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박스튜디오(우현주·박지윤)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현대자동차그룹의 제로원(ZER01NE) 프로젝트에서였다. 그들은 등에 라이다 센서를 장착한 백팩을 메고 서울을 걸어 다니고 있었다. 그 모습은 엔지니어라기보다 게임 속 탐색자나 모험가에 가까웠다. 세계를 기록하는 사람이라기보다, 아직 지도화되지 않은 세계를 찾아다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 이후로도 이상하게 여러 장소에서 두 사람과 작품을 마주쳤다. 아트센터 나비에서도, 제로원에서도, 언폴드엑스에서도, 아시아문화전당에서도, TINC에서도. 그러나 매번 스치듯 지나갔다. 작품을 보았지만 충분히 읽지 못했고, 만났지만 충분히 대화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번에야 비로소 작가 토크와 수업을 통해 이들의 작업을 연속적으로 따라갈 기회를 얻었다. 그렇게 여러 해에 걸쳐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하나의 질문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기술이 세계를 편집할 때, 탈락한 것들은 어디로 가는가.

2021년 무렵, 우박스튜디오는 부산의 골목들을 라이다(LiDAR)로 스캔해 구글 스트리트뷰에 업로드했다. 구글이 사용자들에게 요청하는 문구를 문자 그대로 밀어붙인 행위였다. “실제 그대로의 경험을 공유해 주세요.” 그런데 이미지들은 사라졌다. 하늘처럼 반사되지 않는 표면이 검게 찍히는 라이다 데이터의 특성 때문에, 알고리즘이 이를 밤의 이미지로 분류했으리라는 것이 작가들의 추측이다. 추측일 수밖에 없다. 구글은 무엇이 왜 탈락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이 작은 해프닝 안에 그들의 작업 전체가 압축되어 있다. 현실을 포착하라는 시스템의 요청, 그 요청을 문자 그대로 수행한 결과물, 그리고 시스템 자신에 의한 침묵의 삭제.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기술의 무능이 아니라 기술의 기준이다. 지도는 현실 전체를 담지 않는다. 지도는 선별한다. 그리고 그 기준은 공표되지 않은 채 작동한다. 이 글이 따라가려는 질문은 하나다. 기술이 세계를 편집할 때, 탈락한 것들은 어디로 가는가.
<Escape Maps> 시리즈, <No is Canceling>, <Realtime Blue Boundary>, 그리고 <Voooooo-Peeeeee>. 네 계열의 작업을 연속해서 읽으면 하나의 궤적이 선명해진다. 탈락의 장소가 외부에서 내부로, 세계에서 몸 안쪽으로.
<Escape Maps> 시리즈에서 탈락하는 것은 도시다. Travel Agency는 지도가 찾지 못하는 부산의 골목들을 관객이 탐험하게 하는 인터랙티브 설치이고, The Phantom은 같은 문제의식을 장소에서 경험으로 옮긴다. 동시에 최대 4~5명의 관객이 VR 환경에서 사용되는 트래커와 헤드폰을 착용하고 공간에 들어서면, 포인트클라우드 공간에는 ‘손실된 데이터’가 된 사람들의 흔적이 유령 실루엣으로 남아 있다. 라이다 스캔에서 누군가 앞을 가로막고 서 있으면 그 뒤로 데이터 공백이 생긴다. 부재의 형상이 곧 존재의 증거인 이미지. 우박스튜디오의 유령론은 여기서 시작된다.

<No is Canceling>에서 탈락하는 것은 이미지다. 메타의 세상의 모든 것을 구분하겠다는 선언을 담은 세그멘테이션 모델 Segment Anything을 실제로 돌리면, 분류되지 않는 자투리 픽셀들이 남는다. 작가들은 거기서 Mx.NO라는 가상의 인물을 구성하고 사라진 그를 추적하는 9채널 서사를 전개한다. 역설은 정확히 여기에 있다. Mx.NO는 인식되지 않기 때문에 추적이 가능하다. 매체 선택도 우연이 아니다. 뒷면을 뜯으면 작동 원리가 눈에 보이는 기계. 노이즈가 많을수록 오히려 솔직하게 느껴진다는 직관은, 게임 엔진이 이미지의 인공성을 감추기 위해 마지막 단계에서 일부러 노이즈를 첨가한다는 사실과 만나 작업의 핵심 명제가 된다. 노이즈는 제거 실패의 흔적이 아니다. 시스템이 보지 못한 것을 알려주는 신호다.
