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무하는 AI, 사유하는 신체: 〈Ai-iA〉가 탐색하는 ‘이분법 너머’의 가능성 -01

박유라_써클렌즈_퍼포먼스 전경_국립현대무용단 제공

2025년 10월 21일부터 25일까지 국립현대무용단의 《2025 무용×기술 오픈위크》가 열렸다. 국립현대무용단이 지난 2021년부터 운영한 《무용×기술 창작랩》의 성과 공유와, ‘포스트 휴먼 & 포스트 휴머니즘’을 주제로 이어온 실험들을 오픈 프로그램으로 선보였다. 앨리스온은 《2025 무용×기술 오픈위크》의 〈Ai-iA〉팀을 이끈 안무가 황수현, 드라마투르그 김재리와 퍼포먼스를 펼친 무용수 강호정, 김용빈, 박유라, 허성욱을 인터뷰하였다.

24일 옛 국립극단 사무동 3층에서 진행된 〈Ai-iA〉의 퍼포먼스는 관객이 4명의 무용수 각자가 꾸린 무대-방을 이동하며 관람하는 퍼포먼스 겸 렉처 프로그램이다. 강호정의 〈수동의 자리〉는 무용수와 거대 언어 모델 AI의 수동성에서 출발하여 안무 과정에 잠재된 주체성을 다루었다. 김용빈의 〈디스토피아 박스〉는 가상의 질문을 현재에 구체화하기 위한 AI 제작하여 현재와 미래의 생태에 질문을 던졌다. 박유라는 〈써클렌즈〉를 통해 공연 감상 파트너로서 AI를 실험하며, 인공지능 기술 기반의 공연 음성 해설의 가능성을 탐구했다. 허성욱은 〈코레오 엔진 Choreo-Engine〉으로 가상 현실 게임 앱을 개발하여 예술적 상상과 안무적 실천을 펼쳐 보였다.

본 인터뷰는 참여자를 달리하여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질문에 따라 인터뷰이와의 대화를 재구성하여 두 편의 기사로 전달할 예정이다.

※ 개별 퍼포먼스 설명은 국립현대무용단의 홍보 자료 참조


Q1. 인터뷰 시작에 앞서 앨리스온 독자분들에게 각자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황수현: 안무가로 활동하는 황수현입니다. 국립현대무용단의 《무용×기술 창작랩》이 시작한 2021년에 리서치 프로젝트에 참여하였고, 2024년 《AI 콜라보레이터 X Archive》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올해 〈Ai-iA〉 쇼케이스의 기획과 큐레이션을 하였습니다.

김재리: 저는 드라마투르그 김재리라고 합니다. 2024년 《무용×기술 창작랩》에서 AI 콜라보레이터 안무가를 주제로 참여하였습니다.

강호정: 무용수 강호정입니다. 2025년 《무용×기술 오픈위크》에 황수현, 김재리 두 분이 초대해 주셔서 같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김용빈: 무용수로 커리어를 시작하여 지금은 미술, 연극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김용빈입니다. 2023년에 첫 안무 작업을 한 이후 창작에 거리를 두던 와중에 《무용×기술 오픈위크》에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박유라: 무용수이자 2021년부터 안무가로도 활동하는 박유라입니다. 기획과 공간도 운영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무용×기술 오픈위크》는 물론 국립현대무용단의 다양한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허성욱: 학부생 시절부터 출연 무용수와 안무가로서 경험을 쌓아가고 있는 허성욱입니다.

Co-Lecture_Ai-iA_국립현대무용단 제공

 Q2. 〈Ai-iA〉 팀이 구성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황수현, 김재리 님은 이전에도 같이 작업한 경험이 있지요. 어떤 점을 고려하여 무용가를 섭외하셨나요?

황수현: 기술과 친숙한 사람보다 오히려 기술과 관련이 없는 사람들, 그러니까 신체 기반이거나 아날로그적인 영역에서 활동하시는 분들과 함께하고 싶었어요. 그들이 기술을 사용하면서 생겨나는 자기 변화, 몸을 통해서 질문을 꺼내는 방식을 보고 싶어서 이 네 분을 섭외했습니다.

