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근권과 창작·향유 담론으로서의 기술
근래 문화예술의 영역에서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로 기술과 예술의 만남에 대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융복합, 미디어아트, 융합예술, 예술과 기술 등의 이름으로 그 이전의 흐름과 온도 차가 느껴질 정도로 지원의 규모가 확대되었고 그에 발맞춘 작품과 행사가 풍성한 모습을 보였다. 2019년 말 발발한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해 단절되는 물리적 활동에 대한 대응으로, 그리고 1990년대 인터넷이라는 범세계적 네트워크의 등장과 2010년 전후 디지털 세계 접촉의 일상화를 이루어낸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기술 매체가 일상 그 자체를 덮어버렸기에 이러한 오늘을 다루는 예술의 발언 당위성이 만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문화예술의 영역에 있어 중요한 변화의 흐름 중 하나는 배리어프리(barrier-free)에 대해 주의 깊게 다루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배리어프리는 고령자와 임산부,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사회생활에 지장이 되는 물리적 장애물을 비롯한 심리적 장벽 등 전반적인 접촉면과 구조 등을 다루어 제거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운동 및 시책이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이 물리적·사회적 장벽 없이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일련의 활동을 말한다. 1974년 유엔 장애인생활환경전문가협회에서 「장벽 없는 건축 설계(barrier free design)」 보고서가 소개된 이후 건축과 공공영역으로부터 문화예술 전반으로 확산한 이 개념은, 사회집단 다수가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인식하고 접근의 장벽을 없애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시도하는 메시지를 공유하는 한편, 해당 영역에서 그에 대한 실천을 진행하고 있다. 현대미술 영역에서도 기존 역사적 관점에서 미술관 소장품의 민주화와 같은 접근권 또는 접근성의 평등을 넘어, 향유와 창작 모든 행위에 대한 담론으로서 다루어지고 있다.
퓨처 와이드 오픈: 신기술 기반 장애예술 창작실험실
이 두 가지 흐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그 교차를 다루며 새로운 인식 지점을 조성하기 위한 시도가 있다. ‘퓨처 와이드 오픈(Future Wide Open): 신기술 기반 장애예술 창작실험실’ 사업이다. 이 사업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장애예술과 기술의 지속적 협력과 실험 지원을 표방하며 2023년 8월 공모하고 9월 선정자를 발표한 이후 2024년 3월 공유회를 목표로 현재 진행 중이다. 이 사업의 중요한 지점 중 하나는 장애·비장애 구분 없는 지원사업에 대한 새로운 시도이다. 우선 퓨처 와이드 오픈은 트랙 와이드, 트랙 오픈 두 가지 공모를 포함한다. 트랙 와이드는 장애예술인과 기술 전문가와의 매칭을 통해 장애예술인에게 예술과 기술을 연결할 수 있는 창작 기회를 제공한다. 트랙 오픈은 장애와 비장애의 구분 없이 융합 장애예술을 주제로 한 활동에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24년 1월 현재 트랙 와이드 5개 프로젝트, 트랙 오픈 4개 프로젝트의 진행 과정을 사람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질주하고 있다. 그 과정 중 기획과 방향성, 콘셉트에 대한 멘토링과 더불어, 기술을 다루고 연결하는 기술의 창작 및 적용에 전문가가 도움을 주며 작품이 현실 세계에 안착할 수 있도록 함께하고 있다. 필자는 심사에서부터 멘토링 과정에 참여 중이다. 이 과정 중 창작자가 다루는 주제와 개념, 기술과의 연계 의미를 함께 살폈고 그들의 창작과 메시지, 기술에 대한 관점에 대하여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장애와 비장애에 대해, 그것이 직접적인 삶 안에서 접촉하며 다루어질 때 그저 모호하게 인식하고 있던 면에 대해 창작자 스스로 관점을 정리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규정과 한계를 넘어 장애·비장애 구분 없이 확장을 시도하기
앞서 언급했던 대로 퓨처 와이드 오픈은 장애 및 비장애 예술인이 동일한 문제의식을 마주하고, 그 결과물을 역시 동일한 장에서 대면할 수 있는 자리로서 중요하다. 같은 무대 위에서, 같은 지평선 상에서 함께 활동하며 서로에게 상호작용하고, 그 의미와 가치를 논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토대를 형성하는 것이 이번 사업이 다루고자 하는 중요한 목표이다. 그렇기에 이에 닿기 위해 많은 제약과 현실에 관해 이야기해야 한다. 그중 하나가 ‘장애인예술’과 ‘장애예술’이다. ‘장애인예술’이 장애인의 활동 측면의 맥락과 의미를 중요하게 다룬다면, ‘장애예술’은 장애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성찰적 시선을 담은 예술에 의미를 두고 접근한다. 유사한 단어의 조합이지만 둘 사이에는 중요한 구분 지점이 있으며, 퓨처 와이드 오픈은 이 두 가지를 포괄한다. 트랙 와이드가 ‘장애인예술’의 맥락에서 기술과의 연계 시도를, 트랙 오픈이 ‘장애예술’적 관점에서 장애와 비장애 모두를 담아내려 시도한다. 이 모두를 연계하는 시도는 분명 의미 있다. 다만 그 종합 풍경에 대한 제안이나 이에 접근하고 다루는 관점은 여전히 모호하다는 점에서 짚어볼 여지가 있다.
