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인 인식과 차별의 문제를 다루는 작가 장진승은 ‘기계의 시선’을 이용해 그 대안을 제시한다. 작가는 얼굴 데이터를 수집하고 변환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다양한 실험과 변주를 거듭하며 ‘데이터 아카이브 시스템’을 구축해나간다. 앨리스온은 작가가 바라보는 데이터와 아카이브,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귀결되는 시스템에서 드러나는 작업관을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작가를 직접 만나 인터뷰해보았다.
Q 1. 안녕하세요 장진승 작가님. 독자들에게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사회적 인식과 편견, 그리고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풀어나가는 작가 장진승입니다. 저는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인종차별과 같은 편견들에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대한 일종의 대안을 시각예술의 맥락에서 제시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까지는 얼굴 감지(Detection) 시스템을 바탕으로 작업을 했고 현재는 매체의 확장을 통해 다양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Q 2. 사회적 편견과 차별, 그리고 이로부터 야기된 오해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계십니다. 작업에도 ‘인종차별’과 같은 단어들이 등장하는데요. 이렇게 문화적 차원의 사회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영국 골드스미스(Goldsmiths, University of London)에서의 유학 생활이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2017년도에 특히 인종차별에 대한 이슈들이 수면 위로 떠 올랐던 것 같은데요. <Face De-Perception>(2017)은 런던이라는 다문화적 도시에서 인종차별의 문제들을 접하면서 시작된 작업입니다. 사실 인종차별은 인류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현재까지도 여전히 진행 중인 문제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들이 왜 발생하게 되는지에 관한 그 근본적인 지점들을 생각하면서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러한 작업을 통해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고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들과 문제를 공유함으로써 작은 인식의 변화를 모색할 수 있다면 서로에 대한 차별과 같은 문제의 근본적인 지점에서의 인식 전환이 이뤄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Q 3. 독특한 이력이 눈에 띕니다. 한국에서 모델 활동을 오랫동안 하셨습니다. 또 앨범을 발매하시며 뮤지션으로서 음악 작업도 진행하셨는데요. 다양한 분야에서의 경험들이 지금의 작업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 같아요.
A. 사실 모델 활동 기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습니다. 🙂 짧은 기간이었지만 많은 관심을 보여주셨던 것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앨범은 프로듀서 그룹인 ‘브뤼더샤프트(Bruederschaft)’라는 이름으로 발매한 바 있습니다. 비록 멤버 각자의 본업에 집중하면서 최근에는 활발히 활동하지 못했지만, 또 적절한 시기에 앨범으로 찾아뵐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모델이나 음악가로서의 제 모습과 작가로서의 제 모습은 그 정체성이나 소통의 방식에서 사실 많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행하고 있는 다양한 영역에서의 프로젝트들이 저에게 작가로서 작업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또 다른 원동력이 되어주는 것도 같습니다.
Q 4. 지금까지의 활동을 보면 이 질문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장진택 큐레이터와 형제지간으로 알고 있습니다. 같이 많은 활동들을 진행하셨는데요. 이러한 협업 관계는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지금까지 활동에 대한 소회는 어떤가요?
A. 프로듀싱 그룹 ‘브뤼더샤프트(Bruederschaft)’가 저희 협업의 시작이에요. 서로 워낙에 음악을 좋아하기도 하고, 또 저희가 즐길 수 있는 음악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이 협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패션 브랜드 로우 클래식(Low Classic)의 쇼 음악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세 장의 앨범을 발매했습니다. 장진택 큐레이터와는 함께 지내온 시간이 길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 비슷하게 공감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현상이나 작업에 대해 바라보는 시선들이 비슷하면서도, 각자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기도 해서 이러한 부분이 장단점을 보완해주는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장진택 큐레이터 역시도 기획자로, 또 프로듀서로 일할 때 각각 다른 시선을 갖고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부분을 복합적으로 공유하면서 함께 《BEHIND A MASK: 양가적 데이터 수집과 활용의 공조 가능성》(INTERACTION SEOUL, 2017)이라는 전시를 만들기도 했고요. 