김재리: 이 프로젝트의 참여자 섭외는 누구를 초대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질문들을 어떻게 큐레이션 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했어요. 안무의 영역 안에서는 컴포지션이나 아상블라주라고 볼 수도 있겠죠. 안무, 신체, 기술, AI 등에 대한 이분법적 접근을 흩뜨리고, 우리의 일상 문화 안에서 이것을 어떻게 연결하고 받아들일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몸을 대하는 방식을 예술 안에서만 작동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확장하기 위한 큐레이션 전략을 취한 거죠. ‘춤은 몸으로 해야 한다’는 관념을 해체하고, 해체했을 때 나오는 것을 우리가 연결해 보면 또 다른 형식을 예술 안에서 발견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강호정_수동의 자리_제작발표회 현장_2_국립현대무용단 제공

Q3. 무용수로 참여하신 분들은 무용수로서, 그리고 각자의 쇼케이스를 꾸리는 기획자로서 어떤 기대를 하고 〈Ai-iA〉에 합류하셨나요? AI와 어떤 작업을 해 보고 싶다는 기대나 목표가 있었을 텐데요.

강호정: 저는 지금까지 무용수로서만 활동해 왔기 때문에, 완벽한 결과물을 만드는 작업보다는 어떤 특정한 작업 영역 안에서 일련의 과정을 거치고, 그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자신에게 묻는 그 질문 하나로 접근했어요. 초반에는 GPT를 계속 써봤어요. 하나의 작업물을 처음부터 끝까지 만든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GPT와 대화로 알아가면서 무용수의 어떤 부분을 대변하는 작업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여기에서 기술을 어떻게 함께 가져갈 수 있을지 오래 고민했습니다.

박유라: 사실 저는 기술에 큰 흥미가 없었어요. 〈Ai-iA〉 팀이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모여서 과정을 공유한다는 구조가 인상적이라 참여하게 된 케이스예요. 저에게는 안무의 과정 안에서 리허설의 프로세스를 어떻게 설계할지 사유하는 것이 중요한데, 한 달이라는 시간이 나의 사유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실험해 보고 싶었던 거죠. 2023년부터 관심을 가져온 공연 음성 해설에 미드저니, Chat GPT와 같은 AI를 접합한 단계별 과제를 설정하고 수행하는 것이 초기 계획이었어요.  

김용빈: 2024년에 카입 작가님의 AI에 대한 짧은 강연을 듣고 GPT에 본격적으로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어요.
GPT에 본격적으로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중 저에게 약간 미지의 영역이기도 한 AI를 사용하면서도 다른 창작자들과 함께 토론하는 과정 안에서 내 작업을 만들어 나간다는 리서치 방식이 흔치 않은 기회라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팀 안에서 발표 직전까지 새로운 걸 꺼내놔도 된다는 전제가 있었거든요. 처음부터 경로를 정해두지 않았어요. 초반에는 GPT가 내놓는 정보의 출처를 확인하고 분리하는 것에 포커스를 두고, 그 후에는 파인튜닝, 코딩까지 공부하면서 내가 원하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시뮬레이션 형태로 귀결된 거죠.

허성욱: 〈Ai-iA〉에서 참여 제안을 주셨을 때 굉장히 열려 있는 상태였어서 제가 하고 싶은 리서치를 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술을 꼭 써야 한다.”는 조건이 강조되는 대신 “기술에 감응하자.”는 제안에 가까웠다는 점도 기대감을 키우는 요인이었습니다. 리서치 초기에는 게임과 안무라는 용어를 병치시켜 그 안에서 비슷한 양태로 일어나는 일들을 비교해 보고 싶었는데, 양태가 비슷해 보여도 그 둘이 작동하는 원리가 애초에 너무 달랐다는 사실을 실감한 후로는 리서치를 지속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나중에는 “AI와 무용 사이에 내가 꺼내고 싶은 이야기가 뭐 있을까?” 자문자답하며 작업을 바삐 진행하였습니다.

 

Q4. 초기 기획 단계에서 황수현, 김재리 님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은 무엇인가요? 예년에 참여했던 《무용×기술 창작랩》과 비교하면 올해 어떤 부분에 특히 무게를 싣고자 하셨나요?

