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영상예술의 지형도 그리기
: Part 2. 실시간 영상 합성이 제공하는 예술의 재현성
재현(representaion)은 종종 유사성 또는 일반적인 모방에 대한 문제와 관련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시각적 재현의 문제는 항상 철학적인 표상주의(representationalism)와 연루되어 왔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미술의 재현에 관한 논의에는 전형적인 세 가지 요소가 있다. 그것은 사물, 사물의 실제 이미지, 그리고 심상이다. 이 세 가지 요소 가운데 보통 ‘이미지’로 불리는 세 번째는 정신적인 산물인 미술 작품과 비유되면서 특별한 위상을 갖는다. 그래서 이미지는 항상 어떤 사물과 사물의 실제 이미지 사이에 개입된 표상 그 자체이다. 재현과 표상주의라는 단어는 문자 그대로 ‘현재 present’를 담보한다. 이는 재현을 하거나 재현의 대상이 되는 누군가의 현전은 물론이고, 어떤 것의 현전을 전제한다.1 우리는 어떻게 세계가 우리에게 진실로써 표상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또한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시각 예술 역사에서 사진이 발명되기 전까지 강력한 회화적 환영을 구현하기 위한 절대적 방법은 원근법이었다. 그러나 사진기가 발명되고 난 후 인상주의나 입체파 등은 과거 눈에 보이는 대로 재현했던 회화의 역사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사진이 기존 회화가 지녔던 강력한 현실 재현성을 대체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회화는 사진기의 기능적인 면을 뛰어넘는 인간의 중요한 감각과 지각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이는 가상성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해 보자면 환영적 이미지에서 시각성 이외에 다른 감각, 이를테면 감각이나 지각 등의 다른 감각 요소들의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우리는 이미지를 나타냄과 인식의 순간, 물질적인 사물과 일종의 환영, 어떤 형태나 변형을 동시에 인지하는 것으로서 경험한다. 이미지는 물질적 대상으로서 또는 그 위에서 혹은 그 속에서 나타나지만 동시에 희미하게, 유령처럼 덧없이 나타나기도 하면서, 언제나 거기 있으면서도 없다. 이미지들은 일시성(temporality)을 기반으로 우리와의 만남마다 인식적으로 내장되어 있다.2
Still from google 《Plato’s Cave》
과거 회화적 이미지의 재현은 정지된 사물이나 인물의 재현으로만 고정되지 않았다. 움직이는 인물이나 대상의 재현을 확인할 수 있는데,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나 자코모 발라(Giacomo Balla)의 <줄에 매인 개의 움직임> 등 미래주의 작가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고대 라스코, 알타미라 동굴 벽화에 동일하게 등장하는 동물인 소나 말의 다리 묘사를 보면 대상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표현한 증거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영화가 발명되기 이전부터, 이미지는 언제나 가상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대상으로 존재해 왔음을 기억해야 한다. 플라톤의 그 유명한 <동굴의 비유>에서 보자면, 동굴 벽에 투사된 그림자들은 형상화된 이미지들의 움직이는 행렬에 의해 투영된다. 그것은 우리가 가 본 장소, 마주친 얼굴, 풍경이나 신체, 대지, 반복되는 제스처나 운동 이미지로서 각인된다. 질 들뢰즈(Gilles Deleuze)는 원본(original)과 이미지, 또는 원형(model)과 그것에 대한 복사물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철학이 이후 자신의 영역의 토대를 세우는 플라톤주의의 본질적 특징으로 인식했다. 이 유명한 이야기는 플라톤의 『국가론』3에서 소개하고 있는데, 동굴에 사는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묶여있어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그림자만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들에게는 벽에 비쳐 보이는 모든 것들은 실재하는 것처럼 움직인다. 현재에 동굴 벽을 비유하자면 영화 스크린이나 컴퓨터 모니터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진짜처럼 보이는 그 가짜들은 실재를 위장한 ‘가상의 존재’로 기술로 매개되어 우리에게 표상하며 인식된다.4 철학적으로 따지자면, 동굴로 비유되는 가상적 세계는 인식론적으론 거짓이고, 존재론적으로는 열등한 세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상적 이미지들은 물질성으로부터 해방되고, 스스로 자기생성적 존재로 전환된다. 물리적 현실과 독립된 또 하나의 현실이 존재하는 인식이 형성된다는 말이다.
