순간, 가상과 실제 톱니의 맞물림이 매우 정교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마치 이제는 거부할 수 없는 가상적 요소들의 침투가 매우 정교하게 현실의 이미지 속으로 투영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측면은 그들이 더 이상 가상적 이미지 속에서만 현실과의 대응 관계를 설정하지 않고 있음을 나타낸다. 같은 해 발표된 <Light Wave>의 경우, 회전하는 물리적 기계장치와 LED를 결합시켜 새로운 디스플레이의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다. 이 작품은 매우 현실적이고 실제적으로 보이지만, 조명이 꺼지는 순간 그렇게도 현실적으로 보이던 기계 장치는 가상의 빛 그림을 공간 속에 그려넣는다.
Robot in the mirror, Robot Performance, O-Creative, Korea, 2015
출처: http://joony-aliceon.tistory.com/205 [유원준의 문화/예술 비평]
P-LUNA, media installation, teamVOID, 2015
만약, 앞서의 작품들이 가상과 현실의 이분법적 구도를 전제하고 있다면, 2015년작 <The Malfunction>, <Robot in the Mirror>의 경우, 최근 지대한 관심을 받고 있는 로봇을 전면적으로 등장시켜 현실적인 기술-미디어 간의 다소 복잡한 상호작용을 드러낸다. 이 작품에서 작가가 주요하게 제시하는 메시지는 현실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물리적 세계 속에서의 가상적 특성이다. 로봇은 일차적으로 좀 더 복잡한 기계 장치로 인식될 수 있지만, 그것이 상징적으로 지시하는 바는 인간의 가상체(AI)로서의 역할이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우리가 눈여겨 봐야할 부분은 정밀하게 작동하는 로봇 팔의 움직임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정교함에 숨겨져 있는 가상적 오류의 가능성이다. 팀 보이드는 이러한 작품들로부터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가상적 현실 혹은 현실적 가상이라는 이중성을 드러낸다. 그것도 아주 달콤한 방식으로.
글. 유원준 | 앨리스온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