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13. 동시대 영상예술의 지형도 그리기
: Part 3. 넷 아트에서 포스트-인터넷 아트로, 포스트 인터넷 아트의 열린 가능성
그라나다. 스마트 렌즈를 끼면 게임이 시작된다. 현재의 그라나다는 중세 그라나다와 연결되어 있고, 이제 주인공은 중세 적들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한다. 광장은 결투장이 되고, 골동품 가게는 플레이어들을 위한 아이템을 모아놓은 곳이 된다.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며 적을 죽이고, 포인트를 얻어 레벨을 올려간다. 도시는 이제 게임의 배경이 된다. 모니터 앞 키보드와 마우스로가 하는 것이 아니다. 거창한 고글과 데이터 글러브도 필요 없다. 콘텐트 렌즈 같은 렌즈와 인터넷 로그인. 그것이면 충분하다. 그냥 길을 걷다 게임에 접속하고, 간단한 손동작이면 자연스럽게 로그아웃 된다. 혹 처음 간 도시라 길을 모른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스마트 렌즈의 네비게이션 기능이 그 어떤 가이드보다 자세하게 길을 안내해 줄테니. 이음새 없이 말끔하게 공존하는 가상과 현실의 두 세계. 그라나다에서 현실과 가상의 이분법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최근 새로 시작한 케이블 방송의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이렇게 현실과 게임이 공간이 완벽하게 중첩된 그라나다에서 벌어지는 네크워크 기반 멀티유저 AR게임의 개발을 둘러싼 미스테리한 사건에 관한 이야기이다. 물론 (아직은) 드라마 속 이야기 일 뿐이다. 광화문 광장에서 조선의 자객과 싸우는 게임이 컴퓨터 속이 아니라 실제 공간에서 증강현실을 기반으로 실시간 렌더링을 해가면서 플레이어들과의 게임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많은 기술적 문제들이 있다. 삼성전자가가 ‘증강현실을 위한 스마트 콘텍트 렌즈와 그 제조 및 동작방법’에 대해 특허를 출원하기도 했다지만, 드라마의 주인공이 사용하는 스마트 콘텍트 렌즈가 상용화되기 되기 위해서는 전력 전달의 문제, 렌즈에서의 발열문제는 물론 유저 중심의 위치기반 실시간 영상을 띄우는 것 역시 아직 해결해야 할 기술적 어려움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는 것이지, 불가능 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80년대만 하더라도, 스마트폰이라는 것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던가. 누군가의 말처럼, 인간은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을 실현시키기 때문에, 상상하는 것이 가장 위험한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그러한 시대를 살고 있다. 과거 SF 영화에서나 보았을 법한 현실, TV에게 말을 걸고, 아침에 가장 개운하게 일어날 수 있는 최상의 컨티션에서 수면시스템이 기상을 알려주고, 컴퓨터로 책을 읽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책을 컴퓨터가 골라주는 시대. 컴퓨터가 골라준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좀 더 정확히는 나를 둘러싼 환경이 나에게 말을 건다. 네트워크로 모든 것이 연결된 시대, 포스트-인터넷 시대. 이미 도착한 미래다. 이 글을 통해 필자는 소위 포스트-인터넷 시대라 불리는 동시대의 특징을 개괄하고, 이처럼 변화된 기술과 환경에 따라 어떤 새로운 예술적 양상들이 일어났느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제 진행단계인 (혹은 진행중인) 이러한 현실에 대해 이론적으로 분석하기에 앞서, 우선 포스트-인터넷 시대의 특징은 무엇이고, 이것이 기존의 인터넷 기반의 사회와 어떻게 차별화되는지를 구체적인 전시와 작품을 통해서 짚어보고자 한다. 확실히 몇몇 새로운 변화와 증후들이 눈에 띠기는 하지만, 이를 ‘포스트-인터넷 아트’1라 규정하기에는 아직은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포스트-인터넷 라는 용어는 ‘포스트’라는 접두어가 붙은 많은 용어들이 그렇듯 그 개념을 명확하게 규정하기에는 애매하고 논쟁의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인터넷/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나타나는 변화들은 초기 인터넷 기반의 시대와는 확연히 구분되기 때문에, 편의상 ‘포스트-인터넷’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하고, 이러한 포스트-인터넷 시대의 특징을 잘 반영하는 작품들을 포스트-인터넷 아트로 구분하여 관련 전시와 작품 사례들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1. 포스트-인터넷 시대/아트
