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속의 서사와 그 잉여 – 2024 Future Media FEST: Singularity

c-lab 전경, ©️ 글쓴이

오늘날 AI를 다루는 전시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오히려, 너무 많다. 문제는 이 과잉 속에서 대다수의 전시가 AI를 하나의 기술적 경이(technological wonder)로, 혹은 동시대적 유행어(buzzword)로 소비하는 데 머문다는 점이다. 이미지 생성, 인터랙션, 데이터 시뮬레이션의 결과물들은 관객 앞에 매끄럽게 펼쳐지지만, 그 기술이 창작의 조건을, 감각의 구조를, 사회적 관계의 질을 어떻게 재편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전시의 표면에서 자꾸 미끄러진다. ‘와, 신기하다’는 감탄이나, ‘역시 OO 시대’라는 기존 서사의 확인. 이것이 대부분의 AI 전시가 관객에게 남기는 것이라면, 미디어아트가 이 영역에서 발언해야 할 것은 분명 그 너머에 있다. 물론, 미디어아트가 그래왔던 풍경이며, 그 자체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2024년 10월 4일부터 12월 15일까지, 대만 타이베이의 대만당대문화실험장(Taiwan Contemporary Culture Lab, 이하 C-LAB)에서 열린 「2024 Future Media FEST – Singularity」는 이러한 맥락에서 주목할 만한 시도였다. 9개국 23개 작가(팀)의 26점 작품, 4개의 주제 챕터, 그리고 AI 기술사를 추적하는 리서치 섹션과 다수의 부대 프로그램. 그 규모와 구성만으로도 이 전시는 아시아에서 미디어아트와 예술-기술 영역을 기관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다루려는 드문 사례에 속한다. 그러나 이 전시가 남긴 것은 규모 자체가 아니라, 큐레이토리얼 서사가 포괄하지 못하는 개별 작품들의 잉여, 즉 가속의 서사 안에서 불거져 나오는 마찰의 지점들이다.

C-LAB은 2018년 문화부 산하에 설립된 기관으로, 타이베이 다안구(Da’an District)에 위치한 구 공군총사령부 부지를 전용하여 운영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 산업연구소로 출발해, 전후 공군사령부로 사용되다 2012년 이전한 이 공간은 군사적 지휘통제의 장소가 문화실험의 장소로 탈바꿈했다는 점에서  이미 그 자체로 역사적 마찰을 몸에 품고 있다. ‘문화실험’을 핵심으로, 예술·기술·사회를 포괄하는 기관을 지향하는 C-LAB은 2020년 기술미디어플랫폼(Technology Media Platform)을 설립하고, 2021년 첫 미래미디어아트페스티벌(Future Media FEST)을 개최했다. Singularity는 3년 만에 돌아온 이 페스티벌의 두 번째 에디션이다.

큐레이터 우다퀀(吳達坤, WU Dar-Kuen)은 C-LAB 현대예술플랫폼(Contemporary Art Platform)의 디렉터로, 타이베이 국제예술촌(Taipei Artist Village), 보장암예술촌(Treasure Hill Artist Village) 관장, 관두미술관(Kuandu Museum of Fine Arts) 수석 큐레이터 등을 역임하며 대만 동시대 미술의 제도적 기반을 다져온 인물이다. 그의 큐레이토리얼 실천은 학제간 혁신과 사회적 관여를 양축으로 삼아왔으며, Singularity에서도 이 방향성은 유지된다.

전시의 프레이밍은 명확하다. 1993년 버너 빈지(Vernor Vinge)가 제안한 기술적 특이점(Technological Singularity), 기계 지능이 인간 지능을 초월하는 임계점 개념을 출발점으로 AI의 폭발적 발전이 예술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었다. 큐레이토리얼 텍스트는 2024년 COMPUTEX 전야에 열린 엔비디아 젠슨 황(Jensen Huang)의 기조연설을 직접 인용하며, 그 임계점이 이미 도래했을 수 있다는 감각을 전달했다. 필자는 이 프레이밍이 갖는 장점과 한계는 이후 작품 분석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내려 한다.

전시는 네 개의 주제 챕터로 구성된다: 「유동적 묘점 流動的錨點(Flowing Anchor)」, 「창조력의 전환 創造力的轉變(Transformation of Creativity)」, 「창작자의 식견 創作者的洞見(Creator’s Insight)」, 「미완의 장 未完的篇章(AI Ongoing)」. 이 구조는 과거(기술사 회고) -> 현재(AI와 창작의 관계) -> 작가적 통찰(개별 실천) -> 미래(열린 가능성과 위험)의 시간적 흐름을 따른다.

