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의 한 제안서 – 백남준을 다시 읽는다는 것: MEDIA PLANNING FOR THE POST INDUSTRIAL AGE -1

Nam June Paik, MEDIA PLANNING FOR THE POST INDUSTRIAL AGE, 1974, PDF screenshot, p. 1. cover.

1. 예언, 그리고 기울기
백남준이 기금 확보를 시도할 때 어떠한 주장과 근거, 내용을 통해 지원주체를 설득하려고 했을까. 기금 제안서(지원서)는 대부분의 예술인들에게 숙제 아닌 숙제이고 결국은 떨쳐버려야하는 생명줄이다. 그래서 더욱 시선이 간 것일지도 모른다. 2026년이 백남준 서거 20주기이기도 하고.

1974년에 작성된 이 문서를 처음 펼쳤을 때, 나는 이것이 일종의 기술적 예언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실제로 마주치는 것은 다른 경험이다. 백남준이 록펠러 재단에 제출한 이 열두 페이지짜리 제안서인  「후기산업사회를 위한 미디어 기획(MEDIA PLANNING FOR THE POST INDUSTRIAL AGE – Only 26 years left until the 21st Century」 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내용을 대략 알고 있어도 눈이 멈출 수 밖에 없다. 화상전화, 쌍방향 인터랙티브 TV, 전자 도서관, 원격 의료, 텔레커뮤팅, 그리고 뉴욕과 로스앤젤레스를 잇는 “전자 슈퍼 하이웨이” 등. 이것은 SF가 아니다. 그는 1974년에, 21세기의 일상을 거의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다. 

Nam June Paik, MEDIA PLANNING FOR THE POST INDUSTRIAL AGE, 1974, PDF screenshot, p. 5-6.

“교통과 커뮤니케이션은 일반적으로 별개의 문제로 취급된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왜’ 사람들이 이동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사람들은 이익을 위해서든 즐거움을 위해서든 무언가를 소통하기 위해 이동한다. 목적지않이 즐거움 자체를 위해 하는 드라이브에서도, 운전자들은 사실 기계를 통해 자기 자신과 무의식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자신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볼 용기를 가진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이동의 필요가 줄어들면 이동의 빈도도 줄어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동을 대체할 수 있는 에르자츠(Ersatz, 대체재) 기술이고, 광대역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유력한 후보다.”

그러나 이 문서의 힘은 예측의 정확성에서만 오지 않는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어떻게 생각했느냐, 즉 사고방식의 구조다. 바로 위에서 인용한 대목이 특히 그렇다. 에르자츠. 독일어로 대체재, 혹은 원본이 없거나 닿을 수 없을 때 그 자리를 채우는 임시의 것을 뜻하는 단어다. 백남준은 이 단어를 통해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성격을 다시금 재규정했다. 이동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채우는 대체재로서. 이동을 대체하는 통신, 만남을 대체하는 화상회의, 현존을 대체하는 스트리밍같은. 그 대체 속에는 항상 무언가가 남고, 무언가가 사라진다는 함의가 내장되어 있다. 에르자츠는 원본과의 간극을 전제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예언의 언어가 아니라 철학의 언어로 미디어를 다루는 이 대목에서, 그가 단순한 기술 낙관론자가 아니었음을 재차 확인하게 된다.

이런 생각의 전개 중에 문득, 나의 머릿속에서는 또 다른 이름 하나가, 어찌 보면 당연한 이름이 불쑥 올라왔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백남준과는 시대도 장르도 다른 사람이지만, 이 두 사람의 텍스트가 어떤 층위에서 겹쳐 보였다. 그는 1935년에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을 썼다. 사진과 영화라는 새로운 기술 매체가 예술의 근본 조건을 바꾸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그의 핵심 주장은 이중적이었다. 한편으로 기술복제는 예술 작품의 ‘아우라’를 파괴한다. 유일무이한 원본이 가지는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거리감이 사라진다. 그러나 다른 한편, 바로 그 파괴가 새로운 가능성을 연다. 이미지가 대중에게 복제되어 유통되면서, 대중은 이미지를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독해하는 능력을 획득한다. 영화관에서 관객은 카메라가 절개한 세계를 함께 분석해나간다. 벤야민은 이것을 정치적 가능성으로 읽었다. 복제 기술 매체는 예술을 제의의 영역에서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내었다.

벤야민의 텍스트가 탁월한 것은 이 낙관적 전망과 함께, 바로 동일한 매체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유될 수 있다는 경고를 동시에 담았기 때문이다. 그는 파시즘이 어떻게 영화와 라디오를 이용해 정치를 심미화하는지, 즉 대중의 감각을 조작하고 집단적 도취를 연출하는지를 냉정하게 기술했다. 해방의 도구와 지배의 도구가 동일한 기술에서 비롯된다는 것. 이 변증법적 긴장이 벤야민의 텍스트를 지금도 살아있게 만드는 힘이다.

