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수 작가는 컴퓨터 기반의 디지털 이미지, 3D 애니메이션을 통해 본격적으로 현실과 가상 사이의 문제를 드러내는 작가이다. VR 장치가 지닌 물질적 구속성으로부터 2019년, 더레퍼런스에서의 개인전 《이음새 없는 세계》를 선보였던 작가는 인천아트플랫폼에서의 《임시극장》(2020)에서는 다소 이데올로기적으로 인식되는 판문점이라는 실재 공간을 가상의 공간으로 간주하여 그 속에서의 허구적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하였다. 최근(2021년 10월)에는 근작들을 모아 《언더커런트 Undercurrent》라는 이름의 개인전을 개최하였는데, 이전까지 작가가 제시해 온 실재와 가상 사이의 간극에 관한 문제 및 그로부터 야기되는 현실에 관한 인식을 건드리는 작품들을 공개하였다. 본 인터뷰는 《언더커런트 Undercurrent》展을 앞두고 이병수 작가의 신작 및 과거 작품들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진행되었다.
Q. 안녕하세요. 작가님에 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디지털 이미지와 3D 애니메이션, 그리고 VR 등을 통해 미디어 환경 속에서 장소를 경험하고 재현하는 방식에 대한 작업을 하는 미술작가 이병수입니다. 하나의 장소와 그와 관 계된 현실 속에서 불확실하고 규정되지 않은 것들의 인과관계를 사유하고 이를 픽션의 작동 방식으로 비틀어 구현하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Q. 평소에 작품을 구상하시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넓은 관점에서 미술에 대한 생각을 하는 편입니다. 이를테면 오늘날 미술의 위치(개념, 위상 등)과 그 역할은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인데요. 미술만이 할 수 있는(다룰 수 있는) 것, 혹은 미술로 질문 가능한 문제들을 고민하는 것 같습니다. 이창동 감독이 어느 인터뷰에서 질문 의 내용보다는 어떻게 질문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질문이 의미를 갖고 힘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질문하는지가 관건이라는 것인데, 그 말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제 작업은 장소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묶을 수 있지만 장소에 따라 작업이 다루는 내용은 달라질 수 있는데, 이를 표현하는데 있어 내용을 전달하는 방법과 형식을 고민하는 편입니다.
Q. 작가님의 예전 작업부터 현재의 작업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디지털 세계에서 경험하는 실재와의 (공간적-경험적) 괴리가 많이 나타나는 듯합니다. 이에 관한 보충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세계에서 경험하는 공간과 실제 경험과의 차이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 그 둘을 동일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터넷 지도 서비스나 내비게 이션 같은 기술이 일상에 스며들며 디지털과 현실을 중첩시키는 역할을 하였는데, 이와 같 은 사용자 경험이 익숙해질수록 우리는 갈 수 없는 현실의 장소까지도 디지털로 재편집된 이미지를 통해 가상의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자연스러운 인식 이 흥미로운 질문거리라고 생각합니다. 기술은 점점 비매개를 향해 나아가고 있고 이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우리의 인식은 과거 재현이라는 측면에서 미술이 추구했던 표현들과 그것을 즐긴 사람들의 욕구처럼 본능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까요. 아니면 오늘날의 여러 시스템에 의해 개인적 경험이 소멸되고 관념적, 추상적 경험으로 대체되어 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자연스러움의 기술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가능하니까 구현해보자라는 기술 만능주의의 결과 같은 것일까요. 각각 서로 다른 복합적인 이유와 목적이 있겠지만 디지털과 현실의 중첩 및 괴리는 당장 우리가 겪는 일이고 현실에서 다양한 양태로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리 새롭지 도 않은 문제입니다. 그러나 익숙하기 때문에 저는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작가님의 이전 작업들, 가령 거주했던 동네의 주변부를 주목하고 기록하였던 2010-11년의 작업들(<에피소드>2010, <독산십이경>2011) 그리고 하 나의 장소에서 발생하고 서로 부딪히는 다양한 주장과 믿음들을 사회적 맥락에서 쫓았던 2012년의 작업들(<관악산 호랑이>2012, <인식의 각도>2012)은 현실의 맥락을 충실히 드러 내는 작업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2014년 이후 작가님의 언급처럼 작품의 주요한 공간 이 실제로 접근하기 어려운 장소들을 재현하고 그 너머의 가상영역으로까지 이어졌는데요.(<메이드 인 안타티카>2014, <우리 세계를 위한 송시>2018, <이음새 없는 세계>2019, <임시극장>2020)) 이렇게 작품의 흐름이 연결되는 이유가 있다면요?