황수현: 기술에 중심을 두되, 기술이 질문을 주도하지 않도록 경계했어요. 예년의 《무용×기술 창작랩》이 기술 구현과 결과에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프로세스 자체를 드러내는 데 무게를 두고 싶었어요. 쇼케이스 역시 완성된 공연이 아니라, 사유와 실험의 중간 단계 정도로 설정했지요. 예년에 참여했던 《무용×기술 창작랩》에서는 컴퓨터 비전 AI를 다루는 팀과 협업하며 그에 관한 지식을 조금 얻었죠. 그런데 무용의 특이점을 고려할 때, 기술 인력들이 무용과 AI를 연결하는 시각이 제한적이고 AI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적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기술에 맞춰진 질문들에 머무르니까 아이디어도, 구현할 수 있는 것들도 비슷한 수준에 그치는 거죠. 〈Ai-iA〉에서는 기술이 주도하는 아웃풋 중심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기술에 대해 안무가나 무용수가 제기할 수 있는 비평적 관점이나 작업의 질문들을 다루고 싶었어요.

 

Q5. 기술 중에서도 〈Ai-iA〉팀은 생성형 AI에 집중했습니다. 특히 Chat GPT를 중점적으로 활용하셨는데요,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황수현: 2021년에 《무용×기술 창작랩》에 참여했을 때 AI 협업자를 키워보자는 아이디어를 제안했지만 채택되지 않았어요. 이후 몇 년 사이에 거대 언어 모델인 Chat GPT가 빠르게 발전했고, 비용, 절차, 난이도 등 여러 면에서 허들이 낮게 다가왔어요. 그래서 2024년에 언어 기반의 경력에 특화된 김재리 드리마트루그와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카입 사운드 작가님과 《AI 콜라보레이터 X Archive》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기도 했어요. 그 과정에서 우리가 어떤 기술에 익숙해지고 반응하고 다음 작업에 영향받는 일련의 과정을 실험하기에 언어 기반 AI가 적절하다고 생각했어요.

김용빈_디스토피아 박스_퍼포먼스 전경_1_국립현대무용단 제공

Q6. 프로젝트의 기획과 실행 단계에서 그간 해왔던 각자의 예술가 정체성, 그러니까 안무가, 드라마투르그, 실연자로서 AI를 바라보는 관점이 어떻게 변화하였나요? 또는 예술가와 AI와의 관계에 대해 달리 생각하게 된 지점이 있나요?

김용빈: 리서치 과정에서 AI를 어떤 위치에 둘 거냐,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이냐를 많이 논의했어요. 저는 AI를 공동 제작자의 위치로 생각하고 시작했어요. 그런데 제한된 환경 안에서 시뮬레이터를 제작할 때 AI는 계속 도구의 위치에서 질문에 대한 (이미 판단된) 답만을 내놓더라고요. 그래서 AI가 정해진 확답을 꺼내는 것을 경계하고 왜 그런 답을 내놓았는지에 대한 과정을 역추적해 보는 것에 집중했어요. 알려줘, 뭐 해 줘 방식의 질문을 하지 않고 네가 과정을 추론해 보라거나 상상해 보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AI가 꺼내 놓은 과정을 제 방식대로 해석하고 관객에게도 그 레이어들을 보여주면서 경험하게 하는 거죠. 얘를 멀리 보내보고 가까이 당겨보고, 위로도 둬보고 아래로도 둬보고. 굴리고 굴리면서 다른 위치에 둬보려고 했던 시도였어요. 저 스스로를 안무가로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이런 과정들을 안무적 실천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를 가장 많이 고민했어요.

강호정: 저의 경우에 GPT에 무용수로서의 저의 경험들, 나라는 사람의 정보를 준 후에 대화하며 만든 대본이 100% 제 말이라고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그렇다고 완전히 GPT의 말도 아니고요. 둘의 이야기가 뒤섞인 조금은 이상한 상태의 대본 같았어요. 하지만 그 텍스트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어떤 속도와 타이밍으로, 어떤 목소리와 크기로 전달할지는 제가 선택해야 했죠. 같은 글이라도 무대에서 목소리의 성별, 소리가 향하는 방향에 따라 전혀 전혀 다르게 들릴 수 있잖아요. 그 차이를 프로젝트 멤버들의 피드백을 받아 가며 계속 테스트하고 수정해 나갔어요. 후반 현장 작업에도 공을 들였고요. 결국 저의 감각에 따라 결정해야 하는 일들이었어요. 이런 과정들이 안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어요. 움직임을 다루는 것뿐 아니라, 관객과의 관계를 설정하고 콘텐츠를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지 다듬는 일이니까요.

