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것들 사이에서: 우박스튜디오 작가 토크 기록

AT&D School 2026 ‘관계로서의 기술(Technology as Relation)’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우박스튜디오(우현주·박지윤)와 두 시간의 토크가 진행되었다. 공개 강연이라기보다는, 작가들이 창작 과정을 깊이 풀어놓으면 그 내용이 추후 강의 자리에서 다시 전달되는 시간이었다. 이 자리는 그동안 해온 작업의 제작 과정을 깊이 있게 풀어놓는 자리였고, 여기서 나온 이야기는 이후 비평수업의 중요한 바탕으로 연결될 예정이다. 이 글은 그날 오간 이야기를 옮긴 기록이다.

토크는 두 사람의 자기소개로 시작되었다. 그들은 학부에서 영상디자인을 전공하며 만났고, XR 기반 작업을 한다고는 하지만 사실 매체에 대한 관심이 다양하다고 했다. 작업의 출발점을 묻자 그들은 이렇게 답했다. 길을 가다 핸드폰을 보는 할머니를 우연히 본 순간, 혹은 가족 사이에서 나온 어떤 이야기라고. 그런 사적인 장면에서 작업이 시작된다고 했다. 거기서 둘이 리서치를 시작하는데, 정말 방대하게 마인드맵을 그려놓고 거기서 추려나가는 방식이라고 풀어놓았다. “진짜 방대하게 마인드맵을 그려놔요. 그리고 거기서 계속 추려나가죠.” 옆에서 거들었다. “다 풀면 또 재미없어지니까.”

이야기를 듣다 보니 여러 작업에서 비슷한 관심사가 반복해서 등장했다. 기술이 세계를 보여주는 것인지, 아니면 특정한 방식으로 선택하고 편집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남겨지는 것과 사라지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지도에 없는 골목들

가장 먼저 소개한 작업은  <Escape Maps>시리즈였다. 시작은 부산 레지던시였다. 처음 가본 동네라 디지털 지도를 의식적으로 많이 썼는데, 막상 가보니 지도가 거의 무용했다고 했다. 언덕과 골목이 너무 많았고, 정작 그 공간에 사는 사람들은 전혀 다른 경로로 다니고 있었다.

그 지점에서 라이다 스캐닝에 관심이 생겼다고 했다. 작가들은 직접 라이다 센서를 메고 지도에 없는 골목들을 돌아다니며 공간을 수집했고, 그걸 구글 지도에 업로드했다. “실제 그대로의 경험을 공유해 주세요.” 구글이 사용자들에게 권하는 행위였다. 그런데 업로드한 이미지가 사라졌다고 한다. 라이다 데이터는 하늘 같은 빛이 반사되지 않는 면이 검게 찍히는데, 구글 알고리즘이 이를 밤 풍경으로 오인해 걸러낸 것이 아닐까 추측했다고 한다. 다만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구글은 삭제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다고 했다.

우박스튜디오, 〈Escape Maps〉 프로젝트 이미지. 작가는 2021년 부산 레지던시 기간 중 구글 스트리트뷰의 제작 가이드라인을 따르면서도, 플랫폼이 기대하는 ‘보편적’ 장소 이미지와 어긋나는 스트리트뷰를 제작해 업로드했다. 2022년 4월 기준 업로드된 6개의 스트리트뷰 중 하나는 현재 구글맵에서 보이지 않으며, 현실과 가장 유사한 이미지였음에도 어두운 하늘 때문에 ‘밤’으로 분류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지 출처: 우박스튜디오 홈페이지.

이 리서치는 작품의 인터랙션으로도 이어졌다. 작품 안에는 로봇이 아님을 증명하는 리캡차 형식의 장치가 있는데, 일반적인 신호등이나 횡단보도 사진 대신 밤처럼 찍힌 이미지를 선택하게 만들어놓았다고 했다. 구글이 가려내는 데이터를 거꾸로 사용자에게 골라보게 한 셈이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지도 제작의 역사로 이어졌다. 소규모 지도 제작사들이 저작권 침해를 확인하기 위해 몰래 심어두었던 가짜 길, 이른바 ‘트랩 스트리트’ 이야기부터, 재개발이 멈춘 동네보다 먼저 완공 예정 아파트가 지도에 등장하는 현상까지 다양한 사례가 언급됐다. 구글 로컬 가이드 인터뷰도 소개됐다. 어떤 리뷰는 며칠씩 걸려 게시되고 어떤 리뷰는 즉시 노출되는 현상을 스스로 실험해본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한때는 활동이 많은 리뷰어를 구글 본사로 초청하거나 ‘지역 가이드’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도 했고, 그렇게 모인 사람들끼리 따로 커뮤니티가 생기기도 했다고 한다. 다만 그 초청 프로그램은 지금은 없어졌고 커뮤니티만 남아 있다고 했다. 독일에서는 집을 블러 처리해달라고 요청했다가 오히려 항의를 받은 사례도 나왔다.

CRT를 직접 뜯다

<No is Canceling>으로 넘어가자 화제는 메타(META)의 이미지 분할(Segmentation) 모델로 옮겨갔다. 모델 이름이 Segment Anything이라는 점이 작업의 출발점이었다고 했다. 정말 모든 것을 다 구분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는 것이다.