포스트-인터넷이란 용어는 2000년대 중반 인터넷 문화예술전문잡지인 리좀(Rhizome)의 편집자이자 작가였던 마리사 올슨Marisa Olson, 진 맥휴Gene McHugh, 그리고 아티 비르칸트 Artie Vierkantrk가 인터넷 아트에 대해서 논의 하는 과정2에서 처음 불거져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서 올슨은 인터넷 아트는 인터넷 상에서 볼 수 있는 예술이라기 보다는 서핑이나 다운로딩과 같은 인터넷 기반의 행위를 통해서 자료/재료를 얻고 이를 기반으로 만든 퍼포먼스, 노래, 텍스트, 설치작품 등을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예술이라고 이야기한다. 거트리 로너간Guthrie Lonergan과 코리 아켄젤 Cory Arcengel 역시 인터넷 환경에의 인지(internet aware)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들을 기반으로 포스트인터넷 아트를 유추해 볼 때, 포스트 인터넷 아트 역시 인터넷 아트와 마찬가지로 그 뿌리는 다다와 플럭서스, 그리고 넷 문화와 같은 예술운동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인터넷 아트가 텔레마틱 아트처럼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로서의 인터넷에 더 집중하고 있는 특성을 보이는 반면, 포스트-인터넷 아트는 인터넷을 매체로서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차이가 난다.3 요약하자면, 포스트-인터넷 아트는 인터넷을 일종의 도구로서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가상이건 물리적 공간이건 사회 구조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으로의 인터넷 환경에 대한 활용 및 비판에 더 집중한다.
물론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예술의 변화를 가져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는 것은 새로운 것이 없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오늘날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인터넷의 확산과 보급은 예술에 있어 근본적인 전제들을 뒤흔들고 있다는 점에서 좀 더 신중히 살펴볼 가치가 있다. 저자(창자가)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물론, 협업과 물질성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물론 작품이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보여지며, 판매되고, 소장되는지와 같은 미술계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에 대해 질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포스트-인터넷 아트는 확실히 인터넷에 관한(about) 작업도, 인터넷 상(on)의 작업도, 더욱이 인터넷 이후(after)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오히려 포스트-인터넷아트는 올슨이 지적했듯이 인터넷 환경을 둘러싼 좀 더 포괄적인 활동을 아우른다고 보아야 한다. 인터넷 아트와 포스트-인터넷 아트의 이러한 차이는 마크 트라이브(Mark Tribe)가 <아트 인 아메리카>와 한 인터뷰에서 잘 드러난다.
“인터넷 아트는 1994년에 시작되어 2000년대를 아우르던 움직임이었다. 포스트-인터넷아티스트들은 올리아 리알리나(Olia Lialna), 북 코직(Vuk Cosic), 그리고 조디(JODI)와 같은 위대한 넷아트의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다. 하지만, 이는 그들이 순전히 온라인상에서만 존재하는 그 희박한 공기위에서 좀 더 높이 올라서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과거를 부서뜨리고, 온/오프라인의 하이브리드 형식 안에서 부셔진 조각들을 재조합하기 위해서이다.”