앞으로도 흥미로운 협업의 경험을 계속해서 다양하게 보여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Q 5. 2012년부터 9년간 <DATA, POLAROIDS>(2012~) 작업을 통해 폴라로이드 사진을 아카이브하고 계십니다. 폴라로이드 사진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눈을 감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눈을 감는 행위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또 아카이브에 어떤 의미를 두고 작업을 하시는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A. 눈을 감은 피사체를 처음으로 촬영했을 때, 저는 그 모습이 편안하고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그 당시 사진을 찍히는 직업을 가졌던 동시에 직접 사진을 찍는 것도 좋아했었어요. 사람들이 사진이라는 프레임 안으로 들어갈 때 일반적으로 하는 행동들, 예를 들어 웃거나 손으로 브이를 그리는 등의 무의식적인 그리고 정형화된 행동들이 사람들을 어색하게 만드는 요소로 여겨졌고, 이를 벗어나도록 하기 위한 가장 쉬운 수단이 그 대상이 눈을 감도록 하는 행위였습니다. 이처럼 눈을 감는 행위의 심리적 요소들을 살피며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같은 종류의 자세를 취하는 사진들을 계속해서 찍고 연구하면서 어느 순간 서로 다른 피사체 모습들이 갑자기 비슷하다고 느껴졌던 순간(Momentum)이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이 사진들에 담긴 서로 다른 사람들이 인종과 성별을 초월한 “인간 혹은 인류”라는 큰 맥락에서의 존재로 보였습니다. 이러한 순간에서의 영감을 후에 <Face De-Perception> 작업으로 발전시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카이브에 관해서는 개인적으로 단일 데이터에서는 두드러지지 않지만, 그것들의 모음이 생성하는 서사와 맥락으로부터 새로운 관점과 지점을 발견할 수 있기에 아카이빙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Q 6. 작업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데이터입니다. 스스로에게 데이터는 무엇인가요?
A. 서로 다른 데이터 그 자체의 개별적인 중요성에 관해 흥미를 갖고 있다기보다는 위에서 언급했던 아카이브의 맥락에서 ‘데이터의 아카이브’의 의미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카이브와 유사한 맥락에서 데이터를 바라보고 그 구조와 시스템을 해체하고자 하는 시도를 하는 편입니다. 데이터가 아카이브로, 혹은 콜렉티브로 존재할 때 도출되는 특정 패턴들을 찾고 이해하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존재하는 데이터를 어떻게 수집하거나 저장할 것인지에 관한 방식을 모색하는 것은, 곧 우리가 원하는 데이터를 어떻게 추출해서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대한 구조적 이해의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제 궁극적인 작업의 목표는 접근이 용이하고 그 형태가 단순한 ‘데이터 아카이브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이런 구조적 데이터에 관심을 가지는 또 다른 이유는 현재 인간을 둘러싼 모든 것이 데이터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데이터가 어떻게 생성되거나 존재하고, 순환하는지를 인지하지 않는다면 결국엔 실재하는 본인의 데이터와 ‘데이터화’된 가상의 데이터를 구분하기 힘든 상황에 부닥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Q 7. 이번에는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게요. 작품 <Face De-Perception>(2017)에는 얼굴 감지(Face Detection) 기술이 사용됩니다. 그런데 흔히 사용되는 얼굴 인식(Face Recognition) 시스템과는 형태가 조금 다른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들의 얼굴을 개별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얼굴을 점과 선으로 치환하여 그 특성을 없애버리는 것처럼 느껴지는데요. 이러한 시스템을 사용하게 된 이유와 그 의미는 무엇인가요?
A. 아마도 얼굴 인식(Face Recognition)이라는 단어에 많은 분이 더 익숙하실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인식 시스템과 감지 시스템을 같은 것으로 오해하시는 경우가 항상 있을 텐데, 사실 얼굴 ‘인식(recognition)’과 ‘감지(detection)’는 조금 다른 알고리즘을 가진 상이한 시스템입니다. 얼굴 감지 시스템은 사람의 얼굴을 말 그대로 감지하는 프로그램을 사용한 것이고, 얼굴인식 시스템은 그 감지된 얼굴을 특정 사람으로 판단하기 위해 얼굴의 세부적인 부분들을 인식해내고 학습한 후, 그 특정 사람으로 판단하는 알고리즘을 가진 프로그램을 사용한 것입니다. 인식 시스템에 더 복잡한 알고리즘이 사용되며, 아이폰(iPhone)에서 사용되는 페이스 아이디(Face ID)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대부분의 시스템이 감지와 인식을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두 시스템을 완전히 분리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어렵기는 합니다.