우박스튜디오, 〈No Is Cancelling〉 작품 이미지. 관객의 조작과 화면 속 인식 결과가 겹쳐지며, 컴퓨터 비전이 세계를 분류하는 방식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독과 누락의 상태를 보여준다. 네마프 2025 설치 장면. 이미지 출처: 우박스튜디오 홈페이지.

실제로 돌려보니 분류되지 않는 영역들이 남았다. 경계가 모호하거나 조명이 충분하지 않은 부분들이었다. 작가들은 그 자투리 픽셀들을 모아 Mx.NO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고, 사라진 그를 추적하는 9채널 영상 설치를 구성했다. Mx.NO를 작은 증강현실(AR) 애플리케이션 안에 풀어놓기도 했는데, 공간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으면 AI가 사물을 한자리에 고정하지 못한다는 점에 착안한 장치였다고 했다. 그래서 화면 속 Mx.NO는 한자리에 머물지 못하고 계속 미끄러지듯 자리를 옮겨 다닌다고 했다.

매체로 CRT TV를 고른 이유를 묻자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왔다. 작업을 위해 CRT를 직접 사 와서 수리하는 과정을 거쳤는데, 그 과정에서 이 기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눈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맥북이나 핸드폰은 어떻게 작동하는지 전혀 모르겠는데 이 TV는 어떻게 작동하는지 너무 이해가 되더라고요.” 노이즈가 많은 매체일수록 오히려 더 솔직하게 느껴진다는 감각도 그 경험과 연결돼 있었다.

장애물의 오른쪽으로

<Realtime Blue Boundary>에서는 나방 이야기가 이어졌다. 나방이 UV 빛을 등지고 비행한다는 연구를 발견했고, 거기서 영감을 받아 자율비행 AI 에이전트 AIMO를 학습시켰다고 했다. 그런데 전시를 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패턴을 발견했다. 장애물을 피해 다니는 줄 알았던 에이전트가 실제로는 항상 한쪽 방향으로만 회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작가들은 이것을 단순한 오류로 처리하지 않았다. 어쩌면 나방의 어떤 행동 특성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학습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상상을 이어갔다.

이 이야기는 곧 드론 산업으로 연결됐다. 나방의 회피 반응 데이터가 자율주행 드론 연구에서 관심을 받는 이유는 학습용 데이터보다 실시간 대응 데이터로서의 가치 때문이라고 했다. 예측하기 어려운 생명체의 움직임이 오히려 시스템 설계에 참고가 된다는 설명이었다.

리서치 과정에서는 사람이 갈 수 없는 곳의 스트리트뷰를 모으기 위해 양의 등에 360도 카메라를 매단 사례도 발견했다고 했다. 그렇게 찍힌 영상 어딘가에는 양의 모습이 흐릿하게, 거의 투명하게 걸려 있는 장면도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손가락 네 개

마지막은 <부우우—피이이—>였다. 작품의 출발점은 가족의 병원 경험이었다. CT를 찍었는데 이미지 안에 텅 빈 공간이 있었고, 거기서 작업이 시작됐다고 했다. 이후 디지털 트윈, 해저 데이터센터 같은 보이지 않는 데이터 인프라 이야기들이 연결됐다.

7년 만에 다시 만든 VR 작업이라는 점도 언급됐다. 예전에는 컨트롤러를 쥐어야 진동 피드백이 왔는데, 이제는 손 자체가 인식된다고 했다. 하지만 가상의 사물을 만져도 실제 감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에어수트를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 텅 빈 감각을 몸으로 다뤄보기 위해 무용가들과 함께 움직임을 연구하는 과정도 거쳤다고 했다. 체적 조명을 손으로 만지면, 실제로는 손이 보이지 않는데도 무언가 만져지는 듯한 낯선 감각이 든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VR 안에서 손가락이 다르게 인식되도록 설정했을 때 관객들이 보인 반응이 특히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현실의 손가락은 5개인데 VR 안에서는 4개로 인식되니까, 관객들이 자기도 모르게 손가락을 모아보시더라고요. 이렇게요.”

우박스튜디오 작가 토크 발표자료 중 일부. 작가들은 VR 환경에서의 손 인터랙션과 볼류메트릭 라이트를 예로 들며, 가상공간 속 감각이 어떻게 시각적·신체적 경험으로 구성되는지를 설명했다. 이미지 출처: 우박스튜디오 발표자료.
그 이후

작업 이야기가 끝난 뒤에는 최근 다녀온 해외 VR·이머시브 페스티벌 경험이 이어졌다. 네덜란드, 대만, 프랑스의 쇼케이스 현장 이야기부터 VR 작업이 영화 산업의 유통 구조와 만나면서 최근 몇 년 사이 제작 규모와 완성도가 크게 달라지고 있다는 관찰도 나왔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본 작품 두 편을 보고 울었다는 개인적인 고백도 이어졌다. 이후 부천과 가오슝, 토론토의 행사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눈 뒤 자리는 마무리됐다.

토크에서는 작업의 제작 과정뿐 아니라 지도 플랫폼, 이미지 분류 모델, 자율비행 시스템, VR 인터페이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함께 오갔다. 이 자리에서 나온 질문들은 이후 진행될 비평수업과 비평글에서 다시 다루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