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한 존재들에 대하여 Part 2: 무니페리 Mooni Perry

지난 인터뷰 1부에서는 작가 개인의 배경과 더불어 주요 탐구 주제 및 대표 작품들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2부에서는 올해 초 진행된 《2022 금호영아티스트 2 부》에서 선보인 작업을 중심으로 톺아보고, 작업과 연관된 다양한 활동들과 앞으로의 작업 계획에 대해 물어보았다.

 

《2022 금호영아티스트 2 부》 포스터 ⓒ금호미술관

 

Q. 주요 작업뿐만 아니라 <최유미 선생님 인터뷰(2019)>, <빈랑시스 챕터 3 스케치(2021)> 등에서 유독 작업 ‘과정’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형식을 취하시기도 합니다. 즉, 인터뷰 자체나 관련 도서를 독해하는 과정 등을 작업화하시는데요, 이번 금호미술관 전시에서도 이러한 과정이 잘 드러났던 것 같습니다. 어떠한 계기로 과정을 보여주는 작업을 지속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러한 작업의 의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 :  작가들이 리서치를 거쳐서 완성된 작업물을 보여주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중에 한 예로, 리서치 과정을 잘 수합해서 작가의 생각 혹은 주장을 얹어서 보여주는 방법이 있을 거 같아요. 하지만 저는 잘 짜인 선형적인 서사에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편이에요. 반대로 ‘도대체 이게 뭐야’라는 생각이 드는 작업을 만났을 때의 당혹스러움과 함께 어떤 희열을 느끼는 편이거든요. 즉, 파편적인 이야기 혹은 개연성이 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잘 펼쳐놓고 관객들이 그걸 수확하게 하는 방식을 좋아합니다. 이러한 방법은 언뜻 보면 이야기를 마구잡이식으로 가져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직물을 잘 짤 수 있는 재료들을 작가 나름대로 선별한 것이죠.

이런 스토리텔링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레바논 출신의 왈리드 라드(Walid Raad)라는 작가의 작업을 보고 나서였던 것 같아요. 그는 주로 렉처 퍼포먼스를 작업을 하는데, 퍼포먼스 시작하기 전에 “내가 지금부터 1시간 동안 이 얘기 했다가 갑자기 저 얘기 했다가 할 텐데 너무 당황하지 말고 한번 들어봐.”라고 하더라고요. 작가는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정치적인 이야기들, 본인이 긴 시간 동안 조사해온 자료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점핑하듯 이야기하는데요, 듣다 보면 이 이야기가 진짜 겪은 이야기인지, 지어낸 이야기인지 판별이 불가능한 애매모호한 지점들이 계속 발생합니다. 공연 후에 이 파편적인 이야기들이 갑자기 제 머릿속에서 맞춰지면서 굉장한 힘을 느꼈고 저도 이런 식의 스토리텔링을 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이번 금호미술관 전시에서 저는 판소리 리딩 퍼포먼스를 준비했는데요, 퍼포먼스 시작 전에 소리꾼들이 “자신들은 베를 짜는 사람이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베를 짜는 방법에는 수평적인 베짜기와 수직적인 베짜기가 있는데 저는 수직적인 베짜기가 시를 짓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고체계를 수직, 수평적으로  함께 직조하는 것이죠. 텍스트를 어떻게 엮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귀결될 수도 있어요. 그리고 퍼포먼스에서 제 목소리가 하나도 없다는 점을 강조하는데요, 저는 완전히 새로운 어떤 이야기와 사고체계를 보여주는 것 말고, 이미 있는 구조와 이야기 안에서의 틈을 보여주는 쪽에 관심이 많이 가는 편이에요.

 

《2022 금호영아티스트 2 부》 전시 전경 ⓒ금호미술관

 

《2022 금호영아티스트 2 부》 전시 전경 ⓒ금호미술관

 

Q. 이번 금호미술관 전시에서는 앞서 살펴보았던 <빈랑시스>와 <실종: 유령으로 돌아오지 못하고>가 하나의 작품으로 연결되어 등장합니다. 두 작품을 이전에 개별 작품으로 보았던 관객으로서는 둘의 연결이 흥미로우면서도 생소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리서치 과정이 그 둘의 연결에 대한 실마리를 담고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떠한 과정을 거쳐 둘이 만나게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또한 리서치에서 1993년에 개봉한 홍콩 영화인 <청사>가 소재로 등장하기도 하는데요, 이러한 흥미로운 소재나 자료들에 대한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에서 얻어 오시나요?