2. 넷아트에서 포스트-인터넷 아트
포스트-인터넷 아트의 직접적인 전조는 넷 아트(Net Art)였다. 잘 알려져 있다 시피, 넷 아트라는 용어의 시작은 흥미롭다. 1996년 북 코직이 알렉세이 슐긴Alexei Shulgin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는데, 어찌된 일인지 다 깨져서 알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J8~g#┃/;Net.Art –s1[…] 이상한 문자만 가득했는데, 그 중에서 우연히도 ’넷.아트‘라는 용어만 읽을 수 있었고, 여기에서 넷 아트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넷 아트라는 용어는 아트 페스티벌에서 사용되면서 널리 확산되었고, 새로운 흐름을 형성해 나갔다. 주요 작가로는 알렉세이 슐긴, 올리아 리알리나, 조디, 북 코직, 그라함 하워드 Graham Harwood 등이 있고, 이론가로서는 틸만 바움가르텔 Tilman Baumgartel, 조세핀 보스마 Josephine Bosma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 넷 아트는 인터넷을 통해서만 작품에 접근할 수 있었으며, 당시 테크놀로지의 수준을 반영하거나(검은 색 바탕의 화면에 깜빡이는 초록색 텍스트 기반의 작업들),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가지고 있는 결함들을 이용하는 등의 작업이 많았다. 안타깝게도 넷 아트는 첨단 테크놀로지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거나 예술계 주류로 자리잡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미술사, 정치, 연어, 연결성(connectivity)과 같은 이슈들을 성공적으로 언급해왔다.
wwwwwwww.jodi.org (1995)
(어쩌면) 가장 대표적이고 잘 알려진 넷 아트 작품인 wwwwwwww.jodi.org (1995)믐 넷 아트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일단 페이지에 접속하면, 까만 바탕에 초록색의 ASCII 코드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화면이 열린다. 보통은 에러 화면이나 소프트웨어의 오작동으로 인식되는 이 텍스트들은 소스 코드에 어떻게 접근하는지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이 난수표같은 텍스트들이 실은 ASCII 코드로 그린 원자 폭탐임을 알 수 있다. 마크 트라이브는 jodi.org에서 매체로서의 인터넷이 가지고 있는 아주 본질적인 특징에 대한 형식주의적인 탐구적 자세를 살펴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4 jodi.org 배후에 있는 아티스트인 조안 힘스커크 Joan Heemskerk와 디륵 파에스만스 Dirk Paesmans 는 코드, 소프트웨어, 픽셀, 애니메이션과 같은 요소들을 통해서 인터넷이 무엇이고, 무엇이 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미학적, 개념적인 가능성들을 들춰내 보여준다. 또 다른 유명한 초기 넷 아트 작품인 올리아 리알리나의 <내 남자친구가 전쟁터에서 돌아왔다 My Boyfriend Came Back from the War>5 는 파편화된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사이트를 열면 브라우저가 두 개로 나뉘고 오른편 위쪽에 있는 여자 이미지를 클릭하면 화면은 다시 나눠지고, 가운데 화면에 ’where are you? I can’t see you.“라는 텍스트가 나온다. 텍스트를 다시 클릭하면 화면이 다시 쪼개지고, 문장과 이미지들이 계속해서 쪼개지고 연결되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전형적인 하이퍼 텍스트 작품이다. 원래 작품이 발표되었을 때는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 골드3 브라우저를 기반으로 작동했으나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아 작품을 볼 수 없었으나, 현재 리좀이 이 작품을 소장하면서 에뮬레이션을 하였고, 덕분에 지금도 이 초기 넷 아트 작품을 무리 없이 감상(작동)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넷아트는 인터넷과 연결되어야 하며 브라우저에서 작동하고, 링크와 클릭을 통해서 작품이 전개된다. 다시 말해, 전원이 공급되지 않고, 브라우저가 사라진다면, 넷 아트는 사라진다고 할 수 있다. 