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 생성은 무엇을 만들고, 관계는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 KF 갤러리 《메타 플랫폼: 생성되는 관계들》 아티스트 토크

생성과 관계는 오늘날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메타 플랫폼: 생성되는 관계들》 아티스트 토크 현장. 참여작가 김민영, 김보슬, 민세희, 황선정, 오주영, 한윤정, 박제언, 진행자 허대찬. KF갤러리, 국제교류재단, 2026. ©박제언

비가 내리던 5월의 오후였다. 2026년 5월 7일, KF 갤러리에서 한국국제교류재단 창립 35주년 기념 특별전 《메타 플랫폼: 생성되는 관계들》의 아티스트 토크가 열렸다. 전시는 KF 갤러리와 KF 글로벌센터 메타버스라는 두 개의 공간을 오가며 펼쳐지고 있었고, 토크에는 미디어소녀 참여 작가들이 함께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생성”과 “관계”라는 두 단어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오늘날 “관계”는 더 이상 인간 사이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AI와 대화하고, 데이터 기반 추천 시스템에 반응하며, 생성 이미지와 디지털 자아를 통해 감정을 이입한다. 접속은 늘어나고 있지만, 그 연결은 단순하지 않다. 연결은 번역이기도 하고 오해이기도 하며, 때로는 인간과 비인간 시스템 사이의 충돌이 되기도 한다. “생성” 역시 마찬가지다. 생성형 AI 이후 생성은 더 이상 순수한 창조의 언어로만 남아 있지 않다. 지금의 생성은 예측과 재조합, 복원과 번역의 기술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가 흥미로운 이유는 이 두 단어를 기술적 결과물이 아니라, 동시대 감각의 조건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토크에의 시작 시점에서 재차 인상적이었던 것은 미디어소녀가 하나의 고정된 집단이라기보다 느슨한 네트워크처럼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민세희 작가는 기술 기반 작업을 해오며 여성 창작자들이 반복적으로 기술적 이해를 의심받아왔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작업을 두고 “혼자 한 것이 맞느냐”는 질문을 듣거나, 발표 자리에서 기술적 설명을 요구받는 일들 말이다. 미디어소녀는 그런 환경 안에서 서로를 발견하고 연결하기 위한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미디어소녀는 단순한 정체성 선언에 머물지 않는다. 이번 전시에 창작자로 참여한 기획자 박제언은 미디어소녀의 관계 맺음을 위계적인 조직보다 리좀적 구조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김보슬 작가 역시 필요할 때 함께 모이고, 때로는 느슨하게 흩어지는 유연한 팀이라고 말했다. 참여의 정도도 각자 다르다. 그럼에도 전시를 보다 보면 작업 안쪽에서 비슷한 감각과 관심사가 반복해서 드러난다.

이 느슨함은 단순한 친목의 형태가 아니다. 기술 기반 작업에서 한 명의 작가가 모든 과정을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진 시대에, 네트워크는 곧 작업 조건이 된다. 과거에는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렵게 협업자를 찾아야 했다면, 이제는 감각과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관계망 안에서 작업 자체가 확장된다. 그런 점에서 미디어소녀는 단체라기보다 플랫폼에 가까울 것이다.

오주영 작가의 작품 설치 전경. 벽면에 배치된 신문, 포스터, 사진, 텍스트 자료와 챗봇을 다룰 수 있는 중앙의 모니터 및 키보드가 함께 놓이며 개인적 기억과 사회적 이미지, 가족 서사와 미디어 기록이 교차하는 장면을 구성한다. 《메타플랫폼: 생성되는 관계들》 전시 전경, KF갤러리, 2026. 사진: 허대찬

대화의 중심에는 자연스럽게 AI가 놓였다. 다만 이날 작가들이 이야기한 AI는 하나의 단일한 대상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AI는 도구였고, 누군가에게는 지능이었으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타자였다. 박제언 작가는 “AI가 창작자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 대신, “AI는 행위자인가”라는 또 다른 화두를 던졌다. 만약 어떤 작가의 미완성 원고와 말투, 기록, 문체가 충분히 남아 있고 AI가 그것을 바탕으로 작품을 이어 완성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여전히 그 작가만의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오주영 작가의 작업 <1974 장충동: 문학소녀의 비밀편지>와도 맞닿아 있었다. 오주영 작가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원고를 발견한 뒤 AI를 통해 그것을 복원하거나 이어 쓰는 시도를 했지만, 결국 완전한 복원은 불가능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완성된 재현이 아니라, 복원되지 않는 흔적을 따라가는 과정이었다. 그 안에는 1970년대 여성의 글쓰기 감각과 문학소녀라는 존재 방식이 함께 남아 있었다.

