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지탱하는 두가지: 베를린 독일기술박물관 Deutsches Technikmuseum

베를린 독일 기술 박물관(Deutsches Technikmuseum)은 베를린의 남쪽 지역인 크로이츠베르그(Kreuzberg)에 위치해있다. 1982년 교통 기술 박물관(Museum für Verkehr und Technik)으로 처음 문을 열었고, 2002년 세계 최초의 컴퓨터 발명가로 알려진 콘라드 추제(Konrad Zuse) 아카이브를 시작으로 2003년에는 선박, 항해 기술, 2005년 항공과 우주에 관한 전시 공간을 추가했다. 2015년 <Sugars and Beyond! Food – Matter – Energy>와 <The Network-People, Cables, Data Streams>라는 전시를 개최하면서 음식과 네트워크와 같은 기술까지 포함하며 범위를 확장했다.

처음 독일기술박물관에 도착한 방문객이 마주하는 것은 건물 위에 올려진 엄청난 크기의 비행기이다. 이 비행기는 세계 2차 대전 당시 실제 사용되었던 C-47이라는 군용기이다 (광복 72주년을 맞아 여의도 공원에 같은 모델의 비행기가 전시중이다). 이 비행기는 사탕 폭격기(Raisin Bomber)라는 별명이 있는데 1948년~1949년 베를린 봉쇄 당시 소련이 베를린으로 향하는 모든 육상 운송로를 차단하자 연합군은 베를린에 물자를 공급하고자 작은 낙하산 모형에 사탕과 초콜릿, 껌 등을 실어 투하한 것이다. 군것질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1949년 1월까지 약 25만 개의 군것질이 떨어졌다고 하니 결코 적은 규모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베를린 시민들은 이 작전을 기념하고감사를 표하고자 박물관 건물 위에 이 비행기를 전시하고 있다. 전쟁과 삶, 기술이 책임지는 서로 다른 양면을 드러내는 독특한 상징물이자 독일기술박물관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기술박물관 지도

두번째로 방문객이 놀라게 되는 것은 엄청난 규모이다. 독일기술박물관은 총 8개의 구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참고로 필자는 모든 전시 공간을 ‘훑는데’ 5시간이 걸렸다). 5층으로 된 약 6000평 규모의 신관(New Building)에는 배와 비행기에 관련된 기술이 전시되어 있다. 1층부터 2층까지는 선박에 관한 역사부터 어떻게 배가 움직이고 이동하는지 이론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공간과 실제 배들의 모형, 전세계 다양한 배를 만날 수 있다 (한국의 거북선도 전시되어 있다). 3층부터 5층까지는 항공에 관련된 전시 공간인데 실제 비행기 수십대를 천정과 실제 공간에서 만날 수 있다. 이 공간에는 세계 2차 대전에 참여했다 폭격을 맞아 부서진 나치의 군용기도 있다. 

구관(Old Building)에는 인쇄술, 제지술, 직조, 원격 통신술, 방송, 컴퓨터 등과 관련된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신관이 항해와 비행 두 가지에 집중하면서 엄청난 규모로 압도하는 공간이었다면, 구관은 꼼꼼하게 정리된 자료들의 공간이다. 구관에는 조금 더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종이, 컴퓨터, 방송을 뒷받침하는 기술을 보여준다.  

신관과 구관 옆에는 신, 구관의 약 2배 규모쯤 되는 박물관 공원(Museum Park)이 있다. 공원 안에는 풍차, 물레방아, 전통 방식으로 맥주를 만드는 양조장이 자리 잡고 있다. 공원 가운데에는 기관 차고(Engine Sheds)라고 불리는 공간이 있는데 실제로 운행했던 기차와 철로가 연도별로 정리되어 있다. 실제로 기차 안을 볼 수 있거나 엔진을 직접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기관 차고 중앙에는 각종 실생활 기술을 만나는 생활관(Beamtenhaus)이 있다. 이 곳에는 각 층마다 장신구, 가방, 의약, 사진술, 영화술에 관한 정보를 만날 수 있다.

박물관 공원까지 다 보았다면 그 건너편에 있는 스펙트럼 과학관(Science center spectrum)과 교통수단(Ladestrasse) 공간을 살펴볼 차례이다. 스펙트럼 과학관은 어린이들에게 매우 인기있는 체험 공간이다. 요약하자면 구관과 신관, 기관 차고나 생활관이 과학 기술의 산물이라면 스펙트럼 과학관은 그 기술의 기초가 되는 다소 어려울 수 있는 과학을 체험하고 놀이하면서 배우는 공간이다. 이 곳은 7개의 테마, 전기와 자력(Electricity and magnetism), 열과 온도(Heat and temperature), 빛과 시각(Light and vision), 기계와 움직임(Mechanics and motion), 소우주와 생태계(Microcosmos – macrocosmos), 음악과 소리(Music and sound), 보는 것과 지각(Seeing and perception)로 이루어져있다.

마지막으로 교통수단 공간은 가장 최근 개관한 곳으로 마차와 같은 오래된 교통수단에서 자전거, 자동차 등 인간의 교통수단의 변천사와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와 물리적인 교통수단은 아니지만 그 무엇보다 오늘날 중요한 이동 수단인 네트워크에 관한 전시가 진행 중이다. 이 공간의 끝에는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어린이 캠퍼스 공간이 위치하고 있다.

 
 모든 전시 공간을 훑듯이 살펴보고 나오면서 드는 생각은 ‘실로 독일다운’ 곳이라는 것이었다. 꼼꼼히 살펴보려면 1주일은 족히 걸릴 그 모든 자료들은 아주 치밀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보통의 기술박물관은 자국의 기술력을 뽐내는 공간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독일기술박물관은 덤덤하게 그들의 기술이 삶과 전쟁이라는 두 가지를 지탱하고 있(었)음을 말한다. 전쟁에 참여해 수십 수천명을 살해했을 군용기, 선전에 이용되던 라디오와 방송. 그들은 그것을 숨기거나 포장하는 대신 그 이면에 있었던 기술을 드러내버린다. 사실 우리의 삶은 기술이 지탱하고, 모든 기술은 육중한 물질에 기대어 있음을. 그리고 이제 그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우리에게 달려 있음을 역설한다. 
 
글. 최선주 | 앨리스온 에디터
 

독일기술박물관 웹사이트 : sdtb.de
Trebbiner Str. 9, 10963 Berl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