A : 서로 완전히 달라 보이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궁금한 지점이 있을 것 같아요. 작업하면서 보통 한 프로젝트가 끝나면 그다음 프로젝트의 씨앗이 될 수 있는 키워드를 마음에 품게 됩니다. 프로젝트 안에 다 담지 못했던 어떤 이야기들이 항상 있거든요. 그리고 그 키워드를 품고 있는 한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이 그물망으로 걸리듯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예를 들어 길거리에 버려졌던 빈랑박스도 평소였으면 그냥 지나치고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그때 당시에 제가 거기에 대한 키워드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레이더에 걸리게 되었던 것 같아요. <빈랑시스>를 끝내고 <실종>을 준비하면서 심리적인 부담감도 컸고, 해결하지 못한 지점을 남겨둔 것 같은  찝찝한 기분이 계속 있는 상태였어요. 하지만 거리를 두고 다시 생각을 해보니 이 두 프로젝트 사이에 어떤 연결 지점이 보였습니다.

<실종> 프로젝트는 SF 혹은 판타지 장르로 구현될 영상 작업입니다. 저는 먼저 이를 위해 SF와 판타지 장르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고, <빈랑시스>의 두 번째 챕터를 준비할 때 판타지의 중국어 번역어인 ‘기환(奇幻)’에 대한 대략적인 리서치를 해놓은 상태였어요. 더불어 홍콩과 중국 고전 문학의 주요한 문화적 코드였던 인간과 인간 아닌 것의 로맨스인 ‘이류상애’에 대한 리서치도요. 기환과 더불어 동아시아의 환상성을 조사한 이유는 환상성은 동아시아의 고전 문학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이자 오히려 본질이었는데, 서양의 SF/판타지물을 대거 수입해 옴과 동시에, 왜 우리는 동양 작가가 쓴, 중세서구봉건사회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물을 이다지도 많이 접하게 되었을까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습니다. 또한<실종>을 동아시아의 맥락에서 SF 혹은 판타지물로 풀고 싶다는 고민이 있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같이 알아보자는 의미에서 전시<리서치 위드 미>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빈랑시스> 두 번째 챕터의 뒷부분은 픽션인데요, 이는 제가 홍콩 영화 <청사>의 애프터 스토리를 상상해서 사이버 펑크적인 요소와 결합한 것입니다. <청사>을 보면 언니인 백사는 성공적으로 인간 세계에 병합한 인물이었지만 결국에는 죽음을 맞이하고, 동생인 청사는 인간도 뱀도 아닌 어떤 경계 있기를 원하는 존재입니다. 더불어 저는 영화에서의 묘한 요소들-예를 들어 둘이 자매인데도 불구하고 청사가 백사를 연인에게 대하듯 질투한다던가-을 고려하여 이 둘을 아예 연인으로 설정하였습니다. 관객들이 봤을 때 이들이 환생해서 왜 ‘하필’ 빈랑시스가 되었을까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영화에서 이들은 남자를 ‘미혹’하는 존재들로 그려지는데요,  환생해서는 소위 말하는 ‘깨끗한’ 존재 (빈랑시스가 도시의 미관을 해치는 존재로 여겨져왔다는 맥락 아래에서)가 됐을 가능성도 존재하잖아요. 하지만 ‘너는 타락한 존재야’라고 했을 때 “난 그렇지 않아”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게 뭐 어때서”라고 대답하면 질문한 이를 당황시키고 깨끗함/더러움이라는 이분법이 흐려지게 된다고 생각해요.

 

Q. 프로젝트의 리서치를 단지 시각 자료로써 아카이브의 방식으로만 보여주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낭독 퍼포먼스를 통해서도 선보이셨습니다. 어떤 계기로 낭독 퍼포먼스를 이번 전시에서 시도하게 되었나요? 특히 <빈랑시스>의 첫 번째 챕터처럼 이번 낭독 퍼포먼스에서도 판소리가 등장하는데, 판소리라는 소재를 가져오시게 된 계기나 이유가 있으시면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A : <빈랑시스>의 챕터 3 또한 리딩 퍼포먼스였어요. 원래 낭독에 관심이 있기도 했고, 당시 리딩 퍼포먼스의 촬영은 이전에는 인지하지 못한 부분들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낭독하는 사람과 낭독하는 텍스트 간의 간극이 있음을 인지하게 되었어요. 낭독하는 텍스트는 제가 꽤 오랜 시간에 걸쳐서 조사한 자료들이기 때문에 저에게는 익숙하지만, 낭독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거리가 있는 거죠. 리딩 퍼포먼스 과정에서 그런 지점이 그대로 드러나는 게 재밌더라고요. 텍스트를 자신들이 소화해서 강의를 하듯이 말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러한 간극 자체가 그대로 보이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또한 당시에 영어로 리딩을 했는데 일부러 주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을 초대를 했어요. 영어가 사실 단일한 음성언어가 아니잖아요. 인도식 영어가 있겠고, 한국의 억양이 묻어나는 영어가 있고…

