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립 북서울미술관과 앨리스온이 공동으로 기획한 <웹-레트로 (WEB-RETRO> 전은 지난 30여 년간의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의 역사를 되짚어 네트워크 망을 기반으로 시도되었던 새로운 미술들을 역사적으로 되짚고 지금 이 시대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위해 기획되었다.
전시가 던지고 있는 질문은 크게 세 가지이다.
“인터넷 아트는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관계 맺어왔는가?”
”인터넷 아트는 개인의 존재와 이미지에 대한 인지 변화를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가?”
“인터넷 아트는 당시 미술의 경계를 어떻게 확장시켜왔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관객에게 의문점을 시사하고 새로운 질문들을 생산한다. 앨리스온은 전시에서 파생된 질문들을 다각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심층적으로 토론하고자 네 명의 신입 에디터들(형윤, 한결, 성현, 보람)과 라운드 테이블을 개최했다.
Q. 이번 전시의 제목이 <웹-레트로>이다.
웹이 ‘레트로’, 즉 ‘이전의 매체가 되었다’는 것에 공감하는가?
한결 : 전시를 통해 지금의 우리에게 웹이라는 매체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나는 모뎀을 사용하던 시절부터 웹을 지켜봤던 사람으로서 디지털 매체에 대한 유행의 주기와 유통기한이 점점 짧아져가는 시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확장해서 미디어 아트와 그 매체로 그 고민은 확장된다. 회화나 조각에 비해 미디어 아트는 잘 보존되지 않는다. 2020년에는 어도비 플래시(Adobe Flash Player)가 완전히 종료된다. 전시 아카이브에 포함된 작품들 중에서도 구동되지 않는 사이트들이 아쉽다. 마치 오래된 책의 소실된 페이지와 같다. 우리에게 ‘디지털’은 영원할 것 같다는 환상이 있다. 그러나 디지털은 영원하지 않다.
성현 : 나한테 네트워크나 웹은 태어난 순간부터 이미 존재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레트로’라는 단어가 잘 와닿지 않았다. 또 온라인 아카이브 프로젝트가 있는데 굳이 가서 봐야 될까? 라는 고민도 있었다. 온라인 아카이브의 양이 더 방대한데 굳이 전시를 보지 않아도 감상평 정도는 지어낼 수 있지 않을까? 인터넷 아트가 왜 미술관에서 전시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고민들은 심포지엄에서 해소되었다.
Q. 전시의 구성은 어떠했나? 디스플레이나 관람에 불편한 점은 없었나?
형윤 : 개인적으로 전시 디스플레이가 굉장히 좋았다. 작품에 사용된 오래된 컴퓨터 모니터가 유년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어 몰입감을 더했던 것 같다.
한결 : 작품 관람을 위한 PC가 한 대씩이라 기다리는 시간도 있고, 1:1의 관람 형식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디스플레이가 전반적으로 한눈에 읽히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웹의 역사를 아카이브 한 공간에서는 세계적인 웹의 흐름과 함께 한국에서 주목할만한 이슈들을 한눈에 비교해볼 수 있어 좋았다.
성현 : 그래서 연표를 먼저 접해서 역사적 순서를 돌아본 후 전시를 관람하면 이해가 더 쉬울 것이라 생각했다. 도슨트 프로그램에 따라 전시를 동선대로 관람하여 이해가 어려웠다면, 역순으로 역사적 자료들을 링크하는 온라인 아카이브 프로젝트와 기술과 사회, 문화를 아우르는 연표를 먼저 관람하여 흐름을 파악하고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보람 : 나는 실수로 아카이브를 먼저 보고 전시를 관람했는데 이해가 더 수월했던 것 같다. 관람객 중에 어린이들이 많았는데 플래시 형식의 작품을 자연스럽게 작동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이들에게는 이러한 환경이 일상적인 것임을 깨달았다. 체험 프로그램이 아닌데도 그들에게 이미 웹은 일상이고 현실이었다. 그렇지만 전시가 관객에게 던졌던 세 가지에 질문에 대한 구분은 모호하게 다가왔다.
Q. 전시는 1990년대에서 지금까지 30년간의 작업들을 되짚고 있다. 그러나 시간에 따라 웹이 변화를 겪으면서 피부로 체감하는 매체의 역할도 달라졌다. 같은 맥락에서 웹을 기반으로 한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변화가 생겼다.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한결 : 과거의 것을 현재의 시점에서 재해석하고, 그 흐름을 연결하고자 시도했다는 점에서 기획 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
보람 : 나 역시 공감한다. 전시의 기획 의도와 그 시도가 좋았다. 웹이라는 매체 자체에도 과거와 현재, 미래가 있다. 전시는 웹에 대한 역사적 흐름을 짚어내고 있었고 앞으로의 웹 연구를 위해서도 필요한 자료로 남을 것이라 생각한다.
