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sick: 소환된, 직면한, 반응은_김은솔 개인전

알파와 오메가_2019_비디오설치, 단채널 비디오, 흑백, 사운드(스테레오)_3분 30초, 전시장 설치전경

향수에 잠기거나 향수병에 걸린 상황이라는 의미를 가진 ‘homesick’은 두 가지 좌표를 가진다. ‘오늘’에 서서 ‘과거’를 소환하는 두 가지 시간점이다. 이렇게 두 점을 마주하여 차이를 드러내는 시도는 지금 닥친 힘든 상황을 다루기 위한 심리적 대처 행위이다. 여기에서 기억의 주체는 대체로 소환한 과거를 미화한다. 즉, 향수병은 힘들고 어려운 현실을 대하기 위한 인간의 행위이다.

세계적 규모로 이토록 힘든 상황을 장기적으로 맞이한 순간은 드물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ronavirus Disease 2019), 일반적으로 코로나-19라고 부르는 급성 호흡기 감염병. 이것은 영화나 소설에서나 마주했던 전 세계적 범유행 전염병이라는 상황, 즉 팬더믹(Pandemic)을 일상으로 끌고 내려왔다. 우리 모두의 생활이 바뀌었다. 정치·경제 구조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변경이 불가피했고 사회 구조의 변화가 동반되었으며 이 모든 것에 대한 질문과 인식 변화를 맞이했다. 우리 개인은 자신의 삶의 급격한 변화에 직면하면서 동시에 이보다 더한 서구의 상식밖 상황을 매체를 통해 마주해야 했다. 극단적 상황은 많은 것의 가속을 이끌었다. 가중되는 질병 관련 숫자, 쏟아지는 뉴스, 필터링이 어려운 정보량. 이로 인해 많은 것이 흔들렸다. 불신과 의심을 자아내는 현실이 찾아왔다. 작가 김은솔은 이러한 물리적이며 동시에 이성적이고 정서적인 재난 상황과 마주하며 ‘향수병’이라는 운반자 위에 4개의 작품을 담아내었다.

재난이라는 극한적 상황은 작가가 그 이전부터 살펴오던 주제였다. 재난은 많은 이들이 공유하는 현실이지만 당사자와 청취자 간 명백한 온도 차가 존재한다. 나와 우리, 그들의 재난은 다르다. 이런 심리적 거리에 의한 차이는 필연적이다. 그 차이와 재난은 어떤 의미를 형성하는가. 작가는 재난의 데이터를 다루면서 차이를 묶어내며 여러 장면을 직조하고, 우리는 그 충돌의 현장에 소환된다. <Clip_SUBTITLE>에서 작가는 재난 관련 뉴스의 이미지와 텍스트를 수집하여 영상에 재배치했다. ‘SUBTITLE’이라는 글자가 입체적 형상으로 화면 가운데에서 회전하는 가운데 그 뒤 공간에서는 추상적인 색 면과 다양한 이미지가 교차한다. 화면 아래편에서는 자막이 출력된다. 이 자막은 유튜브에서 수집된 일상의 텍스트가 무작위로 조합된 것이다. 관람자는 각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에 등장하는 이미지와 텍스트를 연결하고 조합하며 그에 대한 의미를 생성한다. 일상과 재난이라는 섞이지 않을 것 같은 사건이 연결되어 어떠한 상황이 생성되는 가운데 그 주체자는 재난을 다루며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는 상황에 놓인다.

Clip_R-V COMMUNICATION_2021_비디오설치,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서라운드)_11분 35초

<Clip_R-V COMMUNICATION>은 재난과 일상의 관계를 환기한다. 이 작품은 전시장 모서리의 90도 각도의 벽면 각각에서 서로 비뚜름하게 마주한 2채널 영상이다. 각 화면 공간은 서로 대비되는 요소들을 드러낸다. 작품 제목의 R(ed)-V(iolet)에서 알 수 있듯 한쪽에는 빨강이, 다른 쪽은 보라색이 각각 시야를 채운다. 또한 한쪽에서는 숨소리가, 다른 쪽에서는 삐-소리의 고주파 음이 출력되며 우리의 귀를 자극한다. 대비되는 듯 구분되는 구조이지만 둘 사이의 공통분모가 이를 하나로 엮는다. 각각의 화면 모두에서는 우리 눈에서 비문증 때문에 보이는 실 같기도, 우리 몸을 구성하는 단백질 사슬 같기도 한 연속체와 입체도형이 공통으로 유영한다. 이 형상은 작가 주변의 일상 사물을 라이다(RADAR)로 스캔하여 출연시킨 것이다.

재난은 일상과 구분되는 극단적인 대비 상황이다. 서로 묶일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두 사건이지만 모두 삶이라는 하나의 흐름에 귀속된다. 빨강과 보라는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빛인 가시광선 각각의 양 쪽 끝부분이다. 물리적으로 명확히 대비되는 빛의 영역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영역으로 묶인다. 숨소리는 생명을, 고주파 음은 죽음을 은유한다. 생명과 죽음은 대비되지만 동시에 삶이라는 하나의 흐름이다. 재난은 일상의 타임라인 위에 묶이지만 차별화되는 어떠한 높이를 형성한다. 이 경험은 시간의 흐름에 과거로 이동하며 우리는 지금을 위해 그를 잊으려 부단히 노력하지만, 그 연결은 끊어지지 않으며 불현듯 소환되어 우리를 괴롭힌다. 대비되나 동시에 연결되어있는, 그리고 과거이지만 항상 지금 소환될 여지가 있는. 그러한 존재인 재난과 지금의 우리가 이렇게 재현된다.