이미지가 표상하는 이 메커니즘에서 기술적 이미지들은 어떻게 작동하고 인지되는가? 이미지는 다른 이미지를 생산한다. 가령 영화 이미지는 그림이나 사진으로 된 이야기로 존재하며, 광고 그 자체도 다른 이미지, 다른 광고, 예술작품, 텔레비전 이미지, 과학적 영상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다. 텔레비전도 공유의 이미지 외에 회화, 합성 이미지, 사진 등 다른 영상들을 담아내고 있다. 이러한 이미지의 사용방식(매체마다 여러 다른 영상 이미지들을 적극 활용하는)으로 비추어볼 때, 매체적 이미지는 그 자체와 관련을 맺을 뿐 어떤 현실과도 관련을 맺지 않으므로 스스로 자동 지시체계를 구성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디지털 기술을 전제한 영상 이미지는 단순히 동시대 물질문화의 ‘인포스케이프(infoscape)’를 조작하는 도구를 제공하는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과정’이자 ‘정보’로서 표상한다. 요컨대, 그러한 이미지는 정보가 체현된(embodied) 경험을 통해 지각할 수 있도록 만들어지는 종합적 과정으로 확장되고 있다. 결국엔 ‘이미지가 어떻게 표상되는가’하는 문제가 중요하다. 표상의 방식은 곧 우리의 세계관과 상상력의 종합과 체계로부터 온다. 또한 이미지를 만드는 방법을 안다는 것은 문화적으로 구체적인 수많은 행동을 공간과 목적에 맞게 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미지의 해석이나 이해는 분석적인 분리와 표상된 세계에 대한 해석만이 아니라 이미지를 제작하고 사용하는 환경 일반의 문맥과 그 조건을 재구성하는 것일 게다.
매체학자인 귄터 안더스(Gunter Anders)5는 거대 기기화된 세계는 인간을 기기 앞에서 수동적이며, 대중문화 속에서 인간은 문화를 향유하고 비판하는 것이 아닌 수동적인 이미지 소비자에 머무른다고 보았다. 안더스는 이러한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텔레비전이라고 보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텔레비전은 당대 가장 최신의 기술이었고, 이미지를 재현해주는 매체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때의 텔레비전은 지금의 컴퓨터, 스마트폰 등 디지털 디바이스의 위상과 동일하다. 이런 기술적 매체에 의한 이미지는 결국 유령, 환상과 같은 것인데6, (우리는 사진 원본과 포토샵이나 CG에 의해 변화된 이미지들을 구별해서 인식하지 못한다) 말 그대로 실제 세계가 기술 매체를 거쳐 방영 혹은 재현됨으로써 자연스럽게 그것을 실재 세계로 인식하는 부분이 발생한다. 무수히 편집되고 재생되는 이미지로서 가상적이지만 완벽한 가상도 아닌 ‘하나의 재현된 사건’이며, 이러한 세계는 존재론적으로 모호성을 띄게 된다. 이러한 모호성은 현존과 부재가 섞여 있는 현실로 치환된다. 이미지를 보는 순간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이미지 속의 대상이 지금-여기 존재하는 않는다는 일종의 역설적 사실이다. 예로, 영화가 움직이는 이미지로서 청각과 결합할 때, 촉각이라는 새로운 지각 감각이 탄생한다. 그리고 그러한 촉지각적 상황이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 속 세계가 객관적 세계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이 촉각적 지각은 즉각적 존재감과 현실감을 부여해서 이미지를 보는 순간 하나의 객관적 세계가 우리 앞에 존재하고 전개되고 있음을 의심하지 않게 한다. 기술이 진화하면서 최근에는 이 객관적 세계를 기술적으로 조작하는 새로운 상황과 직면했다.