김재리: 안무가나 리서치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가진 질문을 해결하기 위한 도구를 채택하잖아요. 그 도구가 AI가 될 때도 있고 자기 몸이 될 때도 있죠. 그런데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질문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하나의 프로세스로 생각해 보는 거예요. AI를 도구로 인식한다면, 나의 몸 역시 도구였던 걸까, 아닐까? 내 프로젝트에서 오브젝트로 삼은 것이 관점을 달리하면 서브젝트의 위치로 올 수 있지 않나? 호정 님의 작업에서처럼, 인간, 예술가, 기술, AI 등이 작업의 프로세스에서 도구와 협업자, 오브젝트와 서브젝트가 거듭 뒤바뀔 수 있는 거죠. 고정되지 않아요. 안무가와 무용수 사이에서 흔하게 발생할 수 있는 위계나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마지막에 책임을 어떻게 나누어 가질지, 아니면 더 나아가서 소유나 책임보다 무엇이 더 중요하게 남을 것인지도 짚어봐야 해요.

여기에서 저는 ‘대리인’이라는 다른 언어가 떠올랐어요. 기존 공연의 용어는 아니죠. AI를 대리인으로 세우는 것. 그로써 예술가의 윤리적 측면을 지켜내면서, 동시에 나의 얘기를 하지만 정확히 나는 아닌 거리를 확보하는 것. 본인의 경험과 아이덴티티를 바탕으로 할 때에만 나올 수 있는 쌓여 있는 질문들–안무가와 무용수의 관계, 안무에 따른 무용수의 움직임은 누구의 것인가 등-을 상대방이 바로 앞에 있을 때 하기 어렵다면, 대리인을 세워서 드러내는 거죠.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는 비평의 언어들이 생기는 측면을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상상하고 추동하고 끝없이 대화를 나누는 것. 지금 예술 안에 있는 가치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놓을 수 없잖아요.

박유라_써클렌즈_퍼포먼스 전경_1_국립현대무용단 제공

Q7. 국립무용단에서 〈Ai-iA〉의 프로젝트를 ‘쇼케이스’라고 표현으로 소개했습니다. 저는 가상의 무대에서 이루어진 1인극처럼 보았는데요. 직접 이 무대에 오르신 분들에게는 각자의 공간 혹은 무대가 어떤 의미였는지 궁금합니다.

박유라: 저에게는 이 쇼케이스가 완벽한 하나의 공연이었어요. 그래서 관객에게 제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서 현장에서 후반 수정 작업을 고심했어요. 제가 관객으로 공연을 볼 때, 기술의 역할을 상세히 설명 들으면 김이 샌다고 생각했어요. 공연을 공연으로 재밌게 보는 게 더 중요했죠. 그런데 정작 제가 기술 비중이 높은 작업을 해 보니, 관객이 먼저 이해하려고 들지 않아도 관객이 감각적으로 반응하는 것 외에 ‘머리로 이해하면서’ 따라올 수 있도록 하는 적극적인 안내가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점을 깨달았어요.

허성욱: 저에게는 이 프로젝트가 AI와 공연 예술이 만나지는 가능성을 가상의 내러티브로 구성해 보여주는 자리였어요. 저는 내용상으로는 가상 현실에서 안무를 게임처럼 시뮬레이션하는 앱을 판매하는 회사의 홍보 담당자였는데요. 해당 앱을 홍보한다는 명목하에 해당 앱의 베타 테스트 버전에서 어떤 작업과 논쟁이 있었는지를 전하는 일이 작업의 중심이었습니다. 제 시나리오에 따르면 오직 완전무결한 명령 체계에 선망을 가지고 앱을 만든 회사가, 베타 테스트에서 예술가들이 보인 여러 시도와 논쟁을 통해 시야를 확장하는 지경에 이르는데요. 관객에게 소개되는 베타 테스트 작업물 중에는 무용 공연의 접근성에 관련된 비현실적이고 미래적인 접근들이 시도됩니다. AI와 만나 변이되는 공연 예술의 양태가 마치 커브 컷(curb-cut) 효과처럼 작동하면 좋겠다는 기대를 투영하게 된 거죠.

