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립미술관(SeMA)의 여덟 번째 분관, 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이 지난 3월 12일 금천구 독산동 금나래중앙공원에 문을 열었다. 서울 서남권 최초의 공립 미술관이자, 공식적으로는 ‘서울시 최초의 공공 뉴미디어 특화 미술관’이라는 수식을 달고 등장한 이곳은, 개관 전부터 미디어아트 필드에서 적지 않은 기대와 주목을 받아왔다.
건축부터가 남다르다. 건축가 김찬중(더 시스템 랩)이 설계한 이 미술관은 공원 보행로와 연결된 개방적 공간 구조를 통해 일상 속 예술 경험이라는 새로운 미술관 모델을 제안하며, 지상 공원과 지하 전시 공간을 연결하는 스트리트형 구조를 취하고 있다. 과거 산업단지에서 IT와 디지털 중심 지역으로 변모해온 금천구라는 입지는, ‘기술과 예술의 연결’이라는 기관 정체성과 묘하게 공명한다. 또한 금천구는 서울문화재단이 지난 십여 년 간 금천예술공장을 운영하며 다빈치 크리에이티브(현재 Unfold X)를 통해 예술과 기술, 예술과 지역산업과의 연결을 실행해 온 서울의 문화예술적 토대 지역이기도 하다.

이번 개관에서 우선 눈여겨볼 수 있는 부분으로 우선 서울시립미술관이 어떤 기관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가의 문제일 것이다. SeMA는 서소문본관을 허브로 북서울미술관, 남서울미술관, 미술아카이브, 난지창작스튜디오, 백남준을 기억하는 집, 그리고 최근 개관한 사진미술관과 이곳 서서울미술관에 이르기까지, 각 공간에 고유한 주제적 정체성을 부여하는 ‘네트워크 미술관’ 모델을 분명히 표방하고 실행해왔다. SeMA는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정체성, 책무성, 브랜드, 혁신성을 4대 전략으로 각 관의 고유성을 강화하면서도 유기적으로 통합 운영하겠다는 중장기 진흥계획을 수립했다.
이 구조는 단일 대형 미술관의 전통적 모델과는 다른 접근이다. 각 분관이 특화된 의제를 가지되 SeMA라는 브랜드 아래 연결되는 방식은, 도시 전역에 분산된 예술 생태계를 공공기관이 어떻게 조율하고 의미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실험일 것이다. 서서울미술관 계획 당시, 서울시에 위치한 국공립 박물관과 미술관 77개소가 도심에 밀집되어 있는 반면 서남권에는 10개소, 금천구에는 단 하나도 없어 지역별 편차가 대략 6-7배에 달했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 네트워크 전략에는 문화 균형이라는 도시 정치적 맥락도 함께 새겨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맥락에서 개관특별전 《우리의 시간은 여기서부터》는 단순한 건립 기념전이 아닌, 기관 정체성 선언의 방식으로 읽어볼 필요가 있다. 이 전시는 서서울미술관 건립 과정과 서남권 지역민에 새겨진 시간의 서사를 ‘기억의 기록’으로 조명하며, 미술관의 탄생을 함께 지나온 사람들부터 지역과 미래 세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계의 층위를 ‘우리’라는 이름으로 엮어내어, 뉴미디어 예술이 지닌 ‘시간’의 의미를 탐색하고자 함을 밝혔다. 미술관이 지향하는 ‘뉴미디어’에 대한 추적과 접점의 단서이다.
전시의 핵심 개념은 ‘0번지’다. 아직 주소가 정해지지 않은 자리, 아무것도 아니지만 동시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 이 0번지는 미술관이 처음 숨을 쉬는 지점이자, 새로운 의미가 생성되는 출발점으로 제시된다. 전시 장소 또한 통상적인 갤러리 공간이 아닌, 미술관 배움 공간·로비·하역장 셔터·잔디마당 등 기존 전시 범주를 벗어난 ‘틈새 공간’이 선택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선택이 내포하는 이중성이다. ‘0번지’라는 개념은 기관 정체성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솔직한 선언이기도 하고, 동시에 지역·공동체·장소의 기억을 미술관의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리고 참여 작가 김태동(사진), 무진형제(워크숍·설치), 브이엔알(뉴미디어), 신지선(뉴미디어·설치), 컨템포로컬(뉴미디어·설치)의 면면에서 드러나듯, 이 전시는 사진·워크숍·설치·뉴미디어가 공존하는 다원적 형식으로 구성된다. ‘뉴미디어 특화’라는 정체성은 다른 언어들과 함께 관계를 형성하며 작동하고 있다.

그 구도에서의 긴장은 또 다른 개관행사에서도 찾을 수 있다. 개관을 여는 첫 번째 전시인 SeMA 퍼포먼스 《호흡》의 결은 미디어아트라기보다 분명히 다원예술의 문법에 가깝다. 여기에는 곽소진·그레이코드·김온·탁영준 등 25명(팀)의 작가가 참여하여, 호흡을 주제로 신체와 사회의 예술적 교차점을 탐구하고 인간과 환경을 미디어로 이해하는 퍼포먼스와 작품을 선보인다. 이곳에서의 ‘인간과 환경을 미디어로 이해한다’는 문장은 매체론적으로 흥미롭다. 그러나 그것이 미디어아트 필드가 오랫동안 다뤄온 기술-예술 담론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신체, 퍼포먼스, 생태적 감수성을 매개로 한 다원예술의 어법은 그 자체로 유효하지만, 그것이 뉴미디어 특화 미술관의 개관 언어로 선택되었다는 사실은 질문을 남긴다.
이 간극이 홍보와 실천 사이의 단순한 불일치는 아닐 것이다. ‘뉴미디어’라는 개념 자체가 제도적 언어 안에서 재정의되고 있다는, 재정의를 선언하는 신호일까. 공식 문서에서 서서울미술관이 다루겠다고 명시한 ‘영상·음향·조명 기반 작품, 퍼포먼스·무형의 개념미술, 인터넷 아트·코딩 아트·소프트웨어 기반 작업’이라는 목록 자체가 이미 매우 넓은 스펙트럼이다. 그 목록 안에 퍼포먼스와 개념미술이 포함되는 순간, ‘뉴미디어 특화’와 ‘다원예술’의 경계는 이미 흐려지기 시작한다.

아마도 5월에 예정된 뉴미디어 소장품전 《서서울의 투명한 청소년 기계》가 그를 확인할 수 있는 또 다른 감각지가 될 것이다. 이 전시는 ‘청소년’을 정보-신체 공생적 포스트휴먼 주체로 사유하는 개념적 틀 위에서 서서울미술관의 기관 정체성과 컬렉션 전략을 드러내는 자리가 될 예정이라고 한다. 포스트휴먼 주체성이라는 언어는 미디어아트 영역의 이론적 지형들과 맞닿아 있는 만큼, 그 전시가 실제로 어떤 밀도와 관점으로 펼쳐질지 기대된다.
수 년 전부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아 온 공공 미디어아트 기관의 새로운 장이 서울 서남권에 생겨났다. 이 공간이 선언한 정체성을 어떻게 실천으로 채워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허대찬. 미디어문화예술채널 앨리스온 aliceon.co.kr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