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흥미로운 문서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2026년 5월 26일, 교황 레오 14세가 발표한 회칙 《Magnifica Humanitas: ON SAFEGUARDING THE HUMAN PERSON IN THE TIME OF ARTIFICIAL INTELLIGENCE》입니다. 번역하면, ‘위대한 인간성: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 인격 보호에 관하여’가 되겠네요. 인공지능을 주제로 한 문서라는 사실만으로도 눈길이 갔지만, 사실 읽고 무언가 작업을 이어간다는 것에 대한 망설임도 있었습니다. 저는 천주교 신자도 아니고 신학을 공부한 사람도 아닙니다. 천주교에 대한 이해 역시 일상적인 상식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런 문서를 읽고 소개하는 것이 적절한가 하는 망설임도 있었습니다. 종교적 전통과 맥락을 충분히 알지 못한 채 다루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서에 관심이 생긴 이유는, 이것이 단순한 종교 문서로 읽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인공지능을 둘러싼 대부분의 담론은 기술 기업의 발표문, 정책 보고서, 산업 백서, 혹은 스타트업 선언문의 형식으로 등장합니다. 반면 이 문서는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회칙’이라는 형식을 통해 AI를 이야기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하나의 흥미로운 사건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문서는 1번부터 245번까지 번호가 매겨진 문단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처음에는 왜 이런 방식으로 작성되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찾아보니 이것은 가톨릭 회칙의 전통적인 형식이었습니다. 회칙은 일반적인 논문이나 보고서처럼 페이지 중심으로 읽는 문서가 아니라, 각각의 문단이 하나의 독립적인 논지 단위가 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조금 더 살펴보니 회칙은 새로운 이론을 증명하는 문서라기보다, 오랜 전통 속에서 축적된 인간관과 사회관을 현재의 문제에 적용하는 문서에 가깝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산업혁명기의 노동 문제를 다룬 《Rerum Novarum》 (1891, 레오 13세), 대공황과 독점자본에 대한 《Quadragesimo Anno》(1931, 비오 11세), 기후위기를 다룬 《Laudato Si’》(2015, 프란치스코)처럼, 이번 회칙은 AI를 하나의 기술이 아니라 인간 이해의 문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인상적이었던 지점은 문서가 AI의 성능이나 정확도보다 인간을 무엇으로 이해할 것인가를 중심 질문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AI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가를 묻기보다, 인간이 스스로를 데이터와 예측 가능한 패턴으로만 이해하기 시작할 때 무엇을 잃게 되는가를 묻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제가 이 문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도 그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최근 몇 년 동안 생성형 AI를 둘러싼 논의 속에서 반복해서 이해, 판단, 책임, 근거와 같은 문제를 고민해 왔습니다. AI가 이해하는가라는 질문보다, 우리가 무엇을 이해라고 부르는가에 더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회칙은 종교 문서라기보다, 다른 전통에서 비슷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하나의 사유의 장처럼 느껴졌습니다.
또한 그 지점은 제가 관심을 가져온 미디어아트와 기술문화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미디어아트는 오랫동안 새로운 기술 자체보다, 기술이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어떻게 재구성하는가를 질문해 왔습니다. 비디오, 네트워크, 데이터베이스, 알고리즘, 인공지능 등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예술가들은 기술의 성능을 보여주기보다 그 기술이 전제하는 인간관과 사회적 조건을 드러내려 했습니다.
최근의 AI 기반 작업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AI가 무엇을 생성할 수 있는가만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창작이라 부르는지, 무엇을 판단이라 부르는지, 무엇을 이해라고 인정하는지의 문제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회칙은 의외로 낯선 텍스트가 아닙니다. 비록 교황의 이름으로 발표된 문서이지만, AI를 인간 이해의 조건을 변화시키는 문화적, 문명적 사건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미디어이론과 기술문화 연구, 그리고 미디어아트 비평이 던져온 질문들과 예상보다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또한 문서가 반복해서 언급하는 공동선(common good), 진실, 권력 집중의 문제 역시 플랫폼과 알고리즘이 사회적 인프라가 된 오늘날의 상황을 떠올리게 합니다. 검색엔진과 추천 시스템, 생성형 AI는 무엇을 보게 하고 무엇을 보지 못하게 하는가를 끊임없이 결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AI를 둘러싼 문제는 더 이상 기술적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어떤 방식으로 조직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물론 아직 문서 전체를 읽은 것은 아닙니다. 이제 막 읽기 시작한 단계에 가깝습니다. 앞으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읽어보려 합니다. 아마 읽어가면서 생각이 바뀌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맥락들이 드러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입니다. AI를 둘러싼 거의 모든 논의가 기술과 산업, 정책의 언어로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 교황이 회칙이라는 오래된 형식을 통해 인간 존엄과 공동선, 이해와 책임의 문제를 다시 꺼내 들었다는 사실 자체는 충분히 주목할 만한 사건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이 문서를 천천히 읽어가며 메모를 남겨보려 합니다. 그것이 종교 문서를 읽는 경험이 될지, 철학 텍스트를 읽는 경험이 될지, 혹은 AI 시대의 인간관에 대한 비평적 독서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읽기를 막 시작한 지금으로서는, AI 시대에 교황은 왜 회칙을 썼을까라는 질문이 꽤 오래 따라다닐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결국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인간을 무엇으로 이해할 것인가라는 더 오래된 질문으로 이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허대찬. 미디어문화예술채널 앨리스온 aliceon.co.kr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