Synthesizing Obama: Learning Lip Sync from Audio Supasorn Suwajanakorn,
Steven M. Seitz, Ira Kemelmacher-Shlizerman SIGGRAPH 2017 https://www.youtube.com/watch?v=9Yq67CjDqvw
2017년 알고리즘을 통한 합성 영상이 뉴스에서 등장했던 사건이 있었다. 유투브에 업로드된 영상 타이틀은 <You Won’t Believe What Obama Says In This Video!>이다. 화면에 등장한 오바마는 “킬몽거는 옳았다(Killmonger was right).” “트럼프 대통령은 완전히 애 같다(President Trump is a total and complete dipshit).”와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영상 후반에 어떤 남자가 등장해 자신이 목소리를 입히고 있음을 밝힌 후에도, 영상은 여전히 거짓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정교하다. 미국 전대통령이 현재 정권의 대통령을 비난하는 영상은 많은 여론을 형성했고, 당연히 많은 화제와 정치적 문제를 낳았다. 동영상은 버즈피드(BuzzFeed)라는 인터넷 매체가 영화감독인 조든 필(Jordan Peele)과 함께 인공지능 기술로 얼굴과 목소리를 합성해 만들어낸 가짜 오바마다. 컴퓨터가 데이터를 축적해 학습하는 딥러닝 방식을 활용, 거짓으로 만들어낸 ‘딥페이크(deepfake)’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취지에서 제작한 것이다. 필 감독은 “오바마 전 대통령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라고 밝히며 “가짜 동영상의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리기 위해 이 같은 영상을 만들었다”라고 설명했다.
수파손 수와자나콘, 캐나다 벤쿠버에서 열린 2018 TED 컨버런스에서 강연하는 모습 © TED
같은 오바마의 이미지로 만들었지만, 예술작품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경종을 울리는 사례도 있다. 구글 연구원이자 미디어아티스트인 태국 출신의 수파손 수와자나콘(Supasorn Suwajanakorn)은 <Synthesizing Obama: Learning Lip Sync from Audio-GRAIL>(2017)에서 미국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마바의 연설 장면들로부터 이미지와 사운드를 추출하고 이를 머신러닝을 통해 실시간으로 영상을 합성하는 장면들을 재현한다. 그가 대학 시절부터 연구 개발한 인공지능 신경망 기술로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인터넷상에 공개된 고화질 비디오 화면과 음성 관련 자료들을 수집한 후, 인공지능 신경망 기술(GAN)7을 이용해 말하는 사람의 입술과 치아, 턱 등의 움직임을 분석해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가짜 동영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는 이런 방법을 통해 오바마 전 대통령이 연설하는 ‘가짜’ 동영상을 창조했다. 수와자나콘은 지난 4월 캐나다 벤쿠버에서 열린 ‘2018 TED 컨퍼런스’에서 “실제 사람들의 가짜 동영상과 그것을 구분하는 법 Fake videos of real people — and how to spot them” 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면서 마지막에 “이 기술은 교육용 등 좋은 면으로 쓰일 곳이 많지만, 나쁜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 가짜 뉴스를 만들어 내지 않도록 아주 조심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실시간 영상 합성의 다른 예를 보자. 실시간(realtime) 게임 엔진 ‘유니티'(Unity)는 전세계 600만명 이상의 개발자가 사용 중이라고 한다. 모바일 게임의 절반이 유니티로 만들어지고 있다지만, 유니티의 영역은 게임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문화예술에 사용되고 있다. 유니티와 게임 엔진 계에 쌍벽을 이루는 ‘언리얼 엔진(Unreal Engine)’ 역시 최근 실시간 합성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다른 확장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게임쇼 GDC 2018에서 가장 주목을 끈 부스가 바로 ‘실시간 모션캡처 기술’을 선보인 미국의 에픽게임즈였다고 한다. 새롭게 선보인 기술은 3차원 게임 솔루션 ‘언리얼 엔진’과 Vicon 소프트웨어 그리고 ‘큐빅모션(Cubic Motion)’ 기술로 탄생한 디지털 휴먼 ‘사이렌(Siren)’이다. 사이렌은 다른 3D 그래픽 솔루션들처럼 컴퓨터를 활용해 인위적으로 구현한 것이 아닌 사람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는 아바타이다.
