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제 소재로서 인터넷 예술 순환 및 보존: 기억의 정치에 개입하는 여러 주체들
인터넷 기반 예술은 웹의 기술적 조건과 플랫폼 구조 속에서 생성·유통·보존되는 특성을 가진다. 1990년대 후반 등장한 넷아트(net art)가 독립적 웹사이트를 기반으로 했다면, 2000년대 후반 이후 포스트-인터넷 아트(post-internet art)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흐려진 조건을 전제했다. 오늘날의 인터넷 예술은 SNS 플랫폼, 알고리즘 기반의 피드, 자동화된 유통 시스템과 긴밀하게 얽혀 있다. 이러한 변화는 예술 작품이 어떻게 유통되고 누구에게 도달하는가를 결정하는 권력 구조의 변화를 의미한다. 초기 웹에서는 작가가 자신의 웹사이트를 통해 작품을 직접 배포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 같은 상업적 플랫폼이 이미지와 영상의 유통 경로를 장악하고 있다. 플랫폼은 알고리즘을 통해 무엇이 더 많이 보이고 무엇이 묻히는지를 조정하며, 이는 곧 무엇이 기억되고 무엇이 망각되는지를 결정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작가이자 이론가인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은 에세이 <빈곤한 이미지를 옹호하며>에서 ‘빈곤한 이미지(poor image)’ 개념을 제시했다. 빈곤한 이미지란 압축, 복제, 재업로드를 반복하며 화질이 떨어진 디지털 이미지를 가리킨다. 그러나 슈타이얼이 주목한 것은 저해상도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이미지가 생산되고 유통되는 사회경제적 조건이었다. 고해상도 이미지의 생산과 유통은 본질적으로 엘리트적이다. 전문 장비, 자본, 저작권 보호, 중앙집중식 플랫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반면 저해상도 이미지는 진입 장벽을 매우 낮춘다. 스마트폰, 웹캠, 무료 편집 프로그램, 파일 공유 네트워크, 유튜브, SNS 등을 통해 누구나 이미지를 생산하고 배포할 수 있다. 이는 이미지 생산과 유통의 주체가 소수에서 다수의 시민으로 확장되었음을 의미한다. 팬, 커뮤니티, 주변부 계층, 마이너리티, 비전문가가 이미지의 생산자이자 유통자가 되는 것이다.
슈타이얼은 예술을 둘러싼 권력 구조를 다층적으로 분석했다. 해상도는 권력이고, 아카이브는 권력이며, 유통 속도도 권력이고, 망각과 삭제의 조건도 권력이다. 이러한 권력은 소유, 판단, 실행의 주체가 갖는 권한이기 때문이다. 빈곤한 이미지는 공식 배급자의 통제를 벗어나고, 비공식 경로로 빠르게 이동하며, 원본과 복사본 개념을 무너뜨리고, 누구라도 재편집하고 재전유할 수 있게 만든다. 검열과 독점에 균열을 만드는 것이다. 토렌트나 커뮤니티 등의 경로를 통해 이미지는 기존의 제도적 규율을 벗어나 다른 사회적 의미망을 획득한다. 따라서 빈곤한 이미지의 정치성은 낮은 질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낮음을 발생시키는 구조와 그 구조를 다시 쓰는 참여적 실천에서 비롯된다. 슈타이얼의 개념에서 핵심은 해상도나 기술적 질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지가 이동하는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정치경제적 조건의 불평등과 위계의 재편이다. 저해상도는 단지 기술적 결함이 아니라, 이미지가 어떻게 우회, 전유, 복제, 공유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사회적 흔적이다.