활동 중인 창작자 집단은 대부분 전문가와 향유자가 서로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지 못한 채 같은 수평선 위에서 부유한다. 전문가로서의 창작자는 자신의 관점과 목적, 메시지를 명확히 다지고 그것을 우리 세계에 정착시키려 분투한다. 여기에서 예술은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나와 세계와의 관계, 그 안에서 성립되는 주제 의식, 이를 전달하기 위한 매체, 방법, 그리고 기술에 대해 사유하고 그것의 구조를 설계하는 장이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에 안착할 때 관람자에게 전달되기 위한 방식을 고민하면서 소통의 장이 성립된다. 한편 향유자에게 예술은 다른 의미를 가진다. 그들에게 예술은 향유하지 못했던 영역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고, 닿지 못했던 세계를 접하고 살아가기 위한 기술이며 방법일 수 있다. 일종의 지원정책으로서 시행되는 장애인예술은 자신의 만족 그 자체가 목적이자 종결 지점으로 귀결될 수 있다. 물론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지원과 복지적 측면에서는 그 자체로 이미 가치가 충족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기존의 장애인 복지와 연관된 문화예술 사업의 도돌이표와 다름없을 것이다. 장애인예술이 가지는 무의식적인 규정과 한계를 기술과의 연계를 비롯해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 없이 다루며 확장을 시도하는 것이 퓨처 와이드 오픈이 가진 중요한 의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술 생태계, 협력과 소통의 장에서 함께 바라보기
참여자 스스로 신기술이 무엇인지부터 시작하여 그 기술이 나의 작업 방향성과 어떠한 관계를 맺어 무엇을 획득할 수 있을지, 기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나의 무엇이 변화할 수 있을지, 내가 공유하고자 하는 것과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 기술이 정말 필요한지, 기술과 연결된 과정과 결과물이 바라는 바를 담아내었는지, 또는 그 이하이거나 그 이상이라면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등을 질문해야 한다. 기술과 내가, 기술과 의미가 얼마나 어떻게 연결되며 그 이전과 다른 무엇을 생성해 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고민과 사유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그저 시도, 그저 습작 이상의 무엇을 얻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같은 선상에 놓인 지평의 설정이다. 자칫 기성의 예술 질서에 장애인을 편입시켜버릴지도 모를 위험성을 인식하고, 그 지평 자체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이번 사업의 시도와 과정이 중요하다. 예술의 대지에 기술이라는 새로운 자원이 공유된 가운데 많은 이들이 그 토대와 토대 위에서 진행되는 활동을 함께 바라보고 이야기하며 의미화할 공통의 이해에 대한 시도가 필요하다.
오늘날 ‘우리 세계는 기술 생태계다’라고 말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기술 철학자의 말을 빌자면, 산업화 사회 이전에는 우리와 세계 사이에 기계가 있었다면, 이제는 기계와 세계 사이에 우리가 위치한다. 과거에는 인간이 상수이고 기계가 변수였다면, 이제는 기계가 상수이고 우리가 변수인 세상이다. 기술이 만들어 낸 환경은 이미 세계와 동등하거나 그 자체에 버금가며, 우리는 선택자가 아니라 기계가 있는 상황에서 선택을 고려해야 하는 자원일 수도 있다는 비관적인 해석도 가능하다. 다시 말해, 그만큼 기술과 기술적 대상에 대한 이해가 세계를 이해하고 살아가는 데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와중에 기술은 분명히 접근성에 대해 배타적이다. 기술의 질주는 이미 인간이 다루어내는 속도 그 이상이다. 비장애인이 그렇게 느끼고 있는 시점에, 세계와 관계에 대해 또 다른 어려움의 단계를 지닌 장애인은 더욱 한계를 느끼게 되는 상황이다. 그러한 공통의 문제 지점이자 다루어내어야 할 상황에서, 기술에 대해 함께 힘을 보태어 다루고 파고들며 이해의 경계 너머로 향할 수 있는 시도가 신기술 기반 장애예술 창작실험실일 것이다. ‘퓨처 와이드 오픈’, 제목 그대로 미래는 넓게 열려 있다. 우리에게 조성된 그 협력과 소통의 장 위에서 함께 바라볼 수 있는 시야와 방법을 다지며 세계를 마주할 수 있는 장이 되기를 기원한다.
허대찬 (앨리스온 편집장, aliceon Editor-in-Chief)
- 이 글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장애예술 전문 지식 플랫폼인 웹진 이음 ieum.or.kr에
게재된 글입니다. 전문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