<Realtime Blue Boundary>에서 탈락하는 것은 생태다. 나방은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 때문에 자율주행 시스템의 주요 데이터와 개발 서사에서 주변부에 놓인다. 그런데 작가들이 발견한 실제 연구에서 나방은 정확히 그 이유로 소환된다. 학습된 데이터가 아닌 즉각적 반응 데이터가 시스템 완성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변부의 존재가 그 세계를 구성하는 원천이 된다. 탈락의 위치는 더 이상 ‘밖’이 아니라 ‘모순적 내부’다. 이 작업에서 비평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따로 있다. AI 에이전트 A.MO가 전시 중 설계와 다르게 항상 한쪽 방향으로만 도는 패턴을 보였는데, 작가들은 이것을 버그로 수정하는 대신 질문으로 전환했다. 나방의 어떤 알 수 없는 본능을 학습한 것이 아닐까. A.MO의 서사는 이 통제 불가능한 잉여에서 만들어졌다.
<Voooooo-Peeeeee>에서 탈락은 몸 안쪽으로 파고든다. 출발은 가족의 CT 이미지 속 검은 공동, 빛이나 음파가 통과하지 못해 생기는 빈 자리다. 두 작가는 이것을 디지털 트윈의 공백, 해저 데이터센터의 텅 빈 물리적 공간과 나란히 놓는다. CT의 공동, 디지털 트윈의 공백, 데이터센터의 빈 공간은 서로 다른 대상이지만 이상하게 닮아 있다. 더 많이 측정하고 재현하려 할수록, 비어 있는 부분도 덩달아 생긴다. 관객의 몸에 채워지는 에어수트는 이 감각의 공백에 대한 응답이다. VR 내러티브와 연동되어 실제로 부풀고 수축하는 이 장치는 감각되지 않는 부피를 몸으로 돌려보낸다. 작품 서사의 중심에는 투명한 개구리가 있다. 부풀릴수록 얇아지고 투명해지며 물과 육지를 오가는 경계적 생물. 개구리는 외부에서 들어와 시스템을 개선하거나 구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CT의 공동과 디지털 트윈의 공백처럼, 시스템이 이미 만들어놓은 틈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Mx.NO와 나방, 개구리는 서로 닮지 않은건 분명하다. 그런데 셋 모두, 시스템이 온전히 포착하지 못하는 자리에서 등장한다. 우박스튜디오는 이 불완전한 가시성을 하나의 가능성으로 밀어붙인다. 경계에 탑승하는 전략으로서의 투명해지기. 이 전략을 마찰 없는 동화, 조용히 스며들기로 읽는 것은 오독이다. 라이다 업로드 이야기로 돌아가자. 그 행위가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성공해서가 아니라 삭제되었기 때문이다. 시스템의 요청을 문자 그대로 수행하자 시스템이 거부했고, 그 거부의 순간에야 공표되지 않던 기준인 밝은 것, 인식 가능한 것, 산업에 유용한 것이 윤곽을 드러냈다. 투명해지기는 시스템의 감지 문법에 마찰을 일으킴으로써 그 문법을 가시화하는 전략이다. 매끄럽게 작동하는 시스템은 자신의 기준을 보여주지 않는다. 기준은 무언가가 걸리고, 지워지고, 분류에 실패하는 지점에서만 드러난다.