오늘날 인터넷 이미지의 순환 구조는 세 가지 권력 양상을 통해 분석할 수 있다. 알고리즘에 의한 자동화, 제도에 의한 포섭, 사용자에 의한 재전유가 그것이다. 이 세 가지는 상호배타적이지 않으며, 하나의 이미지가 여러 양상을 동시에 나타낼 수 있다. 최근 인터넷에는 ‘새우예수(Shrimp Jesus)’ 같은 AI 생성 기괴한(bizarre) 이미지가 넘쳐난다. 이들은 겉보기에 빈곤한 이미지와 유사해 보인다. 저해상도이고, 반복적으로 복제되며, 플랫폼을 통해 빠르게 확산된다. 그러나 이 이미지들은 주변부 주체의 참여나 저항적 정체성과는 무관하다. 상업적 알고리즘이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생성한 부산물에 불과하며, 클릭과 반응을 통해 광고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이미지가 다시 데이터셋으로 학습되어 자기증식한다는 점이다. 빈곤한 이미지의 순환에는 인간 주체의 선택, 재편집, 재맥락화가 개입했다. 반면 알고리즘 순환은 인간의 의도적 개입 없이 자동화된다. 이미지 생산과 순환의 다양성과 풍부함이 통계적 확률의 집합으로 축소되는 현상이다. 빈곤한 이미지가 가진 문화정치적 잠재성은 사라지고, 자동화된 순환만 남는다. 이는 인터넷 예술의 순환이 더 이상 인간 주체의 선택과 판단에 기반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알고리즘 권력은 무엇이 순환하고 무엇이 소멸하는지를 인간의 의식적 개입 없이 결정한다.

독일 정부기관이 지원한 ‘Are you for real?’ 프로젝트(2020-)는 가상과 복고의 반복을 주제로 작가들의 작업을 웹사이트를 통해 접근 가능하게 한다. 그중 시몬 스페이저(Simon Speiser)의 <La Visión del Monte>(2024) 온라인 버전은 에콰도르 지역 공동체의 구전 문화유산을 소재로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시도한다. 이 프로젝트는 상업 플랫폼에 의존하지 않는 순환 모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독립적 웹사이트를 통해 작품에 접근하게 하며, 알고리즘의 개입 없이 관객이 작품을 경험하도록 설계되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정부 지원이라는 제도적 틀 안에 포함됨으로써 복잡한 문제를 낳는다. 빈곤한 이미지가 원래 가졌던 자율적이고 비제도적인 순환 방식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제도적 지원은 작품의 제작과 유통을 가능하게 하지만, 동시에 무엇이 지원받을 가치가 있는지를 선별하는 게이트키핑 기능을 수행한다. 또한 지원이 중단될 경우 프로젝트의 지속가능성이 불투명하다는 구조적 한계도 있다. 웹사이트 유지 비용, 서버 관리, 기술적 업데이트는 모두 지속적인 자원을 필요로 한다. 이는 인터넷 예술의 순환과 보존에서 제도가 양면적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도는 상업 플랫폼의 알고리즘 권력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통제를 도입한다. 무엇이 가치가 있는지, 어떤 형식이 정당한지, 누구의 목소리가 들릴 자격이 있는지를 제도가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정명우의 영상 작업 <.bvh3(슬링샷)>(2021)은 인터넷 상에서 레슬링 동작 밈(meme)이 변질되어 전파되는 과정을 탐구한다. 슬링샷 동작은 처음에는 특정한 맥락 없이 유머러스하게 공유되었지만, 재편집과 재맥락화를 거치며 약자 계층이나 IT 엘리트를 혐오하는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나아가 정치적 선동에 동원되고, 심지어 현실 세계의 총기난사를 예고하는 신호로까지 변형되었다. 이 순환 구조는 슈타이얼이 말한 빈곤한 이미지의 저항적 잠재성과는 다른 경로를 보여준다. 빈곤한 이미지는 주변부 주체의 참여를 통해 기존 권력 위계를 교란하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공식 채널을 우회하고, 중앙화된 통제를 벗어나며, 다수의 목소리에 발언권을 부여했다. 그러나 슬링샷 밈은 동일한 순환 구조가 폭력적이고 배제적인 방향으로도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용자의 재전유는 저항이 될 수도 있지만, 혐오와 폭력의 전파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정명우의 작업은 이러한 위험한 순환을 가시화하며, 이미지의 이동과 변형이 갖는 사회적 결과를 성찰하게 한다. 이는 인터넷 이미지의 순환이 본질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사회적 맥락에서 어떻게 사용되는가에 따라 의미가 결정됨을 보여준다. 