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브제(Object)와 객체(Object) 사이에 대한 시간 풍경 – 민찬욱

아마도 여러분은 ‘가르강튀아(Gargantua)’를 기억할 것이다. 검은 원을 중심으로 그 테두리가 원형으로 밝게 빛나고 그 원 주위로 빠르게 회전하는 원판. 그 빛의 테두리 역시 고속으로 움직이며 그 옆 궤도상에 위치한 물의 행성 밀러와 비교되어 그 크기가 강조되던 압도적인 존재, 블랙홀. 우리는 2014년 개봉한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에 등장한 회전하는 커 블랙홀(Kerr Black Hole) 타입의 초대질량 블랙홀을 보았다. 미국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킵 손(Kip Stephen Thorne)의 자문을 받아 한층 더욱 현실적으로 묘사된 이 블랙홀을 통해 우리는 시간의 가변성을 실감 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시간은 매우 익숙하지만 동시에 기묘한 존재이자 개념이다. 우리는 지구 상 모든 이들이 인식하는 표준시간 단위인 초, 그리고 GMT라고 통용되는 평균 태양시를 합의 하에 결정하여 우리 스스로를, 그리고 우리의 삶과 주변을 인식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각각의 기준은 변하지 않는 불변의, 절대적인 지표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위에서 언급한 영화 인터스텔라를 비롯해 여러 SF 콘텐츠를 통해 상대성 이론에 근거한 시간 이해를 공유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밝힌 중요한 사실 중 하나가 바로 우리가 그 이전 가지고 있었던 시간의 절대성의 붕괴이다. 그가 밝힌 상대성 이론 중 일반 상대성 이론은 관성력과 중력이 동등하다는 전제 하에 시간과 공간이 영향을 받는다는, 즉 시간이 절대 상수가 아닌 변수가 될 수 있음을 밝히는 충격적 선언이었다. 그는 뉴턴 시대 시간이 절대 상수로서 위치해 있던 것을 가설과 방정식을 수립하고 이를 이론적으로 증명해내었다.

여기에 근래 또 하나의 축이 개입하여 그 지형도를 더욱 복잡하게 조성했다. 바로 가상현실이다. 디지털 기술이 등장하며 우리가 만들어 낸 새로운 공간. 통신망을 통해 연결되는 세계이기에 온라인 공간, 디지털 기술에 의해 실현되었기에 디지털 세계라고 불리는 이 새로운 지형에서의 시간축은 물리 세계에서의 경험과 인식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무대를 펼쳤다. 이 세계에서 우리는 기존의 시공간적인 틀, 이동거리와 이동시간, 생활 스케쥴에서 벗어나 인터넷만 연결되어있다면 제약업이 자유롭게 접속하여 소통한다. 그곳에서 펼쳐지는 게임 중 어떤 종류는 로그인, 즉 접속했을 때 시간이 흐르기 시작하고 그 접속을 종료하면 시간이 멈춘다. 또 다른 게임은 접속을 해서 플레이를 하건 로그아웃하여 그곳을 떠나건 물리 세계처럼 시간은 일정하게 흐른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그 공간의 시스템이 허용하는 선에서 시간을 가속하기도, 감속하기도, 멈추기도 한다. 이제 시간과 공간이라는 개념과 틀을 통해 감각하는 우리의 세상은 통일된 하나가 아니며 각자가 개인화한, 또는 다양한 환경과 서비스가 제공하는 틀에 의해 개인화된 다수의 시간축이다. 

작가 민찬욱이 이러한 개별화되고 상대화된 시간에 대해 풀어낸 작품이 <Time Object #2>이다. 이 작품은 백색 공간의 중심에 놓인 시계를 기준으로 방사상으로 퍼져나간 지점에 위치한 14개의 시계들로 구성되어있다. 한가운데 바닥에 놓인 시계는 이것이 위치한 장소의 표준시간이다. 그 둘레의 14개 시계는 각각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서로 다른 시간대와 시간의 진행속도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같은 공간에 위치해있지만 각자의 시간 기준과 지침을 드러내며 그러한 별도의 타임라인상에서 동작한다. 그러다 중심 시계의 15분 간격에 맞춰 모든 시계는 각자의 시스템을 리셋하여 출발 시점으로 정렬한 후 다시 각자의 속도로 시간의 흐름을 이행하며 그곳의 시간을 환기한다. 관객은 그 공간 속에서 수많은 다른 시간축에 대해 각자의 초침 움직임, 그리고 그 초침이 만들어내는 ‘째깍째깍’의 수많은 중첩을 보고 듣게 된다. 그리고 모든 시계의 시간선이 정렬되는 순간, 그 낯선 순간의 경험을 통해 그에 대한 질문에 닿는다. 여러 시간들의 흐름, 접촉, 관계의 선상이며 이를 경험하고 관련한 상념과 질문에 닿을 수 있는 출발점에 선 것이다. 