리서치에 등장하는 한 일화가 이 지점을 날카롭게 비춘다. 독일에서 자기 집을 블러 처리해달라고 요청했다가, 이용자들이 실제로 찾아가 계란을 던지며 항의했다는 사례다. 가리지 말고 투명해지라고. 여기서 투명성은 시스템이 개인에게 강요하는 가시성의 의무다. 우박스튜디오의 투명해지기는 정반대다. 감지망에 포착되지 않으면서도 사라지지 않는 것. 한쪽에서는 시스템이 가시성을 요구하고, 다른 쪽에서는 감지되지 않을 권리가 문제가 된다. 우박스튜디오의 ‘투명해지기’는 바로 이 차이 사이에서 작동한다.
우박스튜디오의 제작 도식(개인적 경험 -> 리서치 -> 내러티브 -> 작품 경험)은 이들이 비판하는 디지털 지도의 편집 구조와 형태적으로 동일하다. 이것을 치명적 모순으로 읽을 것인가. 편집 바깥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재현은 선별이다. 우박스튜디오가 하는 것은 편집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주변으로 밀어낸 것들을 자기 편집의 제1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형식은 비슷하지만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중심에 놓는지는 달라진다.

그 차이는 A.MO를 다루는 방식에서 더 분명해진다. 예상하지 못한 비행 패턴이 나타났을 때 작가들은 그것을 지우거나 수정하지 않았다. 대신 이름을 붙이고 목소리를 주었다. A.MO가 예상치 못한 비행 패턴을 보였을 때, 작가들은 이름을 붙이고 목소리를 주었다. 구글이 구글 스트리트뷰에서 했던, 라이다 이미지가 이유도 모른 채 사라졌던 장면과는 방향이 다르다.
Mx.NO, 포인트클라우드 속 유령 실루엣, 나방-A.MO, 투명한 개구리. 이 존재들은 원래 거기 있었던 것인가, 우박스튜디오가 만들어낸 것인가. 둘을 완전히 나누기는 어렵다. 있던 흔적을 발견하지만, 그것들을 연결해 하나의 존재로 만드는 과정은 작가의 몫이기 때문이다. 먼저 흔적을 발견하고, 그 흔적들을 연결해 새로운 존재를 발명한다. 이미 존재하는 잔여를 재료로 아직 이름 붙지 않은 존재를 구성하는 일이다. 다만 이 존재론은 낙관적 재생의 서사가 아니다. Mx.NO는 AI 세그멘테이션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개구리는 CT 공동이 만든 틈에서만 나타난다. 그래서 이들의 등장을 해방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모습을 드러냈지만 언제든 다시 사라질 수 있고, 아직 안정된 자리를 얻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탈락을 단순한 결핍으로 보면 해결법은 쉽게 정해진다. 해상도를 높이고, 분류를 정교하게 하고, 감지망을 더 촘촘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시스템이 이미 향하고 있는 방향이기도 하다. 우박스튜디오는 탈락을 가능성으로 읽는 것이라는 다른 응답을 보여준다. 기술의 누락은 이제 우리 몸 안쪽까지 들어와 있다. 검은 공동은 더 이상 지도 위의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포인트클라우드 속 유령이었고, 이후에는 분류되지 않은 픽셀과 나방이 나타났다. 이제 빈자리는 몸 안쪽의 검은 공동까지 들어온다. 우박스튜디오는 그 공동을 결핍으로 남겨두지 않는다. 그 안에 개구리를 살게 한다. 부-피-. 감지되지 않는 것들이 여전히 세계 안에 있다는, 작고 끈질긴 신호로.
허대찬. 미디어문화예술채널 앨리스온 aliceon.co.kr 편집장
이 글은 2026 AT&D School '관계로서의 기술 / Technology as Relation' 프로그램의
우박스튜디오 작가 토크(2026.6.4) 및 비평수업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토크 리뷰 – 사라진 것들 사이에서: 우박스튜디오 작가 토크 기록
비평 – 유령, 노이즈, 개구리: 우박스튜디오와 잔여의 존재론
인터뷰 – 우박스튜디오: 탈락한 것들이 돌아오는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