초기 넷아트 작품들 중 상당수가 브라우저가 업그레이드되면서 볼 수 없게 된 것도 넷 아트의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초기 넷 아트는 인터넷을 하나의 새로운 공간으로 지각하고, 그 안에서 다양한 실험을 시도했으나 비물질적이고 네트워크 의존적일 뿐 아니라 제한된 인터페이스의 한계를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문에, 기존 장르들과 협업을 통한 확장/변화는 넷 아트가 가지고 있었던 기본적인 한계의 극복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넷 아트의 이러한 변화/젼개 과정을 라이보 켈로미스Raivo Kelomees는 ”넷 아트에서 포스트-인터넷 아트 From Net Art to Post-Internet Art“6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다섯 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① 1970년대-1980년대 준비단계: 세계 곳곳에서 기술적으로 소박하지만 새로운 혁신을 시도하는 단계 (로이 에스콧 Roy Ascott, 로버트 아드리안 Robert Adrian, 더글라스 데이비스 Douglas Danies, 백남준 등)
② 실제 인터넷에 기반하는 프로젝트. 1990년대 전반부부터 중반부까지의 시기. 넷아트의 탄생
③ 소프트웨어 아트와 제너러티브 아트의 경향: 부분적으로는 넷 아트와 병행됨 (알렉세이 슐긴, 올리아 리알리나, 에이미 알렉산더 Amy Alexander)
④ 넷 아트가 조각, 건축, 퍼포머티브, 설치 프로젝트들과 협력하면서 점점 물질적이 되어감 (etoy.com, 폴 서먼Paul Sermon의 텔레마틱 설치작업, 바바라&마 Varvara&Ma의 ”Binoculars to… binoculars from.. 등)
⑤ 포스트-인터넷 아트의 경향. 이러한 경향은 인터넷 환경으로부터 출발하지만, 넷 기반의 활동은 좀 더 간접적이게 된다. 넷 경험과 콘텐츠는 점점 물질화된다. 2000년대 후반부부터 현재까지 (마리사 올슨, 진 맥휴 등)
앞서 언급했듯이 넷 아트가 가지고 있는 빗물질성은 이후 넷아트가 기존 장르들과의 협업을 통한 확장으로 자연스레 나아갔고, 이로 인해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포스트-인터넷 아트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이러한 맥락에서 포스트-인터넷 아트의 출발점을 넷 아트라고 보아도 크게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넷 아트에서 출발한 포스트-인터넷 아트가 기존의 넷 아트와는 달리 인터넷 상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과 현실세계에 같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포스트-인터넷 아트가 넷 아트와는 달리 현실 공간 안에 물성을 가진 오브제로 존재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변화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는 포스트-인터넷 아트가 다른 테크놀로지 기반의 작품들과는 달리 현대 미술계 안에서 더 이상 하위 장르나 일종의 분파로서만 머무르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포스트-인터넷 아트 작품들은 화이트 큐브 공간 안에서 전시되고, 기존의 미술 애호가들에게 큰 당혹감 없이 다가갈 수 있으며, 미술 시장에서 판매되고, 누군가에 의해서 소장될 수 있다는 점에서 넷 아트와는 차별화되었다. 실제로 포스트-인터넷 아트라 불리는 작품들이 얼핏 보기에 일반 조각이나 회화, 사진, 영상과 더 직접적으로 닿아 있는 듯 보이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3. <아트, 포스트-인터넷 Art, Post-Internet>7
2014년 봄, 베이징에 있는 UCCA에서는 포스트-인터넷 아트를 개괄하는 <예술, 포스트-인터넷> (2014.3.1.-5.11) 전시가 개최되었다. 포스트-인터넷이라는 것이 여전이 진행 중인 현상이라고 하더라도 이와 관련되어 예술이 어떤 양상으로 드러나는지, 그에 대한 방법론은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나아가 포스트 인터넷 아트의 맥락과 의미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논의의 기초를 제공하는 전시라는 축면에서만 보더라도 상당히 의미 있는 전시라고 볼 수 있다. 전시를 소개하는 에세이에서 기획자인 카렌 아치(Karen Archy)와 로빈 패크햄(Robin Peckham)은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을 배포(distribution), 언어(language), 포스트휴먼 바디(the posthuman body), 진보적/급진적 정체성(radical identification), 브랜딩과 기업 미학(anding and corporate aesthetics), 회화와 제스츄어(painting and gesture), 인프라스트럭쳐(infrasructure)라는 일곱 개의 소주제로 나누어 설명한다. 이러한 범주화가 과연 포스트-인터넷 아트만의 고유한 특성인가라는 질문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고, 이후 많은 논의가 필요할 수 있겠지만, 확실히 출품작품들 사이에서 이러한 특징들이 좀 더 극단적인 모습으로 드러난다.