2010-12년 작업에서 다루었던 장소는 당시 스튜디오와 지근거리에 있던 비교적 오랫동안 지나다니고 관찰했던 장소입니다. 가까운 만큼 그 장소와 연관된 사건들과 장소 속 존재들 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고 그것에 관심을 기울였던 것 같습니다. 2014년 이후부터는 저의 작업 여건과 생활 조건이 변화하며 장소 안의 사라지는 존재들에 대한 관심에서 다다르기 어려운 장소들을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이동이 자유 로운 상태에서 그렇지 못한 상태가 되면서, 장소에서 작업을 시작하더라도 직접 가지 않는 방식을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2014년 남극을 배경으로 진행한 <메이드 인 안타티카>가 그 시작점이 될 것인데, 노마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준비하며 현지에서 진행하고자 기획한 작 업들이 지원단계에서 주최 측의 문제로 무산되어 계획으로만 남게 되었고, 이를 실제 장소 가 아닌 장소에서 시뮬레이션하며 원래 작업 계획과는 다른 해석의 층이 생겨난 것이 흥미 로웠습니다. 이를 계기로 갈 수 없는 곳, 접근하기 어려운 장소들을 재현하는 방법은 무엇일 까 고민하였습니다.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면서 제가 접근할 수 있는 경로는 직접적인 답사 와 탐사보다는 매체를 통한 리서치와 대리 경험의 형태로 변화하게 되었는데, 이는 오늘날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보다 적극적으로 이것에 대 해 탐구해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Q. 작가님의 작업을 ‘장소와 장소 바깥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작업’으로 정의한다면, 여기서 디지털 미디어 환경이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요? 가령 2019년의 <Double Bind>와 같은 작업에서 실재와 가상을 이중적 속박 구조로 보고 있는 작가의 시선이 느껴지는데요. 관련 설명 부탁드립니다.
매체는 우리가 대상을 인식하는 방식에 직접 관여하며 또한 그것이 단지 대상의 정보를 전 달하는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매체 고유의 방식으로 변화시킨 다는 매클루언의 지적대로, 디지털 미디어 환경은 실제의 장소를 물리적 거리에서 해방시켜 보다 편리하게 우리에게 제공하지만 그만의 방식대로 우리의 경험은 제한되고 특정됩니다. 사진도 그러했고 영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장치들은 놀라운 발견처럼 새로운 시각의 지평 을 열어주었지만 이윽고 장치들이 우리의 인식의 틀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이중 구속(Double Bind)>이 구현한 VR영상 속 360도의 가상 세계와 그것을 지탱하는 마 주보기 방식의 물리적 구조물은 두 세계(가상과 실재, 시각과 신체)의 충돌을 야기하는 효과 를 기대하며 구상하였고(VR을 마주보는 두 사람이 영상 속 스팟 조명을 따라 움직이면 연 결된 구조물을 통해 서로가 서로의 움직임을 방해하게 되는 형식), 장치(매체)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Q. 작품을 구상하시면서 디지털 미디어의 활용을 염두에 두고 계시나요? 이병수 작가님의 경우, 작업의 내용 측면에서도 앞서 질문처럼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 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작품의 형식과 내용이 밀접한 연관 관계 속에서 구상될 것 같은데요. 이에 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최근에는 작품의 구상단계부터 디지털 매체를 주요한 형식으로 고려하기 때문에 이전보다 형식과 내용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편입니다. 비유하자면, 이전에는 내용이라는 입구로 들 어가 내용을 뒷받침하는 형식의 출구로 나왔다면, 지금은 시작부터 형식이라는 입구로 들어 가는 것이죠.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형식이 내용의 일정 부분을 재단하거나 규정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주로 컴퓨터 3D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애니메이션과 시뮬레이션을 구현하는데, 수학적 계산을 통해 시각적 결과물이 만들어지는 툴의 특성상 입력 수치 값 등을 직관적으로 파악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수치 값을 여러 차례 조정하면서 원하는 시각적 결과물을 도출해내 다 보니 예상치 못한 결과들이 종종 화면으로 나타나기 마련이고 그것들이 작업의 내용에 있어 많은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매체의 속성이 작업의 특정한 결과로 이어지는 것인데 이 것은 비단 오늘날 기술만의 문제는 아니고 프레스코나 유화와 같은 과거의 매체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특징이라 생각합니다.