 판소리를 선택한 이유는, <빈랑시스>를 작업하면서 한국 성산업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게 됐어요. 물론 현재 상업화된 성 산업과 비교하기에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조선시대의 기생에 대해 주목하게 되었어요. 기생들 간에는 1패, 2패, 3패처럼 등급이 나눠져 있었는데, 저는 이렇게 여성이 등급으로 나눠지는 지점, 주로 사회적으로 낮은 계급의 여성들이 높은 계급의 사람들을 위해 서비스-술, 춤, 노래 혹은 성-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성 산업과 겹치는 지점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판소리를 이야기 전달 방식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Q. 작가님의 리서치 베이스의 활동은 미술관에서 작품을 전시하는 방식뿐 아니라 공동 연구라는 협업의 방식과 다양한 형태로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021년에 큐레이터 한웬 장(Hanwen Zhang)과 함께 시작한 아시안 페미니스트 플랫폼인 Asian Feminist Studio for Art and Research (AFSAR)을 통해 세계 곳곳의 이론가, 예술가, 활동가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연구뿐 아니라 스크리닝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한 유의미한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신데요, 이 플랫폼에 대한 간략한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A : AFSAR는 작년에 장한웬Hanwen Zhang과 함께 시작한 온라인 플랫폼이에요. 이 플랫폼의 비공식적 목표는 시스터들, 브라더들 그리고 논바이너리들과 강력한 아시아 갱스터를 만들어는 것입니다.(웃음) 전 세계 곳곳의 소중한 연구를 하시는 연구자, 작가, 활동가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싶은 플랫폼이에요. 그리고 이름이 나르고 있는 무거운 숙제가 있죠. ‘아시아 페미니즘’이 그것인데, 지금은 일단 ‘아시아’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해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만약 ‘아시아 페미니즘’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작동하는 것인가에 대한 실마리를 플랫폼 활동을 통해서 풀어보고 싶어요.

구체적인 올해 활동으로는 하반기부터 리딩 그룹을 진행할 예정이에요. 현재 몇몇 협력 플랫폼들 혹은 사람들과 워킹 그룹을 형성하고 있고, 그들과 리딩 텍스트들을 함께 큐레이팅 하고, 더불어 연계 프로그램-스크리닝,talk, 퍼포먼스등도 함께 기획할 예정입니다. 프로그램의 주요 장소는 베를린의 칼리스(Callies)가 될 예정이고, 한국에서는 10월 아르코 미술관 융복합 전시 연계 프로그램에 스크리닝과 talk으로 참여하게 될 것 같습니다.

 

AFSAR 홈페이지 캡쳐

– AFSAR 홈페이지 : https://a-fsar.com

 

Q. 과정을 보여준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님의 작품은 전시로 보여지는 결과물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생성되고 움직이는 유기체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작가님의 작업이 어떻게 전개될지 더욱 기대가 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작가님의 작업 계획에 대해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A : 저는 누가 현대미술이 뭐라고 생각하냐고 물어보면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왜냐하면 요새는 누구나 예산만 있으면 (혹은 예산이 없어도) 시각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1인 크리에이티브가 되어 엄청나게 많은 영상을 생산하고 있죠. 이렇게 쏟아져 나오는 무수한 이미지들과 현대미술을 경계 짓는 구분점은 담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죠. 그래서 저 또한 연구에 더 많이 집중하고 싶어요.

 앞으로의 계획은 개인 작업으로는 올해 하반기 아르코 미술관 융복합 페스티벌 전시 참여를 위해 금호에서 진행하고 있는 리딩 퍼포먼스를 기반으로 한 영상을 만들어볼까 생각하고 있어요. <실종> 프로젝트는 당분간 리서치와 대본 작성에 집중하고, 본 촬영을 내년 후반이나 내후년이 하게 될 것 같습니다. 개인 작업 이외에는 아까 말씀드린 아시아 페미니즘 플랫폼을 잘 키워보고 싶다는 소망이 있습니다. 플랫폼을 통해서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동시대 아트 사이클은 정말 빠르게 돌아가잖아요. 저는 제가 이 사이클에 휘몰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젊은 작가들은 그러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사이클에 한 번 더 올라타게 되면 계속 노를 젓고 싶으니까요. 그럼에도 저는 제 속도대로 연구를 숙성할 시간을 가지며 작업하고 싶어요.

 

Q. 오랜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주신 작가님의 목표와 소망들 저희도 응원하며, 앞으로도 좋은 작품 기대하겠습니다. 

A : 감사합니다.

 

 


 

작가 소개 

무니페리는 베를린과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로 영상작업을 만들며 최근 몇년간 A에도 B에도 속하지 못하는 “두번 떨어진” 존재들에 대해 고민해왔다. 분절된 요소들로 이야기를 수직, 수평으로 엮어서 전달하는 방법에 관심이 많은 그녀는 서로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두 이야기의 이상한 연결지점을 찾았을 때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 무니페리는 개인작업 이외에도 2021년부터 큐레이터 장한웬과 온라인 아시아 페미니즘 플랫폼 AFSAR(Asian Feminist Studio for Art and Research)을 시작하여 연구자들, 활동가들, 작가들과 함께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오고있다.

 

 

인터뷰 진행 및 정리: 이지연, 황지원 (앨리스온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