발터 벤야민의 「기계적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이 처음 활자화된 지면. 나치 치하 독일을 피해 파리에 망명 중이던 벤야민은 이 글을 프랑스어로 번역하여 게재했다. 해방의 매체로서 영화가 가진 가능성과 그 동일한 매체가 파시즘의 선전 도구가 되는 아이러니를 동시에 직시한 텍스트가, 역설적으로 망명과 검열의 조건 속에서 세상에 나왔다. Walter Benjamin, “L’œuvre d’art à l’époque de sa reproduction mécanisée,” Zeitschrift für Sozialforschung, Jg. 5, Heft 1 (Paris: Librairie Félix Alcan, 1936), pp. 40–68. 디지털 원문: Internet Archive (archive.org)

백남준의 1974년 기획서로 돌아오면, 구조적 유사성이 보인다. 그 역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열어젖힐 해방의 가능성을 주장했다. 광대역 네트워크는 정보를 민주화하고, 지리적·계급적 장벽을 허물고, 인종 간 이해를 증진하고, 에너지 소비를 줄이면서도 문화를 풍요롭게 할 것이라고. 그는 다니엘 벨(Daniel Bell)의 후기산업사회론과 존 케네스 갈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ith)의 예술경제론을 끌어들여 그 가능성을 논증했고,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와 베이트슨(Gregory Bateson)을 경유하여 커뮤니케이션이 곧 문화의 근간임을 역설했다.

여기에서 벤야민과 백남준의 중요한 비대칭이 드러난다. 벤야민은 해방의 가능성과 지배로의 전유를 하나의 텍스트 안에서 동시에 다루었다. 그의 논문의 마지막 에피소드에 담긴 문장 “파시즘이 정치를 심미화한다면, 공산주의는 예술을 정치화함으로써 응답한다”는 경고와 처방을 함께 담고 있다. 백남준의 기획서는, 상대적으로 일방향이다. 물론 “자유주의 엘리트 계층이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을 계속 외면하고 이를 순수한 상업 자본에 맡겨둔다면, 결과는 초대형 워터게이트가 될 것”이라는 경고가 한 문단 분량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체계적인 위험 분석으로 전개되지는 않는다. 물론 록펠러 재단에 제출하는 보조금 제안서라는 장르적 제약이 있었겠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분명하다. 백남준은 ‘기술을 통한 해방’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 믿음이 텍스트의 기울기를 결정했다.

여기서 하나의 계보를 발견할 수 있다. 기술 해방론(technological utopianism)라고 부를 수 있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기존의 권력 구조를 와해시키고 더 수평적인 사회를 가능하게 한다는 믿음이라는 지적 전통이다. 이 흐름은 벤야민에게서 드물게 자기비판적이었을 뿐, 그 외의 많은 곳에서는 낙관의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더더욱 가속되는 기술발달의 속도가 그 기울기를 더더욱 가파르게 하는 가운데, 기울기 속에서 매번 시야 밖으로 밀려나는 것은 추상적인 위험이 아니다. 새로운 기술 인프라가 설계되고 배분되는 방식 안에서 이미 특정한 권력 관계가 새겨진다는, 아주 구체적인 문제다.

정치학자이자 기술철학자 랭던 위너(Langdon Winner)는 1980년에 발표한 논문 「기술은 정치를 가지는가(Do Artifacts Have Politics?)」에서, 기술은 중립적 도구가 아니라 특정한 권력 관계와 사회적 배치를 구조 안에 새겨넣는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미디어 인프라를 설계하고 배분하는 행위는 단순한 기술적 결정이 아니라 정치적 결정이라는 것이다. 백남준이 낙관했던 바로 그 광대역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가, 그가 미처 설계하지 못한 권력 관계를 내장한 채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 이것이 오늘 이 문서를 다시 읽게 만드는 근본적인, 불편한 이유일 것이다.

백남준이 1974년 록펠러 재단 제안서에서 처음 사용한 개념 “전자 슈퍼 하이웨이”를 21년 후 작품으로 실현한 작품. 336대의 TV 모니터와 네온 조명, 스틸과 목재로 제작된 51채널 비디오 설치로 미국 대륙 전체의 지도를 구성하며, 각 주(州)마다 해당 지역과 연관된 영상 클립이 재생된다.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교통망이 사람과 물자를 연결했듯, 전자 네트워크가 이미지와 정보를 연결하는 시대의 도래를 시각화했다. 그러나 동시에 수백 개의 화면이 동시에 쏟아내는 정보의 물량 자체가 이른바 “정보 과부하”를 체험하게 하며, 연결의 가능성과 그 과잉 사이의 긴장을 작품 안에 내장하고 있다. Electronic Superhighway: Continental U.S., Alaska, Hawaii. Photo by Amy Fox. https://americanart.si.edu/blog/superhighway-nam-june-paik © 2026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허대찬. 미디어문화예술채널 앨리스온 aliceon.co.kr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