다른 키워드 역시 급격하게 변화되었지만, IT 테크놀로지의 발전, 네트워크의 확산과 더불어 이루어진 배포(distribution)와 관련된 변화는 보다 미술계 구조와 작품 제작의 방식에서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확실히 오늘날 우리가 작품을 만나게 되는 경로는 과거에 비해 다양하다. 전시장을 찾고 전시도록(인쇄출판)을 통한 작품과의 만남이 여전히 건재하지만, 인터넷과 IT 기술의 발전을 기반으로 한 만남들 예를 들어 예술 블로그, 유투브 채널, 갤러리 혹은 미술관의 웹사이트들을 통한 만남 역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만남이라는 것은 단순히 작가와 작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채널이 다양해졌다는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브제로서의 작품과 도큐멘테이션, 그리고 원거리에 있는 참가자들의 사회적인 현실은 물론 예술가들이 네트워크를 어떻게 활용하면서 작업하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었다.
Arthie Vierkant, Image Objects
아티 비어칸트의 작업은 이러한 문제들을 아주 직접적으로 잘 보여준다. 비어칸트의 <이미지 오브젝트 Image Objects>8는 물질적/물리적인 조각과 비물질적인 이미지가 함께 결합되어 있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얼핏 이미지 합성 프린트처럼도 보이는 이 시리즈의 작품의 제작과정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이미지들은 셀수 없이 많은 베리에이션이 가능한 디지털 파일에서 출발한다. 파일은 이미지 소프트웨어 기술을 통해서 조작되고, 현현된 형식으로 다시 전달된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디본드 패널에 UV 프린팅으로 그려지고, 아주 정확하게 커팅 되어 깊이감이 있는 사진적 프린트를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서 조각의 현존감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작품에서는 근본적으로 작품과 작품 제작활동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온라인 상에서의 2차적인 경험이 점차 충요한 미적 경험을 만들어낸다.
Jon Raffman, <Remember Carthage>
언어 역시 포스트-인터넷 아트에서 간과할 수 없는 범주이다. 커뮤니케이션 매체로서 인터넷은 우리가 말하는 방식,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어 왔으며, 그 과정에서 시각언어는 전례없이 중요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서 세계가 하나로 이어지면서 영어 스크립트는 세계 공용어처럼 되어가고 있다. 존 라프만 Jon Rafman 과 로사 아이엘로 Rosa Aiello 의 <카르타고를 기억해 Remember Carthage>9는 머시니마의 다양한 시각적 장치와 효과, 편집 기술들을 사용해서 만든 대단히 시적인 내러티브를 가진 영상작업인데, 영상에서 몽환적인 느낌이 나나게 하고 어딘가 고독한 느낌이 들도록 한 나레이터는 사람이 아닌 컴퓨터 나레이터였다.
Katja Novitsckova, <Approximation>
포스트-인터넷 아트에서 ‘포스트휴먼 바디’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이슈 중 하나이다. 카자 노비츠코바 Katja Novitskova의 <근사치 Approximation>은 재현이라는 문제에 포커스를 맞추어 인간의 육체와 그것을 둘러싼 자연환경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인터넷에서 찾은 동물이미지를 크게 확대하여, 알루미늄판에 크게 프린트하여 마치 유명 연예인들의 광고 입간판처럼 설치함으로써, 한편으로는 관람자의 눈과 카메라 렌즈를 연결짓고, 불모지 같아 보이는 화이트 큐브를 풍성한 생물학적 서식지로 만들어버린다.