제가 <Face De-Perception>에서 사용한 프로그램과 장치는 이 중 ‘감지’ 시스템을 이용한 것입니다. 감지 시스템을 사용하고 인식 시스템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된 계기 중 하나는 “Faception”이라는 회사에서 개발한 시스템 때문이었어요. 이스라엘을 기반으로 한 이 회사는 범죄자들의 얼굴 데이터를 수집해서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하고 이를 바탕으로 특정 사람이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를 가려내는 서비스를 개발했습니다. 이 시스템을 보면서 ‘얼굴만으로 사람을 구별 짓는 이 시스템이 미래를 위한 시스템일까? 이것이 편견과 차별의 시작점이자 끝 지점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얼굴 ‘인식’ 시스템에 문제에 착안하여, 사람들의 개별적 특성을 감지하여 특정 인물을 인식하는 것이 아닌 사람의 얼굴의 평균점을 계산하여 하나의 점으로 나타낸 뒤 시각적이고 물리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을 비슷하게 변환시키면 서로의 다름에 대한 편견과 인식이 변화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Q 8. <Face De-Perception>작업에 사용되는 프로그램은 어떠한 방식으로 구현되며, 어떤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류하나요?
A. 이 시스템은 사람의 얼굴을 점과 선을 통해 바라봅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키넥트 카메라로 얼굴 감지를 한 후, 이 원본 데이터를 일차적으로 수집합니다. 동시에 수집된 원본 데이터로부터 눈의 위치와 입의 위치 같은, 얼굴 요소의 각각의 거리를 계산해 이 모든 값을 더하고 나누어 얼굴의 ‘평균값’을 추출하고 저장합니다. 이 평균값은 스크린에서의 본인의 위치에 따라 계속 변화합니다. 그리고 전체 과정에서의 다양한 부분 데이터의 값 또한 실시간으로 저장됩니다.
Q 9. <Face De-Perception>(2017)은 크게 세 가지의 표현 방식으로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2차원 평면으로 나타나는 점과 선의 이미지, 스피커를 통해 출력되는 노이즈 사운드, 그리고 오실로스코프(Oscilloscope)가 노이즈 사운드를 통해 다시 그려내는 비정형 이미지. 이렇게 하나의 시스템을 여러가지 형태로 표현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A. 먼저 제 작품에서는 여러 사람의 얼굴을 동시에 감지합니다. 그런데 점과 선으로 주어지는 시각 정보만으로는 그것이 ‘나의 얼굴’을 나타낸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추가적 노이즈 사운드를 더해, 시각과 더불어 청각적으로 ‘내 얼굴이 이런 소리를 만들고 있구나’를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오실로스코프를 통해서 최종적으로 그려지는 얼굴 데이터는 우리의 얼굴을 비정형의 패턴으로 변환하여 화면이 암전되었을 때 다소 공격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얼굴을 새로 그려주는 하나의 장치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물리적 장치들을 통해 우리가 시각적으로 가지고 있는 ‘얼굴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고 싶었습니다.
Q 10. 2017년 전시 《BEHIND A MASK : 양가적 데이터 수집과 활용의 공조 가능성》에서 보여주신 작업 <(Miss) Understood>(2017)에는 ‘오해’와 ‘이해’, 두 가지 상충되는 단어들이 드러납니다. 제목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가요?
A. <(Miss) Understood>(2017)는 2017년 5월부터 7월까지 구동했던 작업 <Face De-Perception>(2017)의 테스트 현장과 구동 현장의 기록을 ‘오해’와 ‘이해’, 그리고 ‘테스트’라는 세 가지 챕터로 재구성한 다큐멘터리 작업입니다. 또한, 본 작업의 소제목은 ‘잠정적 에필로그’로 <Face De-Perception>의 첫 번째 세대(1st Generation)를 일단락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본 작업을 제작하게 된 계기는 전시 «HYPHEN»(2017)에서 작품을 처음 선보였을 때 관객들이 이 시스템에 숨어있는 수많은 레이어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시스템에 대한 이해와 설명을 돕기 위한 하나의 단서를 제공하는 다큐멘터리 영상을 제작했습니다. 이렇듯 ‘오해’와 ‘이해’의 두 파트를 이처럼 이름 짓게 된 이유는 관객들의 반응에 따른 구분이었지만, 사실 이 부분이 크게 중요하다고 여기진 않습니다. 제가 ‘오해’라는 표현을 사용하긴 했으나, 그들이 작업을 마주하는 모습은 어쩌면 인터랙티브 아트(Interactive Art)의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본질적인 상호작용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부득이 작업의 서사를 위해 ‘오해’와 ‘이해’로 관객의 반응을 나누었지만, 옳고 그름이나 맞고 틀림의 문제를 떠나 그저 이를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
Q 11. 이번 두산 갤러리에서의 전시 《사적인 노래》(2020)에서 전시된 작품 <Data Cabinet>(2020)에서는 3D 프린터로 구현된 일종의 물리적이자 휴대성을 가진 포터블 데이터(Physical Portable Data)를 구현하셨습니다. <DATA, POLAROIDS>(2012~) 부터 지금까지의 작업들이 모두 유사한 맥락에서 데이터의 수집과 변환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는데요.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다루어 오면서 데이터에 대한 관점에도 변화가 생겼을 것 같아요.