Q. 이병수 작가님은 하나의 일상적 혹은 비일상적 장소를 상정하고 이곳을 중심으로 일련의 이야기 구조를 풀어내는 방식의 작업을 진행하시는 듯 합니다. 이러한 특성은 지난 <Made in Antarctica>에서 잘 드러났었는데요. 이러한 작업 방식에 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제 작업에서 다루는 장소를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비가시적 장소’라 할 수 있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혹은 인식하기 어려운 장소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단지 보기 힘들고 가기 어렵기 때문이기보다는 여러 목적으로 인해 우리의 관심에서 벗어났거나 은폐된 상태로 유 지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러한 장소의 성격을 규정하는 현대적 요인들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그곳에서 작업의 아이디어를 얻는 편입니다. 또한 이러한 장소들은 비가시적인 성격으로 인해 여러 상상의 요소들을 풀어낼 수 있는 장이 됩니다. 때문에 저는 ‘비가시적 장소’의 성격을 리서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그곳에서 일어날 법한 내러티브를 구성하여 허구적으로 개입하는 상황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임시극장 4K computer-generated video, 11:05, 2020
Q. 지난해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선보였던 <임시극장>의 경우, 위와 같은 문제의식이 이데올로기적 성격의 장소에서도 투영되는 듯 보입니다. 어떠한 이야기가 하고 싶었나요?
<임시극장>은 군사보안시설로 촬영이 엄격하게 제한되어 특정한 몇몇 이미지로 각인된 판 문점을 3D 애니메이션을 통해 새롭게 환기하고자 시도했던 작업입니다. 판문점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이면서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판문점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많은 절차와 불편함을 수반하지만 그 이미지는 많은 보도사진과 뉴스 등을 통해 수없이 소비되어 왔습니다. 그만큼 가깝게 느껴지는 판문점은 실상 이념적, 정치적 이벤트의 현장으로 기능할 때마다 갈등과 긴장 그리고 화해와 협력의 이미지로 포장되었습니다. 하나의 장소가 이미지로 기억된다면 그것이 실제의 현장이든 가상의 세트이든 무슨 상관일 까요. 저는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들었고 판문점에서 일어날 수 없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을 작업으로 구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떠한 상상을 하건 판문점을 배경으로 하면 그것은 이데올로기적인 해석이 뒤따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임시극장>은 3D 모델링과 프로그 래밍을 통한 표면의 이미지일 뿐입니다. 한없이 무겁고 엄숙한 대상이 이미지만 남더라도 그 힘은 유지되기 마련인데 오늘날도 여전히 그러한지는 의문입니다.
Q. 작품의 제목이 ‘임시극장’이고 영제로는 ‘Temporary Fiction‘인데요. ‘임시적’이라는 수식을 사용한 이유 그리고 ‘극장’, ‘Fiction’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판문점의 회담장 건물 명칭은 T1, T2, T3로 T는 Temporary의 약자입니다. 판문점이 만들어 질 당시 휴전회담을 위한 임시 건물로 지어졌기에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아이러 니하게도 이 가건물들은 약 70년 동안 유지되고 있습니다. 극장, 픽션이라는 제목은 판문점 이 연극의 무대처럼 보인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떠올린 것입니다. 저는 판문점이라는 장소가 입체적으로 다가오기 보다는 늘 하나의 플롯을 따라 진행하는 극의 배경같이 느껴졌 습니다. 북한은 북한대로 남한은 남한대로 그들의 각본에 맞춰 연출하는 무대라고 할까요. 그래서 작품제목을 판문점에서 벌어지는 일시적인 연극을 암시하는 “임시극장”, “Temporary Fiction”으로 지었습니다.