Still from Siren Real-Time Performance | Project Spotlight | Unreal Engine
이러한 경험을 통해 관객들은 현실 속으로 침투하고 있는 가상적 이미지들을 마주하며 이미지의 존재론적 위상의 변화를 떠올리게 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리는 ‘보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고 또한 진실이라 믿는다. 가짜가 진짜로 인식될 수 있는 이러한 상황은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새로운 이미지의 세계로 변모하고 있고, 그 속도 또한 가속화되고 있다. 온라인에 공개된 이미지나 원본 영상의 리소스는 영상 합성이 용이할 수 있게 제공하고, 우리는 가짜 비디오를 완벽하게 구별하기 더 어려워지는 상황에 몰린다. 과거 ‘있는 그대로의 사건’을 전달하는 영상 매체는 이제는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고 믿는 것’들에 대한 우리의 절대적인 믿음에 균열을 일으킨다. 또한 이미지 편집과 조작에 대한 문제 제기할 뿐만 아니라, 이 모든 허상은 여전히 유사성의 존재들로서, 재인이라는 현실적 지각의 경계인 동시에 통로로 작동한다. ‘보여줌’과 ‘의미 작용’의 과정 사이에서 적합한 연결 접속으로부터 제거되거나 더해진 ‘사건’과 ‘상황’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오로지 ‘깨어있는 자’만이 동굴을 탈출해서 사물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총체적인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으며, 무엇이 현실을 매개하고 있는지를 발견할 수 있다. 미디어는 재현과 속임수의 체계를 만들어내며, 눈먼 시각은 그 체계와 결합한다. 그래서 우리는 매개되지 않은 지식의 시각적 환상에 동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각의 불안한 우위에도 불구하고 ‘보이는 것’이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다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서 시선을 돌려버리거나 차라리 눈을 감아 버리는 것이 오히려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는 길일지도 모른다. 오이디푸스의 눈처럼.
이렇게 최신의 기술을 이용하여 지시대상이 필요치 않게 되었다고 해서 이미지가 홀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선 근거 사례만 보더라도 플루서가 기술적 형상을 언급하며 조건 지었던 ‘장치(Apparatus)’라는 선행 요건과 그러한 이미지와 연동되는 ‘기술적 상상력’이 간절히 요청되는 순간들이 있기 마련이다.8 그래서 예술이 이로부터 취해야 하는 성취는, 보이지 않고, 숨어 있으나 분명 ‘존재하고 있는’ 그 너머의 세계를 드러내 주는 것이리라. 결국 그 역할은 장치를 사용하는 창작가에게 주어진다. 기술적(혹은 장치적) 재현은 결국 예술가를 포함한 모든 창작자 및 사용자들의 주체적 지각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의 유형으로 작동하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해로울지 이로울지 모를 차원에 머무르면서 말이다. 그래서 사물에 대한 보편적 평등의 감각으로서의 이러한 지각의 추출은 결국 ‘모든 대상의 외피를 벗겨내는 것’이라는 벤야민의 통찰력처럼, 그 본질을 비평할 수 있는 것은 새로운 유형의 지각이 작동하는 주체 영역 안에서 올바른 층위 안에 머물러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대의 이미지를 본뜬 유토피아의 조각들은 변증법적 종합의 순간으로서 우리 앞에 있다.