형윤 : 웹 자체가 하나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웹도 결국 공간성을 가진다. 그리고 결국에는 낡아서 없어진다는 것이 물질과도 같다. 이번 전시는 아무도 가지 않았던 오래된 폐가를 방문하는 느낌이었다.
Q. 과거의 웹아트, 넷아트는 웹을 택티컬(Tactical) 미디어로 사용해 사회의 감춰진 부분들을 들춰내고 사회적 개입을 꾀하였다. 심지어 인터넷으로 테러 집단을 만들어 활동했던 것이 초기 웹 아트의 움직임이었다. 그때 당시에는 웹은 사람들을 모으고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대안적 공간으로 기능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에게 웹은 이미 일상이고 더 이상 대안적 공간이 아니다
형윤 : 당시에는 작가들이 웹에 대해 가지고 있던 기대가 컸다. 앞서가는 등만 보고 있는 느낌이다. 웹이라는 매체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일상으로 들어온 지금은 우리가 이미 그 실체를 다 봐버렸기 때문에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 줄어들었다.
한결 : 웹이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긴 했지만 동시에 사람들은 웹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모두가 웹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소수의 사람만이 웹을 사용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웹은 이제 모두에게 오픈되어 있고 실용적인 부분이 더 강조되는 창구로 바뀌었다. 대중음악과 비슷하다. 예술을 위한 도구보다 실용적인 도구가 된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그 평가의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
보람 : 매체가 달라졌을 뿐이지 기본은 그대로이다. 앱이나 증강현실처럼 기술적 요소들이 변화했을 뿐, 결국 기반이 되는 것은 웹이다. 기술적인 부분에 집중해서 전시를 관람하면 더 잘 보일 것이다. 프로그램 자체가 웹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미래에도 웹은 건재할 것이고 오로지 기술 발전으로 업그레이드된 웹이 생겨날 뿐이다. 그리고 그 역할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게 될 것이다.
성현 : ‘딥 웹(Deep Web)’ 처럼 일반인들은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웹도 존재한다. 유튜부에서도 소개된 것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불법이긴 하다. 정보의 양에 따라 위계가 결정되는 시점에서 웹은 사용하는 방법이나 의도에 따라 극단으로 갈 수도 있다. 그리고 여기서 예술가와 대중이 나뉘는 지점이 생길 것이다.
Q. 질문을 확장해보자. 웹이 모두를 예술가로 만드는 것에 기여했다고 생각하는가? 예술은 모두에게 열려있는가?
성현 : 심혜련 발제자가 심포지엄에서 했던 말을 인용하겠다. “‘예술이 무엇인가’란 결국 물음을 위한 물음이 되었다.” 무엇이 언제 예술로 인정되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다. 웹이 모두를 예술가로 만드는 일을 촉진시켰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형윤 : 조각과 회화가 미술의 한계였던 과거의 상황을 넘어 웹을 통해 다양한 도구의 사용이 가능해지면서 미술 작품에서의 가능성도 다양해졌다. 과거와 달리 경계는 허물어졌고 대중과 비전문가들이 예술을 판단하는 시대가 왔다. 예술가들의 역할은 무엇인가? 결국 예술가란 무엇인가?
보람 : SNS가 생긴 이후 모두가 예술가가 되는 것에 한 발자국 더 가까워졌다고 느낀다. 대중과 예술가의 눈높이와 예술에 대한 접근성이 비슷해졌다.
한결 : 나는 조금 다른 의견이다. 플래시는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프로그램이었기에 제작도 용이했다. 그러나 웹을 활용한 기술이 발전하고 더 다양하게 보급될수록 이를 아티스틱 하게 쓰는 사람과 일반 사용자의 수준에 차이가 생긴다. 최근에 머신러닝 수업을 들었는데 너무 어려웠다. 오픈소스를 따라 하기만 하면 되는데도 정말 어렵다. 최근에 많이 소비되는 ‘모두를 위한 머신러닝’과 같은 타이틀은 생색내기 같은 느낌이다. 프로그램들은 생각처럼 사용이 쉽지 않고 웹이 발달하면 할수록 고급 기술과 일반 기술의 격차는 점점 벌어진다. 아직까지도 대중과는 가깝지 않다. 정보의 4차 산업혁명과 같은 타이틀을 가지고 장사를 하는 기분이다.
형윤, 보람 : 요즘에는 학교 수업 과정에 코딩이 들어간다고 한다. 우리 벌써 뒤처지고 있는 게 아닐까.