A. <DATA, POLAROIDS>(2012~)에서는 좀 더 실질적이고 고전적인 방식에서의 데이터 수집 방식을, 그리고 <Face De-Perception>(2017)에서는 실시간 인터랙션에 집중한 데이터 아카이브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신작 <Data Cabinet>(2020)에서는 실시간 데이터가 아닌 데이터 저장방식과 그 층위(layer)에 좀 더 집중하였습니다. 조금 더 설명을 보태자면, 본 작업은 얼굴 군상의 가능한 한 전 디지털 데이터의 물리적 수집을 목적으로 제작된 일종의 “데이터 보관함”입니다. 또한 <Face De-Perception>의 데이터 레이어를 재분할하고 이를 좀 더 입체적인 차원에서 데이터 상호작용을 끌어내기 위한 데이터 수집과 변환의 과정을 아카이빙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인지구조 상에서 형성되는 편견 레이어를 제거하기 위한 또 다른 시도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포터블 데이터(Portable Data)’ 개념은 전시장에 찾아온 관객들에게 하나의 기념품처럼 나누어 줄 수 있는 ‘물리적 데이터’ 제작을 위해 제안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본 작업은 일차원적인 데이터 시각화(data visualisation)를 넘어 물리적으로 데이터를 ‘소유’할 수 있다는 개념을 전제로 합니다. 일종의 데이터 플레이어로써 USB를 통해 누군가의 데이터를 재생해 볼 수 있다면, 그것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자문했습니다. 이로부터 관객이 작품을 관람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소유할 수 있게 함으로써 가상의 데이터를 조금이나마 물리적으로 경험하도록 만들고 싶었습니다.
Q 12. 2차원부터 3차원으로 데이터 시각화의 포맷을 변화시키며 다양한 형태로 실험을 지속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다음 작품에서는 데이터를 어떤 형태로 보여주실 예정이신가요?
A. 저는 2020년부터 3차원 데이터 형태의 실험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2D에서 3D로의 변환 그리고 3D에서 2D로의 변환과 같은 데이터의 확장자 전환을 통한 데이터 간 상호작용(interaction between data through data conversion)과 데이터 간의 양방향 소통 시스템(bidirectional communicative system)을 구축하고 싶습니다. 얼굴 데이터로 구현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궁극적인 데이터 아카이브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현재의 목표입니다. 이와 함께 구상하는 데이터 실험은 이동성(Mobility)을 가진 로봇을 활용한 데이터 순환 시스템입니다. 이전까지는 고정된 시스템을 통해 정적인 방식으로 데이터를 수집했다면, 이번에는 일종의 ‘데이터 마이닝’ 기능을 실천하는 하나의 기계 장치가 자율적인 방식으로 얼굴 데이터를 수집하는 시스템을 고안하는 중입니다.
Q 13. 작가 노트에서 ‘기계처럼 생각하기’ 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기계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요? 또 알고리즘과 기계 장치들을 통해 사회적 메시지들을 풀어내고 계시는데, 기계 혹은 장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기계처럼 생각하기’의 방법론은 기술을 기반으로 작업하는 많은 작가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인식의 방법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Face De-Perception>(2017)을 제작할 때 개발자와의 협업을 고민했지만, 협업자를 구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느꼈고 원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방법은 직접 코딩을 하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기계처럼 생각하기’는 직접 코딩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제가 스스로 되뇌던 말이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부터 가장 많이 하는 행동 중 하나인 ‘스와이핑(swiping)’은 어떻게 보면 그냥 손가락을 단순히 옆으로 미는 행위 정도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를 가능하게 하는 코드를 짜려면 조금 색다른 방식의 접근, 즉 프로그램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해야 합니다. 따라서 작업에 있어 제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계속해서 여러 가지 표현을 학습하고 연구하는 중입니다.