김재리: 예술가 네 명의 작업을 보면서 AI가 예술가와 행위를 주고받는 주체이자 에이전시로 작동하는 순간들을 목격했어요. 이 과정이 앞서 이야기했던, AI를 도구냐 협업자냐로 나누는 이분법이 자연스럽게 흔들리고 해체되는 순간들이었다고 봐요. 결과물의 완성도나 기술 활용의 수준이 아니라, 그러한 관계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구체적인 행위의 존재유무 그것을 밀고 나가는 과정이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황수현: 저 역시 결과로 고정되는 이미지보다 ‘무엇이 작동하고 있는가’라는 행위의 구조에 주목했어요.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제 방식으로 말하자면, 명사처럼 정지된 형태가 아니라 움직임과 관계 속에서 동사가 작동하는 어떤 구조를 드러내는 과정이지요. 제가 무용수로 활동하던 시절에는 ‘내가 도구적으로 사용된다’고 느낄 때가 있었어요. 도구라는 언어에 부정적 뉘앙스가 있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거치면서 도구적이라는 인식이 과연 정말 나쁜 것인지 다시 자문하게 됐어요. 중요한 것은 언어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그 언어를 통해서 어떤 행위와 관계가 실제로 발생하는가가 아닐까요. 예를 들어, ‘도구’를 ‘재료’라고 치환한다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언어의 갱신이 필요할 때가 있지요. 하지만 언어적인 것보다 리얼한 행위가 더 중요한 거잖아요. 어떤 것에 접근할 때, 시작 언어와 끝 언어가 동일하지 않아도 어떤 [불만족스러운] 언어를 써서라도 보고 싶은 게 무엇인지 질문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프로젝트 안에서 예술가들이 기술과 얽혀서 실패 혹은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경험을 하더라도 그러한 경험 자체를 제공하는 것, 지금까지와는 다른 툴을 만나서 어려움을 통과해 나가는 안무적인 방법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 저에게는 중요했어요.

허성욱_코레오 엔진_퍼포먼스 전경_국립현대무용단 제공

Q8. 기술과 연결된 작업은 기술의 발전 방향과 속도에 영향받습니다. 〈Ai-iA〉 작업 이후에 본인의 작업을 기술과 관련하여, 혹은 오히려 이탈하여 어떻게 해나가고 싶다는 영감을 받으셨나요? 

박유라: 저는 사람이랑 작업할 때 흥미롭지만 예상가능한 것들을 적재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해왔어요. 그런데 기술이랑 같이하면 예상하지 못한 것이 나와요. 그것이 공연으로서의 가능성이나 잠재성을 가진다고는 아직 대답하지 못하지만, 내가 예상하지 못한 무언가를 다른 예술가나 관객과 공유한다는 지점이 짜릿했어요. 아직 기술이 생경하긴 하지만, 저는 공연 음성 해설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기술이랑 계속 작업하려고 해요. 관련 기술 개발하는 중소기업들과 컨택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합니다. 한편으로, 개인적으로는 기술 이전에 우리를 움직이게 했던 거친 인간성, 위계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재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술이 가져오는 유토피아적 민주 사회가 과연 반갑기만 할 세상일까요? 

허성욱: 프로젝트 초기에 황수현, 김재리 님이 AI와의 관계를 상호 주체적으로 가져가 보라고 제안하셨지만, 작업을 한창 하는 도중에는 도구적인 관계를 맺었던 것 같아요. 머리로는 이게 도구적 관계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는데도, 끝내 AI와 다른 관계를 실천하는 일에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작업 도중에는 AI와 작업하는 내가 어떤 이미지를 생성하거나 음악을 만드는 등 할 수 있는 일이 여럿 늘어난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 작업이 끝나고 나서는 내 안에 이미 내재한 AI적인 부분이 무엇인지 반추해 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AI가 오히려 나의 인간성을 부스트 업해주는 경우는 언제였던가, 이러한 자문자답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GPT의 알맹이 없는 멋들어진 답변 때문에라도 오히려 나한테 기대를 더 해야겠다는 결론이죠. 그런 맥락에서 저의 개인 작업 방향은 자꾸 저 자신을 돌아보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요.