민세희 작가는 생성이라는 개념을 “파생”에 더 가까운 것으로 설명했다. <생성되는 자아들>에서 개인의 데이터로 만들어진 AI 자아는 나와 닮아 있지만, 동시에 나와 다른 존재다. 그것은 취향과 편향을 공유하면서도 독립된 목소리처럼 말한다. 그는 앞으로 이런 디지털 존재들과 공존하는 일이 점점 일상적인 문제가 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AI를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규칙과 권리, 관계의 감각을 새롭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황선정 작가는 오히려 AI의 “정확성”이 작업에서 중요한 어떤 감각을 사라지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생성 이미지 기술이 점점 더 매끄럽고 선명해질수록, 자신이 관심을 가져왔던 추상성과 낯섦이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AI보다 몸의 감각과 인터뷰,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감각적 접점을 다시 탐색하게 되었다고 했다. AI는 더 똑똑해질수록 오히려 작가에게서 멀어지는 역설적인 도구가 되기도 한다.

한윤정 작가는 AI를 사용하되 그것이 작품의 표면 전체를 지배하지 않도록 경계하고 있었다. 그의 작업 <꿈꾸는 아기들: 일리>에서 AI는 관객과의 음성 대화 구조를 구성하는 데 활용되지만, 시각적 요소와 애니메이션은 여전히 많은 수작업을 거쳐 만들어진다. 그는 언젠가 “AI 아트”라는 표현 역시 “포토샵 아트”처럼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다.

김민영 작가는 AI를 “행위하는 계산기”라고 표현했다. 이날 토크에서 가장 오래 남은 문장 중 하나였다. 그의 작업 <재난 연구>는 생성형 AI를 활용해 가상의 재난 이미지와 다큐멘터리적 시각 언어를 충돌시킨다. 빠르게 생산되는 생성 이미지와 기록 사진의 느린 시간성이 겹쳐질 때, 관객은 이미지의 진실성을 다시 의심하게 된다. 재난은 단순히 재현되는 사건이 아니라, 이미지가 어떻게 현실처럼 기능하는가를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김보슬 작가는 AI를 여러 명의 협업자처럼 활용한다고 말했다. 작가가 세계의 기본 규칙과 방향을 설정하면, AI는 그 안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형상과 이야기의 가지를 뻗어 나가게 만든다. 인간과 비인간, 혼종 생명체와 가상의 사회 규범이 얽혀 있는 그의 월드빌딩에서 AI는 작가를 대체하는 존재라기보다 세계를 확장시키는 동료에 가깝게 작동한다.

한윤정 작가의 〈꿈꾸는 아기들: 일리〉 설치 전경. 어두운 전시장 안에서 영상 이미지와 유기체적 구조물이 함께 놓이며, 생명과 돌봄, 가족과 비인간적 존재의 관계를 몽환적인 감각으로 펼쳐낸다. 《메타플랫폼: 생성되는 관계들》, KF갤러리, 2026. 사진: 허대찬.

흥미로운 점은 작가 누구도 AI를 단순히 찬양하거나 거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AI가 인간을 닮아갈수록 인간 중심적 질문 자체를 다시 의심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반복해서 등장했다. 우리는 왜 AI에게 자꾸 인간의 얼굴과 욕망을 부여하려 하는가. 생성된 자아는 어디까지 나인가. 행위와 계산은 어디에서 갈라지는가. 토크는 이 질문들을 쉽게 정리하지 않은 채 열린 상태로 남겨두었다. 후반부 대화에서는 한국국제교류재단이라는 기관의 맥락 위에서 공공외교와 메타버스의 문제가 이어졌다. 문화교류는 더 이상 완성된 문화를 일방향으로 전달하는 방식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오늘날의 교류는 접속과 번역, 오해와 재해석의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오주영 작가는 이에 대해 자신의 작업이 해외 관객들과 만났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1970년대 여성의 삶과 문학소녀의 글쓰기를 다룬 작업은 매우 한국적인 맥락을 가지고 있지만, 오히려 해외 관객들은 그 안에서 자신의 기억과 경험을 발견했다고. 그의 작품을 마주한 인도의 관객은 음악적 기억을 떠올렸고, 홍콩의 관객은 번역된 한국어 텍스트에 강하게 반응했다. 문화교류는 완성된 국가 이미지를 전달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의 감각이 접촉하는 과정에 가까워 보였다.