기계 장치를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던 이유는 인종차별과 같은 사회적 문제들이 인간 대 인간의 노력으로 극복하기 어려우리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 해결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를 기계의 힘을 빌려서라도 해결, 아니 최소 해소할 수라도 있다면, 왜곡된 우리 인식의 어떠한 변화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이전 작업에서는 기계를 하나의 계산의 장치로 생각했지만, 앞으로의 작업에서는 또 어떻게 기계를 바라보고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저의 견해가 분명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기계에 관해 어떠한 입장을 단정 지어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Q 14. 앞으로는 어떤 작업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A. 현재 두 가지 신작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장진택 큐레이터의 글 <Before, now (and after)>로부터 영감을 받아 제작한 단 채널 협업 영상 작업입니다. <INCOHERENT DIALOGUE>(가제)라는 제목의 이 작업은 기술이 선도하는 이른바 디지털 시대에서의 예술의 역할과 문화적 흐름에 관한 인간 의식을 비논리적인 대화 구조 안에서 탐구합니다. 작업의 큰 서사를 이끌어 가는 두 명의 등장인물 DON과 LAMBERT는 급변하는 시대 가운데 혼란을 겪는 각각의 세대를 대변합니다. 각자의 평행선을 따로 또 함께 걷는 이 둘의 대화는 서로 다른 방식의 삶을 취하고 있기에 언제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지리멸렬하게 오고 갈 것입니다. 서로 다른 개인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 펼쳐지는 서사는 시대 간 혹은 세대 간 소통과 불통 사이에서 우리가 맞닥뜨린 이 동시대의 풍경을 예술에서의 취향과 알고리즘이라는 두 가지의 큰 담론을 바탕으로 전할 것입니다.
두 번째 작업은 <ABS Sceletalos>(가제)라는 제목의 1:1 휴먼-스케일 인체 조각입니다. 얼굴이나 신체를 키넥트 카메라로 3D 스캔한 각각의 데이터에 기반해, ABS 필라멘트를 그 재료로 3D 프린터를 통해 인체를 인쇄-조각하는 연작입니다. 이 조각상은 현실과 가상 세계의 정체성을 동시에 수반하는데, 투박한 백색 형상의 조각 신체는 그 자체로 가상적인 동시에 모델이 되는 인물들의 실제 신체적, 사회적, 문화적 인격체를 형성하는 세부 사항을 그대로 따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실제를 연상케 합니다. 일련의 발생하는 데이터 손실(Data Loss)과 그것이 야기한 왜곡된 데이터(Distorted Data), 이 모두를 담아내며 조각난 파편들을 다시금 하나의 인물로 조형해 나가는 본 작업의 과정은 개인에 대한 우리의 왜곡된 인식을 정면으로 비추어 내려는 인간 인식에 관한 확장된 시도이자 일종의 실험입니다. 기술이 주도하는 디지털 시대에 이르러 가상과 현실의 경계는 점차 흐려지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거의 동일시되어가고 있기에, 본 작업을 통해 그 미묘한 접점 가운데서 현존하는 인식의 실체를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참고로 (가제이지만) 작업의 제목 “ABS Sceletalos”는 재료인 ‘ABS 필라멘트’와 신체 혹은 데이터의 뼈대를 지칭하는 라틴어 ‘스켈레톤(sceleton)’ 그리고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Hephaistus)가 창조했다고 알려진 최초의 자동화 기계 “탈로스(Talos)”의 단어 일부를 각각 차용해 조합한 합성어입니다.
Q 15. 그렇다면 앞으로의 작업을 통해 전하고자 하시는 메세지는 무엇이 될까요?
A. 저는 앞으로도 편견이나 차별의 해결 또는 해소를 위해 작업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에 관한 대안적 메시지를 전하기 이전에, 그 편견과 차별의 원인을 찾고 그 시작점을 밝히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간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편견과 이로 인한 차별은 언제나, 너무나도 당연하게 존재해 왔던 난제입니다. 그래서 이 망할 기계를 사용해서라도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대안을 제시하고자 도전했을 때, 그러한 도전이 어쩌면 우리의 시지각적 테두리를 바꾸고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러한 과정에서 나름의 해소책과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Q 16. 마지막 질문이에요. 작가님 스스로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A. 글쎄요. 한마디로 저를 정의하기가 쉽지는 않네요. 생각해 보자면, 앞서 얘기했던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뜻하는 영상이나 기계 그리고 기술의 활용에 초점을 둔 ‘미디어 아트’라는 영역의 맥락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작업을 해나가고 있는 것 같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인간의 인식 혹은 인지 구조에 관한 미적 실험을 여러 매체를 통해 시도하고 있으니, 여전히 ‘매체 예술가’ 정도로 저를 정의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
Q 17. 오랜 시간동안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업 기대하겠습니다.
A.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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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진행 및 정리. 문현정 | 앨리스온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