그러나 이 종합을 띄어 넘는 것들의 존재들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는 현실과 마주하고 있는 요즘이다. 이제는 실재가 왜곡, 변형된 합성을 뛰어넘어, ‘원본 없는’ 이미지의 등장으로 이제는 실재의 권위가 무용한 것이 되는 세계에 있다.9 완벽히 가상적 존재인 것들의 지위가 실재의 것들보다 높아지고, 실재의 존재가 필요 없는, 그래서 ‘진짜처럼 된 것’의 세계에서 우리가 종국에 마주하는 것은 점점 ‘사라지는 실재’일 것이다.10 문제는 점점 실재가 소멸하는 세계에서 더 이상 ‘실재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인식이 가져올 변화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이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가 보는 것은 실재인가?’, ‘실재가 과연 실재인가?’라는 반성적 질문을 해야 하는 상황에 서야만 할 것이다.
글. 정세라 | 더 스트림 디렉터
* Supported by 예술경영지원센터
* 이 글은 예술경영지원센터 『시각예술 비평가-매체 매칭 지원 』 의 일환으로 쓰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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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ances:
빌렘 플루서, 김성재 역, 『코무니콜로기』. 커뮤니케이션 북스, 2001
로버트 S.넬슨, 리처드 시프 편저, 정연심 외 번역, 『꼭 읽어야할 예술 비평용어 31선』, 미진사, 2015
W.J.T 미첼, 마크 B.N.핸슨 편저, 정연심 외 번역, 『미디어 비평용서 21』, 미진사, 2015
https://en.wikipedia.org/wiki/Generative_adversarial_network
https://www.youtube.com/watch?v=NW6mYurjYZ0
https://www.youtube.com/watch?v=cQ54GDm1eL0
https://www.youtube.com/watch?v=9owTAISsvwk
https://khshim.wordpress.com/2016/09/30/generative-adversarial-networks-3/
https://www.bloter.net/archives/311614
http://t-robotics.blogspot.com/2017/03/gan-unsupervised-learning.html#.XBEvJktoTeQ
https://www.samsungsds.com/global/ko/support/insights/Generative-adversarial-network-AI.html
https://www.samsungsds.com/global/ko/support/insights/Generative-adversarial-network-AI-2.html
https://www.samsungsds.com/global/ko/support/insights/Generative-adversarial-network-AI-3.html
https://www.unrealengine.com/en-US/events/siren-at-fmx-2018-crossing-the-uncanny-valley-in-real-time
https://www.unrealengine.com/ko/events/siren-at-fmx-2018-crossing-the-uncanny-valley-in-real-time
https://www.polygon.com/2018/3/21/17147502/unreal-engine-graphics-future-gdc-2018
http://www.animationboss.net/unreal-engine-creating-believable-characters/
- 로버트 S.넬슨, 리처드 시프 편저, 『꼭 읽어야할 예술 비평용서 31선』, 미진사, 2015, p.22-23 참조 [본문으로]
- 현상학자들은 우리가 이미지의 시작이라고 부를 법한, 그에 대한 인식 순간,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이 “상의 여명 dawning of an aspect”라고 부른 “다시 보기”나 뒤늦은 반응에 주목한다. W.J.T 미첼, 마크 B.N.핸슨 편저, 『미디어 비평용서 21』, 미진사, 2015, p.67 참조 [본문으로]