김보슬 작가는 메타버스가 물리적 거리와 비용의 한계를 넘어 함께 질문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흥미로웠던 것은 그가 “아바타의 제한된 움직임 안에서도 이상하게 함께 있다는 감각이 생긴다”고 말했을 때였다. 물리적 몸은 없지만, 반응과 제스처, 기다림 같은 작은 움직임들이 새로운 형태의 현존감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민세희 작가의 작품 설치 전경. 다수의 인물 이미지가 배열된 영상 화면과 QR 코드 장치가 함께 놓이며, 화면 속 발화와 관객의 접속 행위가 서로 연결되는 구조를 만든다. 《메타플랫폼: 생성되는 관계들》, KF갤러리, 2026. 사진: 허대찬.

이날 현장에서는 실제 해외 관람객과 외교 관계자들의 반응도 공유되었다. 김민영의 재난 이미지를 본 한 외교관은 홍수 속 가족 사진의 기억을 떠올렸다는 큐레이터의 발언이 흥미로웠다. 또 다른 관람객은 김보슬의 혼종적 세계를 보며 자신의 고향 바다와 산호초를 이야기했다. 번역된 한국어 텍스트는 낯설었지만, 바로 그 낯섦 때문에 더 오래 머물게 되었다는 반응도 나왔다. 이 장면들은 공공외교의 의미를 조금 다르게 보게 만들었다. 작품은 “한국의 디지털 문화”를 대표하는 사례로 소비되기보다, 관객 각자가 자기 삶의 기억을 다시 꺼내게 하는 매개로 작동하고 있었다.

토크 후반부에는 세대와 젠더의 문제도 다시 등장했다. 한 대학생 관객은 과거 여성 프로그래머나 여성 미디어 작가들이 겪었던 차별에 대한 기억을 자신의 세대는 체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어떤 변화는 너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다음 세대에게는 이전의 장벽이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민세희 작가는 언젠가 젠더 격차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오더라도, “미디어소녀”라는 이름은 왜 한때 이런 이름이 필요했는지를 기록하는 장치로 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이름은 현재의 정체성을 설명하기보다, 한 시대의 필요를 기록하기도 한다.

김민영 작가의 작품 설치 전경. 어두운 전시장 안에 배열된 발광 이미지와 중앙의 인터페이스 장치가 함께 놓이며, 재난의 장소와 기억, 이미지 자료를 관객이 다시 탐색하도록 이끈다. 《메타플랫폼: 생성되는 관계들》, KF갤러리, 2026. 사진: 허대찬.

행사 막바지, 다시 AI 이야기가 이어졌다. AI는 계산기인가, 행위자인가. 혹은 행위하는 계산기인가. 그러나 이날의 대화는 기술 자체의 우열을 가리는 쪽으로 향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술이 너무 빠르게 의미를 생산하는 시대에, 예술은 무엇을 늦추고 붙잡아야 하는가에 가까웠다. 생성형 AI는 욕망과 상상력, 감정의 형식을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모방한다. 하지만 예술은 그 모방이 완전히 닫히지 않는 지점을 끝까지 응시한다. 무엇이 실제 감각이고, 무엇이 유사 감각인가. 무엇이 기억이고, 무엇이 데이터의 재조합인가. 작가들은 그 경계를 단정하지 않았다. 대신 그 모호함 속에 오래 머물렀다.

토크가 끝난 뒤에도 참여 작가들의 대화는 한동안 전시장 안에 남아 있었다. 메타버스 속 아바타 움직임 이야기와 번역된 한국어 텍스트, 복원되지 않는 기억에 대한 이야기가 공간 곳곳을 맴돌았다. 《메타 플랫폼: 생성되는 관계들》은 기술의 결과물을 보여주는 전시라기보다, 인간과 비인간, 데이터와 몸, 기억과 인터페이스 사이에서 지금 어떤 관계들이 새롭게 생성되고 있는지를 질문하는 전시에 가까웠다.

질문은 끝나지 않은 채 전시장 안에 오래 남아 있었다.

 

허대찬. 미디어문화예술채널 앨리스온 aliceon.co.kr 편집장


행사 정보

· 행사명: KF 창립 35주년 기념 특별전 《메타 플랫폼: 생성되는 관계들》 아티스트 토크
· 일시: 2026년 5월 7일 목요일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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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KF 갤러리 (국제교류재단)
· 
진행: 허대찬, 앨리스온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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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미디어소녀 참여 작가 중 김민영, 김보슬, 민세희, 황선정, 오주영, 한윤정, 박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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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기간: 2026년 4월 16일 – 5월 15일
· 전시 장소: KF 갤러리, KF 글로벌센터 메타버스 https://www.kf.or.kr/metave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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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최: 한국국제교류재단(KF)