이 작품의 시간의 흐름에 대한 시청각적인 물리적 자극과 더불어 제목의 ‘Object’가 또한 흥미롭게 다가온다. 이 ‘오브젝트’는 예술에서 이야기하는 어떤 물건을 본래의 용도에서 분리해 작품에 사용하여 그 의미를 변조하거나 새롭게 정의하는 상징적 기능의 물체인 ‘오브제(Object)’로서, 그리고 동시에 컴퓨터 프로그래밍 분야에서 다루는 개념인 가공할 수 있도록 규정된 실체의 객관적 측면 ‘객체(Object)’로서 위치한다. 다른 색의 개입을 불허하는 흑백의 시계 몸체와 시침, 분침, 그리고 복잡하게 연결된 전선은 시계를 일상의 맥락에서 분리하여 낯설게 제시함을 통해 오로지 시간의 흐름 그 자체, 그리고 그것에 의한 사건을 강조하고 이에 관객의 시선을 집중케 한다. 또한 각각 분리되어 있는 시계가 표시하는 각각의 명확한 시간대라는 시각적 사건과 각자의 속도로 째깍이는 시계 소리라는 청각적 사건은 명확하게 각자의 시간축을 인지하고 사고할 수 있는 자원(Resource)으로서 여기 있다. 이곳의 시간은 사건으로 인식할 수 있는 문화적인 사건으로서의 오브제이며 동시에 다루고 제어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래밍적인 자원으로서의 객체라는 복합적인 레이어로서 구성되어있다. 

시간은 우리가 딛고 있는 현실의 중요한 축이며 근본적인 인식 변화를 겪어 온 틀이기도 하다. 농경사회와 산업사회, 정보사회를 거쳐오며 우리에게 시간은 더욱 조밀해지고 복잡해지며 확장된 판이 되었다. 자본주의는 시간에 산술적 가치를 부여했고 기술은 하루 일과 중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을 거침없이 물리적으로 확장했다. 과학은 끊임없이 기준과 틀을 흔들었으며 디지털에 의해 우리가 새롭게 개척한 가상세계는 경험을 개별화하며 물리 세계의 그것과는 또 다른 논리와 경험 축을 제공하고 있다. 이런 복잡다단한 판으로 구성된 세계에서 우리는 막연하게나마 시간의 절대성과 상대성 모두를 받아들여 현실을 인식하고 삶을 살아간다. 여기에서의 문제의식은 가속되는 복잡성에 대한 막연한 인식과 태도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이 현실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며 다루는 기준은 무엇일까. ‘나’라는 주체에 대한 인식이 우선일 것이다. 그리고 나를 중심으로 사고를 이어나갈 수레를 끌기 위해 필요한 것이 변화, 특히 변화의 정도를 파악하기 위한 정량적인 토대가 될 것이다. 

나와 분리된 나 이외의 어떤 것. 나와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중요한 토대. <Time Object>에서 잡아낸 것이 그 축으로서의 시간이다. 작가는 너무 곁에 있기에 익숙하고 시선을 집중하기 어려운 추상적 상황과 순간, 대상을 잡아내고 관찰하여 그 핵심을 추출하여 작품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가 자아낸 새로운 틀은 오브제로서의 낯섦, 객체로서의 객관적 규정으로 구성되어 다루어 볼 수 있는 신선한 자원으로서 우리 앞에 놓였다. 절대적 시간과 상대적 시간, 자연의 시간과 우리가 분석해 낸 자원으로서의 시간이 얽혀있다. 이것은 그가 감지해 낸 오늘의 시간 개념이며 그에 대한 경험 환경일 것이다. 지금의 현실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물리와 가상이 서로 대조되며 동시에 교차하고 합쳐진다. 이들은 합일한다기보다는 동일성과 차별성을 함께 아우르며 각자의 변화상과 확장, 새로운 의미 생성을 이루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 대한 지각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한 유동적 변화 상황에 대해 물리적 자취로 밀착하여 상황을 구현해내어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이 그가 가진 관점이자 오늘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강점일 것이다. 그의 다음 탐색 발걸음이 기대된다. 

허대찬 (aliceon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