Q. 작가 노트를 보면 ‘2018년 개인전 이후로 3D 컴퓨터 그래픽스 이미지와 이를 활용한 영 상을 주요한 매체로 다루면서, 재현의 논리를 이탈한 기존의 재현과는 차별화된 디지털 이 미지의 비재현적 속성에 주목하고 있다’고 하셨는데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디지털 이미지의 비재현적 속성은 어떠한 것인가요?
마노비치(Lev Manovich)에 따르면 디지털 이미지가 재현하는 대상은 물리적 현실이라기보다 물리적 현실을 지배하는 법칙성이고, 디지털 이미지가 실재 대상으로서 존재했었다는 지표성을 갖는다고 하더라도 그 효과는 일시적이고 지속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저도 그의 생각에 공감하고 있 습니다. 컴퓨터 생성 이미지는 놀라운 시각적 유사성을 바탕으로 우리 인식 체계에 자연스 럽게 스며들지만 본질 자체는 비물질적 데이터입니다. 그리고 그 데이터가 현실의 대상을 매우 사실적으로 재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허구라는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비재현적 속성이 부각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자면 에드 엣킨스의 영상 작품에서 인간들이 차곡차 곡 쌓여있는 샌드위치의 모습이라든지, 자신의 코와 귀를 반복적으로 떼어내는 사람의 모습 등은 사실적인 그래픽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디지털 매체만이 표현할 수 있는 장면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저는 디지털 이미지가 현실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상의 사실적인 재 현이 가능하다는 특징과 동시에 오직 디지털 세계 안에서만 가능한 가상을 보여주는 교차점 에 흥미를 느낍니다.
<언더커런트>, 3D Animiation, 2min 45sec, 2021
Q. 전시명 및 작품명이 ‘Undercurrent’입니다. 어떠한 의미가 있나요? 현재에 숨겨져있는 무엇 인가를 유추하게 만드는 말처럼 느껴집니다.
‘Undercurrent’는 거의 인식하지 못하지만 생각이나 행동에 영향을 주는 드러나지 않는 흐름, 기운 등을 뜻하는 말로, 주로 부정적인 상태의 어지러운 분위기를 연상시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일어날지 모르는 많은 위협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 위협은 매우 실 재적이기도 하지만 뚜렷하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위기가 미디어를 통해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는 상태에서 커지는 것은 개인의 불안과 공포입니다. 크게는 전쟁이나 대규모의 재난에 대한 근심부터 작게는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심리적 압박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늘 무엇인가를 경계하는 상태에서 살고 있습니다. 2020년초 코로나 팬데믹이 도래할지 누가 예측할 수 있었을까요. 하지만 따져보면 꽤 오래 전부터 전문가들은 바이러스의 세계적 창궐이 이동과 물류 시스템이 갖추어진 이후 언제라 도 발생 가능한 위험요소라고 판단하였습니다. 단지 그 활성 트리거가 언제인가를 정확히 맞추기 어려울 뿐이었죠. 저는 현대사회를 지탱하는 구조들이 이러한 위험상태를 잠재적으 로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undercurrent는 위와 같은 현재를 지칭하는 적절한 용어가 아닐까요.
Q. 작품 속에 등장하는 ‘지하 벙커’와 같은 시설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재전유된 장소성을 지니는 듯 합니다. 이를 작가는 어떻게 정의하고 있나요? (여전히 벙커를 안전을 위한 공간 만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인가요?)
과거 벙커의 대다수는 국가의 관리 하에 운용되는 시설이었지만 전쟁과 적의 개념이 시대에 따라 변화하며 지어질 당시의 본래 목적을 상실한 경우가 있습니다. 미국 중부의 지하 핵미사일 사일로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냉전이 극에 달하던 시기 미 본토의 가장 안전한 입지인 내륙 중심지에 배치되었던 미사일 사일로는 이념 경쟁이 약화되고 핵을 감축 하는 상황에 따라 폐쇄되어 민간에게 매각되었습니다. 벙커시설을 매입한 민간 개발업자들은 국가가 보증하는 이 안전한 벙커를 세계 종말을 대비한 현대판 노아의 방주로 홍보하며 새로운 구입자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주인이 바뀌었지만 폐기된 벙커의 용도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거대한 폭발과 외부 충격으로 부터 내부를 보호하기 위해 건설된 벙커 시설의 특성상 그 안을 다양한 방식으로 바꾸어 사 용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지상으로부터의 어떠한 위협에도 대비가 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벙커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가장 비싸게 홍보할 수 있는) 방식은 대피와 보존 을 위한 본래의 목적을 유지시키는 것입니다.