따라서 순환의 자유와 개방성만을 옹호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이미지를 재전유하는가, 그리고 그 재전유가 어떤 사회적 결과를 낳는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상의 사례들은 인터넷 이미지의 순환이 단순히 기술적 과정이 아니라 정치적 과정임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 순환 속에서 ‘무엇을 남길 것인가’라는 보존의 문제는 어떻게 다뤄져야 하는가? 박상애와 김기영(2016)은 디지털 아트 아카이브가 갖춰야 할 조건으로 기술적 신뢰성, 맥락의 무결성, 활용성, 서비스 신뢰성, 접근성, 주제에 관한 참고정보서비스, 확장성을 제시했다. 이 중에서도 접근성은 아카이브가 수장고에 머물지 않고 대중과 만날 수 있는가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리좀(Rhizome)은 디지털로 생산된(born-digital) 예술의 보존 및 접근 기능을 수행하는 대표적인 비영리 기관이다. 초기 웹아트를 보존하고 영상으로 녹화하며, 작품의 기술적 환경을 재현하는 에뮬레이션 작업도 진행한다. 그러나 이러한 온라인 아카이브가 일시적 지원에 의존할 경우, 지속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인터넷 기반 예술의 순환과 보존이 안정적으로 작동하려면, 비영리 아카이브가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구조적 조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인터넷 예술의 순환과 보존 문제는 결국 누가 무엇을 기억하도록 만드는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이미지가 생성·복제·유통되는 흐름은 기술이나 플랫폼의 문제가 아니라, 기억을 구성하는 권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웹 기반 전시나 온라인 아카이브는 단순히 비물질적 예술을 저장하는 기술적 장치로 머물지 않고, 기억의 정치에 개입하는 하나의 문화적 실천으로 이해해야 한다. 빈곤한 이미지 개념은 이러한 순환 구조의 변형과 긴장을 읽어내는 하나의 틀이다. 이 글은 슈타이얼의 빈곤한 이미지 개념을 출발점으로 삼아, 오늘날의 인터넷 이미지 순환 구조를 알고리즘 권력, 제도 권력, 사용자 권력의 세 차원에서 분석했다. 알고리즘 권력은 무엇이 순환하는지를 자동화된 방식으로 결정하며, 인간 주체의 의도적 개입을 약화시킨다. 제도 권력은 상업 플랫폼의 대안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무엇이 보존될 가치가 있는지를 선별하는 게이트키핑 기능을 수행한다. 사용자 권력은 이미지를 재전유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만, 그 방향이 저항적일 수도, 폭력적일 수도 있다. 따라서 순환의 개방성만을 옹호하는 것은 불충분하며,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개입해야 한다. 각 권력은 독립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며,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러나 이는 개념의 실패가 아니라, 디지털 이미지 순환의 정치성이 훨씬 복잡해졌음을 의미한다. 문제는 어떤 주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라는 행정적 분류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에 닿는다. 인터넷 예술의 기억이 어떤 구조 속에서 가능해지고 또 어떤 권력에 의해 좌우되는지를 읽어내는 것, 그리고 그 구조 속에서 대안적 순환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이 지금 다시 아카이브를 논하는 의의일 것이다.
글. 김다하.
Reference
박상애, & 김기영. (2016). 디지털 아트 아카이브 품질평가를 위한 탐색적 연구. 한국정보관리학회 학술대회 논문집, 63-66.
Steyerl, H. (2009). In defense of the poor image. e-flux journal, 10(11), 1-9.
Zeilinger, M. (2019, April). Digital art and ‘meatspace scarcity’ on the blockchain. In Vertiginous Data (pp. 210-221). Korean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본 연재는 2025 광주 GMAP 디지털아트컬쳐랩 리서치랩 ‘아트라이터 지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