물리적으로 전시는 C-LAB 내의 여러 건물에 분산 배치되어 있었다. 도서관 전시공간, 북잔디밭(北草坪), 연합식당 전시공간, 통신분대 전시공간 등 구 군사시설의 건물들을 가로지르며 관람하는 동선이다. 이 분산 배치는, 의도했건 아니건, 전시 경험에 독특한 질감을 부여했다. 기술집약적 작품들 사이사이에 야외 공간을 걸으며 생기는 물리적 간극은, 작품과 작품 사이에 사유의 시간을 삽입한다. 밀집된 화이트큐브에서 작품이 다음 작품에 밀려 소비되는 관성과는 달리, C-LAB의 캠퍼스형 동선은 관람의 효율을 방해하되, 그 방해를 통해 사유를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적 마찰로 기능한다.

AI 발전사 리서치 섹션, LEE Chia-Lin, Eric TSAI, ©️ 글쓴이

첫 번째 챕터는 자목문화(ZIMU CULTURE)의 연구자 이가림(LEE Chia-Lin)과 채우림(Eric TSAI)이 구성한 AI 발전사 리서치 섹션을 중심축으로 삼는다. GAN, 디퓨전 모델 등 기계 비전 기술의 차이를 상세히 설명하는 이 타임라인에 대해, Frieze는 2024년 연말 AI 아트 리뷰에서 “서양 미술관에서는 아직 본 적 없는 수준의 상세함과 명료함”이라 평가한 바 있다. 이 평가는 의미 있다. 대부분의 AI 전시가 기술을 ‘신비로운 경이’로만 제시하는 반면, Singularity는 관객에게 기술의 작동 원리와 역사적 경과를 파악할 수 있는 인지적 도구를 제공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리서치 섹션은 이중적으로 읽혀야 한다. AI의 역사를 “앵커 포인트”로 정리한다는 것은, 역사를 진보의 이정표로 배열하는 모더니스트적 제스처이기도 하다. 타임라인이라는 형식 자체가 전제하는 선형성 — 이 기술에서 저 기술로, 이 돌파에서 저 돌파로의 발전 서사 — 은 기술사의 단절, 실패, 윤리적 후퇴를 잘 담아내지 못한다. 리서치의 성의와 깊이를 인정하되, 그것이 전시 전체의 “특이점을 향한 가속”이라는 서사를 보강하는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은 비판적으로 인식해둘 필요가 있다.

이 챕터에서 대만 미디어아트의 선구자 원광명(袁廣鳴, YUAN Goang-Ming)의 신작 《Flat World》(2024)는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원광명은 구글 스트리트뷰 데이터베이스에서 AI와 인력을 결합해 전 세계의 유사한 거리 풍경을 탐색하고, 이를 하나의 끝없는 루프로 연결했다. 10분짜리 싱글채널 영상으로 구성된 이 작업은, 디지털 기술이 인간의 지리적 인식을 어떻게 재편하는지를 시각화한다. 기술에 의해 평탄화(flatten)되는 세계 — 이 제목이 암시하는 것은 가속만이 아니라, 가속이 초래하는 균질화이기도 하다.

Yuan Goang-Ming, Flat World, 2024. Previsualization image©️ Marco Bottigelli, Coastal Road in Madeira, Portugal via Getty Images.

두 번째 챕터는 AI가 창작의 새로운 동력이 된 상황에서, 관객이 AI 생성 환경 속 자신의 역할을 재평가하도록 유도한다. HYPER CURRENT의 《Co-Infinite 3.0》은 일상 풍경, 자연 경관, 건축 공간, 얼굴 표정 등을 가상 영역에서 재창조하며, 알고리즘이 현실 개념을 끊임없이 재기술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챕터에서 가장 날카롭게 기억에 남는 작품은, 대만 콜렉티브 陽春麵研究舍(Simple Noodle Art)의 《Prompt: Dupe Arts》(2024)이다. 이 작업의 구조는 이렇다: 가구 카탈로그에 실리는 종류의 추상화를 만드는 유튜브 튜토리얼에서 프롬프트를 추출하고, 이를 Stable Diffusion에 입력한 뒤, 그 결과물을 다시 소형 회화(painting)로 물질화한다. AI와 독창성을 둘러싼 공론 한복판에, “사람들이 늘 예술에 독창성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정확히 찔러 넣는 작업이다.