김재리: 무용과 기술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에 불편함이 계속 있었어요. 무용의 역사를 보면 기술이 발전할 때마다 새로운 형식이 등장했지만, 남는 것은 네트워크, 협업, 미학, 안무적 방식의 갱신이었지 기술 자체는 아니었거든요. 특히 무용의 난제인 아카이브에 관한 고민이 깊어졌어요. 공연의 순간성과 아카이브의 고정성이 상반되지만, 그렇다고 아카이빙을 계속 거부할 수는 없죠. 기술이 새로운 방식의 아카이브를 가능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황수현: 〈Ai-iA〉의 핵심은 AI 기술 자체가 아니에요. 그 거대한 힘이 우리 몸의 감각과 일상에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사라지게 하는지 경험을 바탕으로 다루는 것이었지요. 지금은 그렇게 경험하면서 직접 질문을 생성하고, 시도하는 단계에 있는 것 같아요. 예술가들이 스스로 제도 바깥에서 자기 영역을 구축할 방안도 모색하고 있어요. 아직 구체적인 실천 단계는 아니지만, 기술을 하나의 동료이자 감각의 미래로서 실험하는 장으로 두면서 새로운 미학적 양식을 탐구해 보고 싶어요.

김용빈_디스토피아 박스_퍼포먼스 공간 전경 1
김용빈_디스토피아 박스_영상기록 https://youtu.be/7GYKZuqKbL8?si=my6H3zAgCXkELjHQ

Q9. 2025년 《무용×기술 오픈위크》에서 포스트 휴먼, 포스트 휴머니티가 큰 화두였습니다. 공연 후 이에 대해 각자가 얻은 답이 있나요? 그 생각들이 넓게는 기술, 좁게는 인공지능과 무용, 예술의 현재와 미래에 관한 사유로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용빈: GPT랑 붙어 있는 시간이 길수록 나도 모르게 GPT적 사고 회로를 탑재하게 되더라고요. 패턴화, 구조화, 정형화되는 사고를 하는 거죠. 효율성과 생산성을 올라가지만, 공연 창작 면에서는 그런 이질적인 완벽함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AI의 사고 회로를 잘 알아야 내가 원할 때 그것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겠다는 경각심이 갈수록 들어요.

김재리: 오픈위크 이후 “결국 무엇이 남는가?”라는 질문이 맴돌아요. 저는 기술 자체보다 예술 안에서 우리가 가치라고 부르는 것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고 봐요. AI를 무용에서 다루면서 안무가들이 새로운 기술을 잘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예술은 과학이 아니고, 학습의 영역도 아니죠.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나 대상과의 만남, 상상의 영역에서 여전히 작동하죠. 잘 모르는 대상과 대화를 만들기 위해 전략을 세우고, 그것에 접근하기 위해 도구를 만들고 서로 다른 것들이 작동하며 만들어내는 과정이 곧 안무의 과정이기도 하고요.AI를 비롯한 기술이 거대 자본과 결합해 온갖 격차를 가속화하는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죠. 예술가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끊임없이 질문과 비평의 여지를 남기는 일이라고 믿어요.

Q10. AI를 거쳐 몸과 예술의 가치에 질문을 던지는 이번 프로젝트를 관객이나 다음 세대는 어떻게 해석할까요? 이것이 새로운 무용으로 읽힐 가능성이 있을까요?

황수현: 저는 신체가 부재한 무용이 더 이상 새로운 시도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이미 무용의 역사 안에서 몸이 직접 등장하지 않아도, 무용수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움직임 등에 관한 상상을 추동하는 작업들이 있어 왔거든요. 중요한 것은 참여 예술가 각자가 이 세계를 어떤 것으로 보고 질문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들의 다음 행보는 무엇일지 궁금하게 하는 거예요. 다만, 2025년의 〈Ai-iA〉가 기술에 특별히 관심 없던 무용 창작자들이 참여해서 무용과 기술 협업의 문턱을 낮췄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봐요. 기술을 숙련해야만 다룰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하나의 태도와 입장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Q. 긴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참여자 아카이빙 계정
김용빈
아카이빙 계정
https://youtube.com/channel/UCH2eyfPmUotMNET2ZWyxBzQ?si=_qlSs6kwYznNRYfC
인스타그램 @empty_v1n

 황수현
인스타그램 @shh_works

허성욱
인스타그램 @sung_uk001|

 

사진 제공: 인터뷰 참여자 및 국립현대무용단 

인터뷰 진행 및 정리 : 임나래(앨리스온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