Q. 심포지엄은 어땠나?
성현 : 심포지엄 역시 전시와 마찬가지로 인터넷 아트에서 확장하여 비물질적 특성을 가진 예술에 대한 보전과 포스트 인터넷 아트에 대한 가능성까지 큰 맥락과 지형을 그려보는 데 도움이 되었다. 특히 웹 아트를 왜 미술관이라는 공간 안에서 접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심포지엄에서 해소되었다. 유원준 공동기획자가 기획 초반에 인터넷 아트를 전시하기 위해 작가를 설득하는 것에서부터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한 것이 인상 깊었다. 초기 인터넷 아트 작가들은 저작권에 귀속되지 않고 오픈소스로 다양한 실험을 했고, 또 기존의 권력이나 시스템의 전복을 시도하는 경우도 많아 미술관에서의 전시가 용납되기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20세기 이후에 나타나는 실험들을 정리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로 이 전시가 의미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Q. 우리는 전시를 통해 포스트 인터넷 아트까지의 지형도를 그려보고자 했다. 기획의 과정에서 포스트 인터넷 아트가 무엇인지 한정하는 지점이 애매하고, 또 포스트 인터넷이라는 이름을 부여하는 과정에 주관성이 개입될 여지가 있어 이를 규정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스트 인터넷 아트에 대한 연구는 진행 중이다. 앞으로 포스트 인터넷 아트는 어떻게 될 것이라 생각하는가?
형윤 : 전망을 보았다기보단 회의감이 들었다. 최근의 예술은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의 발달에 따라 오프라인에서 관람되는 형태의 예술작품도 정방형 사진으로 찍혀 온라인으로 올라가게 된다. 이러한 순환구조가 반복된다면 어떤 혁신적인 예술도 결국 사진 한 장이 되어버리는 게 아닐까.
보람 : 유튜브에도 느낄 수 있다. 작가들이 자신의 작업을 영상으로 제작해서 다시 보여준다. 문자나 이미지보다 영상을 보는 것을 더 편리해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인 것 같다.
한결 : 최근에는 가상 인플루언서(Influencer)들이 등장하면서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빈도도 늘어났다. 예술이 상업적인 목적과 맞닿게 되는 상황이 오면서 그 구분이 모호해지게 되는 것 같다. 웹을 통해 대중적 가능성은 얻게 되었지만, 반대로 예술가에 대한 주관적 가치나 지향점과는 다르게 대중들이 원하는 이미지로만 소비될 수도 있다는 위험성을 체감한다.
형윤 : 과거에는 작가가 작품을 만드는 행위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웹이라는 발전 중인 이 매체가 예술가에게 새로운 자연스러운 수입의 구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낙관적으로 전망해본다. 그러나 ‘포스트’라는 단어가 붙는 무언가가 등장하기엔 아직 이르다.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하다. 아직 ‘포스트’의 시대는 도래하지 않았다.
성현 : 심포지엄에서 과학기술대학교 이기석 교수님이 ‘포스트’라는 용어의 문제점을 지적하셨다. 나 역시도 포스트라는 용어가 붙는 지점이 모호하다고 생각한다.
모두 : 포스트 인터넷이라는 개념 자체는 결국 인터넷이 아닌 새로운 매체의 탄생을 기다리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는 다시 옛날 사람처럼 새로운 매체를 기다리고 있다.
Q. 30주년이 된 월드 와이드 웹, 그러나 40주년이 되었을 때 웹의 형태가 지금과 같을 것이라 확신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시점에 웹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30년간의 역사를 상기시키는 전시를 기획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씩 부탁드린다.
보람 : 웹을 기반으로 매체가 다양하게 발전하고 더 많은 데이터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앞으로의 웹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와 새로운 방향에 대해 기대해볼 수도 있었다. 작가 양아치의 <전자 정부>와 뮌의 <아트솔라리스>는 현재 시점에서의 데이터를 추가하여 새롭게 보완되어 전시된 작품들이다. 이러한 프로젝트들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과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결코 헛되지 않은 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결 : 웹 아트를 포함한 전반적인 미디어 작품들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아카이브하고 보존하는 방법들을 연구해야 한다. 미디어 아트는 생명주기가 짧기 때문에 보존을 위한 행위가 수반되어야 한다. 백남준의 <다다이즘>도 비슷한 맥락이다. 기존의 텔레비전을 보존하는 문제 때문에 결국 불이 꺼지고 말았다. 사람들은 미디어를 영원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오히려 미디어는 기술적 환경에 의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결코 불변하지 않는다.
형윤 : 이번 전시에 포함된 홈페이지 아카이브도 그렇다. 영원할 것이라 생각하고 대충 눈으로 훑어보았다. 홈페이지는 영원할 것이라 무의식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현 : 2019년 12월 31일을 마지막으로 어도비 플래시 서비스가 종료됨에 따라 어린 시절 즐겼던 쥬니어네이버(N사)의 플래시 게임들도 다른 콘텐츠로 대체된다고 한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웹상의 데이터들이 이제 사라지고 ‘레트로’라는 키워드에 걸맞은 기억 속 대상이 된다는 것이 얼떨떨할 따름이다. 이제는 데이터의 시간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타이밍이다.
진행, 정리. 문현정 | 앨리스온 에디터
참여. 조성현, 조한결, 조형윤, 이보람 | 이상 앨리스온 수습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