- 플라톤의 정치학적 주저로 기원전 380년경에 소크라테스 주도의 대화체로 쓰여졌다. 왜 철학자가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지를 대답하는 과정에서 소크라테스는 그 대답의 중요한 부분으로 동굴의 비유를 『국가론』 6-7 권에서 제시했다. 영문판 타이틀은 『The Republic』이다. [본문으로]
- 그래서 플라톤은 동굴벽에 그림자로 재현된 이 거짓의 표상의 세계를 빠져나와 참된 실제 세계를 만났을 때 우리는 진리에 더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고, 종국에 ‘이데아’의 세계가 ‘참된 세계’로서 그렇다는 것이다. [본문으로]
- 귄터 안더스는 ‘인간의 골동성(Die Antiquiertheit des Menschen)'(1956)이라는 에세이를 통해 ‘텔레비젼’이라는 매체를 중심으로 현실과 가상의 문제를 제기한다. 텔레비젼은 말그대로 ‘텔레[tele]’와 ‘비젼[vision]’의 합성어로 보다 먼 곳을 인공위성이나 전기신호를 거쳐 보여주는 매개체이다. 아날로그 매체가 대중문화의 시대를 열었다고 한다면, 그러한 변화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매체는 TV일 것이다. 이는 공적인 세계가 가장 사적 공간으로 침투하는 역사적 사건이다. ‘인간의 골동성’은 아직 국내에 번역서는 없다. 많은 매체미학서나 미디어이론서에 리퍼런스로 자주 언급되고 있고, ‘골동성’ 혹은 ‘골동품성’이라고 번역자마다 한국어 표기가 상이하다. [본문으로]
- 안더스는 텔레비젼을 팬텀과 매트릭스의 세계로 묘사한다. 그래서 텔레비젼은 실제 세계를 팬텀-버전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편집한다는 것. [본문으로]
- GAN(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 우리말로 생성적 적대 신경망이라고 불리는 연구 결과다. 구글 브레인에서 머신러닝을 연구하고 있는 이안 굿펠로우(Ian Goodfellow)가 2014년 머신러닝 분야 세계 최고 학회중 하나인NIPS 학회에서 발표한 뒤로 GAN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후속 연구와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딥러닝의 대가이자 페이스북 AI 연구팀 리더인 얀 르쿤(Yann Lecun) 교수는 GAN을 최근 10년간 머신러닝 연구 중 가장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꼽았다. wikipedia 참조.. *GAN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이 글의 참고 링크를 확인해 보시길 바란다. [본문으로]
- 빌렘 플루서, 김성재 역, 『코무니콜로기』. 커뮤니케이션 북스, 2001, p.226 참조 [본문으로]
- 일본의 ‘하츠네 미쿠’ 같은 존재들은 완벽한 가상적 존재이다. ‘보컬로이드’라는 엔진을 통해 탄생한 가상 아이돌이다. 하츠네 미쿠의 영향력은 가히 어느 아이돌 가수 못지 않다. 전세계로 콘서트를 하러 다니고, 그녀의 궂즈는 엄청난 수익을 창출한다. 실제 콘서트 장에서는 ‘홀로그램’으로 등장한다. 물론 관객들은 실재 우리 인간이다. 일본에서는 여러 기업의 TV와 지면광고의 CF모델로 기용했고, 세계 유명 패션디자이너들이 그녀를 위해 의상과 구두, 가방 등을 디자인해주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토요타와 세븐일레븐이다. 그리고 2015년에는 일본의 유명 가수 아무로 나미에가 미쿠와 함께 콜라보레이션 디지털 싱글음원을 공개했다. 이 역시 유투브에 뮤직비디오(디지털 애니메이션)가 공개되어 있다. 구글링으로 하츠네 미쿠를 검색하면 ‘그녀’가 콘서트하는 영상도 확인할 수 있다. 거대한 콘서트장에서 야광봉을 휘두르며 미쿠의 노래를 목청컷 부르는 군중을 확인해 보시라. 이들에게 하츠네 미쿠는 실재하는 존재이지, 가상이 아니다. [본문으로]
-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시뮬라크르’의 다섯 번째 단계로 언급했던 ‘하이퍼리얼’의 세계이다. 보드리야르, 하태환 역, 『시뮬라시옹』, 민음사, 1996 [본문으로]
출처: https://aliceon.tistory.com/3022?category=220749 [국내 최초 미디어아트 채널 :: 앨리스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