Q. 만약 현재의 시점에서도 ‘안전’을 위한 시설이라고 정의한다면, 현재의 시점에서 그것을 필요하게 만드는 위기 혹은 위협은 분명 다른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이에 관한 작가의 생각 은 어떠한가요? (<언더커런트> 에서 표현한 ‘동시대의 공포와 불안’의 근거는 무엇인가요?)
앞서 언급한 현대사회의 구조가 내재한 불안정성이 동시대의 공포와 불안을 야기하는 원인 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더니티는 보다 나은 인류의 미래를 약속하였고 일정부분 현실화되었 지만 아직도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또는 예측하였더라도 멈출 수 없는 위험요소들이 존재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근원은 인간의 무한한 욕망일 것입니다.
Q. <언더커런트>에서 벙커 내부에 보관되어 있는 고가?의 미술품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인 가요? ‘오늘날 우리 사회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과 그것들의 관계’라고 한다면 작가는 그 러한 가치 혹은 관계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나요?
저는 미술이 인류가 걸어온 역사를 반영하는 가장 직관적이면서 원초적인 예술의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각 시대의 미술은 당대의 시대정신을 담고 있으며 그것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형태로 남아있습니다. 그렇기에 어떠한 충격에도 무너지지 않는 벙커 내부에 보관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미술작품이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언더커런트>에 등장하는 특정 작품에 대한 의견은 보는 사람들에 따라 달리 해석되길 바랍니다. 사실 그 작품은 실제도 아닌 그래픽일 뿐입니다.
<하강의 소실점>, 3D Animiation, 8min 13sec, 멀티비전 스크린, 2021
Q. <하강의 소실점> 에서 ‘생존을 위한 구조물이지만 지옥으로 내려가는 느낌을 자아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땅 밑 세계는 자연스럽게 죽음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지하 벙커는 더 깊숙이 내려갈수록 지상의 위험으로부터 멀어지고 죽음이 아닌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살기 위해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이 최선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결국 혼자 생존하게 된다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소프트바디>, 3D Animiation, 2min 10se, 2021
Q. <소프트바디> 에서는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가 허물어져 바람이 빠진 풍선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작가는 이를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불안과 공포를 유희와 놀이로 변화시키고자 한다’고 언급했는데 콘크리트 구조가 불안과 공포를 상징하는 것인가요?
<소프트바디>의 콘크리트 구조물은 대전차 방호벽으로 휴전선 인근과 경기도 북부의 서울로 진입하는 도로에 설치된 군사시설입니다. 전쟁이 발발하면 커다란 구조물 위의 낙석은 폭파되어 도로로 떨어질 것입니다. 적의 침입을 지연시키고 약간의 시간을 버는 용도로 지 어진 것이죠. 가끔 도로에서 이런 시설들을 보면서 폭파되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고 혼자 되묻습니다. 과연 이것이 제 기능을 할 수 있을까. 구조물을 건설할 당시의 계획대로 콘크리 트 낙석은 적절히 도로를 차단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부터 시작하여, 애초에 이것은 무너 지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전쟁의 위협을 보는 이로 하여금 상기시키는 절대 무너지 지 않는 조형물이 아닐까라는 의심까지 들곤 합니다. 현재는 그 기능을 상실하여 주변 경관을 해치고 이동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해체되고 있는 대전차 방호벽을 풍선에 바람이 빠지듯, 부풀려졌던 거짓말이 폭로되어 드러나듯 연출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제목 그대로 부드러운 물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 도한 작업입니다.
<불안의 작동법>, 3D Animiation, 5min play in loop, 2021
Q. <불안의 작동법> 에서 십자 형태의 환기구를 통해 상징하고 싶었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일반적으로 십자 징표는 생명 또는 영원의 상징이자 구원을 위한 도식으로 해석될 수 있습 니다. 때로는 죽음의 자리를 가리키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저는 이 환기구의 형태가 특정한 의미를 전달하기 보다는 다양하게 해석되기를 희망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것이 들판에 홀로 서있는 허수아비처럼, 때로는 외로운 사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Q. 긴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진행 및 정리 : 유원준 (앨리스온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