《Prompt: Dupe Arts》의 힘은 그 순환의 구조에 있다. 유튜브 튜토리얼(이미 독창성의 반대편에 있는 것) → 텍스트 프롬프트 → AI 이미지 생성 → 회화적 실현. 이 과정에서 “원본”은 어디에도 없으며, 동시에 모든 단계가 일종의 “원본”이다. dupe — 복제이자 기만 — 라는 제목은, AI 창작 담론이 집착하는 독창성/모방의 이분법 자체가 허구임을 드러낸다. 전시 전체를 관통하는 “특이점”의 매끄러운 서사 속에서, 이 작품은 일종의 유머러스한 마찰로 기능한다. AI가 생산하는 매끄러운 이미지의 정체를 거울처럼 비추어 보이는 것이다.

Simple Noodle Art, Prompt: Dupe Arts, 2024, ©️ 글쓴이

세 번째 챕터는 작가 밀도가 가장 높은 구간이며, 전시의 비평적 무게추가 놓이는 곳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 출신 홍콩 기반의 작가이자 영화감독 리아르 리잘디(Riar Rizaldi)의 《Kasiterit》(2019)는, 이 전시에서 가장 깊은 리서치와 가장 물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인도네시아 방카섬(Bangka)에서 촬영된 이 비디오 설치 작업은, 주석(tin) — 세계 공급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방카섬의 주석 — 이 광산에서 채굴되어 전자기기의 기판에 이르고, 다시 전자폐기물로 땅에 묻히기까지의 여정을 추적한다. 태양광 AI 나타샤(Natasha)가 자신의 물질적 계보를 탐구한다는 서사 구조는, 기술의 추상적 매끄러움 뒤에 가려진 채굴 노동, 원주민 공동체의 긴장, 생태적 파괴를 전면에 꺼내놓는다.

특히 설치 버전에서의 시간 계산은 강렬하다. 원주민 광부가 아이폰 한 대에 필요한 주석을 캐는 데 21분 33초 3프레임이 소요되는 반면, 국영 기업은 9프레임 — 1초도 되지 않는다. 이 계산을 카메라의 프레임레이트(24fps)로 물질화시킨 리잘디의 방법론은, 영화적 시간과 노동 시간의 등가 관계를 만들어낸다. “특이점”을 향해 가속하는 기술 문명이 그 가속을 위해 착취하는 것들 — 《Kasiterit》는 이 전시가 던져야 했지만 큐레이토리얼 텍스트에서는 충분히 다루지 못한 질문을, 작품의 물질성을 통해 직접 제기한다.

한국 작가들의 존재감도 이 챕터에서 두드러진다. 김아영의 《Delivery Dancer’s Sphere》(2022)는 배달 노동자가 타임라인을 가로질러 이동하는 SF적 서사를 통해, AI의 확률 연산과 다중 세계의 사변적 물리학을 교차시킨다. 양숙현의 《Exotic Species in the Robot Ecosystem》(2023)은 3D 프린팅, LED, AI 생성 영상을 결합해 유기체와 인공물 사이의 경계를 교란하는 바이오닉 생명체를 제안한다. 얄루(Yaloo)의 작업 또한 이 경계 교란의 맥락에 위치한다. 이 작가들의 작업이 상대적으로 높은 완성도와 메시지 전달력, 리서치의 깊이를 보여준 것은 — 한국 미디어아트 생태계가 수년간 축적해온 국제 서킷 경험과 제도적 지원의 결과이기도 하다.

반면, Sputniko! ✕ Tomomi Nishizawa의 《Tokyo Medical University for Rejected Women》(2019)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018년 도쿄의대 여성 수험생 점수 조작 스캔들에 대한 반응으로 제작된 이 멀티미디어 작업은 문제의식 자체는 강력하다. 그러나 80×200cm, 60×90cm 규모의 설치는 물리적 존재감이 약했고, 5년 전 특정 사건에 대한 반응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2024년 “AI 시대의 특이점”이라는 프레이밍 안에서 충분히 맥락화되지 못한 인상을 남겼다. 이는 작품 자체의 한계라기보다, 큐레이토리얼 배치와 맥락 부여의 문제에 가깝다 — 좋은 작품이라도 시간성과 맥락이 어긋나면 힘을 잃는다는 점을 확인시켜주는 사례다.