Ed Fronieles, <Pool Party>
네트워크 상에서의 정체성 이슈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주제이다. 기획자는 포스트-인터넷 시대에 있어 네트워크상에서의 정체성을 ‘급진적 정체성’이라 언급한다. 인터넷 채널을 통해서 언제 어디에서나 무엇으로라도 존재할 수 있는 현실은 종종 ‘평면화된’ 주체로 언급된다. 캠걸 현상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나듯이 인간의 정체성은 소셜 네트워크 상에서 언제나 간편하고 쉽게 통합되고, 재포장되며, 브랜드화 된다. 에드 포니엘레스 Ed Fornieles 는 <풀 파티 Pool Party>10 작품은 젊은이들의 문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전형화 된 캐릭터를 만들어서 젊은이들의 문화를 패러디 하고 있다. 파티를 즐기는 LA 젊은이들을 모아서 파티를 하다가 싸우고, 화해하고, 살인에 까지 이르게 하는 내용을 담은 영상은 의도적으로 먼지가 낀 느낌이 들게 하는 등의 아주 단순한 비디오 필터를 사용하고, 편집 방식 영식 싸구려 소셜미디어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엉성한 방식을 사용하여 실제 리얼리티 TV쇼의 느낌을 살려서 제작되었다. <아트, 포스트-인터넷>은 전시의 컨셉에 맞추어 도록의 제작 및 배포 방식에도 차이를 주었다. 기존의 전시였다면, 양장 제본의 두꺼운 도록을 미술관 서점이나 아트 숍에서 구매해야 했겠지만, 이 전시 도록은 인터넷 상에서 다운로드가 가능하게 하였다. 최근 들어 인터넷에서 도록을 다운로드 받는 것은 그리 새로운 일은 아니지만, 이 전시 도록은 다운로드를 받게 되면, 다운로딩 한 곳의 IP가 기록될 뿐 아니라, 다운로드 횟수가 마치 출판 횟수처럼 보여지게 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4. 포스트-인터넷 아트의 (열린) 가능성
하나의 전시를 통해서 새로운 예술의 흐름을 살펴본다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 게다가 <아트, 포스트-인터넷>의 기획자들도 언급했듯이 위에서 제시한 키워드/카테고리는 출품된 작품들의 특징을 설명하는 –혹은 기획자가 포스트-인터네 아트를 규정하는- 방식일 뿐 범주에 따라서 작품이 선정되고 배열된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출품 작품들을 개별 범주에 한정지을 필요는 없다. 실제로 전시에 소개된 작품들은‘포스트-인터넷’에 대해 하나의 명확한 정의를 따르기보다 심지어 상호 배타적으로 보일 정도로 다양한 해석을 시도한다. 예를 들어, 의도적으로 네트워크에 방점을 두는 작품들이 있는가 하면, 물리적인 비트에서부터 사료로서의 인터넷이 가지는 사회적 영향에 까지, 이미지 본질의 변화에서부터 문화적 오브제들의 유통에 이르기까지, 참여의 정치학에서 물질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이르기까지 그 접근의 방식이 상당히 다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시는 예술적 활동의 맥락에서 포스트-인터넷 아트라는 범주를 개념과 제작에서부터 보급과 유통에 이르는 과정에서 네트워크를 의식하고서 이루어진 대한 의식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예술작품이라고 이해함으로써, 포스트-인터넷 아트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따라서 포스트-인터넷 아트는 기술적으로 볼 때, 광고의 수사학, 그래픽 디자인, 상업적 브랜딩, 비쥬얼 머쳔다이징, 상업적 소프트웨어 툴 등 다양한 방법과 기술을 사용할 수 있으며, 내용적으로는 인터넷 정치학, 대중적인 감시체계, 데이터 마이닝, 네트워크의 물질성, 포스트휴먼 육체, 오픈소스 운동에 이르기 까지 광범위한 영역을 다루게 되었다.11 이전의 테크놀로지 기반의 미디어 아트들이 테크놀로지에 능한 몇몇 천재, 엔지니어, 테크니션과 같은 소수의 영역에서 반짝거리다 현대미술계에서 서서히 사라지거나 자기만의 리그 안에 머물러 있었다면, 포스트-인터넷 아트는 기존의 예술계 안에 자연스럽게 들어와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얼핏 보면 기존의 사진이나 영상 작업과 다를 바 없지만, 실제로 작품이 제작된 과정, 이미지를 다루거나 해석하는 방식에서는 차이가 있다. 네트워크 상에 떠돌아다니는 무수히 많은 이미지와 동영상을 가져오고, 소프트웨어를 통해서 변환시키고, 비물질적인 데이터를 다시 물질로 변환시키고, 그것을 다시 비틀고 뒤틀어 사용한다. 드론과 같이 인간의 육체서 떨어져 나온 기술적인 눈을 통해 세상을 보고,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눈을 통해서 촬영하고 편집한다. 현실은 여전히 견고하지만, 그 위에 현존하는 가상이 더해진다. 그래서 현실과 가상은 둘이 아닌 느슨하게 이어진 하나가 되었고, 그 안에서 예술은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실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한 실험을 우리가 지금 포스트-모던 아트라 부르고 있다.