Clip_TIMELINE_2020_비디오설치, 단채널 비디오, 흑백, 사운드(모노)_ 2분 5초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재난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전시장의 또 다른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Clip_TIMELINE>에서는 재난이 매체를 통해 다루어질 때의 연결과 연속성의 의미를 묻는다. 이 작품은 하나의 영상이지만 중앙의 수직 타임라인을 중심으로 오른쪽과 왼쪽의 각각 정적이고 동적인 파형을 출력한다. 왼편의 조밀한 흑백 그라데이션 패턴은 중앙의 타임라인에 부딪혀 쪼개지고 오른편의 연속되는 테스트 패턴으로 변형된다. 이 둘은 시각적으로 대비된다. 작가는 텔레비젼 화면이 출력하는 영상 중 우리가 인식하지 않는 부분, 즉 중립적이고 시선 밖 이면의 소비되지 않는 이미지로서 화면조정 이미지의 테스트 패턴을 잡아내어 우리에게 제시했다. 어떠한 사건은 텔레비젼 등의 매체의 타임라인에 편성, 즉 가공되어 우리에게 전달된다. 이러한 의미화 과정을 화면조정 이미지라는 우리 시선 밖 이미지 문법을 사용해 표현한 것이다. 중립적인 형상으로 표현되는 재난의 매체 전달 과정은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사건과 그 과정 자체를 바라보고 생각해 볼 것을 제안한다. 2018년 작가의 포항 지진 경험을 기반으로 지진 데이터를 시각화한 <Alpha and Omega> 역시 직접 경험한 재난에 대한 데이터를 매체를 통해 변환하여 표현한 결과물이 가지게 되는 중립성과 온도 차에 대한 접근이다.

매체와 기술의 발달은 재난의 인식에 대한 독특한 구도를 만들었다. 나의 재난, 우리의 재난, 그리고 그들의 재난이다. 전 세계가 매체로 연결되어 뉴스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재난 소식이 우리에게 공유된다. 과거 우리가 몰랐을 그들의 재난은 우리의 재난이 되어 나의 눈앞에서 재생된다. 공감이라는 미덕은 나의 재난과 우리의 재난의 구별을 희미하게 만든다. 이전 그들의 재난은 우리의 재난에 포섭되었다. 거리감은 미묘해졌고 우리가 반응해야 할 재난의 범위는 매우 넓어졌다. 말 그대로 모두의 재난이 늘 공유되고 있는 가운데 많은 재난은 모호한 덩어리로 유보된다. 이 상황에 그야말로 모두의 재난 코로나가 덮쳐왔다. 이제 매우 근본적인 지점에서부터 미뤄왔던 부분까지 광범위한 영역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제기하고 답해야만 하는 일상과 마주해야 한다. 일상이라는 지금의 좌표에 재난이라는 또 다른 축의 좌표를 끌어온 이중적 상황에서의 관계 맺기. 작가는 어떤 방법론을 제안했다. 향수병이라는 정서적 관점에 기술 매체를 통한 이성적 시각을 합친 기묘하고 혼종적인 이미지 장면을 펼쳤다. 그 판 위에서 지금 나와 연결된 무언가를 과거에서 끌어와 대면하고 이를 통해 지금 직면한 상황을 대하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마주한다는 것은 나와 구분하는 하나 이상의 대상을 필요로 한다. 작가의 작업에서 2채널이나 화면 분할과 같은 시각적 배치나 ‘진실과 거짓’, ‘몸과 마음’, ‘알파와 오메가’ 등 제목에서의 배치처럼 두 개의 함께 마주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이와 연관된 작가의 관점이 드러나는 접촉면일 것이다. 소환된 현실에 직면하고, 반응할 수 있는  풍경이 이렇게 제시되었다.

작가가 겪은 고향 포항의 지진은 재난 사건 당사자와 뉴스 시청자 사이에 공감대와 소통 지점을 만들 수 있을까. 그러기는 어려울 것이다라는 상식적인 판단 위에서 작가는 작품을 통해 또 다른 가능성 탐구를 시도했다. 여러분이 서 있는 현재에 과거 사건의 데이터 조각들로 구성된 묘한 덩어리를 직조하여 새 좌표를 형성하는 방식으로 재난을 소환한다. 그것은 낯설고 생소한 형태이지만 동시에 유튜브의 영상 문법, 화면조정 이미지의 한 부분과 같이 무언가 익숙한 모습이기도 하다. 낯설고 익숙한 무언가가 일상에 침투하며 발생한 좌표에 우리는 직면한다. 이에 우리는 기묘한 시청각적 풍경에서 여러 인상적인 포인트를 우리 경험에 연결하는 반응을 보인다. 소환된 재난 파편에 직면하여 무언가를 생각하고 경험에 연결하는 반응. 이 흐름은 질문을 유도하고 자신과 외부를 연결하는 작가의 제안이다.

기억의 파동, 2021. 5.25. 포항시립미술관, 전시정보 링크

허대찬 (aliceon managing 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