양숙현, Exotic Species in the Robot Ecosystem, 2023, ©️ 글쓴이

네 번째 챕터는 독일 기반의 국제 비영리 조직 Tactical Tech와 그 협력자들로 구성된다. Aram Bartholl, The Critical Engineering Working Group, Kiki Mager, La Loma ✕ Tactical Tech 등이 참여한 이 섹션은, 기술적 특이점이 초래할 사회적 도전과 디지털 회복력(digital resilience)의 문제를 다룬다.

이 중 Tactical Tech의 《Everywhere, All the Time》은 전시의 맥락에서 독특한 위상을 점한다. 이 프로젝트는 원래 전 세계 300명의 청소년, 100명의 교육자와 공동 개발한 디지털 리터러시 개입 프로그램으로, 인쇄 가능한 포스터, 활동 카드, 교육자 가이드북으로 구성되어 있다. AI 챗봇의 작동 원리, 기술 뒤의 숨겨진 노동, 인터넷의 물리적 인프라 등을 다루는 이 프로젝트는, 미술관 맥락에서는 “리서치 기반 설치”로 읽히지만, 본래의 의도는 교실과 도서관에서의 실천이다.

이 이중성은 비평적으로 흥미롭다. 예술 작품과 교육적 도구 사이의 경계에 놓인 《Everywhere, All the Time》은, “AI와 예술”이라는 프레임을 넘어 “AI와 시민성(citizenship)”이라는 질문으로 확장되는 통로를 제공한다. Tactical Tech가 지난 20여 년간 추적해온 데이터 감시, 정보 오염, 디지털 권력의 문제는, 예술 전시의 관성적 수용 방식인 감상하고, 감탄하고, 떠나는 일련의 행동을 교란한다. 관객은 여기서 감상자가 아니라 학습자이자 잠재적 실천자로 호출된다.

Tactical Tech, Everywhere All the Time 전시 섹션, 2024, ©️ 글쓴이

Singularity를 관통하는 큐레이토리얼 서사는 분명하다: 기술적 특이점이 다가오고 있으며, 이 임계점에서 예술과 기술, 인간과 기계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재편된다. 그러나 이 서사 자체에는 비판적 거리가 필요하다.

‘Singularity’라는 프레이밍은 솔직히 말해, 2015년적이다. 빈지에서 커즈와일(Kurzweil)로 이어지는 가속주의적 서사를 전시 타이틀에 그대로 채택한 것은, 2024년 시점에서 특이점 담론을 비판 없이 반복할 위험을 안고 있다. 큐레이토리얼 텍스트가 젠슨 황의 COMPUTEX 연설을 직접 인용하며 “그 임계점이 이미 도래했을 수 있다”고 쓸 때, 산업 담론과 예술 비평 사이의 거리는 위험할 정도로 좁아진다. AI 전시가 기술 산업의 자기 선전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마찰을 걸어야 한다면, 이 거리의 부족은 구조적 약점이다.

그러나, 이것이 이 전시의 역설적 강점인데 개별 작품들은 큐레이토리얼 텍스트가 포괄하지 못하는 잉여를 생산한다. 《Kasiterit》는 가속의 물질적 대가를, 《Prompt: Dupe Arts》는 AI 이미지 생산의 허영을, 《Delivery Dancer’s Sphere》는 플랫폼 노동의 알고리즘적 지배를, 《Everywhere, All the Time》은 기술 리터러시의 시민적 차원을 각각 전면에 꺼내놓는다. 이 작품들은 “특이점이 온다”는 서사에 올라타기보다, 그 서사가 은폐하는 것들을 드러낸다.

전시의 진정한 가치는 이 긴장에 있다. 매끄러운 가속의 서사와, 그 서사 안에서 불거져 나오는 마찰. Singularity는 이 마찰을 큐레이토리얼하게 의도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좋은 작품들은 큐레이터의 의도를 넘어서 자신만의 발화점을 만들어낸다.

 