포스트-모던 아트가 과연 좀 더 길고 강력할 생명력을 가질 것인지, 아니면 한 때의 유행어에 지나지 않을지 아직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지금 우리 곁에서 벌어지고 있는 네트워크 환경은 예술에 있어 시도해볼 것이 많은 새로운 세상이고, 그 안에서 일단 많은 것들을 실험해가면서 하나하나 알아가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늘 그랬듯이 지금 많은 예술가들이 많은 새로운 시도들로 변화를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글. 신보슬 | 토탈미술관 큐레이터
* Supported by 예술경영지원센터
* 이 글은 예술경영지원센터 『시각예술 비평가-매체 매칭 지원 』 의 일환으로 쓰여졌습니다.
CoverStory_TAG 13. 동시대 영상예술의 지형도 그리기 [이전글 바로가기]
동시대 영상예술의 지형도 그리기_Part 1. 알고리즘을 통한 영상예술의 자동화
동시대 영상예술의 지형도 그리고_Part 2. 실시간 영상 합성이 제공하는 예술의 재현성
- 그러에도 불구하고, ‘포스트-인터넷 아트’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김지훈은 <아트 인 컬처> 2016년 11월호 포스트인터넷아트 특집인 “포스트인터넷아트, 과연 끝나는가?”의 기고문 글에서 포스트인터넷아트에 대해서 잘 정리하고 있다. 그는 올슨을 인용하면서 포스트 인터넷아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포스트인터넷아트는 온라인의 언어와 스타일, 행동방식들이 오프라인의 삶에 근본적으로 임윤된 상황에 반응하는 모든 종류의 예술작업을 포괄한다. 2013년 인터뷰에서 올슨은 이 점을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포스트인터넷아트“는 인터넷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을 예술이자 어떤 식으로든 인터넷이 스타일로, 또는 인터넷의 영향아래 있었던 예술을 가리킨다.” 즉 그것은 네트워크 문화 안에서 삶의 고건을 재현하는 예술이자 인터넷 이후의 예술이다“ “크리틱:왜 포스트인터넷아트인가?”(아트인컬쳐, 2018, 11월호)
- What’s Postinternet Got to do with Net Art?, Rhizome, Michael Connor, November 1st, 2013. (http://rhizome.org/editorial/2013/nov/1/postinternet/)
- https://en.wikipedia.org/wiki/Postinternet#cite_note-1
- Tribe, Mark, 2007, “Jodi”, Brown University Wiki, Brown University, Providence RI.
- http://www.estonianart.ee/art/from-net-art-to-post-internet-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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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ucca.org.cn/en/exhibition/art-post-internet/ 율랜스 센터 포 컨템포러리 아트 UCCA, 베이징, 2014
- http://artievierkant.com/ (2008-2014년 아카이브 http://artievierkant.com/imageobjects.php)
- https://vimeo.com/57052874
- https://www.youtube.com/watch?v=6fO533tMTc8
- 도록 pp.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