C-LAB의 시도를 좀 더 넓은 맥락에서 보자. 아시아에서 미디어아트와 예술-기술 영역을 기관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다루는 곳은 많지 않다. 한국의 백남준아트센터,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일본 NTT InterCommunication Center (ICC), 야마구치 (YCAM) 등이 각자의 궤적을 그려왔지만, 대만에서 C-LAB이 이 역할을 맡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한국이나 일본의 현대미술계가 비교적 단단한 제도적 기반 위에서 작동하는 것에 비해, C-LAB에서 느껴지는 것은 다소 표피적이거나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지점들이다. 그러나 그 “다듬어지지 않음” 안에는 거꾸로 제도화되지 않은 에너지가 있다. Singularity에서 만난 대만 콜렉티브들인 Simple Noodle Art, HYPER CURRENT, 2ENTER 등의 작업에서 느껴지는 것은, 아직 자기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실천들의 날것의 활력이다. 이것이 한국 미디어아트의 조율된 완성도와 어떻게 대비되고 보완되는지를 관찰하는 것 자체가, 아시아 미디어아트의 지형을 읽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또한 이 전시의 협력 기관인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캐나다 몬트리올의 ELEKTRA, 괴테 인스티투트 타이베이, 현대자동차 아트랩 등은 C-LAB이 국제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구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ACC와의 협력은, 아시아 내 미디어아트 기관 간 연대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15미터 직경의 야외 돔 극장(FUTURE VISION LAB)을 포함한 기술 인프라 투자, 대만 문화부의 구조적 지원, 그리고 Ars Electronica와의 공동 커미션(Simple Noodle Art의 다른 작품인 《Exploration and Exploitation》) 등 C-LAB은 아시아 미디어아트의 지형에서 독자적인 궤적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궤적이 어디로 향할지는 아직 열려 있지만, Singularity는 그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유의미한 좌표를 제공한다.

c-lab 전경, ©️ 글쓴이

확실히, Singularity는 완벽한 전시가 아니다. 큐레이토리얼 텍스트는 가속주의적 서사에 너무 가까이 서 있고, 일부 작품은 프레이밍과 시간성의 불일치로 힘을 잃었으며, 전시 전체의 밀도는 고르지 않다. 그러나 이 전시가 중요한 것은, AI 전시의 범람 속에서 ‘기술적 경이의 소비’를 넘어서려는 시도의 궤적을, 성공과 실패를 함께 드러내며 보여주기 때문이다.

오늘날 미디어아트가 가장 치열하게 발언해야 하는 것은,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은폐하는가’이다. 이미지 생성의 매끄러움 뒤에 숨은 자원 채굴과 노동 착취(《Kasiterit》), 독창성 담론의 허구성(《Prompt: Dupe Arts》), 플랫폼 경제가 재편하는 삶의 조건(《Delivery Dancer’s Sphere》), 그리고 기술 리터러시가 시민적 실천이 되어야 할 필요성(《Everywhere, All the Time》). 이 작품들이 공통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매끄러운 표면에 마찰을 거는 일이다.

C-LAB의 구 군사시설 건물들 사이를 걸으며, 기술집약적 전시 공간과 야외의 자연 사이를 오가며, 관객은 의도치 않게 그 마찰을 몸으로 경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가속의 서사는 직선을 그리고 싶어 하지만, 좋은 작품들은 그리고 좋은 전시 공간은, 그 직선 위에 굴곡을 만들어낸다. Singularity가 남긴 것은 특이점의 도래가 아니라, 특이점을 향한 가속의 서사 안에서 불거져 나오는 잉여들. 그리고 마찰의 자리들이다.

허대찬. 미디어문화예술 앨리스온 aliceon.co.kr 편집장

 

전시 정보
2024 Future Media FEST: Singularity (2024 未來媒體藝術節 奇異點)
2024.10.04 – 12.15 화–일 12:00–19:00, 월요일 휴관
臺灣當代文化實驗場 (Taiwan Contemporary Culture Lab, C-LAB)
타이베이시 다안구 건국남로 1단 177호
큐레이터: 우다퀀 (吳達坤, WU Dar-Kuen)
주최: C-LAB 현대예술플랫폼
지도: 문화부(文化部)

참여 작가(국적)
YUAN Goang-Ming (TW), HYPER CURRENT (TW), HUANG Zan-Lun (TW), YANG Sookyun (KR), Riar RIZALDI (ID), Sputniko! ✕ Tomomi Nishizawa (JP), Louis-Philippe RONDEAU (CA), Yaloo (KR), Anke SCHIEMANN (DE), LU Yang (CN), Simple Noodle Art feat. Shanboy CHEN (TW), WEI Ze (TW), KIM Ayoung (KR), Luca BONACCORSI (IT), Damonxart (TW), YUEN HSIEH (TW), Nikita FREEBOLD KHUDIAKOV (UA), 2ENTER (TW), Tactical Tech (DE), Aram BARTHOLL (DE), The Critical Engineering Working Group (DE), Kiki MAGER (DE), La Loma ✕ Tactical Tech (DE)

협력 기관
Asia Culture Center, ELEKTRA, Giloo, Goethe-Institut Taipei, Moonshine Studio, N-MOTION VISUAL, NIHO Creative, SFAC, TKG+, VISION BA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